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탈북 여성과 6세 아들이 자신의 서울 봉천동 아파트에서 ‘아사(餓死)’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들 모자는 월세 9만원의 13평 임대아파트에 살면서 수개월 동안 월세를 내지 못했다고 한다. 이들의 사망 소식은 2개월이 지나서야 알려졌는데, 수도요금 미납분이 쌓여 단수(斷水)가 됐는데도 아무런 소식이 없어, 아파트 관리인이 그들의 집을 방문해 발견된 것이었다.

이 여성은 중국 동포인 남편과 이혼하면서 생활고를 겪었으나, 이혼 사실을 증명할 수 없어 관계기관들로부터 생계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고 한다.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 갖가지 생명의 위협을 다 극복하고 찾아온 ‘기회의 땅’에서, 굶주림으로 비극적인 죽음에 이른 탈북 모자의 사연에 가슴이 숙연해진다.

이는 관계기관을 비롯한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 모두의 책임이고,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는 성경 속 ‘선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설교를 그렇게 많이 듣고, 그렇게 살겠다고 수없이 다짐했으면서도, 굶주림으로 죽어간 모자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지 못했다.

우리는 이 땅을 찾은 나그네를 환대하고 대접하여, 더 이상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 되도록(엡 2:19)” 해야 했다. 단순한 안타까움과 동정을 넘어, 우리는 회개하고 돌이켜야 한다.

탈북민 인권 지도자들과 탈북 목회자들도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 자유북한방송 김성민 대표는 “북한 인권을 그렇게 말했으면서도 정작 옆집에서 같은 탈북민이 죽어가는 것도 몰랐으니, 우선 우리의 책임이 크다”며 “그러나 마치 거미줄처럼 탈북민 지원 단체들이 많지만, 이들이 정말 탈북민 인권에 관심이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특히 한국교회의 역할을 주문하면서 “교회는 그 동안 정부가 하지 못한 많은 일들을 해 왔다. 지금까지 교회는 탈북자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면서도 “특히 교회가 필요한 것은, 물질적 지원 때문만이 아니라, 탈북민들이 낯선 땅에 적응하며 겪고 있는 정신적 어려움을 치유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찾아오는 탈북민들을 돌보는 차원을 넘어, 한국 사회 곳곳에 흩어져 있는 그들을 찾아가야 한다. 우리 사회 속 대표적인 ‘강도 만난 자들’인 탈북민들에게 다가가, 신앙과 관계없이 먼저 그들을 품고, 그들에게 따뜻한 온돌방과 버팀목 같은 역할을 맡아야 한다.

각 지역 교회가 근처에 거주하는 탈북민들을 책임지고 돌보는 시스템이 시급하다. 아니면 5만이 넘는 이 땅의 교회들이 각각 탈북민을 한 명씩 맡아 품어주자. 그렇게 한다면 다시는 이런 참상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