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북
▲정치적 올바름 운동의 시각으로 인종차별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영화 <그린북>
영화와 신앙: 도용된 기독교 사회윤리, 그 정당성에 관하여

◈영화와 기독교 윤리: 노예의 해방과 기독교 인권운동


미국 내전(American Civil War) 시기 대통령을 역임한 에이브러햄 링컨은 1864년 힘겹게나마 재선에 성공했다. 그의 두 번째 취임식은 이듬해 3월 거행되었다.

이때 그가 남긴 연설은 1863년의 게티스버그 연설에 못지 않은 명연설로 현대 미국의 흑인인종차별 문제를 논의할 때 자주 회자되곤 한다.

연설문 전반부는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던 내전의 전황에 관련된 내용이다. 간략한 전황보고 후 연설문 후반부로 진입하면 링컨의 어조는 정치적인 것에서 종교적인 것으로 변한다.

이 후반부를 듣고 있노라면, 전쟁으로 신음하는 당시 미국 사회를 고통스럽게 바라보는 한 목회자의 설교를 듣는 것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남북) 양측은 모두 같은 성경을 읽고 같은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서로 상대방을 응징하는 데 그분의 도움이 있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남이 흘린 땀으로 자기 빵을 얻는 자들(흑인노예를 착취해 이득을 취해온 백인들)이 감히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도움을 청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만,

그러나 ‘우리가 심판받지 않으려면 상대를 심판하지 않도록(롬 2:3)’ 합시다. 남북 어느 쪽의 기도도 그분의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어느 쪽도 하나님의 충분한 응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그 자신의 목적을 갖고 계십니다. …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마 18:7)’. 미국의 노예제도가 바로 그 같은 세상의 죄 가운데 하나이고….”

주목해야 할 점은 남측과 북측이 각기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드렸다는 점이다. 링컨은 노예해방과 하나된 미국이라는 명분을 갖고 싸우는 북군에게 하나님의 공의가 함께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미국 전역의 백인 대다수가 노예제로 이익을 얻거나 노예제를 방치하는 데 동참해 왔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겸비의 심령을 갖출 것을 권했다.

당시 미국 기독교계도 노예제 문제와 관련해 내전과 유사한 양상을 보였는데, 북측의 기독교 부흥운동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찰스 피니는 온전한 신앙생활의 기회 부여를 위해 흑인노예와 여성에 대한 차별을 즉시 전면적으로 철폐해야 한다고 외쳤다.

반면 남측의 존경받는 개혁주의 신학자 찰스 핫지의 경우 노예제의 급진적 철폐를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다.

오늘날 미국의 인권사상, 특히 인종과 관련된 차별금지 사상은 두 개의 뿌리를 갖고 있는데, 하나는 정치적인 것으로 계몽주의 사상에 입각한 미국 건국이념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방금 링컨의 재선 취임연설에 명기된, 그리고 찰스 피니가 역설했던 기독교적 노예해방사상이다.

이 사상은 약 100년 후, 영화 <그린북>의 배경이 되는 1960년대를 전후해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주도 하에 활발하게 전개된 시민인권운동(Civil Rights Movement)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린북>이 전하고 있는 인종차별의 부조리에 대한 비판 메시지에 기독교적 노예해방 사상이라는 뿌리가 교묘하게 배제되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 초반 이탈리아계 미국인 토니(비고 모텐슨 분)와 그의 친척들이 보이는 흑인차별 행태, 그리고 천재 흑인 음악가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 분) 박사에 대한 남부 백인들의 차별 행태는 일관되게 무지하고 미개한 인간상과 교양있고 개화된 인간상을 대별하는 기준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 흑인차별을 종교적 공의와 죄악의 문제가 아니라 개화와 미개의 문제로 성격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린북
▲영화 <그린북>은 1960년대 한 천재적인 흑인 음악가가 미국 남부 지역 순회 공연 가운데 겪는 인종차별 실태를 그려내고 있다.
이는 전편의 글에서도 언급한 돈 셜리의 동성애 차별 장면에서 가장 명료하게 드러난다. 이 장면에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종과 성적 지향 차별은 지극히 부조리하고 미개한 행태라는 것이다.

이로써 이 영화는 기독교 윤리에 바탕을 둔 인종차별 반대운동의 오랜 역사적 공로를 비교적 근래에 발흥한 정치적 올바름 운동의 공로인 것처럼 교묘히 탈바꿈해 놓는다.

물론 여기에는 기독교 윤리가 미국 사회 인종차별 문제 해결에 그리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질책이 섞여 있기도 하다.

미국 내전 당시 남측 기독교 인사들은 성서의 가르침을 노예해방을 반대하는 데 활용하기도 했고, 이런 움직임은 극단적으로 KKK(Ku Klux Klan)의 발흥에 이바지하기도 했다.

정치적 올바름 운동을 추종하는 이들은 이런 어두운 역사를 지목하며 기독교 인권윤리가 위선적이고 실제 현실에서 별반 효용이 없다고 단정하는 듯하다.

그러나 정치적 올바름 운동이 프로파간다적으로 선전하는 것처럼, 오늘날 미국 현실에서 인종차별이 본질적 차원에서 해소되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기독교 인권운동의 역사는 그들이 배제할만큼 무력하거나 역기능적이기만 했던 것도 아니다.

마틴 루터 킹
▲1950-60년대 미국 인권운동의 지도자 역할을 맡았던 침례교 목회자 마틴 루터 킹 목사.
여기서 한 가지 더 고려해야 할 점은 시대적 정황이다. 기독교 인권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1860년대와 1960년대 미국의 상황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치 차별의 전통과 구습에 얽매여 있던 시대였다.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앵글로 색슨계열 백인들 이외 인종의 기여도가 지금에 비해 한없이 미약했던 시기와 지금을 단순비교하며 정치적 올바름 운동의 위상을 높이는 것은 부당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오히려 이전의 기독교 인권운동은 지금보다 몇 배는 열악한 상황, 백인들에게 말 한번 잘못 건넸다고 살해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1950-60년대에 최선을 다해 처절하게 투쟁하며 사회변혁을 이끌어 왔다.

이런 여러 측면들을 고려할 때 영화 <그린북>의 인종차별 고발의식은 여러 모로 큰 아쉬움을 남긴다. 무엇보다 자기 것이 아닌 인권운동의 역사적 공로를 탈취해 가는 듯한 묘사방식이 유감스럽다.

링컨이 연설한 바 “남이 흘린 땀으로 자기 빵을 얻는 자들”은 단지 흑인을 착취해온 백인들의 행태만을 두고 말할 바는 아닌 것 같다.

◈영화와 기독교 신앙: 민족의 해방과 기독교 독립운동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기독교 신앙은 해방의 사회윤리를 위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 왔다.

무엇보다 이 땅의 기독교 선교가 서구 및 일본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화 작업이 한창 진행중이던 1880년대 개시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천천히 그러나 착실하게 나라를 잃어가고 있던 이 땅의 초기 기독교인들은 선교사들이 가르친 구원과 해방의 복음을 너무도 당연하게 민족의 자주와 해방의 염원과 연결지었다.

선교사들의 활동이 제국주의 열강에 의한 식민지화 정책의 도구로 자주 활용되어 현지 토착종교와 갈등을 빚게 된 인도나 동남아 일부 국가들에서는 기독교가 착취의 종교로, 토착신앙이 해방의 종교로 비춰졌다.

반면 한국에서는 일본이 제국주의 열강으로 행세한 까닭에 기독교가 천도교나 원불교 등의 토착종교와 마찬가지로 일제의 종교인 신토의 믿음체계와 사사건건 갈등을 빚었다.

이로써 한국인들의 마음에는 어느새 기독교가 민족의 해방을 불러올 희망의 신앙, 저항의 신앙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내내 이어진 기독교계열 인사들의 독립운동과 계몽운동, 그리고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과 성도들의 신사참배 반대운동은 이런 경향을 보다 확고한 것으로 자리잡게 만든다.

이런 과정이 매우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덕에 한국인들의 마음에서는 ‘기독교 신앙=민족을 위한 신앙’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그리고 이런 신앙관념은 일제강점기 시대뿐 아니라 남북의 혈투와 휴전, 그리고 불안한 대립상태를 겪어온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대단히 모범적인 신앙으로 여겨져 왔다.

항거 유관순 이야기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의 한 장면. 유관순 열사가 참여했던 천안의 3∙1운동 현장 모습.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이처럼 기독교 신앙이 저항의 신앙, 해방의 신앙 역할을 수행하는 데 있어 정점을 찍는 계기가 되었던 역사적 사건, 3∙1운동과 그 직후의 일들, 특히 유관순 열사가 옥고를 치른 서대문형무소 8호실의 이야기를 주제로 삼는다.

3∙1운동이 초래한 개인적 비극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날의 일에 대한 감방 속 수인(囚人)들의 회의감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독립이라는 염원의 끈을 놓지 않았던 열사의 생애 마지막 시간들을 조명하고 있다.

영화의 서사는 그녀의 민족 해방과 독립을 위한 불굴의 ‘항거’를 일종의 순교보처럼 그려낸다. 그리하여 근현대 한국 민중들이 겪어야 했던 질곡의 역사를 신성시해온 우리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어일으킨다.

그런데 이런 감동은 한국의 기독교 신앙인 입장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하나의 사실을 간과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조국과 민족을 위하는’ 그 신앙의 정신 가운데서 우선순위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열사의 신앙이란 분명 영화에서 묘사된 대로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민족이 살아야 나의 영혼도 산다는 믿음이 중심되는 신앙. 그리고 이는 일제강점기라는 억압적인 시대를 몸으로 겪어야 했던 당시 대부분의 한국 신앙인들이 공감하고 고뇌했던 사안이다.

조선총독부 입장에서는 기독교가 하나의 서구 외래종교일 뿐인 주제에 식민지 민중들 사이에 국가에 대한 저항의식이나 고취시키는 ‘불량한’ 종교로 인식되고 있었다.

이로 인해 가해진 총독부의 은근하고 조직적인 기독교인 핍박은 유관순 열사의 믿음처럼 민족주의적 신앙이 아니면, 구약의 이스라엘 민족이 고수하던 그런 정치적 신앙이 아니면 극복하기 어려운 시련이었음에 틀림없다.

항거 유관순 이야기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 서대문 형무소 8호실 감방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던 유관순 열사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영화에 아쉬운 바가 있다면 유관순 열사와 당시 한국 기독교인들이 겪고 있던 이런 신앙의 정황에 대한 이해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한국 기독교 신앙의 지상과제가 마치 한민족의 해방을 위해 봉사하는 것인 듯 소개되고 있는데, 이는 분명한 주객전도의 상황이라 볼 수 있다.

당시 한국 기독교인들이 신앙의 정신을 바탕으로 민족의 해방을 부르짖은 것은 민족 자체가 번영하는 최종적인 목적을 두고 있지 않았다.

그보다 일제의 지극히 비기독교적이고 때로는 반기독교적인 종교문화가 이 땅의 신앙인들이 온전한 믿음을 갖는 데 크게 저해되고 있었기에 그토록 독립을 간절히 요청했던 것이라 볼 수 있다.

당시 기독교인들의 신앙에 민족감정이 전혀 결부되지 않았다고 보기 어렵고, 또 때로는 그런 감정이 기독교 신앙의 본 정신을 압도하기까지 한 적도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 한들 일제강점기의 한국 기독교가 마치 삼국시대 및 고려시대의 호국불교 역할을 자처했던 것처럼 소개되는 것은 상당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기독교 신앙의 최종적 지향점은 이 땅에 고착된 소망이 아니라 내세의 소망,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의 소망이다.

이것이 무시된 채 기독교 신앙을 마치 민족 해방운동의 한 방편에 불과한 것으로 소개하고 있는 영화의 묘사방식은 기독교인 입장에서 분명 아쉽게 느껴지는 바이다. 이는 진보적 정치성향이 크게 일상화된 오늘날 한국인들의 취향에 맞게 재단되고 도용된 신앙의 일단면에 불과하다.

그리고 탈식민주의 정신을 환영하는 정치적 올바름 운동의 이상에 맞게 각색된 기독교 신앙의 부분적 모습이라는 사실 역시 유념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항거 유관순 이야기
▲유관순 열사에게는 신앙의 저항이 곧 민족을 위한 저항이라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이는 당시 조선총독부로부터 핍박을 받고 있던 한국 기독교인들 대다수가 공유하고 있던 신념이었다.
결국 <그린북>이나 <항거: 유관순 이야기>처럼 최근 큰 호평을 받은 실화기반 사회비판 영화들, 그러면서 정치적 올바름 운동의 이념을 옹호하거나 그 조류에 동참하는 영화들 가운데서, 기독교 신앙은 그 고유한 유산과 업적, 그리고 내용을 상실한 채 정치적 올바름 운동의 한 ‘미숙한’ 단계 혹은 한 미숙한 방편 쯤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대단히 아쉬운 일이긴 하나, 한편으로는 오늘날 대중이 기독교 신앙과 사회윤리를 바라볼 때 적용하는 편향된 시각을 이해하게 해주는 사례로서의 의미를 갖기도 한다.

위 두 편의 영화는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하나의 과제를 던져주는 듯하다. 기독교 신앙이 적극적으로, 그리고 자신감 있게 사회의 공의와 윤리를 위해 앞장서던 시절의 정신을 되찾아야 한다는 과제를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 듯하다.

교회와 성도들이 이런 과업을 적극적으로 감당하지 않는다면 대중문화 속에서, 그리고 종래에는 대중의 인식 속에서 정치적 올바름 운동의 지배력은 점차 커져갈 것이고, 기독교 사회윤리는 이 정치적 올바름 운동에 뒤따르지 못하는 구시대적 가치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