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故 한경직 목사님의 생전 설교 전문을, 한경직목사기념사업회 제공으로 매주 한 차례, [그 때 그 설교] 코너에서 소개합니다. 한 목사님은 얼마 전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목회자' 1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고인의 생전 설교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늘날 한국교회에 생생히 울려퍼지길 바랍니다.

한경직
▲故 한경직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에스더 4:7~17

이미 읽은 에스더 4장 가운데서 14절 하반절만 제가 다시 한 번 읽습니다.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에스더의 이야기는 대체로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에스더는 유대 민족에 속하는 여자이었으나 당시 중동 일대에서 가장 큰 나라였던 파사 제국의 왕후로 선발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조정에서 가장 세력이 컸던 하만이란 재상은 에스더의 오빠 모르드개가 공손치 아니하다고 그를 미워하여 그를 제거할 계획을 세웠고, 모르드개가 유대 민족인 것을 알고 전 유대인들을 학살하려고 음모를 꾸며서 당시 파사 황제의 허락까지 받았던 것입니다.

이 놀라운 소식을 모르드개가 듣고 왕후 에스더에게 사람을 보내어 황제에게 호소하여 이 음모가 성사되지 못하게 하여 달라고 간절히 부탁을 하였습니다. 에스더는 물론 그렇게 할 마음이 간절하였으나, 당시 파사에서는 황제의 부름이 없이 안뜰에 들어가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사형에 처하는 법이 있었습니다. 다만 그런 경우에 황제가 손에 잡았던 금홀을 들어 영접하는 이만 사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에스더는 1개월 이상이나 부름을 받지 못하였던 때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주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에 모르드개는 다시 사람을 에스더에게 보내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대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대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그리고 계속 하는 말이,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에스더는 사흘을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심을 가지고 왕에게 들어가 말하여 자기 민족을 그러한 위기에서 건져 낸 것입니다.

여기에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라는 말씀은 에스더에게 그가 왕후가 된 배후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며, '이때를 위함이다'라는 말은 그로 하여금 '역사의식'을 깨우치게 했던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특히 '소명감과 역사의식'에 대하여 생각하고자 합니다.

창세기 45장에는 요셉의 형들이 자기 동생 요셉을 애굽에서 만나 알게 되는 극적인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형들은 꼭 죽은 줄로만 알았던, 혹은 애굽의 한 종으로만 남아 있을 줄 생각했던 요셉을, 애굽의 총리대신으로서 만나게 되었을 때에 그들은 몸둘 바를 모르고 벌벌 떨었습니다. 속담대로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려는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조용히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음으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여기에서 요셉은 과거에 자기가 당한 경험을 어떻게 생각하였는지 알 수 있으며, 자기의 형들을 용서해 주고 위로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도와주었던 이 위대한 일을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될 것입니다.

요셉도 자기의 모든 경험 배후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소명감 가운데 살았습니다. 또 자기가 사는 역사 속에서 자기가 할 일을 분명히 알고 그대로 실행했던 것입니다. 요셉은 한마디로 '소명감과 역사의식' 속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에스더와 요셉만이 아니고 우리 모든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 소명감과 역사의식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사실 성경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서 부르심을 입은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쳐 줍니다. 에베소서 1장 3절 이하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에베소서 1장 3절부터 5절까지 돌아가 읽어 보세요.

그리고 로마서 8장 30절에는 이렇게도 기록되었습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기독신자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예정과 부르심에 의지하여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이러한 소명감 가운데서 살아야 합니다. 또 우리가 이렇게 부르심을 입은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크신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는 이 역사 속에서 우리를 통하여 이루시기를 원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좀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시죠. 우리는 어떠한 시대, 어떠한 지역에서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20세기 후반, 남북으로 분단된 38선 이남 한국에서 지금 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제 침략에서 해방을 받은 지 40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 하나하나를 불러 하나님의 자녀를 삼으시고 우리로 하여금 이 역사 속에 두신 뜻은 무엇입니까?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이 시대에서 이 땅에서 꼭 이루시고자 하시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이런 점을 분명히 살펴서 이러한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분명히 깨달을 뿐더러, 에스더와 같이 이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서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굳은 결의를 가지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몇 가지로 요약하여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모두 남한에 있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이 나라를 바로 세울 책임이 있습니다. 이 나라는 하나님의 뜻대로 자유와 국민을 근본으로 하는 자유주의 국가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면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은, 국토가 분단된 후 지금까지 38선 이북에는 공산 독재정권이 수립되어 호시탐탐 우리의 자유를 빼앗으려고, 사상적으로 군사적으로 온갖 방면으로 침투하려는 현실 가운데 지금도 살고 있습니다.

더욱이 금년은 분단 40주년이 됩니다. 그런데도 놀랍게도 우리 학원가에는 지금도 붉은 사상, 때로는 붉은 깃발까지 보게 되는 놀라운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학원의 질서는 반드시 회복되어야 합니다. 학원의 안정 없이 사회의 안정을 기하기는 어렵습니다. 사회의 안정 없이 경제발전이나 문화발전을 기하기도 어렵습니다. 교회의 발전도 또한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학원 안정의 회복은 정치인은 물론, 학교 당국자뿐만 아니라, 부모들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합심하여 반드시 질서를 회복시켜야 합니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전문가에게 맡기겠으나 우리 국민 하나하나도 이 중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사회의 질서를 회복하여 분단 40주년을 바로 맡도록 새로운 결의가 필요한 줄로 생각합니다.

둘째는, 우리 남한은 여러 가지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경제가 발전하고 교육, 문화, 체육 등 온갖 방면에서 상당한 발전을 이룩하였습니다. 분단 40년을 맞은 우리로서는 앞으로 더욱 모든 방면으로 전진할 수 있는 새로운 결의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각각 어느 자리에 있든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달란트, 곧 재능을 최대한 살려서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정치인은 정계에서, 경제인은 경제계에서, 기술자는 그 방면에서, 근로자는 그 직장에서, 기업인은 그 사업처에서 그리고 예술인, 음악인, 문학인, 체육인 등도 모든 방면에서 소명감을 가지고 내가 사는 이 역사 속에서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심을 가지고 봉사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 대한민국은 자연히 계속 발전할 것이고, 또 이 세계에서 모든 면에서 부끄럽지 않은 모범국가로 성장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결국은 민주주의를 중심한 평화통일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셋째로, 여기 앉은 우리는 특별히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특수한 사명을 언제나 잊지 말고 우리가 사는 역사 속에서 사명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간단합니다. 일찍이 베드로와 요한은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주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 부르짖었습니다.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주 예수의 이름으로 우리 민족을 일으켜야 합니다. 우리 민족은 큰 잠재력을 가졌었음에도 불구하고, 온갖 죄의 종이 되어 죄의 줄로 결박을 받아 쓸데없게 된 우리 동포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부정 부패가 결국은 없어져야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이들을 주 예수의 이름으로 일으켜야 합니다. 죄의 결박에서 풀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영혼이 금생에도 바르고 행복하게 살며 내생에 가서도 영원한 생명을 얻고 우리나라도 바로 될 것입니다.

선한 국민이 많아야 나라도 바로 됩니다. 부패와 부정이 없어져야 실상 사회 안정이 이루어집니다. 사랑이 실천되어야 국민이 화합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역사 속에서 우리로 하여금 살게 한 것은 우리 민족을 모두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해방을 시키라고 이 시대, 이 땅에서 살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이들은 옛날 에스더의 결심을 가지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희생적 정신으로 민족복음화를 완성시키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평화통일도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 가운데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만날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어 주시리라"고 우리 주님은 친히 산상보훈에서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반드시 이루어질 때가 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분단 40년을 맞는 역사 속에서 새로운 사명감과 결사의 의지로써 우리 한국을 바로 세우고, 민족복음화를 완성하며, 따라서 전 아시아복음화, 세계복음화의 새로운 기치 아래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매진하십시다. 기도합시다.

감사합니다. 우리가 무엇이관대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저희들을 사랑하시고 저희들을 택하시고 예정하시고 때가 될 때에 불러서 아버지의 자녀들 삼으신 것을 생각할 때에 이 은혜를 무엇으로 다 감사할 길이 없습니다. 다만 이 시간 간절히 기도하옵는 것은 우리가 이 시대 이 땅에 살게 된 것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이 땅에 살게 된 것을 분명히 깨닫고 또 이렇게 하심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이루실 일이 있다고 하는 이 역사 속에서 우리의 책임이 부여된 것을 분명히 알고 우리가 이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오직 에스더의 결심과 같이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심을 가지고 내 있는 그 자리에서 복음을 전파하고 내 책임을 바로 하는 거기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고 우리 하나하나가 이러한 소명을 깨닫고 역사의식 속에서 살아감으로 나의 삶도 보람이 있고 또 내가 산 보람이 있는 우리 모두가 되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이러한 은혜가 이 아침 시간에 와서 예배하는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하나하나의 마음 속에 부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간구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