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故 한경직 목사님의 생전 설교 전문을, 한경직목사기념사업회 제공으로 매주 한 차례, [그 때 그 설교] 코너에서 소개합니다. 한 목사님은 얼마 전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목회자' 1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고인의 생전 설교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늘날 한국교회에 생생히 울려퍼지길 바랍니다.

한경직
▲故 한경직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신명기 8:1~10

이미 읽은 말씀 가운데서 신명기 8장 2절 상반절만 다시 봉독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 말씀은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40년간 광야 길을 다 지나온 후에 주신 말씀입니다. 그 길은 실로 험난하였습니다. 처음에 홍해를 건널 수밖에 없었고, 그 후에는 물 없는 메마른 사막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으며, 더욱이 때로는 불뱀들이 그들을 해쳤고, 원수인 아말렉 족속들이 일어나 그들의 앞길을 막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역경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가운데서 만난을 이기고, 결국은 가나안 복지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님께서는 지난 40년을 기억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러한 역경 가운데서 어떻게 인도하시고 축복하신 것을 기억하라고 부탁하십니다.

다음 주일이 본 영락교회 창립 40주년 기념주일이 됩니다. 문자 그대로 우리도 광야와 같은 험난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때 우리 영락 교우들에게도 지난 40년의 험난한 길과 또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기억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지난 40년의 지나온 일들을 잠깐 회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또한 현재에 사는 우리를 축복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우리에게도 지난 40년이야말로 험난한 광야길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홍해와 같은 38선이 있었습니다. 피난민의 뒤를 쫓는 애굽 군대와 같은 공산도당들도 있었습니다. 지난 40년이야말로 거의 길을 찾을 수 없는 사막길이었습니다. 해방 후 남한의 정세는 실로 문자 그대로 혼란, 혼돈 상태이었습니다. 우익진영도 우왕좌왕 분열 상태에 있었습니다.

또 불뱀 같은 좌익들은 각계각층에 침투하여 갖은 모략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구 반란사건, 제주도 반란사건, 여수·순천 사건 등 내부적으로 갖은 폭동을 일으키다가 결국은 1950년 이북 공산당은 대거 남침하여 전 남한을 정복하려고 하였습니다. 실로 위험천만한 때요, 위기일발의 시기였습니다. 그 후 유엔군과 국군장병의 용전으로 격퇴는 하였으나 38선은 그대로 남았고, 남한의 정세는 계속 불안하여 결국은 4.19 학생혁명, 5.16 군사혁명을 치를 수밖에 없었고, 그 후에 또한 최근에도 10.26 사건, 광주사태 등 험난한 고비를 넘어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실로 우리의 과거 40년도 험난한 광야 길이었습니다. 이북에서 남한으로 내려온 피난민의 수는 오직 하나님께서만 분명히 아실 것이고, 그들의 겪은 굶주림과 헐벗음, 집 없는 유랑생활의 슬픔은 겪어본 이만 아실 것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6.25 당시에는 남한 동포들도 아마 약 2/3가 피난민들로 화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실로 생각만 해도 몸서리치고 눈물 없이 회상키 어렵습니다.
과거 우리의 40년간은 문자 그대로 눈물의 골짜기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요, 마르고 또 마른 광야 길이었습니다. 40년을 지난 오늘, 우리의 걸어온 길을 기억하라고 성경은 부탁합니다.

그러나 지난 40년을 기억하라는 이 말씀은 과거의 고난만 기억하라는 뜻은 아닌 줄 생각합니다. 이러한 가운데서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긍휼, 하나님의 자비, 어두운 밤에 비춰진 광명을 또한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6.25는 일어났으나 유엔군이 한국으로 출동하여 우리를 도왔습니다. 16개국이나 우리를 위하여 출병하였고, 우리 국군과 같이 피를 흘려 이 땅의 자유를 보존하였습니다. 유엔군이 출동하여 자유를 지키고 평화를 회복한 일은 유엔 역사상 한 번밖에 없는 일입니다. 그때 유엔군이 출동하게 된 것은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당시도 이사국의 하나였던 소련은 사소한 일로 이사회에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거부권을 행사하지 못하였습니다. 전쟁은 사람이 하나 승패는 하나님이 결정하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메마른 광야 길에 나타난 하나님의 생수였습니다.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이렇게 폐허가 된 이 강산 위에 새롭게 경제 부흥 운동이 일어나 문자 그대로 폐허의 강토 위에서 크고 작은 공장이 서게 되었고, 이제는 개발도상국 가운데서 앞서가는 선진 조국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렇게 많던 천막촌도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들이 한국을 구경하러 옵니다. 아니 기술과 문화를 배우러 옵니다.

세계적인 국제 회합들이 한국에서 많이 모입니다. 더욱이 스포츠 방면으로 보면, 86년에 아시아대회, 88년에 올림픽대회가 모이는 것을 여러분 잘 아십니다. 실로 생각만 하여도 놀랍습니다. 문자 그대로 사막에 꽃이 핍니다. 물론 각계각층의 피 눈물 나는 노력을 잊지 못합니다. 그러나 크게 생각하면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슬픈 자를 위로하시고 약한 자에게 힘을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에 기인합니다.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과거 40년간에 하나님께서 우리 영락교회를 세워주셨고, 이 영락교회를 통하여 우리에게 드리워 주신 하나님의 온갖 축복을 잠깐만이라도 회상하여 보세요. 본 영락교회는 문자 그대로 피난민의 교회이었습니다. 영락교회야말로 피난민들이 만나는 곳이요, 피난민들이 모이는 곳이요, 같이 울고 같이 웃는 곳이요, 서로 돕고 서로 붙드는 곳이요, 문자 그대로 피난민들의 오아시스였습니다.

이북에서 공산당에게 숙청을 당하고, 적수공권으로, 비분강개의 심정으로 38선을 넘은 교우들이 이곳에 와서 말하자면, 반석에서 흐르는 생수를 마시게 되었고, 과거를 씻고 새 용기와 새 비전으로 삶의 길을 개척하게 되었으며, 서로 도와 같이 살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남한 동포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파하게끔 되었습니다.

또 반공전선 제일선에서 우리 영락의 청년들은 용감히 있는 곳마다 그곳에서 싸워서 대한민국의 정신적인 기초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생생히 기억합니다. 영락 청년들이 노방 전도대를 그때 조직하고, 한 대는 서울역으로, 한 대는 남산으로, 한 대는 파고다공원으로, 한 대는 동대문 광장으로 나가 매주일 복음을 외치던 그 모습은 언제나 잊을 수 없습니다.

청년들뿐만 아닙니다. 남녀전도회가 조직이 되어서 인천으로, 지금은 고인이 된 한병혁 목사를 파견하여 처음으로 인천에 장로교회가 40년 전에 서게 되었는데, 이것이 오늘의 인천제일장로교회입니다.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6.25때 공산군이 서울을 점령하게 되어 우리 교우들은 남한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때에도 우리 영락교우들은 부산에 간 이들은 부산 영락교회를 세웠고, 대구에 간 이들은 대구 영락교회를 세웠고, 제주도에 피난간 이들은 제주 영락교회를 세웠습니다. 바로 약 한 달 전에 제주 영락교회는 4억 5천만 원 예산으로 새 성전 기공식을 하였습니다. 이 사람도 잠깐 참여하였습니다.

여러분 아시는 대로 과거 40년간에 거의 230여 교회가 본 교회를 통해서 세워졌다고 합니다. 물론 군대에 지어진 교회는 여기에 계산 안 된 줄 압니다. 실로 반석 가운데서 솟아난 생수의 역사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본 영락교회를 중심하여 여러 학교들이 또한 일어났습니다. 대광학교 창립도 본 교회 뜰에서 의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보성 여자 중고등학교, 영락중고등학교, 상업고등학교, 영락여자신학교, 숭전대학교 등은 문자 그대로 본 교회 뜰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무의무탁한 노인들을 돕기 위하여 영락경로원, 남편 잃은 젊은 어머니들을 돕기 위하여 부산에 다비다 모자원, 이곳에 영락모자원, 그리고 고아를 위한 보린원 등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우리 보린원 출신 가운데는 목사도 있고, 박사도 있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험난한 사막 길에 하나님의 은혜가 또한 넘쳤습니다. 그때에는 거의 다 천막이나 판잣집이나 세집에 살았습니다. 사업도 대부분은 그날 벌어서 그 다음 날 먹는 생활이었습니다. 그때에는 오늘 보는 예배당도 물론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천리교 성전, 지금 다 없어졌어요, 수리하고 예배를 보다가 너무 좁아서 지금 이 예배당이 선 이 터 위에 천막을 여럿을 치고 예배를 보았습니다. 한번은 예배를 보는 중에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서 사방으로 물이 흘러 내려오는데, 도무지 설교를 계속 할 수가 없어서 그저 통성기도를 하자고 했더니 모두 기도를 하는데 울음소리인지 기도소리인지 빗소리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예배를 본 적도 있습니다.

사실 그때에 이 구내에 있던 옛날 일본 사람이 지었던 집들은 지금은 하나도 없습니다. 본전, 교육관, 선교관, 봉사관, 기념관, 교역자 아파트들은 모두 새로 지은 집입니다. 그냥 남아 있는 것은 봉사관과 기념관 사이에 있는 늙은 은행나무 한 그루, 그리고 예배당 정문 옆에 선 역시 은행나무 한 그루뿐인 줄 압니다.

한 가지 기억하십시다. 건물만 변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얼굴도 변했습니다. 장로님들, 권사님들, 집사님들, 여러 교우들의 얼굴들도 변하였습니다. 아마 제 얼굴도 40년 전에는 이렇게 흉하게 보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변한 것뿐이 아닙니다. 이 교회를 시작할 때에 같이 기도하고 같이 눈물 흘린, 같이 일하던 얼굴들이 이제는 많이 보이지 않습니다. 대부분 보이지 않습니다.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혹은 미국으로 가셨습니다. 어떻게 이 사람만 미국 민요, 흑인 민요의 '올드 블랙 죠'처럼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런 면을 생각할 때에 같이 피난민으로 내려와서 같이 기도하고 같이 일하던 이들은 점점 이렇게 가는데, 이들의 신앙과 이들의 애국심과 이들의 반공정신을 이어받을, 다시 말하면 이들의 신앙의 횃불을 이어받을 오늘의 청년들은 어디에 있는가? 이런 생각이 혹 일어날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 40년을 돌아보면서 다만 감상에 그칠 것이 아니라, 현실 또한 직시해야 합니다. 오늘에 당면하는 한국의 실정과 교회의 사명을 직시, 분명히 보아야 합니다.

첫째, 분명하게 38선은 그냥 남아 있습니다. 이북 괴뢰는 온갖 전쟁 준비를 하여 놓고 문자 그대로 남침의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남북회담을 더러 한다고 하지만, 과히 믿지는 마십시다. 6.25때에도 고당 선생을 미끼로 남북회담을 하자고 하다가 갑자기 주일날 아침 침노해 내려왔습니다. 기억하십시다.

둘째로, 현재 우리 남한의 사상적 재혼란의 징조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특별히 학원가가 그러합니다. 전후 세대는 공산주의를 체험적으로 모릅니다. 정신 차려야 합니다. 새로운 반공운동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기독청년들이 앞장서야 할 것 같습니다. 영락의 순교자 김응락 장로, 김창화 집사를 기억하세요. 모두 반공전선에서 생명을 바쳤습니다.

셋째는, 외채가 너무 많아졌습니다. 450억불이나 된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인구 하나하나에 100만 원 이상이나 된다고 합니다. 빚은 물어야 합니다. 이때야말로 우리 국민은 물론 믿는 사람이 앞장서야 되겠지요. 정신을 차리고 누구나 근검절약하고, 저축하고, 국산을 애용하고, 그리고 금주단연의 생활로써 외채를 우선 갚아야 합니다. 옛날 고당 선생은 일제시대에 조선물산 장려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이런 운동이 기독청년 가운데 일어날 수 있으면 합니다.

넷째는, 매일 신문에 보는 대로, 우리 사회는 아직도 부정과 부패 온갖 범죄 등이 범람합니다. 최근에 신문을 보니 연립주택 한 채를 짓는데 뜯긴 돈이 2,200백만 원이나 된다고 합니다. 돈을 뜯어간 사람들은, 분명히 들으세요. 감독관청인 구청, 동사무소에서부터 경찰서, 파출소, 은행원, 공갈배 등에 이르기까지 30여 명에게 100여 차례에 걸쳐 모두 2,200여 만 원을 뜯겼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검사가 조사한 결과입니다. 이런 병든 사회가 어디 있습니까? 이런 사회에서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또 우리 사회 일각에는 소위 단군 성전 운운해서 우리 국민의 애국심을 오도하면서 우상 숭배사상, 그릇된 국수주의를 고취하려고 하는 움직임도 보입니다. 이런 무모한 운동은 반드시 분쇄되어야 합니다. 우리 믿는 이들은 이런 모든 현실을 직시하고 분발해야 할 때입니다.

나라의 나아갈 길을 바로 보고, 믿는 이들부터 바로 나아가야 될 것입니다. 믿는 이들은 이러한 때에 정신 차리고 일어나야 합니다.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민족복음화만이 우리나라를 도덕적으로 중생케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성경은 외칩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 주님은 명령하셨습니다. 40주년을 맞게 되는 우리 영락교우들은 새롭게 이 주님의 음성을 듣고, 우리의 사명을 새롭게 인식하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과거 40년간 우리 민족은 문자 그대로 메마른 광야 길을 걸어왔습니다. 많은 원수도 만났고 시련도 당했습니다. 그러나 또한 과거 40년간에 아버지께서 우리 민족을 불쌍히 여겨서 광야에서 생수를 내주셨고, 만나를 주셨고, 우리를 이때까지 이끌어 오신 것을 생각할 때에 무엇으로도 감사를 드릴 길이 없습니다. 더욱이 우리 영락교회를 이곳에 세워 주셨고, 40년 동안 이 땅에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나타내 주신 것을 생각할 때에 만 입이 있어도 다 감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 오, 하나님 아버지! 다음 주일로서 우리 교회는 창립 40주년을 맞게 됩니다. 오늘의 우리 영락교우들이 다시 한번 과거 40년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인식할 수 있게 해 주시고, 현실의 모든 현상을 직시하면서 오늘의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이 무엇인가를 새롭게 깨달을 수 있는 계기가 되도록 우리 영락교회를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하나하나에게 이 은혜를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