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려주일 조용기 목사 설교] 예수님께서 당하신 3대 고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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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구: 마태복음 26장 36-46절

▲조용기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조용기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여러분 ‘예수께서 당하신 3대 고난’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욥기에는 “불티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인생은 고난을 위해서 태어났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고난이 다 같은 종류의 고난은 아닙니다. 절대 다수의 고난은 인간의 범죄와 잘못으로 인하여 다가온 고난입니다. 그것은 자업자득인 고난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반역하고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직접 간접으로 가져 온 고난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은 결코 자업자득적인 고난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은 예수님이 범죄해서, 예수님이 잘못하셔서 당한 고난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극한적인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은 타락한 인류를 그 죄악과 저주와 사망에서 건지시려고 자원하셔서 당하신 대속적인 고난이었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셔서 인간이 마땅히 당해야 할 고난을 주님께서 자원하여 대신 짊어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고난은 오늘 용서와 구원과 축복과 치료를 우리에게 가져올 수 있는 동기가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시간에 예수님이 우리 위해 당하신 3대 고난을 깊이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 중에 가장 깊은 고난이 영적 고난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영혼이 하나님과 분열된 적이 한번도 없었었습니다. 만세 전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같이 계셨고 하나님과의 뜨거운 사랑과 교제가 끊어지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실 때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주님께서 쓴 잔을 내놓으셨습니다. 그 잔을 드려다 보니 그 잔 속에는 아담과 하와의 원죄로부터 시작해서 그 후손들의 죄가 가득하게 담겨 있습니다.

추악하고 더럽고 상상을 초월한 그 죄악의 잔을 가득히 담아서 주님이 내어놓으시면서 하나님께서 이것을 마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죄의 잔을 보고 움츠렸습니다. 그는 죄를 알지도 못하십니다. 죄를 짓지도 아니하십니다. 그 추악하고 흉악한 죄의 잔을 다 마시라고 하니 기가 막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진땀을 흘리다 못해 땀방울이 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하나님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습니다. “너가 이 잔을 마시지 아니하면 모든 인류는 다 지옥으로 간다. 네가 이 잔을 마시면 너로 말미암아 믿는 자는 다 구원을 받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은 감히 상상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또 다시 기도했습니다. “주여, 할 수만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아버지는 말씀하셨습니다. “마셔라. 이 잔을 마시고 버림을 받는 처참한 고통을 겪을 때 모든 인류를 이 고난에서 건질 수 있다”고.

그래서 예수님은 세 번째 기도를 하시고 그의 땀이 피 방울로 변하도록 주님께서 고통을 당하시고 그 잔을 마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우리를 대변해서 그 모든 죄악의 잔을 마시자 말자 그 순간에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과의 교통은 끊어졌습니다. 그는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교제해 오던 그 깊은 사랑이 끊어지고 버림받은 바 되고 만 것입니다. 처절한 영적인 고독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버림받는 고통인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고, 그는 하나님께 부르짖어도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았었습니다. 이것을 시편 22편 1-2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나 응답치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전적으로 버렸습니다. 밤낮으로 부르짖어도 하나님은 대답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는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지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죄의 잔을 마시고 난 다음 그 영적으로 당한 고통은 말로 다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 추악하고 더러운 잔을 예수님이 마셨다는 것은 우리를 그만큼 사랑하지 않고는 절대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사랑이 그를 강권하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악의 잔을 마셔서 우리의 죄를 청산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제가 요번 아프리카에 가서 오전 주에 시간을 내어 우리 교회가 아프리카 마사이족 가운데 세운 교회 건축물을 보기 위해 나갔습니다. 이제 거의 다 짓고 천정만 덮으면 되게 되었습니다.

그 마사이족에 나가서 그 건물을 보고 난 다음에 그 마사이족 집사님 댁을 방문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집사님 댁 마사이족은 목축업을 해서 소를 기르고 먹고 사는 부족인데요, 그 집이 전부 소똥으로 짓습니다.

집이 나즈막한데 천정도 다 소똥으로 덮고, 벽도 소똥으로 덮고, 장판도 다 소똥을 깝니다. 그러니까 소똥벌레와 같이 삽니다. 그리고 밖에 나와 마당도 전부 똥이 질퍽질퍽합니다. 소똥이 참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런데 그 마사이족은 대개 남자가 아내를 네 사람에서 여섯 사람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집사님댁에 가서도 집사라는 사람이 아내를 네 사람이나 거느리고 있어요. 그 민족이 일부다처제로 있기 때문에, 그대로 예수 믿고 회개를 하고 들어오는데 아내를 한 사람 데리고 살라고 하면은 네 사람을 다 버리고 또 새장가를 또 듭니다.

그러니까 그 말을 못하고 구원받았으면 이제는 구원받은 현장에서 회개하고, 네 사람이 있지마는 한 사람만 데리고 살아라 그렇게 이제 가르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 집사님댁에 제가 들어가는데 전부 똥으로 집을 지었으니, 파리가 얼마나 많이 붙어있었겠습니까? 그 집 애들이 보니까 눈에 다 파리고 입에 다 파리고 파리입니다. 그래 기어 들어가니 온 신발에 똥이고 그런데 제가 집사님댁에 들어가서 기도를 간절히 해 주고 나니까 집사님이 이제 대접을 합니다.

그런데 그곳은 물이 없어서, 1년 내내 목욕을 하지 않습니다. 세수라는 것은 우물물에 가서 손을 딱 찍어서 눈만 이렇게 닦으면 요게 세숩니다. 그런데 똥을 하도 만져서 온 손에 똥이 더덕더덕 해요, 소똥이. 그런데 아휴! 먼 한국에서 당회장이 왔다고 그 소똥이 붙은 손으로 그냥 소피를 그릇에다 잔뜩 붓더니만 소피에다 소젖을 넣어서 손을 휘휘 저어서 그래서 화로에 얹어가지고 조금 부글부글 끓으니까 이걸 드러내서 이만한 잔에 부어주는데 내 속으로 “죽었다.”

이걸 안먹으면 마사이족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괜히 이 당회장이 보낸 선교사를 통해 복음을 듣는 것이 헛일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저걸 먹자니 한약보다도 더 지독한 것이고, 하나님이여 살려주옵소서 나하고 같이 갔는데 장로님하고 우리 집사님들은 전부 얼굴을 찌푸리고 있습니다. 내 얼굴만 쳐다보고 있어요.

그래서 내가 말했습니다. “이거 원래 마시는 거야. 이런 것이 약이야. 그러니까 두말하지 말고 마셔. 여기 와서 우리가 이걸 안 마시면 이 사람들에게 복음 증거가 헛된다.”

그러니까 집사님들이 아이구 서울서 당회장 왔다면서-손에 왜 그렇게 똥이 많이 묻었는지 모르겠어요-그런데 그걸 가지고서 또 잔을 부어서 또 손가락으로 파리가 몇 마리 떨어지니까 그걸 또 건져내고 휘휘 저어가지고서 그러고 내게 줍니다.

참 그 잔을 마시려 하니까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우리 죄악의 잔을 마실 때 얼마나 괴로웠을까 생각이 났습니다. 그런걸 눈을 딱 감고 그 잔을 벌컥벌컥 마셨습니다. 그런데 옆에 있는 내 마실 때 장로님들은 부리나케 마시는 척 하면서 옆으로 다 부어버렸어요. 나만 마셨다 말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차를 타고 오는데 배가 그냥 들끓기 시작하더니만 아픈데 뭐 감당을 할 수가 없어요. 그 날 얼마나 배가 쥐어틀고 아픈지 제가 혼이 났습니다. 그래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 집사님 댁을 방문해서 그 영혼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 잔을 마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이 아니면 절대로 그 잔을 마시지 못하죠. 조그마한 그러한 마사이족의 똥 섞인 잔도 사랑을 하면 마실 수 있는 용기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류의 모든 원죄와 자범죄가 가득 담긴 잔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어놓으시고 이것을 마시라고 할 때 주님은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롭고 공포에 질렸든지 그 이마에 땀이 피로 변했습니다. 온 몸이 피땀으로 젖으면서 주님은 기도를 하고 그 잔을 마시고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는 고통을 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당하신 영적 고통은 이루 형언할 수가 없는 깊은 고통이었었습니다. 하늘보다 땅보다 바다보다 깊은 그 고난을 영적으로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버림받는 쓰디쓴 체험을 통해서 여러분과 내가 영적으로 버림을 받아 영원한 지옥에 불 탈 이것을 대신해 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영적으로 버림받은 것은 우리가 영적으로 하나님께 영접함을 받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이 당하신 고통은 심적인 고통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믿고 사랑했던 제자 가룟 유다에게 배신을 당한 고통을 당한 것입니다.

원수에게 배신당하는 거야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그러나 가장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고 기르는 제자에게 배신당하는 그 고통은 말로 형언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12제자 중에 가룟 유다를 제일 사랑하셨습니다. 제일 사랑하고 신뢰했기 때문에 그에게 돈궤를 맡겼습니다. 그래서 가룟 유다는 돈궤를 늘 차고 다녔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사랑하고 키우는 귀한 제자입니다.

이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했습니다. 그리고 은 30냥에 예수님을 원수들에게 팔아 넘겼습니다. 이러한 배신을 당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의 고통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배신당했다는 것, 이것은 쓰디쓴 잔인 것입니다.

저도 많은 제자를 기르고 또 많은 제자 중에 특별히 사랑했던 제자들도 있었고 또 그런 제자들에게 배신당해 본 적도 있습니다. 배신을 당하고 마음에 너무 상처가 깊고 고통스러워서 어느 아침에 일어나려고 하니까 심장이 멎으려고 합니다. 숨을 쉴 수가 없고 심장이 멎고 진땀이 나고 죽는 줄 알았어요. 배신을 당하는 그 심령적인 고통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와같이 가룟 유다에게 배신당하는 고통을 당했고, 그 다음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당할 때 모든 제자들이 감옥에도 같이 가고 죽는데도 같이 가겠다고 호언장담했던 그들이 한 사람도 없이 다 버리고 도망을 쳤습니다. 주님이 잡혀서 끌려갈 때 외롭게 혼자 끌려갔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 마음에 느낀 그 고통이 얼마나 처절했겠습니까? ‘제자들 다 키워 놔 봤자 아무 소용이 없구나’ 하는 그런 고통을 당했을 것입니다.

대제사장 가야바의 뜰에서 예수님께서는 침 뱉음을 받고 주먹으로 얻어맞고 그리고 수염이 쥐어 뜯기고 눈이 부어서 붙어버릴 지경이었습니다. 이렇게 되어 있을 때 그 가운데 와 있었던 베드로가 질문을 당하자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마지막에는 에수님을 저주하고 그리고 자기가 맹세해서 가로되 “내가 저를 전혀 알지 못한다”고 그랬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온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그 모습으로 돌이켜 베드로를 쳐다보았습니다. 그 마음에 참담함이 어떻겠습니까? 수제자인 그 베드로가 어떻게 주님을 눈앞에 두고 그를 모른다고 저주하고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저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럴 때 예수님이 마음속에 당하는 충격은 어떻겠습니까?

그 다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걸머지고 겟세마네 동산을 올라갈 때 자기가 베풀어 준 그 많은 사랑을 받은 군중들, 병고쳐 주고, 위로해 주고, 다독거려준 그 군중들이 은혜를 원수로 갚습니다. 뒤에 따르면서 고함쳐 말하기를 “저를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저를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은혜가 원수로 돌아오게 될 때 그 때의 마음의 고통이 또 어떻겠습니까?

거기에다가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하나님과 사람에게 다 버림을 당한 극한적인 고독을 느꼈습니다. “아! 내가 목마르다.” 주님이 육신적인 목만 마른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의 목이 얼마나 말랐던지, 위로가 필요할 때 위로해 줄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 영적으로 버림받고 심적으로 제자들이 다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 내가 목마르다”고 그는 부르짖었습니다.

나는 거기에서 남자들보다도 여성들의 위대함을 느낍니다. 남자들은 예수님을 다 버리고 살겠다고 도망을 쳤는데, 예수님의 여제자들은 끝까지 십자가 밑에 앉아서 통곡을 하고 울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남자들보다도 여자를 더 사랑해서 많이 공헌하신 것 같습니다.

교회에 가면은 교회 교인수 60%가 여자들입니다. 그것은 여자들이 예수님을 끝까지 고통에 동참하고 그리스도의 고난을 함께 걸머쥔 그런 성격을 가졌었기 때문에 주님께서 여성들을 더 많이 구원한 줄 그렇게 알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 심적인 극한 상황의 고통을 당했습니다.

배신당하고, 버림당하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장면을 체험을 하고 그는 마음의 고통으로 몸부림쳤습니다. 이와같은 예수님께서 마음의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것은 장차 우리가 마음에 평화를 누리고, 마음에 기쁨을 누리고, 마음에 소망을 얻게 하기 위해서 주님이 대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이 당한 고통은 육체적인 고난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목요일 밤새도록 겟세마네 동산에서, 가야바의 뜰에서 심문을 받으며 매맞으시고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는 마지막 만찬을 떼시고 겟세마네 동산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다가 잡혀서 가야바의 뜰로 끌려간 것이 약 한 밤 1시쯤 됐습니다.

그곳에서 심문을 받았습니다. 밤새도록 심문을 받았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졸개들이 모여 와 가지고서 예수 그리스도를 침 뱉고, 주먹으로 때리고, 수염을 뽑고, 발길로 차고, 침을 뱉고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예언하라 때리는 내가 누구냐? 알아보라.” 이런 온갖 모욕을 다 했습니다.

주님께서 밤새도록 시달림을 받고는 이른 새벽에 빌라도의 관청에 끌려가서 빌라도의 심문을 받고 급기야는 사형선고를 받고 그 다음에 빌라도의 군인들에게 끌려가서 그는 옷을 다 벗김을 받고 홍포가 입혀지고 머리에는 가시관을 눌러쓰고 그 다음에는 말뚝에 묶임을 받아서 처절하게 얻어맞았습니다.

로마의 군인들이 그 억센 팔로서 그들은 채찍을 들고 예수님을 때렸습니다. 그 당시에 채찍은 가죽끈으로 나무에 다섯 가지 채찍이 가죽에 매달렸습니다. 그 끝에는 쇠고랑이 달려 있습니다. 한번 치면 다섯 고랑이 몸에 박히는, 후려 당기면 등어리에 다섯 고랑이 파졌습니다.

전통에 보면 40에 하나 감한 매를 때립니다. 예수님이 39차례 그 채찍에 맞으면서 그는 온 몸을 움츠렸습니다. 갈기갈기 등이 찢어지고 가슴팍이 파헤쳐지고 선지 피가 샘처럼 흘러 내렸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저가 채찍에 맞으므로 너희가 병 고침을 받았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 큰 육체적인 고난을 하나님은 우리 병 고치는 대가로서 받도록 했습니다. 우리 육신의 병고를 주님이 대신 짊어지도록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예수님이 십자가를 걸머지고 이제 겟세마네 동산으로 올라가시는데 기운이 있을 턱이 있습니까? 밤새도록 심문 당하시고 아침도 잡수시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겪었기 때문에 기운이 없습니다. 십자가를 걸머지고 가다가는 넘어지고, 가다가는 넘어지고, 가다가는 쓰러집니다.

그래서 기어코 골고다 산중에 오른 예수님은 빨가벗겨서, 십자가에 눕혀서, 양손과 양발에 대못을 박히시고 주님께서는 하늘과 땅 사이에 높이 들려 올림을 받았습니다. 해는 비추고, 날은 덥고, 피와 땀은 흐르고, 그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는 고통의 극한 상황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고함을 쳤습니다.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혀서 오후 3시에 주님께서 “내가 다 이루었다” 하시고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나이다” 하고 그 영혼이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우편 강도와 좌편 강도는 같이 십자가에 못 박혀도 죽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서 그냥 쉽게 하루만에 죽지 않습니다. 보통 보면 사흘에서 일주일 동안 매달려서 서서히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군인들이 와서 그의 무릎을 찍었습니다.

“다리가 떨어지며 피가 쏟아져서 군인들은 죽었으나 예수님은 보니까 이미 운명하셨는지라.”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창으로 그 옆구리를 찌르니까 물과 피가 쏟아졌습니다.

여러분,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서 심장이 파열됐는데 피가 나와야지 왜 물과 피가 나옵니까? 이것은 예수님이 고통의 극한 상황에서 그 가슴 속에 있는 심장이 터져버렸다는 것입니다. 심장이 터지니 피가 심장주머니 심낭에 가득 차서 그래서 물과 피가 분리되었기 때문에 창이 그 심낭을 찌르매 물이 흐르고 피가 됐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것은 평범한 죽음이 아닙니다. 그가 당한 영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괴로움과 육체적인 고통이 극한에 처해서 그가 나중에 “내가 다 이루었다”고 외칠 때 가슴의 심장이 탁 터져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셔서 그 심장이 터지도록 고난을 겪으시고 심장이 터져 물과 피를 다 쏟으시므로 우리의 죄악을 짊어지신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사랑의 위대한 힘에 잡히지 아니했더라면, 예수님께서 이와 같은 극한의 고난을 자원해서 대신 짊어질 리 만무한 것입니다. 원수도 그를 향해 외쳤습니다. “네가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면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조롱했고, 또 “저가 남을 구원했으나 자기는 구원하지 못한다”고 조롱했습니다.

맞았습니다. 예수님은 남은 다 구원했어도 자기는 십자가에서 스스로 구원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 예수님이 자기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내려온다면은 모든 인류는 자기 죄로 다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남은 구원해도 자기가 스스로 구원할 수 없습니다.

자기가 죽어야 남을 살릴 수 있습니다. 이러므로 예수님의 그 크신 사랑이 우리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를 구원하지 아니하고 구원할 수 없고 희생을 당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하시기 600년 전에 이사야는 이미 이것을 바라보고 말했습니다.

“저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저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저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저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같이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저에게 담당시켰다”.

예수님은 우리 무리의 죄악을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몸을 찢고 피를 흘리며 영적으로 버림받고 심적으로 처절한 고독과 절망에 처하고 육체적으로 극한적인 괴로움을 겪으므로 우리를 영원한 멸망에서 주님이 건져주신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생각할 때 우리는 가슴이 미어질 듯한 감격을 느끼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죄인이 깊고 불의하며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저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저가 우리를 위해서 많은 희생을 당하고 그 무시무시한 죄악의 대가를 지불했기 때문에 그 고난의 공로로 우리가 값없이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가 십자가에 못 박혀 매달렸을 때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얼마나 아팠을까? 못 박힌 손과 발. 죄 없이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 하늘도 모든 땅도 초목들도 다 울고 해조차 빛을 잃고 온누리 비치잖네.”

예수님은 하늘과 땅 사이에 이 큰 고난을 겪으시고 우리를 완전히 속해주신 것입니다. 완전한 하나님이 완전한 사람으로 오셔서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그가 인류의 모든 원죄와 자범죄를 다 짊어지고 주님께서 단번에 청산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랑은 천하 어느 곳에 가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많은 종교가 있고 많은 철학이 있습니다. 많은 교육이 있고 많은 교훈이 있지만, 우리의 생명을 대속한 이와 같은 위대한 사랑은 우리가 어느 곳에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우리가 만일 버린다면은 우리는 천하에 피할 곳이 없습니다. 어느 곳에 가나 몸둘 곳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고난을 겪어 큰 사랑으로 우리 대가를 지불하시고 오늘날 두 손을 활짝 내밀고 말씀하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저는 이번 아프리카 부흥회에서 느꼈습니다. 검은 대륙에 가니까 하늘을 봐도 검고, 땅을 봐도 검고, 오른쪽을 봐도 검고, 안쪽을 봐도 검고 전부 검은 사람이야. 나중에는 나조차 검게 보입디다. 그리고 그 고통당하고 몸부림치는 그 대륙, 그러나 그곳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 그 많은 사람이 그렇게 좋아서 뛰고 춤을 추고 부르짖고 하는 것을 볼 때 마음 속에 큰 감격을 느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흰 사람이나 노란 사람이나 빨간 사람이나 검은 사람이나 다 사랑하시는구나. 육체가 어떤 색깔이라도 영혼이 흰 사람이 없고 영혼이 검은 사람이 없고 영혼이 노란 사람이 없고 영혼이 빨간 사람이 없다. 우리 속 사람은 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다. 이 인류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배로운 피로 다 한결같이 구원하시는구나.”

이것을 마음 속 깊이깊이 느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 예수님이 고난당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고난당한 십자가 밑에 나오면 한사람도 남김없이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시고 사랑으로 거두어 주시고 구원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그 희생을 통하여 죄가 영원히 속해지고 영원한 의로움이 나타나 영원한 구원이 주어지고 영원한 영광이 값없이 우리에게 주어주시는 것입니다. 다 같이 고개 숙여 기도 드리겠습니다.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아버지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을 진실로 고맙고 감사합니다. 천번 만번 죽어야 할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원죄가 있고 수많은 허물과 자범죄를 지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도리는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주님 깨어진 몸을 감사하고 흘리신 피를 감사합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과거가 어떠했든 현재 어떻게 되었든 무조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용서하시고 구원하시고 영원한 용서와 의와 구원과 영광을 허락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아버지 구원받은 우리들 크게 주님을 찬미하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를 섬기는 우리들이 다 되게 도와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조용기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
출처: 여의도순복음교회 홈페이지
날짜 : 1993.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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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교회 2024 중보기도 컨퍼런스

최성은 목사, 지구촌교회 사임

분당 지구촌교회가 홈페이지를 통해 최성은 목사의 사임을 발표했다. 지구촌교회 홈페이지에서는 “최성은 담임목사님께서는 지구촌교회 창립 30주년 기념사역을 잘 마무리하고, 일신상 이유로 지구촌교회 담임 목사직의 사임을 표명하셨다”고 밝혔다. 교회 …

한동대학교 최도성 총장

“기독교 정체성, 절대 양보 못 해… 한동대생은 선교 프론티어”

‘학생 모집 위기’ 타개 위한 제안 정중히 거절 다수 학생들 동참하는 ‘공동체성경읽기’ 진행 기도회, 자정까지 학생 700명 자리 지키기도 “말씀‧기도 계속되는 한, 한동에 미래 있어… 각자 자리서 선교 지경 넓히는 한동인 되길” “학생 모집이 점점 어…

존 칼빈 장 칼뱅

칼빈이 지금 목회한다면, 예배 때 ‘시편 찬송’만 부를까?

3. 바람직한 개혁교회상 1) 개혁주의 신학원리가 적용된 개혁교회 개혁주의, 이성 한계 극복 신학 5백 년 걸쳐 형성된 거대한 체계 잘못 발견되면 언제나 수정 자세 이론·지식 넘어 삶으로 드러내야 설교만 개혁주의 신학 기초하고, 예배와 성례, 직분은 복음…

생명트럭 전국 누빈다

‘낙태 브이로그’ 참극 반복되지 않도록… ‘생명트럭’ 전국 누빈다

최근 ‘임신 9개월 낙태 브이로그’가 전 국민에게 충격을 준 가운데, 태아의 죽음을 막기 위한 ‘생명트럭’이 전국을 누빈다. 생명운동연합이 주최하고 주사랑공동체,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프로라이프, 에스더기도운동, 성선생명윤리연구소, 아름다운피켓, …

탈북민 북한이탈주민 의 날

윤석열 대통령 “북한 동포, 한 분도 돌려보내지 않을 것”

윤석열 정부에서 기념일 제정 자유 향한 용기에 경의, 탈북민 행복이 통일 앞당길 것 강조 정착·역량·화합, 3가지 약속 ‘제1회 북한이탈주민(탈북민)의 날 기념식’이 7월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영빈관에서 윤석열 대통령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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