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춘화 목사
▲C채널방송 ‘힐링토크 회복 플러스’에서 간증을 전하는 박춘화 목사. ⓒC채널방송 제공
C채널방송 ‘힐링토크 회복 플러스’가 3월 마지막 주 다양한 게스트와 함께 시청자를 찾아간다.

26일 오전 11시 ‘힐링토프 회복 플러스’에서는 ‘예수님을 통해 회복되는 삶’, 박춘화 목사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박춘화 목사는 어린 시절, 소위 가장 싸움 잘하는 아이로 눈이 내리던 날 2년 위의 선배와 싸워 많이 맞았다고 한다. 어린 마음에 할머니에게 속상함을 토로했는데, 당시 기독교인이었던 할머니가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다니길 권면하셨다고 한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교회에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창천 교회 주일 학교를 출석하게 되었고, 고등학교 2학년 수련회 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서 목회자를 꿈꾸기 시작했다.

박춘화 원로목사는 성공한 목회자로 평가받지만, 자신의 뒤를 이어 목회자의 길을 걷던 첫째 아들 박홍규 전도사가 시골 목회지로 부임 받아 사역한 지 6개월 만에 순직한 아픔이 있다. 하나님과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1973년, 일찍이 3.1절 기념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김상숙 권사
▲C채널방송 ‘힐링토크 회복 플러스’에서 간증을 전하는 김상숙 권사. ⓒC채널방송 제공
3월 27일 오전 11시에는 수많은 외국인들과 두 재소자의 어머니가 된 김상숙 권사의 34년 기도응답 회복 스토리를 만날 수 있다.

김상숙 권사는 외국인 사역을 진행한 지 34년 째, 홀리네이션스교회를 설립하고 사역한지 19년 짹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마마킴'으로 불리운다. 그녀는 수백명의 외국인들에게 무료 숙식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아프거나 다친 외국인들이 입원,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김상숙 권사를 통해 전도되어 세례를 받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외국인들 중, 30명이 넘는 외국인이 신학생이 되었고 자국으로 돌아가 사역을 하고 있다.

김상숙 권사는 한국의 ‘조지 뮬러’라 불리고 있는데, 이는 긴급하게 재정이 필요한 때에도 사람에게 요청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19년 간 60억에 가까운 재정을 선교사역에 사용했으며 해외에 건축한 교회도 6곳이나 되기 때문이다.

또 10여 년 전, 신문을 통해 무기수로 수감 중이던 재소자와 편지를 주고 받다가 양아들로 삼은 뒤 지금까지 편지와 면회로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데, 그 재소자는 신앙에 귀의해 놀랍게 변화되었다. 그는 어머니 김권사로부터 디모데라는 새 이름을 얻었고, 교도소 내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등 섬김을 실천하며 고등학교 과정 검정고시를 마치는 등 학업에도 열심을 내고 있다.

박성진
▲C채널방송 ‘힐링토크 회복 플러스’에서 간증을 전하는 박성진 연주자. ⓒC채널방송 제공
28일 오전 11시에는 박성진 탈북 연주자의 이야기를 담는다. 국내 유일한 소해금 연주자인 박성신 씨는 재일교포의 아들로 유복하게 자라 11살 때 소해금을 처음 접한 후 평양예술대학에서 9년간 소해금을 공부했다. 귀순하기 전 북한의 예술단에서 소해금을 연주 했지만, 1990년대 중반, 고위층이 참석한 지인의 결혼식에서 한국 가요 ‘칠갑산’을 부르다가 보위 사령부에 끌려가 사형선고를 받고 40일 감금됐다. 이후 황해남도 금광교화소에서 노동을 하다 예술단원으로 활동했다.

2003년, 박성진 씨는 결국 부모와 함께 북한을 탈출했다. 세 명의 누나는 2년 후에 중국과 몽골을 거쳐 대한민국에 오게 되었다. 그는 탈북 과정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마다 ‘하나님이 살려주신다’는 확신을 갖고 간절히 기도했으며 하나님의 기적을 직접적으로 체험했다고 고백한다.

한편 박성진 연주자는 남한에 온 그는 인기 가수 장윤정의 ‘첫 사랑’과 드라마 ‘동이’의 주제곡에 삽입된 소해금 연주를 맡아 유명세를 얻었으며 소해금 연주 앨범을 발행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