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어하우스 학회
▲로트 박사(오른쪽)가 인사하고 있다. 왼쪽은 통역중인 이동주 교수. ⓒ이대웅 기자
‘피터 바이어하우스 학회(Peter Beyerhaus, 회장 이동주 교수)’ 2019년 봄 학술 심포지움이 지난 22일 오후 서울 양재동 횃불회관 화평홀에서 개최됐다.

‘피터 바이어하우스와 종교 다원주의 문제’라는 주제로 열린 심포지움에서는 먼저 독일 UMC 감리교회 장로이자 튀빙겐대 의학박사인 발데마르 로트(Waldemar Roth)가 인사를 전했다.

“바이어하우스, 한국인들에게 기도와 신앙실천 배워”

로트 박사는 “바이어하우스 교수님은 학회 회장인 이동주 교수를 ‘박사 딸’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독일어권에서 박사학위 과정의 학생을 코칭한다는 의미”라며 “이 교수님은 한국인이자 피아노를 전공했던 제 아내와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하다. 지금은 없지만, 아내는 신학대회에서 피아노 반주로 섬기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바이어하우스 교수님은 한국인들에게 기도를 배웠고, 한국인들이 새벽기도와 집중기도와 모든 삶의 영역에서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하고 간구하는 기도에 아주 깊은 인상을 받으셨다고 하셨다”며 “아내에 대해서도 그렇게 기도하는 여인을 독일에서도 발견했다고 하셨다”고 전했다.

또 “그 분은 한국에 15차례나 방문하셨고, 중요한 변증적 기초들과 고백적인 선교신학을 강연하시며 신학 분야에 큰 축복을 남겨주셨다”며 “그와 한국 신학자들은 서로 주고받았다. 한국인들의 신앙과 기도 실천은 바이어하우스 교수님에게 도움이 됐다고 하셨다”고 회고했다.

마지막으로 “교수님의 관심과 가르침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젊은 목회자와 선교사들을 위한 신학 교육이 하나님 말씀에 깊이 뿌리내리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래야 사역 가운데 성경적인 복음의 기쁨이 희석되지 않고, 인간들을 죄악의 사슬에서 대속하심으로 결박을 풀어 자유케 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 위에 굳게 설 것”이라고 당부했다.

바이어하우스 학회
▲학회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선교 위기’ 중, 성경적 재확언 프랑크루프트 선언 주도

학회는 도로테아 킬루스(Dorothea F. Killus) 박사의 논문 ‘우리 시대를 위한 비전을 가진 하나님의 파수꾼 피터 바이어하우스 박사’를 소개하기도 했다.

먼저 ‘선교에 열정을 가진 목사의 아들’로서 바이어하우스 교수에 대해 킬루스 박사는 “선교와 복음 전도에 대한 성향은 이미 그의 가계 안에 있었다. 그는 가족사에 있어 3가지 축복을 설명한다”며 “왕궁 건축가였던 할아버지는 평신도 설교자였고, 스웨덴 출신 할머니는 복음주의 얼라이언스 선교회 음악팀에 속했다. 부모님들은 집 정원에서 선교 축제들을 계속 개최했고, ‘피터’는 그곳에서 선교사들로부터 선교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바이어하우스가 ‘선교’에 대해 “희망 없는 세상에서 성령님의 능력으로 구원의 은혜를 선언하는 것(the announcement of the saving grace to the hopeless world in the power of the Holy Spirit)”이라고 한 것에 대해선 “그는 1954년 선교회 내부에서 ‘선교의 위기’를 거론할 때 선교사 허입을 신청했다”며 “그것이 근본적 위기로 바뀌었을 때, 성경적 선교의 기본적 요소들을 다시 확언하는 프랑크푸르트 선언(1970년)을 주도했다”고 정리했다.

‘변증 사역’에 관해선 “그의 출발점은 고귀한 하나님 백성의 한 지체로서,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독특한 영예를 위한 열심을 드러내는 것이었다”며 “그는 하나님의 영에게서와 사람의 영에게서 오는 것을 분별하려 노력했다. 성경의 핵심 메시지를 확언하고, 문제가 생길 경우 적절한 방법을 통해 다시 성경적 진리로 돌아가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바이어하우스 학회
▲예배에서 김명혁 목사가 설교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고백 운동 희망해 온 것, 교회와 신학의 참된 영적 갱신

킬루스 박사는 “바이어하우스 교수는 파수꾼의 역할을 넘어, 그 배후 세력들과 싸웠다. 목회적 돌봄에 대한 깊은 감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는 비록 인간적으로 지지받지 못했을 때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알고 있었다. 이는 그가 믿을만한 최고의 파수꾼이었다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후 바이어하우스 교수는 급진적 성경 비평을 반대하며 일어난 신앙고백적 운동 ‘다른 복음은 없다(No Ohter Gospel)’를 적극 환영했고, 그 신학회가 결성되자 회장이 되어 1972년부터 33년간 섬겼다”며 “1978년 7월 런던에서 결성된 국제기독교네트워크(ICN)에서도 회장으로 선출돼 2009년까지 재직했다”고 밝혔다.

또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했던 모임은 ‘고백운동 신학회(the theological convention)’로 통합됐다. 이후 학술 모임과 출판을 통해, 신학회는 세계 선교 운동의 발전 과정을 철저히 반성하고 복음주의 선교학과 함께 교회 연합 운동도 분석해 세계 선교 운동의 길에 동역하고 있다”며 “고백 운동이 희망해 온 것은 교회와 신학의 참된 영적 갱신”이라고 전했다.

앞선 예배에서는 학회 총무 이승구 교수(합동신대) 사회로 오덕교 교수(합동신대 전 총장)의 기도 후 김명혁 목사(한복협 명예회장, 합동신대 명예교수, 강변교회 원로)가 ‘성경적 선교신학’을 설교했다.

김명혁 목사는 “피터 바이어하우스 교수님은 성경 말씀의 권위와 전통적 복음주의 신앙을 분명하고 철저하게 몸에 지니고, 점점 세속화·인간화·정치화되고 있던 세계 교회의 잘못된 방향을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비판했다”며 “성경 중심적인 십자가와 부활과 재림의 복음주의 신앙을 유지해야 함을 분명하게 제시해 오신 귀중한 분”이라고 했다.

김 목사는 “바이어하우스 교수님은 지난 1982년 9월 합동신대에서 ‘선교의 성서적 기초’를 주제로 발표하면서, 선교의 기초는 부활, 선교의 내용은 구속 또는 구원, 선교의 수행은 성령님, 선교의 목적은 종말이라고 요약했다”며 “교수님이야말로 성경적 복음주의 선교신학과 사역을 분명하고 상세하게 가르친 귀중한 분”이라고 했다.

이날 심포지움에서는 김성봉 교수(한국성서대)가 ‘피터 바이어하우스의 삶과 그의 사상’, 이동주 교수(아신대 전 교수)가 ‘WCC의 포스트모던적 종교다원주의 동향에 대한 바이어하우스 박사의 입장’, 오성종 교수(칼빈대)가 ‘종교다원주의자들의 불신앙 이유’를 각각 발표했다.

피터 바이어하우스(Peter Beyerhaus) 박사는 1929년 동독에서 루터회 목사의 장남으로 태어나 베를린에서 수학한 후 1947년 신학 학위를 취득했다.

베를린과 할레, 하이델베르크, 본, 스웨덴 웁살라에서 공부한 후 1956년 웁살라대학에서 Th.M.과 Th.D. 학위를 받았다. 1965년부터 1997년까지 튀빙겐대 교수로 봉직했다. 로잔과 마닐라(1989년)에서 열린 세계복음화에 관한 국제회의에 참석했고, 최근 2013년 제10회 대회(부산)까지 WCC 대회마다 참석해 그들의 신학을 강력하게 비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