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위대한 개츠비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 한애경 역 | 열린책들 | 268쪽 | 9,800원

연인들의 행복이라는 꿈, 결혼식이 끝 아닌 시작
한 번 이룬 꿈보다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게 실력
청교도들, 물질적 풍요 포기해 신앙적 자유 이뤄


동화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이야기는 100년 만에 잠에서 깬 공주가 왕자와 결혼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일까? 왕자와 공주는 100년의 세대차이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서로 다른 나라, 다른 문화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동화는 대부분 “그래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난다. 그 속에는 어떤 노하우가 있을까? 백설공주를 괴롭히는 왕비를 무찌르는 방법보다, 말레피센트(잠자는 숲 속의 공주에 나오는 마녀)를 무찌르는 방법보다, ‘그래서 행복하게 사는 법’이 궁금하다.

연인간의 행복이라는 꿈은 결혼식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결혼식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모든 꿈이 그렇다. 한 번 이루는 것보다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 꿈을 이어가는 것이 실력이다.

1620년 9월 16일. 메이플라워호는 신앙의 자유를 찾기 원하는 102명의 청교도들을 태우고 영국을 떠났다. 같은 해 11월 21일. 66일간의 어려운 항해를 마치고 아메리카 대륙, 프로빈스 타운 항구에 도착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교회를 세웠고, 신학교를 세웠고, 믿음을 지켰다. 드디어 ‘신앙의 자유’라는 꿈을 이루었다. 진정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었다.

청교도들은 유럽의 물질적 풍요를 포기했다. 대신 신앙의 자유라는 꿈을 선택했고, 그 꿈은 이루어졌다.

그러나 모든 꿈이 그러하듯, 이루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어렵다. 신앙을 꿈꾸던 ‘아메리칸 드림’은 시간이 흐르자 변질되었다. 어느덧 ‘아메리칸 드림’이 물질적 성공 신화를 대변하는 말이 되었다.

가난 때문에 연인 데이지와 이별해야 했던 개츠비
5년 후 백만장자로 나타나 파티 열며 데이지 유혹
데이지 남편의 불륜 상대와 오해로 인한 ‘새드엔딩’


19세기 미국은 신앙의 가치가 살아있는 나라 대신, 믿음의 가치가 사라진 나라가 되어 갔다. 그런 미국의 모습을 잘 보여 주는 소설이 <위대한 개츠비>이다.

<위대한 개츠비>의 배경은 1차 세계대전이 지난, 1922년 미국이다. 40에이커(5만평)가 넘는 대저택을 가진 백만장자 개츠비. 그는 매일 밤 수백 명이 넘는 사람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호화 파티를 열었다. 매일 밤 ‘개츠비’의 대저택에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로 흥청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개츠비’는 자신의 옆집에 사는 ‘닉 캐러웨이’를 파티에 초대한다. 그리고 자신이 매일 밤 이런 파티를 여는 이유를 알려 주었다. 바로 해변 건너편에 살고 있는 ‘데이지’라는 여인 때문이었다. ‘데이지’는 닉과 먼 친척이었다.

‘개츠비’와 ‘데이지’는 5년 전 사랑에 빠졌던 사이였다. 당시 가난한 군인 장교였던 ‘개츠비’는 ‘데이지’와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데이지’는 상류 사회를 꿈꾸고 있었고 결국 헤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개츠비’와 헤어진 ‘데이지’는 이듬해, 백만장자 ‘톰 뷰캐넌’과 결혼했다.

5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가난한 장교 ‘개츠비’는 백만장자가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톰 뷰캐넌’과 ‘데이지’가 살고 있는 집과 멀지 않은 곳에 대저택을 구입해 밤마다 파티를 벌였다. 혹시나 자신의 파티에 ‘데이지’가 올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데이지’는 파티에 오지 않았다. 결국 ‘개츠비’는 ‘데이지’의 먼 친척인 닉을 파티에 초대했고,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털어 놓았다. 이후 ‘닉’의 집에 ‘데이지’를 초대해 줄 것을 부탁했고, 그때 자신도 ‘닉’의 집에 가겠노라고 말했다.

그렇게 ‘닉’의 집에서 ‘데이지’와 재회한 ‘개츠비’는 그녀가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데이지’ 역시 백만장자가 된 ‘개츠비’를 보고 마음이 흔들렸다.

사실 ‘데이지’의 남편인 ‘톰 뷰캐넌’은 자동차 정비공 ‘윌슨’의 아내와 외도를 하고 있었다. ‘데이지’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현재의 안락한 삶을 포기할 수 없어 그냥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성공한 ‘개츠비’를 다시 만나자 마음이 흔들린 것이다.

그런 와중에 ‘개츠비’는 ‘톰 뷰캐넌’과 ‘데이지’, ‘닉’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데이지’에게 선택을 요구했다. 톰을 떠나 자신을 선택하라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요구에 데이지는 당황했다.

그때 ‘톰’은 ‘개츠비’의 돈은 범죄를 통해 번 것이라고 폭로했다. 그 말을 들은 ‘데이지’는 ‘개츠비’의 미래가 불안정하다고 생각하며 흔들리기 시작한다.

위대한 개츠비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위대한 개츠비> 중 개츠비 역을 맡은 디카프리오의 모습.
한편 정비공 ‘윌슨’은 아내의 불륜을 직감하고 그녀와 다투기 시작한다. 남편 윌슨과 말다툼을 벌이고 집을 뛰쳐나온 ‘윌슨 부인’은 달려오는 차를 가로 막아 세우려고 했지만 그 차에 치여 즉사한다.

그 차를 운전한 사람은 ‘데이지’였다. 하지만 톰은 윌슨에게 자기 차를 몬 것이 개츠비라고 알려준다. 윌슨은 개츠비가 자신의 아내를 죽인 것뿐 아니라 아내의 외도 상대가 ‘개츠비’라고 오해한다. 결국 자신의 대저택 수영장에 있던 개츠비를 총으로 쏴 죽이고 자신도 자살한다.

더 이상 성경적 가치가 지배하지 않는 미국
급격한 경제 성장으로 물질적 풍요 이뤘지만
도덕적 마비 빠진 사람들 여과 없이 보여줘


<위대한 개츠비> 속에 나타난 미국은 더 이상 성경적 가치가 지배하는 나라가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도 가난하다는 이유로 헤어진 ‘데이지’. 물려받은 많은 돈을 쓰며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외도를 즐기는 ‘톰 부캐넌’. 신앙의 가치가 무너진 미국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급격한 경제 성장으로 인한 물질적 풍요는 도덕적 마비를 가져왔다. 개츠비 저택에서 열리는 소모적인 파티와 거기 모인 사람들이 이를 보여준다. 외도하는 톰, 개츠비를 만나고 외도를 꿈꾸는 데이지. 그 외에도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변 인물 역시 하나 같이 도덕 불감증에 빠져 있다.

가난한 개츠비가 부자가 되도록 도와준 ‘마이어 울프심’은 조직폭력배의 거물이고, 개츠비의 사업은 밀주였다. (당시 미국은 금주가 헌법으로 재정되었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술을 팔 수 없었다. 이러한 조치는 술 소비를 줄인 것이 아니라 조직 폭력배들이 밀주 사업을 통해 손쉽게 돈을 벌게 해주었다.)

이제 미국은 청교도들이 꿈꾸던 신앙의 ‘아메리칸 드림’은 사라지고, 물질적 풍요만 꿈꾸는 ‘아메리칸 드림’이 만들어졌다.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는 그런 미국의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소설이다.

미국의 평론가 역시 이런 소설 속 현실이 곧 미국 사회임을 인정했다. 그래서 대다수의 평자들은 <위대한 개츠비>를 ‘20세기 초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로 꼽는다. 지금도 20세기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미국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다.

피츠제럴드는 자신의 다른 소설에서도 남녀의 애정과 물질적 성공만을 추구하는 미국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평론가들이 그런 피츠의 소설에 비난하자 피츠는 이렇게 반문했다. “‘돈과 로맨스’, 이것 말고 더 중요한 문제가 어디 있단 말이오?”

작가는 범죄로 돈을 모은 ‘개츠비’를 ‘위대한 개츠비’라고 말했다. 그 이유는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중 ‘개츠비’만이 돈보다 사랑을 더 중요하게 보았기 때문이다.

데이지는 돈 때문에 사랑을 포기했다. 백만장자 톰은 돈으로 사랑을 사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개츠비의 집에서 호화 파티를 즐기던 그 어떤 사람들도, 개츠비가 죽자 그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는다. 우정은 돈보다 힘이 없었다.

작가는 이런 현실 속에 사랑을 찾아가는 개츠비를 ‘위대한 개츠비’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 속 개츠비는 ‘위대한 개츠비’가 아니라 ‘위험한 개츠비’다.

데이지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범죄 조직과 함께 돈을 벌고, 데이지 곁으로 가기 위해 많은 거짓말을 한다. 마지막까지 데이지를 위해 그녀의 범죄를 덮어 주려고 노력한다. 잘못된 그의 사랑은 ‘위대한 개츠비’가 아니라 ‘위험한 개츠비’를 만들었다.

필자는 또한 개츠비를 ‘위독한 개츠비’라 부르고 싶다. 하나님이 없는 성공, 하나님이 없는 사랑. 하나님이 없는 삶은 위독했다.

<위대한 개츠비> 속에 드러난 미국은 결코 위대하지 않다. 더 없이 위독하다. 돈 많은 ‘톰’은 삶이 무료했고, 돈 없는 ‘개츠비’는 좌절했으며, 돈만 쫓아간 ‘데이지’는 불행했다. 물질적 풍요를 누린 미국. 그 어디에도 행복이 없었다. 행복이 위독한 사회가 되었다.

17세기 청교도들, 신대륙 건너와 신앙의 자유 누렸지만
20세기 미국인들, 신앙적인 꿈 대신 물질적 꿈만 남아
회개는 첫 마음 붙들기… 첫 마음 되찾은 것 바로 ‘회복’


청교도들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꿈을 이루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를 만들었고, 신앙의 자유를 누렸다. 그러나 세월이 지난 미국에서 그들의 꿈을 찾기 힘들어졌다. 신앙의 꿈은 사라지고 물질적 꿈만 남게 되었다.

꿈은 이루는 만큼이나 유지하는 것이 실력이다. 신앙도 첫 시작만큼이나 지키고 성숙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요한계시록에서 에베소 교회를 향해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말씀하시며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처음 마음을 회복하라”고 말씀하신다. 첫 마음 지키지 못하면 책망받는다.

회개는 첫 마음 붙들기다. 목회자들은 안수 받던 첫 마음, 하나님을 붙들던 첫 마음, ‘거룩’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 뛰던 첫 마음 붙들기다. 믿음 하나만으로 충분했던 청교도들처럼, 믿음 하나로 충분한 첫 마음을 붙드는 것이 회개다. 그리고 그 첫 마음을 되찾은 것이 회복이다.

결혼은 행복 골인이 아니다. 그때부터 시작이다. 예수님을 믿는 구원 역시 골인이 아니라 시작이다. 첫 마음을 지키고 성숙하는 과정을 견뎌야 한다. 혹여나 잊혀진 첫 마음이 있다면, 다시 회복하는 것이야 말고 진짜 성숙이다.

<위대한 개츠비>는 20세기 미국의 모습이 들어있다. 그런데 그 속에 하나님이 없다. 물질적 가치가 지배하는 변질된 ‘아메리칸 드림’만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내 모습도 보인다. 하나님의 눈물도 보인다.

박명수 목사 / 사랑의침례교회 담임, 저서 《하나님 대답을 듣고 싶어요》
출처: 아트설교연구원(대표 김도인 목사)
https://cafe.naver.com/judam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