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0대 남성 자살률 상승, 소속감 못 느껴서
자살, 분출구 없어 자신에게 공격성 표출 결과
자살 유가족, 충분히 슬퍼할 수 있도록 도와야

신촌포럼 유영권
▲유영권 교수가 “어느 교회에 갔더니, 저를 ‘자살 전문가’라고 소개하더라”며 웃고 있다. ⓒ이대웅 기자
제40회 신촌포럼(대표 박노훈 목사)이 ‘위기의 시대, 그 대응과 방안’이라는 주제로 23일 오전 서울 신촌성결교회 아천홀에서 개최됐다.

이날 포럼에서는 유영권 교수(연세대)가 ‘성도의 위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유영권 교수는 “내가 어딘가에 속해 있다고 느끼는 사람, 자신에게 공동체에서 관심을 가져줄 수 있는 사람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도 극한 시도를 하지 않고 잘 이겨낸다”며 “은퇴 시기가 다가오는 50대 중반부터 60대 초반 남성들의 자살률이 최근 급격히 높아지고 있는 것은 그런 소속감을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소개했다.

유 교수는 “교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숨 막히고 허덕이는 사회 가운데 숨 쉴 공간을 마련해 주는 ‘치료 공동체’ 역할을 제공하는 것이어야 한다”며 “교회가 어느새 잃어버린 그 역할을 되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단에 빠진 한 사람을 상담한 적이 있었다. 그들의 교리 중 무엇이 잘못됐는지 설명했지만, 그 분은 ‘이단인 걸 알지만, 이곳에서는 어렸을 때 경험했던 많은 어려움들이 정죄당하지 않고 다 수용해 주는 느낌을 받았다’고 하더라”고도 했다.

유영권 교수는 “교회 성도님들이 모두 행복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하고, 그런 시스템도 필요하다”며 “지나가는 말로 건넨 ‘요즘 어떻게 지내’ 한 마디가, 그 사람을 수렁에서 건져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자살에 빠지는 원인에 대해선 “어린 시절 응당 받아야 할 사랑을 받지 못할 경우 부정적인 자아가 형성되고 공격성이 응축된다. 압력밥솥에서 연기가 나오듯 우리 안의 공격적 에너지도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곳에서 분출돼야 한다”며 “분출구가 없어 자신에게로 공격성을 풀어내는 것이 바로 자살이다. 그러므로 축적된 좌절과 분노를 표출할 공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자살 충동을 느끼는 이들 안에는 편협한 사고가 많다. 자신을 무가치하거나 무능력하게 여기고, 바깥 세계는 자신을 무시하고 가혹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자신의 미래를 암담하고 통제할 수 없다고 여긴다”며 “그들에게는 유연하고 관용적인 사고, 너그럽고 배려하는 사고가 필요하다. 목회자들은 성경공부와 설교를 통해 그런 분들의 비합리적 사고를 깨우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제언했다.

유 교수는 “자살 충동을 느끼는 이들에게는 오히려 ‘내 주검을 누가 가장 먼저 볼 것 같나? 누가 내 죽음을 가장 슬퍼할 것 같은가?’ 등 죽음에 대해 물어보는 것이 좋다”며 “고립감을 느끼는 그들에게 ‘나를 생각해 주는 이들’이 있음을 알려주면, 정신이 번쩍 들어 자살 충동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공동체적으로 그들의 회복과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신촌포럼 유영권
▲포럼에서 유영권 교수가 강연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그는 “자살하는 사람은 정상적이고, 미친 사람이나 정신질환자들만 자살을 시도하는 게 아니다. 자살 시도자들은 단지 자살로 현재의 고통을 끊고 싶어하는 것”이라며 “80% 이상의 자살 시도자가 징조를 남긴다는 것은, 우리의 관심으로 80% 이상의 자살을 막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자살하려는 사람은 도움을 받고 싶어한다”고 했다.

성경 속 자살에 대해선 “수치심과 죄책감에 기반한 자살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가치판단이나 해석은 기록돼 있지 않다”며 “이는 이미 ‘살인하지 말라’는 십계명을 비롯한 성서 전체에 기본적으로 생명존중 사상이 있기 때문으로, 굳이 자살 행위 뒤에 부연설명을 할 필요성을 가지지 못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 교수는 “구약에서는 욥이 아내로부터 자살 권유를 받았다. 그러나 처참한 고통 속에 이를 참아냈다”며 “신약에서는 옥문이 열리자 자결하려던 간수를 사도 바울이 만류하기도 했다”고 했다.

자살 유가족들에 대한 위로 방법도 제시했다. 그는 “‘자살하면 지옥 가나요?’ 하는 질문에 섣불리 답하기보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60-70년 삶이 아닌 그 이전부터 섭리와 계획을 갖고 계셨고, 그 전체 삶을 보시고 판단하실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몫’이라고 이야기해 주는 것이 좋다”고 권면했다.

이와 함께 “자살 유가족들은 장례 절차도 빨리 끝내려고 하기 쉬운데, 충분히 슬픔을 표출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슬픔이 해소되지 않으면 앞으로 여러 사회생활과 관계 속에서 문제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며 “교회는 유가족들을 지지해 주고, 장례 절차를 도와서, 충분히 슬퍼하고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제 교회는 숫적 성장이 아닌, 돌봄의 성장, 질적 성장에 더 주목해야 한다”며 “공동체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교회는 치료 공동체 역할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강연에 앞서 포럼 대표 박노훈 목사는 “위기의 시대, 좋은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사람마다, 세대마다 고통을 겪고 있다. 하지만 모든 문제는 절망과 소망의 문제”라며 “현재가 고통스럽더라도 미래가 있다면 소망을 품을 수 있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기에 절망하는 것이다. 오늘 이 자리가 절망 가운데 소망을 품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인사했다. 유영권 교수의 강연 후에는 이의용 교수(국민대)가 ‘목회자의 위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