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본철
▲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역사신학/성령운동연구가/성령의 삶 코스 대표)
19세기의 신유사역자 컬리스(Charles Cullis)는 성경에 치유에 관한 약속이 있다면, 이 약속을 취소하는 어떤 권위 있는 성경구절이 없는 한, 인간이 주장하는 어떤 은사중지론도 이를 저지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서 그는 자신의 사역 초기에 수백 명이 야고보서 5장  14-15절의 약속대로 신유를 경험했고,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후인 1890년경에는 수만 명이 신유를 경험했다고 보고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약 5:14-15)

컬리스가 사역하던 19세기말 부흥운동의 전통 속에서 성결 체험, 또는 성령의 불세례와 함께 다가오는 신유에 대한 기대는 매우 일반적인 성결-신유 연결 메시지였다고 본다. 당시에 신유를 직접 경험한 카터(R. Kelso Carter)는 그때의 부흥운동에서는 영혼과 육체의 치유를 동반하는 메시지가 일반적이었다는 점을 밝혔다.

한국 성결교회의 목사 김응조는 자신이 기적적으로 치유 받은 체험을 바탕으로 신유의 복음을 그의 목회와 부흥사역 속에서 더욱 담대히 전하기 시작했다. 그는 "만일 병의 원인이 죄가 되었을 경우에는 주님은 먼저 죄를 사해주시고 그 결과인 병까지 고쳐주신다. 모든 병은 하나님께서 고쳐주신다"고 강조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신유는 단지 병에서 치유되는 것만이 목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영혼 구원에 있다는 점을 역설하였다; "하나님을 의지한 신유의 권능의 목적은 영혼 구원이다." 이와 같이 신유를 단지 질병 그 자체에서만의 해결이 아니라, 죄와의 관계, 그리고 영혼의 구원과의 관계 등의 상관성을 중시하여 전파한 김응조의 신유의 정신은 치유사역에 대한 올바른 복음적 표준을 제시해 준다.  

우리의 나약한 힘으로는 결코 마귀의 권세를 이길 수 없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 놓으신 그리스도의 능력이 지금 내 안에 계심을 인정하고 고백하자. 예수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얻었음을 담대히 주장하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4)

이렇게 끈질기게 우리의 믿음을 고백하고 있는 동안 질병을 유발시킨 귀신들은 자기들 일이 실패로 돌아간 것을 알고 모든 고통과 질병의 증세를 가지고 물러가게 될 수 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 4:2)

무조건 병을 고치는 것만이 하나님의 뜻은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 질병과 관계하여 성도에게 영혼의 회복과 성숙을 원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이 반드시 질병의 치유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또 때로는 영혼의 유익을 위하여 우리에게 연약함이나 육체의 가시로서 질병을 남겨 놓기 원하실 수도 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달려있는 것이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12:7-10)

그러나 질병의 치유를 원하신다면 하나님께서는 의약이나 의술의 도움을 통해서 치유의 역사를 베풀기 원하실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의약의 도움이 없이 오직 기도만으로 하나님이 치유하시기를 원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의약을 사용하건 오직 기도만으로 하건,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뜻과 성령의 인도하심에 달려 있다. 병을 근원적으로 치료하시는 분은 언제나 하나님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