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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한복음 13장 31-35절

주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말씀입니다. 마지막 죽음을 앞두고 하는 말을 유언이라고 합니다. 유언은 법적 효력을 가질 정도로 매우 중요합니다. 주님의 유언과 같은 당부를 세 부분으로 나누어 묵상하는 중, 번째인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에 대해 말씀하려 합니다. 은혜를 나눌 때 성령께서 친히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1. 목숨 바쳐 영혼을 사랑했다

주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34절)”고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은 목숨 바쳐 영혼을 사랑했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사랑의 목표이기에 매우 중요합니다. 사랑의 목표를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사랑의 성격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목숨 바쳐 영혼을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대로 우리도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참 어려운 일입니다.

사랑의 목표를 영혼에다 두는 것은 가히 최고의 사랑일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영혼 사랑에 목표를 두면, 보이는 다른 무엇을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목숨을 바쳐 우리 영혼을 사랑하셨습니다. 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살면서 영혼 사랑을 목표로 삼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 사랑의 목표가 단순히 세상적 성공에 있다면, 제자로서의 삶이 아닐지 모릅니다. 사랑이 삶의 목표가 되지 못하고 수단이 될 때,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 아무 조건 없이 사랑했다

34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은 아무 조건 없이 사랑했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사랑의 수단을 의미합니다. 수단에는 반드시 사랑의 조건이 요구됩니다.

우리는 사랑을 할 때 좋은 조건을 따지게 됩니다. 사랑받을 좋은 조건을 많이 가지면, 그만한 대우를 받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남녀 간 사랑이 더욱 조건을 중심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더 좋은 조건을 가진 사람이 사랑하기 좋아서 그럴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조건을 갖추었다 해도, 남녀 간 진정한 사랑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조건을 갖추지 않았지만 아름다운 사랑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랑에 반드시 조건이 필요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사랑하지 않으므로, 많은 방법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측면입니다. 자녀 양육도 더욱 복잡한 방법이 생기고 있습니다. 그 방법들이 교육학적으로 훌륭한지는 몰라도, 그들의 영혼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훌륭한 이론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인지는 모르나, 영혼을 사랑하는 방법이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영혼을 사랑하는 방법이 필요할 때입니다. 피상적 사랑은 피곤과 실망과 낙심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3. 있는 그대로를 사랑했다

이는 사랑의 ‘깊이’를 의미합니다. 얼마나 사랑하는가에 대한 해답이기 때문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사랑을 우리는 ‘존재적 사랑(being –love)’이라고 합니다.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한다는 점에서입니다.

이 존재적 사랑에서는 상대방 인격의 깊은 층, 그 정신적인 깊이에서 인격이 변화되는 경지입니다. 인간이 참으로 존재적으로 사랑하고 있다면, 상대방의 인격에서 나오는 고유한 것을 체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주는 사랑을 말할 때, 스티븐 호킹 박사의 아내인 제인 와일드 여사를 예로 들어도 좋을 것입니다. 이는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이란 영화로 2014년 12월 국내에서 개봉된 바 있습니다.

근육무력증이라는 루게릭병으로 2년 밖에 살지 못한다는 의사의 진단에도, 문학도였던 제인 와일드는 호킹 박사와 약혼하고 결혼을 합니다. 그리고 아이 셋을 출산하면서 25년이나 호킹 박사를 간호하면서 학문의 금자탑을 이루게 만듭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런 순수한 사랑이 많이 메말라 가므로, 영혼이 병들고 각종 정신병이 유발되는 것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남녀의 사랑이라도 순수하기만 하면 신의 사랑에 가깝다고 믿기에 이르렀습니다.

김충렬
▲김충렬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물방울 무늬의 분홍 스카프를 머리에 두르고 네플류도프 백작을 좇아 시베리아로 가던 카츄샤의 푸른 눈빛, 또 멀고 먼 동시베리아 이르쿠츠크에서 푸른 물이 찰싹이는 바이칼호쪽 눈덮힌 산을 멀리 바라보던 지바고, 그 지바고를 그리워하던 라라의 맑은 눈에 핑그르르 돌던 눈물.

이 둘의 사랑을 우리가 영원히 그리워하는 것은 메마른 사랑의 폐원된 심령 때문일 것입니다. 가는 인생의 길에 저와 여러분은 사람의 영혼을 진심으로 사랑하여, 하나님의 복을 많이 받는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우리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의 의미를 깨닫게 하소서. 주님께서 목숨을 바쳐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셨음을 깨닫게 하소서, 주님께서 나를 아무런 조건없이 나를 사랑하셨음을 깨닫게 하소서, 그리고 주님께서 나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셨음을 깨닫게 하소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복을 내리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전 한일장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