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한승 생명샘교회
▲다시 모인 달꿈예술학교. ⓒ생명샘교회 제공
1. 매달 세 번째 주일은 포도나무 주일로 지킵니다. 그 날은 저도 듣는 자리로 돌아가, 예배자 본연의 위치를 회복하는 ‘기쁜 날’입니다.

그 날은 ‘자기만의 교회와 우리끼리 교단’만의 좁은 시야에 갇힌 성도들의 시야가 넓어지는 ‘땅끝의 날’입니다.

그 날은 목사건 전도사건 직분에 상관없이, 성도에게도 메시지가 열려 있는 주 안에 하나되는 ‘평등의 날’입니다.

그 날 드리는 모든 봉헌물은 가난한 자들을 위해 철저히 구별하므로, 교회가 교회될 수 있는 ‘사랑의 날’입니다.

2. 봄 소식을 알리는 3월의 포도나무 주일은,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박진탁 목사님이 오셔서 나의 것을 기꺼이 나누는 삶에 대해 귀한 메시지를 들을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목사님의 일정이 바뀌면서, 포도나무 주일 메시지를 대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고민하던 저는 원래 성도들과 함께 공유하려 했던 이재철 목사님의 은퇴설교를 영상으로 함께했습니다.

13년 가량 100주년기념교회 초대 담임목사로 섬기시면서, 정해진 임기보다 빨리 퇴임하신 목사님의 퇴임사는 한 마디로 “나를 버리되 철저히 버리라”는 것입니다.

3. 이재철 목사님을 처음 만난 것은 제가 청년 시절, 섬기던 교회의 분쟁과 어려운 마음을 안고 조용히 100주년기념교회 수요예배에 참여하면서였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목사님의 목회철학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땅 끝으로 가기 전에, 발끝을 땅 끝으로 살아가는 삶’.

‘나의 계획을 세우기 보다 주님의 계획에 순종하는 삶’.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흘려 보내기 위해 스스로 매인 자가 되는 삶’.

사람들은 이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해 멀리서는 칭찬하나, 가까이서 보면 눈을 돌립니다.

버림의 삶을 사는 것은 글로 보거나 귀로 듣는 것은 아름답고 멀리서 보기에는 존경스럽지만, 그 삶을 내가 직접 살고자 하면 아무것도 채움받지 못하는 빈털털이의 삶이 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4. 도대체 매일 만나는 사람들과 먼지 가득한 이 나라 이 땅에서 어떻게 아프리카의 감동을 느끼겠는가, 내가 조금이라도 계획을 세우지 않고, 어떻게 하루라도 가치 있게 살 수 있겠는가.

내 뜻과 계획을 구현하지 않고 어떻게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보다 내면에 깔린 마음에는 ‘버림의 삶을 살면, 밥은 어떻게 먹겠는가…’, 이런 걱정이 뒤따르기 마련입니다.

사람들은 그래서 이재철 목사님의 삶뿐 아니라, 몇몇 사람들이 위와 같은 원칙으로 살아가는 삶을 보고는 그 삶이 ‘너의 삶’이기를 바랍니다.

그 삶이 ‘나의 삶’이 되거나 내 가족의 삶이 되는 것에는 반대합니다. 철저히 1인칭화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 멀리 보이는 아름다운 감동을 나의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내 삶이 아름다워질 수도 없고 내 삶을 통해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리도 만무합니다.

5. 많은 사람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주장하는 시대입니다. 분열의 이유는 누군가 누려야 할 권리를 누리지 못하게 하는 ‘기울어진 운동장’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모두가 각자의 권리만 주장하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시대에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만한 일을 해 오신 이재철 목사님께서 남기신 메시지, 그것도 설교 마지막이니만큼 자신의 업적을 강조할 수 있는 상황에서, 구태여 “나를 버리되 철저히 버려달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를 이제야 저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이미 목사님은 자기를 수없이 버려보았고, 그 버림을 통해 말할 수 없는 채워주심을 경험하셨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은 삶을 두려워하는 것은, 버림을 통해 채움받은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6. 우물가의 여인이 뜨거운 대낮 우물을 향해 갔습니다. 그곳에는 이미 예수님이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여인에게 말합니다. “얘야, 목이 마르다. 물 좀 다오.”

우물가의 여인이 우물로 갔다는 것은 이미 물을 길기 위해 간 것인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경계하며 여인은 물동이를 쥔 손을 뒤로 숨긴 채 말합니다. “물을 길을 그릇이 없습니다.”

여인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네가 주고자 하는 물은 목마르지만, 내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이야.”

이 말씀을 달리 말하면, 예수님은 여인에게 네가 매일 채웠던 그 물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나에게 빈 그릇을 내어놓으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빈 그릇에 당신의 생명수를 가득 채워주시기 위함입니다.

7.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빈 그릇을 내어놓지 못합니다. 빈 그릇을 내어놓는다는 것은 자기를 드러내는 것임과 동시에, 버리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릇을 내 뜻대로 가득 채우기 위해 시간도 비어 있지 못합니다. 그렇게 살아야만 채움받을 것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담임이 되던 2015년 5월, 앞서 주님의 길을 꼿꼿하게 걸어가는 본을 보이신 이재철 목사님께 편지를 드렸습니다.

먼저 걸어가신 그 길을 본받아 저도 뒤따름을 밝히는 것이 마땅한 후배 동역자로서의 예의요, 먼저 걸어가신 그 길을 뒤따르는 자가 있으니 외로워 마시라는 이야기를 전해드리고 싶었기 때문이지만, 동시에 연약하고 유혹에 잘 흔들리는 제가 그 길을 뒤따름을 약속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편지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비록 얼굴 한 번 대면하여 직접 이야기 나눈 바 없다 할지라도, 성북구 정릉에 있는 생명샘교회라는 작은 교회에서 휠체어를 탄 한 목사인 제가 목사님과 100주년기념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목사님께서 강조하셨던 것처럼, 나중 된 자가 첫째 되었던 그 감격으로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을 때, 언젠가 먼 훗날 그 등불이 확산될 것을 저도 믿는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목사님, 저도 여기에서 등불을 켰습니다. 제게 있는 불은 아주 작습니다. 하지만 제가 목사님께 그 불을 이어받았듯, 얼굴도 못 본 제가 영향을 받아 불을 켰듯, 이곳에도 그 불이 켜질 것을 믿습니다.

제 능력이 아닌, 결심하고 행동하는 삶을 통해 주님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나중 된 자가 첫째 되는 기쁨을 기대하며 저 역시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답변을 기대하고 보낸 편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 편지에 대해 이재철 목사님의 답변이 왔습니다.

‘유한승 목사님, 또 하나의 등불을 밝혀 주셔서 감사합니다. 등불은 크기가 아니라, 빛을 발하는 등불이라는 것 자체가 중요하지요. 그 등불의 빛이,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의 심령에 스며들기를 간절히 기원드립니다.’

8.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는 언제나 정오 한복판에 우물이 있습니다. 그 우물에서 우리는 언제나 기다리시는 예수님을 만나고 있음을 아십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내 손에 쥔 그릇이 너무 작다고 여긴 나머지, 매일 한 달란트 가진 자의 삶, 우물가의 여인처럼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니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채움받지 못해 늘 공허한 삶을 살지요.

류한승 생명샘교회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있는 모습. ⓒ생명샘교회 제공
9. 어느 날 카페지기로 봉사하던 날의 이야기입니다. 지나가던 한 청소년이 교복을 입고 문을 두드렸습니다. 수줍게 말문을 꺼낸 청소년은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여기…, 커피 교육은 안 해주세요?”

몇 학년이냐고 묻자, 고3이라고 했습니다.

입시가 막막한 상황에서, 지나는 길에 카페문을 두드렸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학생이 우물가의 예수님으로 여겨졌습니다. “내게 물 좀 달라는 것” 말입니다.

몇몇 사람과 의논했습니다. 학교에 바리스타 과정이 생겼습니다. 서울 평창동에서 오랫동안 카페 점장으로 일한 청년이 자원했습니다. 일이 끝나면 바로 와서 저녁 내내 가르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가르치면서 알게 된 일인데, 그 학생에게 청각장애가 있고 몸도 왜소하였습니다. 학생이 혼자 하면 외로울 것같아, 또 다른 자원자도 받아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좁은 카페 공간에 우리 학교 학생과 그 친구, 또 다른 청년이 어우러져 바리스타 수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어제, 바리스타 교육 1기 종강파티가 있었습니다.

물론, 당당히 바리스타에 합격해 자격증을 받았습니다. 당연히 모든 수업은 무료입니다. 주님은 값없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10. 달꿈예술학교가 졸업생을 배출하고 새로운 신입생을 받았습니다. 22살의 청년입니다. 상근, 그러니까 군인의 신분입니다.

대학에는 들어갔지만 이 기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며, 학교에서 공부할 수 없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가정 형편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편이라 혼자 학원비를 부담해야 하지만, 군인이라 일할 수도 없는 형편입니다.

이 학생이 예수님이 보낸 또 다른 작은 예수라고 생각합니다. “물 좀 주세요”라고 묻고 있는 그 질문 앞에, 우리 학교 역시 다시 기꺼이 2019년을 시작합니다.

덕분에 이제 학교에는 야간학교도 생겼습니다. 영어와 국어를 일주일에 한번씩 가르치겠다는 봉사 선생님이 생겼습니다.

11. 소아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한 어린이의 엄마를 만났습니다. 상담을 받으러 오신 분에게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 고민했습니다.

미술을 좋아한다는 어린이를 위해 일단 어린이 미술교실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금요일에는 어린이 미술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오시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것을 위해 시간을 내어줘야 합니다. 이제 아침 점심 저녁까지 빈 그릇인 채 내어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믿습니다. 그렇게 내어버리는 그릇에는 주님이 채워주시는 은혜로 가득 찰 것을 굳게 믿습니다.

12. 우리는 내 손에 쥔 등불의 크기가 작다는 이유로,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불을 밝히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내 손에 쥔 그릇의 크기가 작아, 나 혼자 밥 먹고 물 길어 먹기도 바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은 늘 좋은 조건, 화려한 불빛이 아른거리는 곳을 선택하면서도 더 배고파지고 있는, 그래서 점점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드는데 일조하는 삶을 살아간 나머지 오늘 내 자리에서 만난 예수님께 아무것도 내어놓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나 그릇의 크기도 등불의 크기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기꺼이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빈 그릇을 내어놓을 때, 그 그릇에 주님의 생명샘이 가득 차오르게 될 것입니다.

내가 가진 등불이 비록 너무 작아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기꺼이 용기내 등불을 밝히는 사람에게만 지구 반대편까지 그 어둠을 밝히는 역사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이 편지를 받고, 오늘 내 삶의 현장에서 기꺼이 그를 위해 빈 그릇을 내어주는 여러분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샘이 가득 차오르기를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2015년 이재철 목사님의 편지 말미 당부를 여러분에게도 전해드립니다.

“사랑하는 등불을 들고 있는 여러분, 등불은 크기가 아니라, 빛을 발하는 등불이라는 것 자체가 중요합니다. 그 등불의 빛이,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의 심령에 스며들기를 간절히 기원드립니다.”

류한승 목사(생명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