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샘교회
▲전 세대를 아우른 합창단의 연습 장면. ⓒ교회 제공
1.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많은 것이 새로워집니다. 달력이 바뀌고 젊은이들은 새로운 다이어리로 무장합니다. 새 마음과 새 출발을 계획합니다.

그런데 그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전도서 4장 7절입니다. “내가 또 다시 해 아래에서 헛된 것을 보았도다.”

2. 헛된 것을 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또’ 가 중요합니다. 한두 번이 아니라, 매번 해 아래에서 헛된 것을 보고 듣고 좇는 삶. 그것이 솔로몬의 삶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좇아갔던 삶은 재물과 명예 여인들이었습니다. 매번 해 아래에서 새로운 마음을 가져도 지나고 보니 헛되고, 또 헛된 것을 좇아갔던 삶을 회고합니다.

3. 새해 벽두 뉴스는 이 메시지로 장식됐습니다. ‘올해는 황금돼지띠의 해입니다’, ‘장소와 시간은 달랐지만, 새해 1호들은 다산과 행운의 상징인 돼지를 꿈꾸며 힘찬 출발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새해 문자를 주고받으며 ‘돼지’를 주고 받습니다.

4. 지난 사랑의 편지에서, ‘거라사 지방’의 ‘귀신들린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것은 돈과 생계와 관련된 돼지들에 눈 멀면, 청년의 생명 하나와 주님의 사역이 떠나게 되는 곳입니다. 그래서 청년 한 명은 새롭게 됐으나, 나머지 그 지역은 그 상태로 눈 멀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그래서 세상(돈/ 직업 등)과 말씀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살아야 한다면서, 말씀을 왜곡시키는 자가 되기 쉽습니다. 세상 나라는 돈의 논리가 올바름이고 정의지만, 하나님 나라는 그것에 매인 삶으로부터 자유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그의 나라를 구하는 것이 우선시되는 것, 그것이 균형이기 때문입니다.

5. 그리고 새해가 됐습니다. 그런데 새해 벽두부터 ‘황금돼지’ 이야기가 들리고 서로에게 전하고 있는 세상, 어쩌면 우리가 꿈 꾸는 것은 정말 ‘황금돼지’가 아닌지요. 어쩌면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는 드리지만, “제발 나랑 상관하지 말아요”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닌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솔로몬의 고백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내가 또 다시 해 아래에서 헛된 것을 보았도다”.

6.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가기 전, 광야의 여정을 살아가야 했습니다. 철저한 광야의 삶 없이는 이 시대의 시험 앞에 헛된 것을 좇아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분은 완전한 하나님이시지만, 완전한 인간으로 오셔서 인간이 겪어야 할 모든 것을 느끼셔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사역 중 처음 하신 것이 ‘광야의 시험’이었습니다.

7. 성경에는 그냥 걸어간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내모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막 1:12)”. 저는 이 표현이 기가 막힌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광야에 가기 싫어합니다. 누구나 돈이 좋지요. 누구나 명예가 좋지요. 그래서 성령이 내모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광야로 가셔야만 했던 이유를 마태복음 기자는 4장 1절 말씀에서 말씀하십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라고 기록함으로써, 우리 인생에 마귀의 시험, 광야의 시험은 선택과목이 아니라 필수과목임을 알려주십니다.

8. 마찬가지로 사탄의 시험은 올해도 우리 앞에 놓여져 있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청년들에게 이 시험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나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모든 사탄의 시험 전략을 우리에게 상세히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답안지가 이미 공개된 시험입니다.

9. 첫번째 시험 제목은, ‘돌을 떡으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 4:3)”.

두번째 시험 제목은 5절에 이어집니다. 거룩한 성전 꼭대기에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리라’ 했습니다.

마지막 시험인 8절에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이 빠집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아들임을 인정하되, 대놓고 공격합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달콤한 시험이기 때문입니다. 천하만국과 영광입니다. 모든 것을 준답니다.

5.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기셨습니다. 우리는 그 해답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기필코 알아가셔야 합니다. 정답을 보여주고 치르는 시험에서, 정답을 안 보고 시험 치른다는 것은 교만이고 바보입니다.

해답은, 간단합니다! 대상보다, 그 대상을 부르신 분을 생각했습니다. 상대방의 말보다, 나를 부르신 분의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돌을 돌되게 하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떡은 떡이어야 합니다. 돌이 떡이 될 필요가 없습니다.

Mission 이전에 Caller를 생각하는 것,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Vision이 야망이 되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는 Mission이 됩니다.

6. 돌이 떡 되게 하는 사역이 아니라! 돌이 돌 되게 하신 분이 누구인지를 알았던 것입니다. 돌로 만드신 분이 하나님임을, 예수님은 아셨습니다.

성전 꼭대기로부터 뛰어내려서 능력을 모두에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인간으로 이 땅에 오게 하신 분의 뜻을 발견하는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것을 준다고 할 때, 아무리 그리스도인이어도 모든 것 앞에 무기력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광야로 불러주신 하나님이 더 중요합니다. 그분이 모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소명입니다. 소명이 바로 선 자만 올바른 사명자가 될 수 있습니다.

7. 많은 청년들이 자신의 꿈과 비전을 놓고 고민합니다. 그리스도인 청년들은 아마 ‘비전’을 놓고 고민할 것입니다. 새해가 되니 더욱 말이지요.

그러나 여러분, 그럴수록 중요한 것은 ‘소명’입니다. 소명 없는 사명자는 자기 야욕을 채우기 위해 달려갈 뿐입니다. 그곳에는 늘 헛된 것만 가득합니다. 그래서 소명과 사명은 실은 다르지 않습니다.

△모세가 출애굽을 이룬 것은, 그가 무언가를 갖추어서가 아닙니다. 말을 잘 못하는 존재이나 그 존재로 부르신 하나님을 수용할 때, 하나님이 그의 혀와 함게 하셨고 도울 지체들을 붙여주셨습니다.

내게 있는 것은 지팡이뿐이지만 그것을 주신 분이 하나님임을 알 때, 그는 지팡이를 높이 들어 홍해를 가를 수 있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 앞에 가기 직전 사울이 그에게 온갖 화려한 무기를 권했으나, 그는 당당히 고백합니다. “물맷돌이 있습니다.”

‘나를 양치기로 불러주셨던 하나님, 물맷돌을 주신 하나님’. 다윗은 철저한 소명자. 어디서나 세상의 시선으로 보기에 초라해 보이나, 하나님이 그렇게 불러주셨기 때문에 세상보다 큰 능력이 됨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소명자이기 때문에 사명자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임을 아셨습니다. 철저한 인간으로 이 땅에서 사셨던 이유입니다.

배고플 때 함께 배고파하고, 슬플 때 함께 울고, 기쁠 때 함께 웃고, 십자가를 피하고 싶어하는 절규, 그의 인생은 한없는 광야였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님은 그런 나를 부른 하나님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기도는 늘 ‘아버지의 뜻대로’였습니다.

그런 예수님에게 성령님과 하나님은 언제나 함께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사명은 완성됐습니다.

8.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2019년 세가지 사랑의 조언을 전합니다.

첫째, 먼저 내 안의 ‘광야’를 발견하세요.

예수님이 광야로 내몰리셔야 했던 것처럼 내가 정말 돌아보기 싫은 아픔, 배고픔, 헐벗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 소명이 있습니다.

마주하기 싫은 상처를 마주하세요. 그 상처를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라면, 그 안에 비전이 있을 것입니다.

2019년, ‘황금돼지’가 복이라는 세상의 속삭임에 속지 않길 바랍니다. 돌을 떡 되게 하라는 속삭임에 속지 말고, ‘돌은 돌이야! 나는 나야!’라고 말할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두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시험을 넉넉히 이길줄로 믿습니다. ‘나 혼자 할거야’라는 교만이 아니라, ‘나 혼자도 괜찮아’라는 아집이 아니라,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처럼 언제나 믿음의 사람들이 모여 서로 나누기에 힘쓰기 바랍니다.

저는 송구영신예배에서 우리 두 분의 전도사님과 3인 설교를 했습니다. 같은 본문을 놓고 같은 분량으로, 그러나 서로 다른 은혜를 나눴습니다. 말씀의 순서도 제비뽑기로 정했습니다.

이렇게 설교하는 교회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올 한 해 여러분에게 다가올 시험을 직시하고 있기에, 먼저 우리 전도사님들과 하나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9. 마지막으로 모임의 중심에 ‘주님의 이름’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람의 모임이 되지 않기 위함입니다.

구별하시기 바랍니다. 나를 부르는 자가 세상인지 하나님인지. 나를 부르는 자는 분명 달콤하고 아름답고 화려한 것일 수도 있지만, 광야로 내모는 자일 수도 있습니다.

유한승
▲유한승 목사.
10. 2019년 여러분은 시험에 직면할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워 마세요. 답안지가 공개된 시험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우리가 먼저 하나 된다면,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예수님과 성령님이 동참하셔서 아름다운 에덴이 창조되었듯이, 십자가의 구원사역에 성령과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부활시키셨듯이,

성령님의 성화 사역에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함께하심이 늘 영원하듯이, 여러분은 나를 부르신 곳이 아무리 척박한 광야라 해도 결코 외롭지 않을 것이요, 언제 어디서나 함께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나를 나 되게 하신 하나님의 아름다운 비전이 꽃피는 한해가 될 것입니다.

유한승 목사(생명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