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왕
▲작년(2018년) 한국 영화 흥행 부진의 대표 사례로 지목되는 작품 가운데 하나인 <마약왕>.

복선과 맥거핀(macguffin): 서스펜스 선사에 실패한 한국영화
이야기와 서스펜스: 복선과 맥거핀이 선사하는 이야기의 힘

<천일야화(One Thousand and One Nights)>는 이슬람 제국이 최고 전성기를 누리던 압바스 왕조 시대(8-13세기) 페르시아 지역을 비롯해 중동지역 각지에 떠돌던 민담과 설화들을 모은 이야기책이다.

이 책은 1885년 영국의 탐험가, 인류학자, 작가, 언어학자, 군인이자 외교관이었던 리처드 프래시스 버튼 경(Sir Richard Francis Burton)에 의해 번역되면서 서구 세계에 널리 알려졌고, 국내에도 주로 어린이 동화로 널리 알려졌다.

책에 수록된 ‘신밧드의 모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등은 누구나 제목만 들으면 알 수 있는 유명한 이야기이다.

국내에는 주로 동화 수준의 책으로 인식돼 왔지만, 사실 <천일야화> 원본이나 버턴 경의 번역본은 충격적 수준의 폭력성과 선정성을 드러내고, 이슬람 우월주의와 인종∙남녀 차별적 요소가 가득해 어린이가 보기에는 적절치 못한 작품이다.

작중 이 이야기책이 기술된 동기는 다음과 같이 소개되고 있다. 사산조 페르시아 술탄(이슬람 제국 당시 세습군주)이었던 샤 리아르와 그의 동생 샤 자만은 각자의 아내들이 흑인 노예와 저지른 부정을 목격하고서, 여성의 정숙함과 결혼 자체에 극심한 염증을 느낀다.

이후 형인 샤 리아르는 부정을 저지른 왕비와 후궁들을 모두 사형시킨 후, 매일 한 명의 처녀와 결혼한 뒤 아침에 목을 잘라 죽인다.

이런 행태가 3년간 지속돼 나라가 온통 원망과 비탄에 잠겨 있는 상황에서, 대신의 딸인 세라자드가 자원해 샤 리아르 술탄과 결혼한다.

세라자드는 학술과 지혜가 뛰어난 여자로 수많은 설화와 민담, 역사 이야기를 섭렵하고 있었다. 술탄과 결혼해 죽음이 다가오는 시간쯤, 세라자드는 함께 왕궁에 들어온 자신의 여동생의 부탁으로 흥미로운 옛날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실 세라자드의 여동생은 왕궁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세라자드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부탁하기로 약조해둔 상태였다. 세라자드의 이야기를 함께 듣던 술탄은 날이 밝아 그녀의 이야기가 중간에 끊기자, 궁금증을 참지 못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세라자드를 살려두기로 한다.

<천일야화>를 읽어본 독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이 사연은, 픽션이나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들에게는 모범사례나 다름없는 일화다. 자신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궁금해 죽음을 면할 지경이라니, 얼마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전했단 말인가.

무엇보다 세라자드의 이야기가 샤 리아르에게 1,001일 동안이나 마르지 않는 긴장과 궁금증을 유발했다는 점이 놀랍다.

천일야화
▲<천일야화>의 영문판 번역자 리처드 프랜시스 버튼 경.

<전망 좋은 방(A Room with a View, 1909)>, <인도로 가는 길(A Passage to India, 1927)> 등의 걸작소설을 집필한 영국 작가 에드워드 모건 포스터(Edward Morgan Forster, 1879-1970)는 문학이론서 <소설의 이해(The Aspects of the Novel)>에서 ‘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 바 있다.

“소설의 근본적인 형상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는 데 우리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 그것은 시간의 연속대로 정돈해 놓은 사건의 진술이다. … 소설이 하나의 이야기로서 지닌 강점이 있는데, 그것은 청중들로 하여금 다음에 무엇이 일어날까(what happens next)를 알고 싶어하도록 만드는 점이다.”

이 대답과 함께, 포스터는 세라자드의 사례를 제시한다. 그는 세라자드가 자신의 목숨을 살리고 샤 리아르 술탄의 파괴된 인성을 회복시키는데 사용한 무기가 바로 이야기가 선사하는 서스펜스(suspense)였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아울러 그는 서스펜스만 효과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면, 사실 이어지는 이야기의 정밀함은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부연한다.

서스펜스 유발을 위해 하나둘 던져진 단서들을 복선(foreshadowing)이라 한다. 복선은 기본적으로 그것이 실제 지칭하고 있는 사건이 이후 반드시 일어날 것을 전제로 한다.

어떤 서사가 흥미진진한 복선들을 내던지고, 이 복선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훌륭하게 회수하면 그 소설이나 시나리오는 명작이 된다. 독자에게 흥미와 궁금증을 유발하면서 앞뒤가 시계태엽 돌아가듯 정밀하게 짜여진 서사가 되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아서 코난 도일 경(Sir Arthur Conan Doyle, 1859-1930)의 ‘셜록 홈즈 시리즈’나 어거서 크리스티 여사(Dame Agatha Christie, 1890-1976)의 추리소설 전집을 들 수 있다. 두 사람의 작품은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복선과 결말이 기계처럼 들어맞는 서사를 선보인다.

그런데 오늘날 영화 시나리오들 중 다수는 셜록 홈즈 시리즈의 서사 전개 방식, 즉 철저한 복선 회수의 길을 따르지는 않는다. 특히 영국 출신 거장 영화감독 알프레드 히치콕 경(Sir Alfred Hitchcock, 1899-1980)이 ‘맥거핀(macguffin)’이라는 정체불명의 신조어를 만들어내면서, 이런 경향은 영화계 전반에 확산돼 왔다.

맥거핀이란 소설의 복선처럼 영화 속에서 이야기의 방향을 유도하며 관객에게 궁금증과 서스펜스를 느끼게 해 주는 역할을 맡지만, 영화 결말에 가서는 결국 그것이 지시하는 실제 사건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는 서사적 장치를 말한다. 결과적으로는 ‘회수되지 않은 복선’이라는 개념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히치콕 맥거핀
▲ ‘맥거핀’(macguffin)이라는 용어를 남긴 거장 영화감독, 알프레드 히치콕 경.

◈한국 영화와 서스펜스: 기본에 충실하지 못했던, 그래서 외면받은 2018년 한국영화

서스펜스, 복선, 그리고 맥거핀에 대해 설명한 바를 유념하면서, 한국영화의 현 상황을 살펴볼 차례다.

작년 12월 한국 영화 기대작 세 편, <스윙키즈>, <마약왕>, ‘PMC: 더 벙커’이 연달아 흥행에 실패한 후, 일각에서는 한국영화 위기론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2018년 제작비 100억 이상이 투입된 한국 영화 14편 가운데 손익분기점을 넘은 작품이 <신과 함께: 인과 연>, <공작>, <독전>, <안시성> 네 편 외에 없었다는 사실, 그 중에서도 <공작>과 <안시성>은 손익분기점에 겨우 턱걸이한 수준에 그쳤다는 사실이 이 위기론의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대작 영화의 흥행수치만으로 한국 영화의 작품성을 판단할 수는 없다. 이창동 감독의 <버닝>은 흥행에는 참패했지만 국내외 평단에서는 호평을 받았다.

또 제작비 30억 미만의 저예산 영화들 가운데 <곤지암>, <리틀 포레스트>, <너의 결혼식>, 제작비 50-60억원대의 중예산 영화들 가운데 <완벽한 타인>은 평단과 관객 모두로부터 호의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런데 주시할 점은 저예산, 중예산 흥행작들 가운데서도 순수하게 한국에서 창작된 서사를 전달한 영화는 <곤지암>과 <너의 결혼식> 정도라는 점이다.

이 중 <너의 결혼식>도 손익분기점을 겨우 넘기는 수준의 성과를 얻었을 뿐이다. 높은 수익률을 보인 <리틀 포레스트>는 일본 원작 리메이크, <완벽한 타인>은 이탈리아 원작 리메이크 작품이었다.

곤지암
▲2018년 순수 한국산 창작서사로 흥행에 성공한 유일한 영화, <곤지암>.

이처럼 2018년 한국 영화 흥행이 전반적으로 부진했던 이유 가운데 가장 빈번하게 지적되는 사안이 바로 ‘서사가 가진 힘의 결여’다. 이는 평론가들과 관객들 대다수가 동의하는 바이다.

긴장감 없는 서사 때문에 극장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시간 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영화를 감상했다는 평가가 여기저기 눈에 보인다.

왜 2018년 한국영화는 흥행할 만한 서사를 창작해내는 데 실패했을까? 무엇보다 서스펜스의 부재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올해 흥행 성공작과 실패작을 가르는 기준은 바로 위에 언급한 서사의 긴장감 유지였다.

영화 <마약왕>을 예로 들어보자. 사실 한국에서 올해 <마약왕>이라는 영화가 나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지난 2015년부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방영되고 있는 <나르코스>(Narcos) 시리즈가 <마약왕>의 직접적인 원조(좀 더 멀리 보면 1983년작 <스카페이스>를 지목할 수 있음)라 볼 수 있다. 애초 ‘나르코’(narco)라는 스페인어 단어가 ‘마약왕’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송강호 주연의 <마약왕>은 <나르코스> 시리즈와 같이, 마약의 제작 및 유통 과정과 이 프로세스를 지배하는 범죄왕의 탄생 및 몰락을 조명한다. 그러나 대호평을 받은 <나르코스> 시리즈와 달리, <마약왕>의 서사 속에는 마약 범죄가 선사하는 특유의 긴장감이 반감된 채 묻혀지고 만다.

원래 <나르코스> 시리즈는 마약 범죄에 결부된 극단적 폭력성이 서스펜스를 유지하는 주역으로 등장한다. 마약 조직 ‘빠뜨론(patrón, 보스)’조차 통제할 수 없는, 지옥도가 펼쳐지는 듯한 폭력의 이야기들이 서사에 대한 집중도를 유지시키는 비결이다.

이는 애초 콜롬비아와 멕시코 마약 카르텔 범죄 실태가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은 현실 때문이기도 하다.

반면 한국의 <마약왕>은 애초 그 배경이 되는 1970년대 한국의 마약범죄와 결부된 폭력성의 수준 자체가 다르다는 점을 간과한 채 해외 명작의 기획을 모방했고, 이는 곧 높아진 관객들의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미 많은 이들이 <나르코스>의 서사를 접한 상황에서, <마약왕>은 관객들 다수가 그 결말을 예상하는 서사를 전해야 했고, 이 약점을 만회하고 서스펜스를 유지할 만한 소재상, 연출상 특징이 없어 관객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궁금증을 유발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나르코스
▲한국영화 <마약왕>의 원조격 작품,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나르코스>.

올해 한국 영화계가 상당한 수준의 제작비를 투입하고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스타 연기자들을 대거 기용하고도 연달아 흥행실패작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영화의 소재와 주연을 맡은 연기자들의 팬덤에 과도하게 의존한 나머지, 서사의 정교함, 복선 및 맥거핀 활용과 이에 힘입은 카타르시스 유발에 실패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도 올해 한국 영화 상영작들 대부분을 볼 때, 서사와 연출 측면에서 실망스러움을 금치 못한 적이 많았다. 영화를 평론하는 입장에서도 그렇지만, 성서를 읽고 배운 목회자요 신학자로서는 더 큰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확인한 모든 서사 가운데 가장 서스펜스 넘치는 서사, 그리고 그 서스펜스를 유발하는 복선 하나 하나가 모두 정밀하게 맞아 떨어지는 서사는 성서밖에 없었다.

구약부터 신약까지, 예언부터 성취까지, 불필요한 단서나 맥거핀이란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서사가 성서 안에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이를 알고부터 문화평론, 특히 서사로 이루어진 문학, 시나리오, 극, 영화평론의 기준과 지혜를 갖출 수 있었다.

이처럼 성서를 통해 완벽한 서사의 진수를 확인하게 된 후, 그 수준에 근접한 완성도를 갖춘 서사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고 말았다.

매번 새로운 영화가 개봉될 때마다, 그리고 평론을 위해 작품을 관람할 때마다, 적어도 성서가 전하는 바의 발치만큼이라도 근접한 수준의 서스펜스와 정교함을 담은 서사가 나타나기를 바라지만, 올해 한국영화 가운데서 그런 작품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인간의 죄된 심성과 현실을 폭로하며 마음을 찌르는 긴장감을 선사한 <완벽한 타인>이 인상 깊었지만, 그 역시 한국에서 창작된 서사는 아니었다.

성경
▲가장 완벽한 서사의 모범을 보고 싶다면? 성서를 보라.

특정 정치 이데올로기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에 편승하는 서사 혹은 해외 작품의 소재와 서사를 적절하게 현지화하지 못하고 모방만 하는 수준의 서사가 계속되는 한, 2019년 한국 영화 흥행전망 역시 작년과 마찬가지로 어두울 것이다.

새해에는 부디 평론자 입장에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독창적이고 긴장감 넘치면서도 앞뒤 개연성이 충실하게 들어맞는 정교한 서사로 무장한 한국 영화들이 다수 출현하기를 기대해 본다. <계속>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