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신앙,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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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에이미 매너스는 영국 크리스천투데이에 ‘당신에게 어떤 기도도 남아있지 않을 때’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다. 다음은 주요 내용이다.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을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눅 1:78~79)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던 사가랴는 매일, 매년 같은 기도를 드렸다. 더 이상 실망스러운 순간에 직면하지 않을 때까지. 심지어 천사들이 그 옆에 서서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너의 기도를 듣고 계신다’라고 전해주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희망을 허락하지 않았다.

청년으로서 그는 아들을 위해 기도했다. 현재 그의 머리는 희어졌고, 기도는 오래된 것처럼 느껴진다.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그가 꿈을 꾸고, 또 이 꿈이 좌절되었는가?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 많으니이다”(눅 1:18)

인간적으로 봤을 때, 아들을 얻고자 했던 그의 꿈은 이제 불가능해졌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울음소리를 듣고 계시는지 의심했다. 그 결과 그는 말할 수 없게 되었다. 9달 동안 그는 침묵했다. 그러나 이 침묵은 아마도 선물이었을 것이다. 십년 동안의 기도가 응답되었고, 그의 아내는 자녀를 얻었다. 하나님의 자비로운 기적이 그에게 임했다. 말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우리의 약속은 우리보다 크다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벙어리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내 말을 네가 믿지 아니함이어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리라 하더라”(눅 1:20)

사가랴의 기도는 매우 개인적인 것이었다. 그는 사랑으로 길러서 가르칠 수 있는, 그의 후손이 되어 ‘아빠’라 부를 수 있는 아들을 원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개인적인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가장 커다란 꿈을 넘어서는 방법으로 응답해주셨다. 하나님의 응답은 아버지가 되고 싶었던 사가랴의 개인적인 소원과 사라갸의 아들 요한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깨우고자 하셨던 당신의 원대한 계획을 모두 만족시켰다.

“천사가 일러 가로되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남을 기뻐하리니 이는 저가 주 앞에서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니라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새로운 백성을 예비하리라”(눅 1:13~17)

기다림에 성장이 있다. 그래서 우리가 기다리던 복이 왔을 때 우리는 이를 잘 감당할 수 있다. 젋은 아버지는 이스라엘의 구원자를 위한 길을 예비하는 선지자, 세례 요한을 잘 길러낼 수 없었을 것이다. 모든 지혜와 삶의 교훈들과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이 필요하다. 사가랴는 자신의 때가 지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다림은 그가 하나님께서 명하신 사명을 위해 준비되었음을 의미한다. 그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기다렸기 때문에, 그 약속의 성취는 그에게 뿐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큰 기쁨이 되었다.

우리의 기도들은 우리 자신들보다 훨씬 크다. 하나님께서는 친밀하시지만 그러나 주관자이시다. 그분은 당신의 개인적인 바람을 만족할 뿐 아니라 당신의 더 크신 계획을 이루시는 방법으로 당신에게 응답하실 것이다.

사가랴에게 아무런 기도도 남지 않은 순간에, 하나님의 천사가 그에게 와서 말한다.

“천사가 일러 가로되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눅 1:13)

그의 가장 어두운 하늘이 상상할 수 있는 어떤 것보다 영광스럽게 되는 순간이었다. 기적이 일어나기에 너무 늦었다고 생각할 때, 하나님은 여전히 나타나신다. 그분의 때는 우리의 때가 아니다. 그분의 방식은 우리의 방식보다 훨씬 더 높다. 그분의 사랑은 당신의 회색 지평선을 영광스러운 가능성의 빛으로 바꿀 것이다. 기다리면서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