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에 대하여

화에 대하여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 김경숙 역 | 사이 | 248쪽 | 13,000원

21세기 한국, 분노 때문에 법까지 제정
1세기 로마, 분노 때문에 나온 책 한 권
광기와 잔인함 보여주던 칼리쿨라 시대

2018년 10월 18일,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시행되었다. 이 법을 단순하게 설명하면, ‘직원에게 화내지 마라’는 말이다.

법으로 금지해야 할 만큼 사람들이 화를 참지 못하고 있다. 음식점에서 음식이 조그만 늦어도 화를 낸다. 더욱이 나보다 늦게 온 손님이 먼저 음식을 받으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화를 내도 된다’는 ‘분노 면허증’을 딴 사람처럼 행동한다.

분노가 넘치는 사회다. 이제 우리나라는 분노 때문에 법까지 만들어진 사회가 되어 버렸다.

21세기 대한민국은 분노 때문에 법을 만들었다면 1세기 로마에서는 분노 때문에 책이 한 권 나왔다.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의 《화에 대하여》이다. 이 책은 1권, 2권, 3권으로 나뉜 짧은 편지 형태의 글로, A.D. 39년부터 2년에 걸쳐 쓰여졌다.

표면적으로는 세네카의 동생인 노바투스에게 ‘화를 가라 앉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노바투스는 형 세네카에게 ‘화를 가라앉히는 방법을 책으로 써달라고’ 부탁했고, 동생의 부탁을 받은 세네카는 이 책을 썼다.

하지만 이 책이 꼭 동생의 부탁 때문에 쓴 것은 아니다. 책을 쓰던 A.D. 39년은 분노가 로마를 다스리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당시 로마는 네로 황제(로마의 다섯 번째 황제, 통치시기 A.D. 54-68년) 이상으로 광기와 잔인성을 보여준 칼리굴라(로마의 세 번째 황제, 통치시기 A.D. 37-41년)가 다스리고 있었다.

세네카는 이 책에서 칼리굴라의 잔인성을 여과 없이 기록한다. “가이우스 카이사르(칼리굴라)는 원로원 의원들과 기사들을 하루 동안 매질하고 고문했다. 그들의 잘못을 심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자신이 그러고 싶다는 것이 이유였다.”

실제로 칼리굴라는 검투사 경기를 더욱 과격하고 잔인하게 바꾸었고, 그의 손짓 하나에 죄 없는 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사라졌다. 잔인한 독재자 칼리굴라의 분노가 로마를 위협하는 시대를 겪으면서 이 책을 기록하게 된 것이다.

화내지 않으려면, 평정을 유지하라
화 필요한 상황은 없음을 깨달으라
마음을 내 화보다 강하게 만들어라
질책하려면, 화보다 길을 제시하라

무려 2천년 전 ‘화를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 기록한 책이다. 단순히 화를 다스리는 방법만 기록하지 않았다. ‘화’는 무엇인지, 사람들이 왜 ‘화’를 내는지, 상황에 따라 ‘화’가 필요한 경우는 없는지. 여러 가지 관점에서 화를 설명하고 있다.

화에 대해 설명하는 문장 문장이 곧 명언이라고 할 정도로, 화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화의 포로가 되는 사람은 결코 힘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없으며, 심지어 자유의 몸이라 부를 수도 없다.”

“화는 남을 벌하는 행동으로 자신도 벌을 받는 것이다.”

“화는 일단 밖으로 표출되는 것을 허락하면 그다음부터는 그것이 우리의 주인이 된다.”

“사람들은 최초 마음이 시키는 대로 버럭 화를 냈다가, 그럴 만한 이유도 없는데 공연히 화를 낸 것으로 보이지 않으려고 계속 밀고 나간다.

무엇보다 공정하지 못한 것은 우리의 화가 타당하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가 더 고집스러워지는 것이다. 우리는 마치 심각하게 화가 난 것이 그 화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것인 양, 그 화를 붙잡고 자꾸만 더 크게 키운다.”

세네카는 화를 내지 않으려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이 ‘마음이 화를 느끼지 않게 하는 것’과 ‘마음을 화보다 강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 한다.

먼저 마음에 화를 느끼지 않게 하는 방법으로 ‘화가 필요한 상황은 없다’는 것을 깨달으라고 말한다. 이 부분은 동생의 질문에 대답하는 형태로 설명한다.

“잘못을 질책하기 위해 화를 내야 하지 않을까요?” 이 질문에 세네카는 질책의 목적을 생각하라고 말한다. 질책이란 상대에게 해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고치는 것이 핵심이다. 따라서 질책을 위해서는 화를 내는 것보다 바른 길을 알려주는 것이 더 필요하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 들판을 헤매고 있을 때는 그를 쫓아버리기보다 올바른 길을 가르쳐주는 것이 좋다. 잘못을 하고 있는 이에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교정해 주어야 한다. 치유의 대상인 환자에게 화를 내는 의사가 어디 있는가?”

성경을 봐도 하나님은 죄를 범하는 사람들에게 단순히 분노하시지 않으셨다. 선지자들을 통해 바른 길을 알려 주셨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화를 내신 예수님도, 분노가 목적이 아니셨다. 하나님의 집이 ‘만민이 기도하는 집’임을 알려 주셨다. 바른 제사, 바른 신앙생활을 회복하라고 길을 알려 주신 것이다.

사람들은 분노하면 상대방의 앞길을 막아 버린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길을 열어주시기 위해서 책망하신다.

분노는 사기 높이고 용기 자극한다?
적과 싸울 때야말로 화는 불필요해
적을 이기기 전, 먼저 화 이겨 내야

또 동생은 이렇게 질문한다. “전쟁에서 분노는 사기를 높이고 용기를 자극합니다. 적당한 분노는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 말에 세네카의 대답은 전혀 반대다. “적과 싸울 때야 말로 화가 불필요하다. 몸으로 싸우는 격투 선수들조차 회심의 주먹을 날릴 때는 화가 날 때가 아니라 기회가 왔을 때다.”

그러면서 로마의 전쟁 승리 이야기로 다음과 같이 마무리 한다. “파비우스는 한니발을 이기기 전에 먼저, 자신의 화를 먼저 이겼다.” (한니발이 로마를 공격했을 때 파비우스는 맞서 싸우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을 끌면서 한니발을 지치게 만들면서 결국 로마를 지킬 수 있었다.)

잠언에서도 이와 같이 말한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 16:32)”.

분노 화 화산 폭발 종말 마지막 불길 화염
▲ⓒ픽사베이

세네카의 동생은 또 이렇게 질문한다. “악을 보면서도 화를 내지 말아야 합니까?” 세네카는 이렇게 말한다. “잘못된 행동에 화를 내야 한다면 오히려 도덕적인 사람일수록 화를 많이 내게 된다.”

그러면서 “이성은 판결이 공정하기를 원하지만, 화는 단지 그것이 공정해 ‘보이기를’ 바란다”면서 화는 그 무엇보다 불공정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잘못된 행동을 보면 화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단호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법의 정신은 화가 아니라 흔들림 없는 단호함이다.”

화의 최대 근원, ‘나는 잘못 없어’
스스로 정의롭다는 생각은 위험
예수님도 정죄 대신 ‘회개’ 촉구
마음이 허약할수록 쉽게 화 표출
화는 마음 지키지 못해 나는 것

무엇보다 타인의 잘못에 화를 내기 전에 자신을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화의 최대 근원은 ‘나는 죄가 없어’ 혹은 ‘나는 아무 짓도 안 했어’라는 생각이다.” 나는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낸다.

예수님도 용서에 대해 말씀하실 때 먼저 우리가 받은 용서를 생각하라고 하신다. 우리 역시 죄인이기에 다른 사람을 정죄할 수 없다는 말이다. 칼은 미친 사람이 들었을 때도 위험하지만, 스스로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들었을 때도 위험하다. 망설임 없이 휘두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하셨지, “정죄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화를 내지 않기 위해 두 번째로 세네카가 강조하는 것은 ‘마음을 강하게 하는 것’이다.

“아주 사소하고 하찮은 일에 짜증을 내서는 안 된다. 그런 일에 화를 내는 것은 미친 짓이다. 미풍이 조금만 불어도 몸을 덜덜 떠는 사람은 몸이 약하고 아픈 사람이다. 새하얀 옷을 보고 눈이 부시고 아프면 눈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세네카는 마음이 약한 사람이 화를 잘 낸다고 말한다. 강한 사람이 화를 내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허약할수록 화를 낸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속사람이 강건해져야 한다(엡 3:16)’고 말한다. 또한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잠 4:23)’고 말한다.

화는 다른 사람 때문에 나는 것이 아니다. 갑작스러운 상황 때문에 분노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이다. 결국 마음 지키는 것이 답이다. 마음을 지키는 것이 성숙이다.

저자도 화를 내면 무조건 손해임을 강조
성경도 하나님의 나라 위한 인내를 강조
하나님이 원수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이유
원수 아닌 우리 마음 보호해 주시기 위함
억울하게 맞은 몸에는 상처가 남더라도
소중한 우리 마음에는 상처 남지 않기를

세네카가 이 책에서 계속 강조하는 것이 있다. 화를 내면 무조건 손해라는 것이다. 분노가 주는 유익은 없다고 말한다. 성경은 그보다 더 크게 강조한다. 나의 유익 때문에 ‘화’를 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화를 참으라고 말한다.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약 1:20)”.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감정 노동자 보호법이라는 ‘화냄 금지법’이 만들어졌다. 법으로 금지하지 않으면 분노를 절제하지 않는다. 어느새 ‘화내는 것’이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처럼 여겨진다. 내가 조금이라도 억울한 일을 당하면 ‘분노 면허증’이라도 받은 것처럼 화를 낸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보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엡 4:26-27)”. 우리 사회에 말씀이 답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서평을 마무리하면서, 《화에 대하여》에 나와 있는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하려고 한다.

가이우스 카이사르(칼리굴라)는 빼어난 로마의 기사 파스토르의 아들을 감금했는데, 그 이유가 그 젊은이의 멋부린 차림새와 유난히 공들여 손질한 머리 모양이 자신의 심기를 거슬렸기 때문이다.

청년의 아버지인 파스토르가 아들의 목숨을 살려 달라고 애원하자, 그는 마치 생각났다는 듯이 사형 집행을 명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파티를 열고 파스토르를 초대했다.

궁에 들어온 파스토르의 얼굴에는 원망의 빛이 조금도 없었다. 칼리굴라는 커다란 잔을 들어 그의 건강을 위해 건배를 제의했다. 그 슬픈 아버지는 그 연회에 끝까지 남아 술을 마시고, 황제가 주는 향유와 화관까지 받았다.

자식들의 생일에도 그렇게 많이 마시지 않았을 포도주를 마시면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으며, 털끝만큼도 슬픔을 내색하지 않았다. 그는 마치 아들의 목숨을 살려달라는 탄원이 받아들여진 것처럼 혼연히 식사를 했다.

그에게는 한 명의 또 다른 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황제 앞에서 슬픔을 드러내거나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다면, 그 남은 아들까지 잃게 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파스토르는 아들이 죽은 날에도 화를 낼 수 없었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원수에게 화를 내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우리의 원수를 보호하시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 마음을 보호해 주시기 위함이다. 억울하게 맞은 몸에는 상처가 남아도, 소중한 마음에는 상처가 남지 않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분노를 이겨낼 때 우리는 소중한 신앙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마음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믿음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박명수 목사
사랑의침례교회 담임,
저서 《하나님 대답을 듣고 싶어요》

출처: 아트설교연구원(대표 김도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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