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박진호 목사의 신앙문답]을 매주 1회 연재합니다. 미국 남침례교단 목사인 그는 멤피스커비우즈한인교회를 담임하고 있습니다. 이 코너의 글은 박 목사가 운영하는 웹페이지(www.whyjesusonly.com)에 그가 직접 쓴 것으로, 본지는 박 목사의 허락을 받아 이를 게재합니다. 아울러 필자의 요청에 따라, 글이 그의 웹페이지에 게시된 날짜를 맨 아래 밝혀둡니다.

성경 bible
▲ⓒpixabay
[질문]

유다서가 왜 정경으로 인정받지 못한 외경을 인용(에녹서 1장 - 유1:14-16 / 모세승천기 -유1:9)했을까요? 인터넷에 보니 에녹서가 초대교회 교부들에게도 널리 읽혔다고 하는데 사실일까요? 교부들은 에녹서의 내용을 취사선택해서 받아드린 것일까요? 아니면 단순히 옛날부터 전해오던 에녹 관련 이야기를 두 책에 각각 기록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답변]

정경과 외경

질문자님께선 성경을 상당히 깊이 연구하시는 것 같습니다. 외경에 대해서 생소한 방문자님들을 위해서 간단히 정경, 위경, 외경을 먼저 설명 드린 후에 답변하도록 하겠습니다.

정경(正經, Cannon)은 현재 기독교공동체(정확히는 개신교 공동체)와 신자들이 소지하여 따르는 하나님의 말씀인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의 책을 말합니다.

위경(僞經, Pseudepigrapha)은 BC 200-AD 200년 사이에 읽혀졌던 잡다한 유대 문헌들로 그 이름이 말하듯이 주로 허구적 인물과 사실을 익명의 저자들이 저작한 책들입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전혀 아니고 신앙적으로도 참고할만한 가치가 없으므로 신자들은 그런 책들이 있었다는 사실만 알면 됩니다.

외경(外經, Apocrypha)은 일차적으로 BC 2세기에서 AD 1세기 사이에 기록된 유대문헌으로 구약정경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헬라어 70인역과 라틴어 벌겟역에 포함된 15권의 책들 - 구약외경을 말합니다.(참고로 가톨릭 성경에는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와 별도로 AD 2세기 이후에 저작되었으나 마찬가지로 정경에 포함되지 않은 신약외경들도 있습니다.

구약 외경은 그 명칭이 '숨겨진' '비밀의' 책이라는 뜻이듯이 주로 당시 사람들의 신앙과 소망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묵시 문학이 대부분입니다. 일부는 또 구약과 신약의 중간시대에 관한 기록들도 있어서 유대 역사 문화 관습을 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가 됩니다.

신약의 외경은 당시의 비정통 혹은 이단 교파가 자기들 교리에 맞게 각색하여 정경 대신에 사용한 것들입니다. 이 또한 초대 교회 당시에 관해 참고할 만한 정보를 많이 제공하긴 하지만 여전히 그 진리성과 역사성에 허구가 많으므로 하나님 말씀으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반면에 정경은 신구약 공히 각 신앙공동체(구약은 히브리 공동체, 신약은 초대교회)에서 하나님의 계시와 계명으로 받아들여서 그대로 따랐던 책들입니다. 그 책들을 선정하기 위해 상당기간 공동체 내에서 검증 비교 토의를 거쳤으며 최종적으로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확정했습니다.(구약은 AD 90년 얌니야 종교회의, 신약은 AD 397년 카르타고 종교회의)

정경을 선정할 때에 신구약은 각기 그 특성상 고유의 구체적 기준들이 있었습니다. 공통적으로는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의 진리임을 누구나 확신할 수 있어서 공동체에서 이미 받아들여진 책들이었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예수그리스도 대속구원이라는 일관된 주제를 모순 상충 없이 계시했고 하나님이 인간과 만물을 통치하는 진리와도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외경과 초대교부

이런 정경화 작업은 하나님의 성령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주관하고 역사했기에 가능했습니다. 성경 저작에 성령이 영감(inspired) 했을 뿐 아니라 그 원작이 필사 보존 전달 번역 되는 모든 과정에도 하나님이 역사하셨습니다. 정경화에 하나님이 역사했다는 사실이 성경의 무오성 또한 보증하는 것입니다.

초대교부들이 외경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궁금해 하셨습니다. 먼저 아셔야 할 것은 교부들은 정경화 과정 중에도 지금 정경으로 받아들여진 책들 중 일부에 문제를 제기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외경은 당연히 더더욱 문제 삼았을 것이라는 것이 합리적 결론입니다.

실제로 3세기의 터툴리안은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요한 2서와 3서를 정경에서 제외했습니다. 또 오리겐은 27권을 다 성경으로 인정은 했지만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요한2서와 3서, 유다서는 논쟁의 대상이 된다고 했습니다.

성경해석법이 온전히 발달하기 전이라 행위구원적인 의미가 있어 보이거나, 유다서 베드로후서처럼 외경에서 인용한 부분이 있는 등의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신약시대의 외경과 위경의 구분이 약간은 모호하지만 에녹서와 모세승천기는 엄밀히 따지면 위경으로 분류됩니다. 외경도 아닌 위경을 초대교부들이 인정했을 리는 결코 없습니다.

본주제와 같이 성경해석이나 신앙상의 애매한 문제가 대두되면 일반 상식과 이성을 동원해 합리적 판단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고대의 믿음의 선진들을 너무 신령하고 경건한 사람이라고 여기지 말고 우리와 성정이 동일한 인간으로 간주해야 합니다. 또 인간 사회의 기본 관습 체계 등도 시대와 상관없이 거의 대동소이하다고 전제해야 합니다.

현대의 기독교 관련 서적들에도 성경 진리와 일치하는 책, 일부만 진리인 책, 완전히 이단의 책 등이 있는데 독자들은 자신의 신앙 노선과 각각의 특성에 맞추어 읽고 이해합니다. 심지어 이단의 책이라도 부분적인 진술이나 문장에 참고할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고대에는 신앙 서적들이 희소했기에 교부들이 관련된 모든 책들을 읽어서 숙지했고 다방면으로 참조했다고 봐야합니다.

유다서가 에녹서를 인용한 이유

예수님은 불의한 청지기 비유(눅16:1-8)에서 도덕적으로 악한 자를 예로 들었습니다. 성경 독자는 언뜻 주님이 그를 선하다고 칭찬한 것처럼 보여서 왜 그런 비유를 들었는지 곤혹스러워집니다. 비유에 대한 성경해석법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입니다.

비유에 등장하는 내용은 당시 사람들에게 너무나 익숙한 사물이나 사안입니다. 그래서 청자(聽者)가 그 비유에 비추어보면 화자(話者)가 강조하고자 하는 영적진리 한두 개를 쉽게 이해하게 됩니다. 설교의 예화처럼 비유도 진리를 보충해서 더 선명하게 묘사하는 역할만 하므로 비유가 말하는 내용 자체가 영적진리 내지는 주제가 아닙니다.

실제로 예수님 당시에는 현지에 거주하지 않는 부재지주(不在地主)들이 많아서 청지기가 자기 재량으로 주인 재산을 마음껏 관리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이 비유로 든 청지기들이 실제로 많았기에 그 비유를 듣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스승이 지금 무엇을 강조하려는지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비유의 청지기가 자신의 어려워질 미래를 미리 대비했다는 측면에서만 지혜롭다는 것이지 그런 행사 자체가 선하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었습니다. 악한 청지기도 미래를 미리 대비하거늘 신자들이 종말의 구원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 주님이 강조하려는 영적진리였습니다. 또 돈에 대한 태도가 구원의 기준이 된다는 의미도 비유의 후반부에서 주님이 보충해서 설명해주었습니다.(눅16:9-13)

에녹서를 인용한 유다서 말씀도 같은 맥락으로 접근하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유1:9, 모세승천기 인용)

유다도 당시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모세승천기 내용을 인용했으나 강조하려는 영적진리를 쉽게 이해시키기 위한 목적이었을 뿐입니다. 모세승천기는 모세가 살인자라는 이유로(출2:1) 그 시신에 대한 처리권을 사탄이 주장했으나, 영적 권능으로 얼마든지 사탄을 야단칠 수 있는 천사장 미가엘도 사탄을 훼방 고소하지 않고 하나님께 위임했다고 말합니다.

본 구절 앞뒤 문맥에서 유다는 당시의 거짓 교사들을 꾸중하고 있습니다. 영적 권능이 충만한 천사장 미가엘조차 악의 원흉인 사탄에게 훼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않았는데 거짓 교사들은 아무에게나 그렇게 하고 있다고 설명한 것입니다. 그들이 그럼으로써 율법의 권위를 업신여기고 하나님의 영광을 훼방한다고 따끔하게 야단친 것입니다. 함부로 다른 이를 판결하지 말라는 영적진리를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박진호
▲박진호 목사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하며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느니라."(유1:14-16, 에녹서 1장 인용)

에녹서의 하나님이 마지막 때에 강림하신다고 설명한 구절(14-15절)을 인용하여 저자 유다는 예수님의 재림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유다는 지금 거짓교사들의 잘못을 꾸짖고 그들에 임할 심판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경건하지 않는 말과 행동으로 인해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한 것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께 원망했다는 에녹의 기록(16절)으로 거짓교사들이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기 정욕대로 말하고 행하고 있다고 야단친 것입니다. 유다서 1:9에선 그 내용이 성경적으로 틀렸지만(예수님의 불의한 청지기 비유처럼) 이곳 1:14-16에선 인용한 내용 자체에 하자는 없습니다. 오늘날의 일반서적에서도 신자들이 부분적으로 참고할 진리가 있듯이 말입니다.

한마디로 결론을 내리자면 초대교부들이 외경을 인정한 것은 아니며, 그 내용을 익히 알고 참조는 했으며, 인용한 구절도 그 내용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 단지 설명하려는 주제를 더 쉽게 이해시키고 강조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2018/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