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김지연 약사의 책 「덮으려는 자 펼치려는 자」의 내용을 인터뷰 형식으로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매주 1회 연재될 예정입니다.-편집자 주

김지연 약사
▲김지연 약사
영국 보건복지부의 연례 보고서에 등장한 VTEC

대장균은 말 그대로 대장에 분포하는 세균 가운데 하나이며 거의 모든 사람의 대장에 서식한다. 대장균은 유전자 조작이 간편하고 성장 속도가 굉장히 빨라 분자 생물학 연구 등에서 주로 쓰이며 일반적으로 사람의 체온에서 최적으로 생장한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가족보건협회 김지연 약사의 저서 '덮으려는자 펼치려는 자'에서는 변종대장균이 등장한 남성동성애자의 장 상태를 소개하는 영국 보건복지부의 보고서를 다루고 있다.

김지연 약사는 일반적인 대장균에 대해 먼저 언급했다.

"대장균은 그 자체로 크게 유해하진 않습니다. 즉 대장균은 입을 통해 소화기관으로 들어오더라도 보통의 건강한 사람에겐 해를 끼치지 않아요. 자신의 생명의 터전, 즉 숙주인 인간을 해치지 않음으로써 대장균 스스로를 지키는 것입니다. 분변에 얼마나 오염되었는지, 위생관리 척도로 대장균 양을 측정하기도 하죠. 위생 약학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던 위생 지표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김지연 약사에 따르면 영국 공중보건국은 2016년 발표한 보고서 '성(性) 건강상의 불균형: 런던 남성 동성애자들의 HIV와 성병에 대한 업데이트'에서 숙주를 공격하는 독성 물질을 뿜어내는 희귀 대장균이 남성 동성애자의 장에서 발견되었다고 밝혔다.

김지연 약사는 "인간의 세포를 파괴하는 독성 물질의 일종인 베로사이토톡신(verocytotoxin)을 뿜어내는 유독성 대장균에 감염되는 사례가 남성 동성애자들 사이에서 처음으로 보고됐다는 내용이 본 보고서의 골자"라고 요약했다.

"어느날 새벽녁 영국 보건복지부 홈페이지를 들여다보다가 이런 충격적인 내용을 발견하고는 몹시 놀랐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대장균 그 자체가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라고 전하고 있는 약대 위생 약학 전공서를 찾아 그 새벽에 다시 확인해 보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습니다. '어쩌다 대장균이 자기 삶의 터전인 숙주를 공격하는 독성물질을 뿜어낼 만큼 심한 변이를 하게 된 것일까' 하고 말이죠."

김지연 약사는 "유럽의 감염성 질병들을 조사·보고하는 유로서베일런스는 유해 대장균 균주인 'VTEC O117:H7 VT1(이하 VTEC)'이 2013년 11월부터 2014년 8월까지 9명의 성인 남성 장에서 발견되었다고 보고했다"며 "9명 중 8명이 남성 동성애자(MSM, Man who have Sex with Man)였다. 개체수가 10개도 안되는데 왜 영국 보건복지부가 호들갑을 떠는 거냐고 하는 분들이 가끔 있다"고 했다.

김 약사는 "개체 수가 9명에 불과함에도 영국 보건당국의 공식 연례 보고서에서까지 다룬 이유는 이 희귀 독성대장균의 등장이 보건학적으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매우 드문 현상이기 때문"이라며 "영국 보건당국은 이들 에이즈 감염자 및 다수의 성관계 파트너를 갖는 자들이 포함돼 있으며 남성 동성애자 사이에서 성병 감염이 급속한 증가를 하는 것과 관련 있는 양상이라고 보고했다"고 설명했다.

김지연 약사에 따르면 베로사이토톡신에서 사이토(cyto)는 '세포의'라는 뜻을, 톡신(toxin)은 '독'을 뜻한다. 그래서 살아있는 세포를 파괴하는 독성을 가진 물질을 통칭하는 세포 독소의 일종이라고.

이는 박테리아 같은 균체가 아니라고 한다. '균체'가 아닌 '물질' 형태로 독성을 띤다는 것. 즉 이런 독소를 뿜어내는 대장균이 장에 서식한다는 것은 마치 체내의 한 부분이 자체적으로 독성을 만들어내는 것과 비슷한 결과를 낸다고 김 약사는 말했다. 이 독성은 용혈성 요독 증후군(Haemolytic uraemic syndrome) 등 각종 치명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김지연 약사는 "영국 보건복지부가 인용한 논문에 따르면 VTEC이 발견된 9명은 공통의 음식이나 물, 동물에 노출된 경우가 전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결과적으로 음식이나 물이 아닌 '남성 간 성행위자'라는 특징만이 VTEC 감염자들의 유일한 공통점이었는 것"이라고 했다.

김지연 약사는 "남성 간 성행위자 8명 중 인터뷰에 응한 7명은 전원이 콘돔 없이 구강성교 및 항문성교를 자신의 남성 파트너와 가졌다고 답변했고 4명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GPS기능이 있는 게이 어플 등을 이용해 섹스 파트너를 만났다고 답했다고 보고 되었다"고 인용했다.

김지연 약사는 또 "영국 보건복지부 2016년도 보고서 및 그 인용 논문에 따르면 어플을 이용해 성행위 파트너를 만나면서 일상생활에선 쉽게 옮기 힘든 대장균까지 공유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7명 중 3명은 마약류를 사용하면서 동성 간 성행위를 했다고 답변했다. 인터뷰에 응한 남성 동성애자 중 3명은 에이즈 양성을 나타냈고 치료를 받고 있었다"고 했다.
 
이어 "이번 보고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남성 동성애자 사이에서 VTEC 균주가 집중적으로 확인됐다는 것"이라며 "보건당국은 표본 수가 적어서 해석에 제약은 있지만, 'VTEC O117:H7 VT1' 진단 사례가 매우 활발한 성생활을 하는 영국 태생의 남성 동성애자 사이에서 확산된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했다.

김지연 약사는 "영국 보건당국은 VTEC 외에도 세균성 이질에 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인터넷 팝업창과 남성 동성애자 신문, 잡지, 전단지 광고를 통해 위생정보를 알리고 있다"며 "이처럼 남성 동성애자들을 위해 각종 예방적 캠페인을 확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건당국은 남성 동성애 집단 내에서 각종 세균 감염이 줄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고 우려를 전했다.

김지연 약사
▲2019년 3월 한국가족보건협회 대표이사 김지연 약사가 거제 섬김의교회 오후 예배시간에 동성애 법제화 실태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이 새로운 균주의 등장은 남성 동성애자들의 대변 유래 감염(fecal-oral transmission)을 줄이기 위한 조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준다고 김지연 약사는 덧붙이기도 했다. 예를 들면 남성 간 성행위 시 고무장갑(latex glove)을 낄 것, 콘돔을 사용할 것, 치과에서 사용하는 구강 보호 기구인 덴탈댐(dental dam)을 쓸 것을 적극적으로 권하는 미국과 영국의 보건당국의 정책이 더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가족보건협회 관계자는 "이질균 감염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남성 동성애자 집단이 동시에 VTEC에도 노출될 수도 있음을 감안할 때 이런 예방조치는 매우 중대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김지연 약사는 이런 영국 보건국의 경고성 게시물이 남성동성애를 차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건강권과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남성 동성애자의 장에서 많이 발견된 'VTEC O117:H7 VT1'를 두고 영국 보건국은 결코 그들을 차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건강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김지연 약사는 이런 정책 기조가 다음과 같은 영국 2016년 보건당국 보고서 문구에도 잘 나타나 있다고 했다.

"VTEC O117:H7 VT1에 대한 공공보건 활동은 남성 동성애자의 건강과 복지를 개선하고 보건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적 차원에서 진행되어 왔다."

김지연 약사는 "우리나라 보건복지부나 질병관리본부 홈페이지도 동성애자들의 건강에 대한 코너를 따로 마련하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