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
징비록

유성룡 | 김흥식 역 | 서해문집 | 320쪽 | 8,700원

사탄과 싸우지 않을 때, 사람과 싸우기 시작해
영적 전쟁 잊으면, 신앙이 속에서부터 썩는다

서애(西厓) 유성룡이 기록한 <징비록(懲毖錄)>. 임진왜란 당시의 모습을 기록한 책이다. 읽는 내내 마음이 힘들었다. 무력한 조선군. 자기 살 길만 쫓아 달아나는 관리들. 병법도 모르고 덤벼드는 조선의 장군들. 왜적이 10일 만에 한양까지 들어왔다. 그 동안 조선이 한 일이라고는 ‘도망’과 ‘무모함’, ‘탁상공론’이 전부였다.

“‘적들이 창칼을 잘 사용하는데, 우리 병사들은 갑옷도 없이 대항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철을 이용해서 갑옷을 만들어 입는다면 적의 공격을 막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모인 사람들은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때부터 공인들이 모여 잠도 자지 않고 갑옷을 만들었는데, 나는(유성룡) 아니다. 싶어서 말했다.

‘적과 싸울 때는 모였다 흩어졌다 하는 병법을 쓰므로, 빨리 움직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두껍고 무거운 갑옷을 입는다면 그 무게를 어떻게 견뎌내며, 또 움직이기도 힘든데 어떻게 적과 싸워 이길 수 있습니까?’ 갑옷 만드는 작업이 중단되었다.”

백성들이 매순간 죽어갈 때 왕과 대신들은 피난가기에 바빴고, 그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위와 같은 현실성 없는 대책뿐이었다.

도망가기에 바빠 전략적 요충지도 다 버렸다. ‘조령’이라는 천혜의 요충지가 있었다. 누가 봐도 천혜의 요새였다. 심지어 적들도 혹여나 우리의 매복이 있을까봐 여러 번 정찰을 하며 조심스럽게 지나간 요충지였다. 나중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지나갔다고 한다.

이런 천혜의 요충지조차 싸움 한 번 하지 않고 버렸다. 이후에 명나라 장수가 그 지형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이런 천혜의 요새지를 두고도 지킬 줄 몰랐으니, 조선의 장군은 형편없는 사람이구나.”

어떤 장군은 왜적이 10리(4km)안으로 왔음에도 정찰 한 번 보내지 않았다. 오히려 적이 근처까지 왔다는 보고를 듣고는, 보고한 군관의 목을 베어버렸다. ‘병사들을 동요시킨다’는 것이 이유였다. 아마 장군의 마음이 동요되었을 것이다.

전쟁을 해본 적이 없는 장군들은 두려웠다. 너무 두려워 왜적이 근처에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수많은 병사들과 함께 죽었다.

전쟁 없는 평화 너무 길어… 무기력한 패배
전쟁 준비 이야기 많았지만… 번번이 묻혀

왜적의 침입에 조선은 한없이 무기력했다. 유성룡은 조선의 무기력한 패배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100년에 걸친 태평성대로 인해, 우리 백성들은 전쟁을 잊고 지내다 갑자기 왜적의 침입을 맞게 되자 우왕좌왕하다가 혼비백산하고 말았다.”

원인은 평화였다. 전쟁 없는 평화가 너무 길었다. 아니, 전쟁을 준비하지 않는 평화가 너무 길었다. 전쟁을 잊은 평화는 평화가 아니다.

고대 로마의 스키피오 장군은 적국 카르타고가 불타는 것을 보고 울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우리가 웃을 수 있겠지. 그러나 가장 큰 적이 사라진 지금부터, 우리는 국력이 약해져서 우리 국민들은 긴장감을 잃고 타락하게 될 것이다. 언젠가는 우리들도 저 카르타고처럼 더 강인하고 새로운 적에게 짓밟히게 될 것이다. 나는 불타는 카르타고에서 언젠가는 다가올 로마의 운명을 생각하고 우는 것이다.”

결국 스키피오의 눈물은 예언이 되었다. 강력한 적이 사라진 로마는 내부로부터 부패하기 시작했다. 전쟁을 잊으면 안에서부터 썩는다.

왜적의 침입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율곡 이이가 주장한 ‘십만양병설’은 다른 시대 이야기가 아니다. 임진왜란을 겪은 선조가 왕으로 있을 때 했던 이야기다. 왜란이 일어나기 전, 조선의 조정에서도 계속 위험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1591년 봄(임진왜란, 1592년에 발생) 일본에 갔던 황윤길과 김성일 일행이 야나가와 시게노부, 겐소 등과 함께 돌아왔다. 부산에 도착한 황윤길은 머지 않아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보고했다. 그러나 김성일은 전혀 다른 보고를 올렸다. ‘신은 그런 기색을 느끼지 못했나이다.’ 이렇게 되자 조정의 의견 또한 둘로 나뉘게 되었다.”

징비록 류성룡
▲ⓒ유튜브 캡처
전쟁 준비에 대한 이야기는 많았지만 번번이 묻혔다.

임진왜란이 진행되는 기간에 백성들은 농사를 짓지 못해 굶었다. 아비는 아비 노릇하기 힘들어졌다. 어미는 제 자식 젖조차 물릴 힘이 없었다. 모든 것이 멈추었다.

그때도 ‘정쟁’은 멈추지 않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서로 파직되고 서로 복권되었다. 나라가 찢겨가는 전쟁 중에도 대신(大臣)들은 서로를 헐뜯으며 찢기 바빴다. 안에서부터 썩은 나라는 전쟁을 준비할 힘이 없었다. 전쟁도 정쟁에 묻혔다.

원래 히브리어에는 자음만 있다. 그래서 솔로몬(ㅅㄹㅁ)과 샬롬(ㅅㄹㅁ)은 같은 말이다. 솔로몬의 때는 평화의 시대였다. 그러나 전쟁이 두려워 정략결혼에 매달린 솔로몬의 평화는 위장평화였다. 결국 우상숭배로 이어지고 만다. 영적 전쟁이 사라지면 신앙이 속에서부터 썩는다.

신앙도 영적 전쟁, 갈등 없는 신앙 없어
내 안의 영적 전쟁 사라지면 사나워진다
목사도 설교에 빠져, 자신 놓칠 때 있다

신앙은 영적 전쟁이다. 갈등 없는 신앙은 없다. 사람과의 갈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말씀을 지키고자 하는 내 안의 영적 전쟁을 말한다.

사탄과 싸우지 않을 때, 다른 사람과 싸우기 시작한다. 내 안에 영적 전쟁이 사라지면 사나워진다. ‘시기, 분쟁, 수군수군, 당 짓는 것, 미움’ 어느 것 하나도,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다.

영적 전쟁은 나를 돌아보는 것이다. 다른 사람 눈의 티를 보기 전에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는 것이다. 말씀은 언제나 나 자신을 위한 것이 먼저다.

설교하는 목회자도 다르지 않다. 한참 설교 준비에 빠져, 나를 놓칠 때가 있다. 강단에 서기 바로 직전에, 말씀 속에 내 삶이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있다. 설교를 못했을 때 보다 그때가 더 부끄럽다.

기사 갑옷 갑옷의 한 벌 금속 포도주 제한 없음 전쟁 역사적인 드레스 차압 장식품 전신갑주
유성룡이 <징비록>을 기록한 이유도 누구를 헐뜯고자 함이 아니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다시는 이런 아픔을 겪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징비록>을 기록하고 그 이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시경>에는 ‘내가 지난 일의 잘못을 징계해서(懲) 후에 환란이 없도록 조심한다(毖)’는 말이 있으니, 이야말로 <징비록>을 저술한 까닭이다.”

“<징비록(懲毖錄)>이란 무엇인가? 임진왜란이 끝난 후 그 일을 기록한 것이다. 난(亂)이 발생하기 전의 일 또한 조금씩 기록했으니 이는 난의 처음부터 근원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이 속에는 과거가 들어 있다. 잘못한 과거다. 장수들의 무능함과 대신들의 잘못이 들어 있다. 유성룡 자신의 실책도 들어 있다.

그러나 잘못만 들어 있지 않다. 군주는 도성도 버리고 도망갔지만, 내 고장 버리지 않고 지킨 의병들의 이야기도 있다.

“임금님 계신 땅에 사는 것도 기쁘지만 절개를 위해 죽기로 각오한 성안에서 죽는 것도 영광이라네”라고 노래하며 성을 지키다 죽은 함안 군수 조종도의 기록도 있다.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 자신의 죽음조차 승리에 방해가 된다며, 버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도 있다.

지난 과거 돌이키지 못하나, 배울 수 있어
<징비록>, 과거 매이지 않고 배울 수 있어
성도, 죄 있지만 돌이키는 회개 할 수 있어

지난 과거는 돌이키지 못한다. 그러나 배울 수는 있다. <징비록>은 과거에 얽매여 있기 위해 쓴 책이 아니다. 배우기 위해 쓴 책이다. 과거를 통해 반성하고 성장하기 위해서 쓴 책이다.

성도는 죄 없는 삶을 살아 거룩한 사람이 아니다. 돌이키는 회개를 할 수 있어 거룩한 사람이다. 지난 과거는 사탄과 싸우기보다 사람과 싸운 삶일 수 있다. 하나님의 종이기 보다 죄의 종이 되어 살아간 세월이 많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과거에 매여 있지 않을 수 있다. 성도의 ‘징비록’은 회개다.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는 회개가 징비록이다. 넘어질 수는 있다.

그러나 주저앉아 있을 필요는 없다. 우리가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돌이킨다면 그제서야 진짜 승리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박명수 목사
사랑의침례교회 담임
저서 《하나님 대답을 듣고 싶어요》
출처: 아트설교연구원(대표 김도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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