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
▲이경섭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오순절 성령 강림시 수반된, 소위 ‘거룩한 혼돈(holy disorder)’으로 곧잘 명명되는 ‘요란한 현상’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그것은 한 마디로 ‘내가 지금 여기 왔다’는 성령 강림의 표적(sign)이었다. 알다시피 ‘성자 강림(the advent of the Son)’은 육체를 입은 사람의 모습이었기에 그의 오심을 숨길 수 없었다.

그러나 영(靈)의 오심인 ‘성령 강림(the advent of the Holy Spirit)’은 아무도 알아챌 수 없기에 ‘강한 바람, 불의 혀, 방언(행 2:2-3)’ 같은 요란한 표적들이 수반됐다(물론 그것들은 성령의 속성을 상징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 수반된 표적들에 의해 거기에 모인 이들이 성령 강림을 목도할 수 있었다.

‘방언(a tongue)’은 그 수반 현상들 중 하나이며 여기서 다루려는 내용이다.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4).”

그럼 하필 왜 여러 신체 중 ‘입(mouth)’의 표적(방언)인가? 성경에서 보통 ‘입’은 ‘복음’과 연관된다.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행 8:35)”,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엡 6:19).”

성령이 강림하신 예루살렘 다락방의 120문도는 모두 복음 전도의 사명을 받잡은 이들이었고, 그들이 성령 강림을 대망(待望)한 것도 그 일을 위해서였다. 성령 없이는 복음전도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들이 알았기 때문이다.

이는 승천 전 예수님이 그의 제자들에게 하신 명령에서도 확인된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눅 24:49)”,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복음, 낯선 방언

제자들의 입에 임한 방언의 의미는 ‘장차 너희 입에 올려 질 복음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낯선 방언으로 들려질 것이다’는 뜻이다.

사실 ‘예수는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복음은 어떤 종교, 철학, 윤리에도 찾아볼 수 없으며, 거기에는 세상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만한 어떤 교집합도 없다.

사도 바울도 세상 사람들에게 있어 복음의 낯섦을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는 것(고전 2:9)”으로 표현했다.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도 복음을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는(사 6:9)” 공개된 비밀(open secret)이라 했다.

이러한 복음에 대한 세상의 무관심은 사도 바울 같은 대전도자까지도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다. 이는 그가 자신이 세상의 냉대를 이기고 꿋꿋이 복음을 말할 수 있도록 기도를 요청한데서도 알 수 있다.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엡 6:19).”

복음에 대한 이런 세상의 홀대는 지금도 여전하며 복음 전도자들을 낙담하게 만든다. 호기롭게 전도를 시작했다가도 몇 번 사람들의 냉대를 받으면 그 의욕이 꺾여버린다.

그러나 전도자는 그런 세상의 반응을 당연시해야 한다. 만일 세상 사람들이 복음을 환호(歡呼)한다면 그것을 오히려 이상하게 여겨야 한다.

세상이 복음에 호응하는 것은 마치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고(사 11:7), 돼지가 진주를 좋아하는 것과 같다(마 7:6). 아니면 전도자가 그들에게 순전한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닐 수 있다.

미중생자(未重生者)가 좋아 할 복음이란 없기 때문이다. 죄인들이 복음을 거부하는 것은 죄의 결과인 동시에, 하나님이 불택자를 유기(遺棄)하는 방법이다.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사 6:10).”

인간이 하나님께 기어오르려다가 ‘언어불통(창 11:4-9)’ 심판을 받은 바벨탑(Babel) 사건은 장차 죄인과 복음의 불통을 예시한 것이기도 하다.

◈성령, 복음의 통역자

성령 강림 때, 제자들의 입에 ‘방언(a tongue)’이 임한 또 하나의 의미는 복음이 올려진 전도자의 입에 성령의 권능이 임하여, 그것을 듣는 택자들로 하여금 믿어지게 한다는 뜻이다.

오순절에 베드로가 그의 모국어로 설교했을 때 14개국 이상에서 모인 청중들이 자기 언어로 복음을 알아들은 것은(행 2:4-11) 외국어 같은 낯선 복음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택자(擇者)에게 해독(解讀)될 것을 예표한다.

이의 확장이 천국이다. 나라, 족속, 백성, 방언이 다른 각국의 사람들이 모인 천국에서는 하나님을 예배하며 섬기는 일에 전혀 언어의 혼란을 겪지 않는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계 7:9-10).”

그러나 이것은 전도자가 외국에서 자기 모국어로 설교해도 성령께서 청중들로 하여금 다 알아듣게 할 것이니, 따로 외국어를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빌미가 되지는 않는다.

어떤 전언(傳言)에 의하면, 지금도 언어가 생소한 지역에서 전도자가 자기 모국어로 복음을 전하면 토착민들이 자기나라 말로 알아듣는 이적이 일어난다고 한다(이 역시 확인된 바는 아니다).

물론 하나님이 하시면 못할 일이 없겠지만, 오순절 베드로의 초자연적 설교는 장차 전도자들이 낯선 외국어 같은 복음을 말할 때, 택자가 그것을 믿도록 성령이 감동하신다는 예표이다. 이 점에서 성령은 복음의 위대한 교사라 할 수 있으며, 이 교사직은 택자를 구원에의 부르심으로 부르는 핵심적인 사역이다.

이 점에서 ‘그리스도’와 ‘성령’의 역할은 분명히 구분된다. 오늘날 제자교육에 심취한 이들에게서 예수 그리스도가 지나치게 교사로 부각되는 경향을 본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공생애 3년 동안을 제자들을 가르치며, 삶의 모본을 보여주는 교사직 수행기간으로 보려고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핵심 사역은 ‘대속(代贖)’이다. 그가 사람들을 가르치시고 표적, 이적, 권능을 행하심은 그가 대속자이고, 대속의 죽음을 죽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십자가 대속의 죽음은 사역의 완결이었다.

그가 대속을 성취하신 후 곧 바로 승천하신 것 역시, 그의 사역의 목표가 교사에 있지 아니함을 보여준다. 그가 정말 세상에 교사 노릇하러 오셨다면, 왜 오래 머물면서 더 많은 것들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지 않았겠는가? 그의 목적인 대속이 성취됐기에, 승천하여 그것을 가르칠 교사(성령)를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 16:7).”

예수 그리스도도 친히 ‘성령’을 가르치시는 분으로 명명하셨다.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 2:27).”,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 하실 것이요(요 15:26).”

복음은 생득적인 인간 지성으로는 알아먹을 수 없는 낯선 방언이며, 오직 성령의 가르치심으로만 해독(解讀)된다. 오순절 성령 강림의 목적은 ‘임마누엘’과 함께 택자에게 복음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전도자가 복음을 전할 때 오롯이 성령만 의존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이는 대 사도 바울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3-5).” 할렐루야!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 개혁신학포럼 대표, byterian@hanmail.net)
저·역서: <이신칭의,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CLC)>,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 <개혁주의 영성체험(도서출판 예루살렘)>, <현대 칭의론 논쟁(CLC, 공저)>, <개혁주의 교육학(CLC)>, <신학의 역사(CLC)>, <기독교신학 묵상집(CLC, 근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