조국
▲국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한 법무부장관 후보자 조국(曺國) 서울대 교수. ⓒYTN 캡처
세속의 정의: 공공선의 본질적이고 현실적인 상대성

지금으로부터 약 9년 전(2010년),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라는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판된 바 있다.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를 맡고 있던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이 집필한 이 책은 당시 한국 사회에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빈부격차, 정치인들과 공직자들의 노골적인 엘리트주의 및 비리 행각, 그리고 재벌가 중심의 예속적 경제질서에 지친 한국인들은 샌델이 제시한 공공선(the common good) 혹은 공동체적 정의라는 개념을 열렬하게 반겼다.

이 책이 한국 사회에 준 영향은 상당했는데, 정치권 역시 샌델의 공동체적 정의 개념에 관심을 기울이며 대중의 열망을 좇으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표적인 사례로 2012년 대선 선거운동 당시 박근혜 대통령 후보는 보수 우파를 대표하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자신의 정치적 소신이나 한나라당의 전통적인 정치적 스탠스와 다소 상반된 성격을 지닌 경제민주화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사실 이 경제민주화 정책의 기본 골자는 샌델이 강조했던 공동체적 정의와 부의 재분배의 정당성에 상당부분 상응하는 것이었다.

이 공동체적 정의에 대해 샌델은 다양한 예시와 논증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그 가운데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것은 그의 정의 개념이 가진 본질적 성격이다. 샌델의 공공선 개념은 상대적이고 유동적이며, 집단적인(집단주의가 아닌) 성격을 갖는다.

그것은 삶의 현실적이고 역사적인 정황, 즉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삶의 내러티브들을 바탕으로 정의의 잠정적 기준을 세울 것을 요청한다.

샌델은 영원 불변의 보편적 당위나 존재론적 토대를 가진 정의 개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가 보는 관점에서는 지고선의 관념으로부터 선험적으로 수여되는 정언명령(칸트)같은 근대적 도덕 법칙이나 최고 현실태로부터 유래되는 목적인을 충족시키는 미덕(아리스토텔레스)과 같은 고전적 윤리관 등은 삶의 구체적 현실과 자주 충돌하게 되기 때문에 변화가 불가피하다.

샌델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홉스 식의 공리주의가 더 타당해 보이지만, 근대적 공리주의 역시 ‘최대 다수의 행복’을 정의 판단의 기준으로 삼으라는 기본 골자만 제공했을 뿐, 현실에 적용하려면 상당한 난관을 돌파해야 한다.

기존의 서구 도덕 법칙이나 윤리학이 해결하지 못하는 현실적 이슈들을 앞두고, 샌델이 제시하는 해답은 원론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현대 사회의 현실을 깊이 유념하고 있다.

각각의 공동체가 연대적인 도덕 의무를 바탕으로 옳고 그름의 기준을 수립하고 민주적 절차를 통해 정의의 개념을 공유하고 수정해 나가는 것이 그가 제시하는 방향성이다.

조국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과 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
이처럼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각광받고 있는 사회 정의, 세속적 정의 개념은 성경의 말씀에 기초를 둔 기독교의 공의 개념과 본질적인 차이를 보인다.

전통적으로 기독교의 공의는 절대적, 불변적, 권위적 성격을 갖는 것으로 이해돼 왔다. 기독교인들은 바로 이 점에서 추가적인 갈등과 어려움을 겪는다.

세속의 정의관을 무시할 수 없으면서도, 그것이 성경의 공의, 하나님의 공의의 내용에 부합하는지 시시각각 판단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법적 정의: 법전(法典)과 공공선의 가치 충돌

사회의 정의와 기독교의 공의를 함께 살펴야 하는 신앙인의 입장으로 볼 때, 현재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슈, 바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임명에 관한 이슈는 어떻게 읽혀지고 풀이될 수 있을까?

우선 사회 정의 개념을 바탕으로, 특히 한국 사회에서 널리 인정받고 있는 공동체적 정의 개념을 바탕으로 이 사안을 생각해 보자.

현재 조국 후보자의 기자간담회 및 인사청문회에서 특별히 쟁점이 된 바는 가족들의 탈법 행위들이다. 여기서 탈법 행위란 명시적으로 특정 법조문에 위배되지 않기에 직접적으로 처벌하기는 어렵지만, 거의 위법 행위에 준하는 효과를 낳는 부정적인 행위들을 말한다.

조국 후보자 가족들과 관련된 현안들을 보면 명백한 위법 행위가 의심되는 사안들이 산적해 있고, 또 실제 자녀들의 ‘스펙 쌓기’ 과정에 관여된 조국 후보자 부인의 일부 행위들은 검찰에 의해 기소되기까지 한 상태이지만, 아직 재판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무죄추정원칙에 따라 탈법 행위라고 지칭하면 좋을 듯하다.

조국 정경심
▲조국 후보자와 그의 배우자 정경심 교수. 그녀는 조국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진행되는 중 검찰로부터 기소를 당했다.
조국 후보자를 지지하는 이들, 즉 대통령을 비롯한 현 정권 최상위층과 여당(더불어민주당) 인사들, 그리고 대통령과 여당을 지지하는 일부 국민들이 조국 후보자의 임명을 옹호하는 논리는 간명하고 한결같다.

후보자 본인의 법적 흠결이 없는 데다, 가족들에게 부가된 혐의들도 명백한 위법 여부를 가리지 못하고 있으므로 법무부장관에 임명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후보자와 후보자 가족들에게 집중되는 혐의들은 정치적 계산이 반영된 조직적인 음해 공작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들이 현 사안에서 정의의 기준으로 내세우는 것은 분명 ‘법적’ 정의이다. 법적 정의라는 개념도 사실 단순하게 정의내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조국 후보자를 지지하는 편에서 수립한 정의의 잣대는 지극히 문자적이고 협소한 의미의 법적 정의, 즉 ‘법조문에 비춰보아 결격사유가 없는’ 그런 정의인 듯하다.

흥미로운 사실은 현 대통령과 여당을 지지하는 측, 소위 진보적인 정치 성향을 갖고 있다고 자처하는 이들이 바로 2010년 샌델의 공공선 개념을 열렬히 환영했던 주역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샌델이 제시한 공공선 개념은 지극히 협소한 법적 정의의 개념을 아득히 뛰어넘어 있다. 거기에는 특정한 시대정신을 공유하는 공동체의 긴밀한 협의와 도덕적 반성을 통한 정의의 기준이 자리잡고 있다.

당시 기회의 평등에 대한 열망은 경제민주화 공약을 이끌어내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출발점(자본력, 기술력)부터 다른 대규모 기업집단(대기업)과 중소기업, 중소 영세상인 및 자영업자들 간 경제적 기회 평등 보장이 경제민주화 공약의 기본 모토였다.

이제 겨우 9년 정도가 지난 현재, 기회의 평등이라는 구호에 열광했던 이들이 기회의 평등을 잠식하는 행위를 묵인 혹은 방관한 조국 후보자의 편을 드는 것은, 한 편의 서글픈 희극이자 아이러니다.

교육의 기회 평등, 그리고 경제적 이익 추구의 기회 평등(사모펀드 위법 혐의)이라는 공동체적 가치에 반하는 일들을 그 가족들이 지속적으로 시도해 왔다는 점은 분명 심각하게 고려되어야 할 사안이다.

게다가 이런 탈법적 시도들이 상당부분 조국 후보자 본인의 사회적 지위와 영향력을 바탕으로 할 때 가능한 것이었다는 개연적인 의혹 역시 간과될 수 없다.

이런 요소들이 당장 법적 정의에는 어긋나지 않을지 몰라도, 한국 사회에 널리 통용되는 도덕률과 국민적 정서에 현저하게 대치된다는 것은 분명하고, 그런 까닭에 그것은 그동안 많은 한국인들, 특히 진보적 정치성향을 가진 이들이 존경해 마지않던 샌델의 사회 정의, 세속적 정의 개념으로 볼 때 불의(不義)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조국
▲강연 중인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그는 평소 연구윤리를 매우 강조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대적이고 실존적이며 세속적인 정의라는 관점으로 볼 때, 조국 후보자의 가족들이 시도해온 일들, 그리고 자신의 바로 옆에서 일어나는 그 일들을 묵인하고 방치한 후보자 본인의 행적은 분명 정의롭지 못하다.

만일 이런 불의가 법무부 장관 임명에 흠결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공동체의 도덕률과 삶의 기준을 고의적으로 무시하는 독단적 엘리트주의의 소치로 여겨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면 이제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 사안을 신앙의 관점에서, 성경에서 가르치는 하나님의 공의의 관점에서 다시금 판단해볼 필요가 있다.

성경적 공의의 기준으로 볼 때, 조국 후보자와 그의 가족들의 행적, 그리고 이를 굳세게 변호하는 후보자 본인의 태도는 과연 불의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될 수 있을까? <계속>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