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암교회
▲백암교회 ⓒ새에덴교회
지난 화요일 저는 또 화순 백암교회를 향해 갔습니다. 어느 메이저 일간지 기자께서 특별히 그곳에서 인터뷰를 하자고 했기 때문입니다. 기자는 아마도 저의 처녀 목회지 시절의 모습을 보고 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의 초심과 오늘의 소목사의 모습을 오버랩 시키는 인터뷰를 하려고 말입니다. 백암교회에 도착하니까 손병회 안수집사님을 비롯해서 성도 열대여섯 명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기자가 자연스럽게 대화의 장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러자 플러스 기질이 많으신 손병회 안수집사님께서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로 옛날이야기를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소강석 목사님이 여기 왔을 때 말은 스물여덟이라고 했는디, 스물 두 세 살 밖에 안 먹게 보이더라고. 나중에 알았는디 스물 한 살이었어. 그때 스물한 살 전도사님이 얼마나 당차버렸는지, 교회 나가면 벌금 만원을 내도록 하는 부락 자치법을 만들었는데도 하나도 기죽지 않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전도를 하고 다녀브렀제. 어쩔 때는 동네 사람들이 술을 먹고 와서 전도사님 멱살을 잡고 얼굴에 침을 뱉어도 같이 천국가자고 웃어 버립디다. 사실 그 야성과 패기를 누가 멈추게 했것소." 그러자 당시 그 지역의 최고 유지였던 손윤기 선생님의 사모님이 오셔서 거드는 것입니다. "그때 동네 사람들이 소 전사님을 얼마나 교만하게 본지 아신다요? 그렇게 핍박을 하고 쫓아내려고 해도 약한 모습을 한 번을 안 보이는 거요. 오히려 더 패기가 있고 꿀리지 않는 모습으로 만나는 사람마다 교회와서 예수 믿으라고 전도를 하니 사람들이 얼마나 미워했것소. 그때는 우리가 모르고 오해를 했지만 지금 생각하니까 그 패기와 담대함이 대단했어라. 그런디 그렇게 마을사람들이 핍박을 하고 괴롭혔어도 전도사님은 이 세상에 최고로 행복한 사람처럼 보였지라우." 사실은 제가 마을 사람들이 술 먹고 150명 200명이 와서 멱살을 잡고 행패를 부려도 껄껄 웃으며 최고로 행복한 모습을 보였거든요. 저는 그런 황무지에서도 진정한 행복을 누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가 제일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기자가 저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오늘의 소강석 목사에게 있어서 백암리는 어떤 곳이었습니까" "예,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 봄부터 소쩍새가 우는 것처럼 오늘의 소 목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난 날 백암리라는 용광로가 필요했습니다. 오늘날 제가 한국교회 생태계와 건강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 여러 면에서 활동하지 않습니까? 그것도 절대로 비겁한 모습이 아니라 담대하게 전면에서 일하고 있지요. 그런데 제가 온실 속에서만 자랐다면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때 저는 고통의 극지와 고난의 광야를 지나고 절망의 강을 건넜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저 붉은 고원의 언덕에서 유사 희망이 아닌 오직 하나님을 향한 절대 희망 밖에 없는 극지에서 훈련을 받고 오늘의 소목사가 된 것입니다."

기자와의 대화를 마치고 저의 청춘 시절을 뒤돌아보니 더 아련한 추억이 밀려왔습니다. 정말 한 마리 야생마처럼 거친 황야를 질주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36~37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더욱 더 그곳에 내려갈 때마다 내 안에 감추어져 있는 과거가 들여다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빨리 지나가 버린 삶에 대한 아쉬움도 많이 느껴집니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다는 걸 생각하면 제 삶이 더 소중해지고 애틋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때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생각을 할 때 아폴로 신전에서 일하던 여사제 시빌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여사제가 아폴로 신에게 오래오래 살고 싶다고 간청 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젊음과 함께 오래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늙어서 오그라든 모습으로 새처럼 조롱 속에 갇혀 매달린 채 아이들의 구경거리 신세가 된 것입니다. 그 이후로 그녀의 유일한 소원은 죽는 것뿐이었습니다. 삶의 양적인면만 생각했지 질을 간과한 그녀의 삶은 시인 엘리엇의 말대로 황무지 같은 삶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서 기자는 천년의 갑절을 산다 할지라도 낙을 누리지 못하는 인생은 헛되고 무의미하다고 하였습니다.(전6:6) 삶은 양이나 길이보다는 질이 중요한데 말이죠.

저는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까지도 행복했고 앞으로도 행복할 것입니다. 물론 저도 순간순간 괴로움이 있고 고통이 있고 아픔이 있을 수 있겠죠. 그러나 그것은 제 자신으로 인한 아픔이 아니라 성도들과 교회로 인한 아픔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백암리'라는 황무지에서도 행복하게 살았던 것처럼 앞으로 어떤 고난이 온다 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낙을 누리며 살 것입니다. 이런 낙과 행복을 주 안에서 사랑하는 우리 성도들과 함께 깊이 공유하며 누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