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석
▲김홍석 박사
1. 들어가기

마태복음 1장의 족보에는 생략된 부분이 있다. 마1:8에는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라고 기록되어있는데, 그 사이에 "아하시야-요아스-아마샤"를 생략했다(대상3:11-14 등). 또한 마1:11-12에서는 요시야와 여고냐 사이에 여호야김을 생략했다(왕하23:43; 24:6 등). 그래서 어떤 이는 마태복음 1장의 족보가 생략되어 있기 때문에 창세기 5장과 11장의 족보 가운데도 생략된 곳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창세기 5장과 11장의 족보기록 형식은 "누가 누구를 몇 세에 낳고"라는 통일된 형식을 가지고 시간을 전해주려는 의도가 있으며, 그 형식이 전해주는 바에 따르면 시간적으로 생략된 곳은 없다. 반면, 마태복음 족보는 아브라함부터 예수님에 이르기까지 오히려 의도적 생략을 통해 "열네 대, 열네 대, 열네 대"로 소개한다. 이는 시간을 알려주는 창세기 5장과 11장의 족보와는 기록형식 자체가 다르다.  

또한 마태복음 1장은 이러한 생략뿐만 아니라 '다윗'은 두 번 중복하여 기록하고 둘로 계수한다. 마태복음 1장은 왜 이런 형태로 족보를 기록하고 있을까?

2. 마태복음 1장 족보의 시작

마1:1은 신약성경을 여는 말씀이다. 신약성경은 예수님을 구약성경에 예언된 메시아(히.마쉬아흐, 헬.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하면서 시작한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마1:1)로 시작하는 마1:2-16까지의 족보기록의 목적은 메시아예언의 성취를 증거하고 설명하는 것에 있다. 메시아에 대한 구약성경의 예언의 말씀은 아브라함에게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12:3),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창22:18), 이삭에게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창26:4), 야곱에게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창28:14), 유다에게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창49:10), 이사야를 통하여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사11:1-4), 나단을 통하여 다윗에게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삼하7:16)고 알려주셨다.

신약을 여는 선포로서 마1:1은 이 가운데  특히 아브라함과 다윗을 메시아예언의 중심에 두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오실 것으로 작정되신 것은 이미 "창세 전에"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었지만(엡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예언으로 시작된 것은 선악과사건 이후 창3:15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예언으로 시작한다. 그 후 노아홍수사건을 거쳤으며, 바벨탑사건을 거쳐 언어는 혼란되었으며, 여러 언어들, 여러 민족들과 여러 나라들로 나뉘고, 여러 가지 종교들이 생겨나 혼잡해진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부르심을 통해 창3:15의 메시아예언의 성취가 구체적으로 시작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아브라함은 "예수님께서는 구약에 예언된 그리스도이심"을 혈통적으로 증명하는 데 중요하다.

'다윗'의 경우, 에스겔서는 다윗을 메시아의 예표로 기록했으며(겔34:23-24; 37:24-25), 마태복음 기록 당시에 메시아족보 예언 성취의 중심에 있었다. 왜냐하면, 그 이전까지의 족보예언은 이미 지났고, 이제 다윗의 후손 가운데 누가 메시아로 오신 분이냐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1:1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님의 메시아족보 예언의 성취를 선포한다.

3. 생략을 통한 "열네 대"씩 '3'개의 그룹핑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마1:17)에서 생략되고 중복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그룹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는 1아브라함 - 2이삭- 3야곱 - 4유다 - 5베레스 - 6헤스론 - 7람 - 8아미나답 - 9나손 - 10살몬 - 11보아스 - 12오벳 - 13이새 - 14다윗이다. 제2그룹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는 1다윗-2솔로몬-3르호보암-4아비야-5아사-6여호사밧-7요람-8웃시야-9요담-10아하스-11히스기야-12므낫세-13아몬-14요시야인데, 여기서 다윗은 중복으로 계수하였고, 요람과 웃시야 사이에 아하시야, 요아스, 아마샤는 생략하였다. 제3그룹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는 1여고냐 - 2스알디엘 - 3스룹바벨 - 4아비훗 - 5엘리아김 - 6아소르 - 7사독 - 8아킴 - 9엘리웃 - 10엘르아살 - 11맛단 - 12야곱 - 13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 14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님)인데, 여기에는 요시야와 여고냐 사이에 여호야김을 생략하였다.

왜 억지스럽게 보이도록 생략하고 중복하면서 "열네 대"씩 '3'개의 그룹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우선 "열네 대"에서 '14'라는 수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14일은 유월절 양을 잡는 날이며(레23:5), 유월절 어린 양은 그리스도(고전5:7) 예수님을 의미한다. 14는 7의 배수이며, 구약성경에는 7의 배수를 사용하여 전체를 나타내는 족보기록방식이 있다. 창 10:2-5의 야벳의 자손들의 목록은 14명(7명의 아들, 7명의 손자)으로 선택적으로 소개되었다. 창10:1-11:9에서 노아의 아들들로부터 파생된 열방의 숫자는 70명이 소개되었다. 애굽으로 70명이 내려갔다고 말한다(창46:27; 출1:5). 여기에는 모두 생략된 부분이 있으며, 7의 배수로 전체를 대신했다. 따라서 마태복음 1장의 족보기록은 구약의 전통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다윗'이라는 이름의 히브리어 알파벳 수 값도 달렛(4)+바브(6)+달렛(4)=14이다.       

마태복음 1장
'3'개의 그룹에서 '3'에서도 의미를 찾는다면, '3'은 성부성자성령 하나님의 수이다.  

4. "다윗"의 중복 기록

아하시야, 요아스, 아마샤, 그리고 여호야김은 생략하면서도 "다윗"은 왜 두 번 중복하고 있을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당시의 메시아족보 예언 성취의 중심에는 "다윗"이 있었다.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는 분이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귀신 들려 눈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쳐주셨을 때 놀라면서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라고 말한다(마12:22-23). 두 소경과 가나안 여자도 "다윗의 자손이여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친다(마9:37; 15:22).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친다(막10:47, 눅18:38), 예수님께서 나귀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성으로 입성하실 때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들이 소리 높여 무엇이라고 외치는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환호한다[호산나는 "야솨"(구원하소서)와 "나"(제발)의 히브리어 합성어에서 왔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마21:7-9).

이와 같이, 당시에 메시아를 식별하는데 '다윗'은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마태복음 1장의 족보를 14대, 14대, 14대로 기록하기 위하여 생략을 가하는 중에서도 오히려 '다윗'은 두 번 중복하여 포함시켰던 것 같다. 또한 공교롭게도 '다윗'이라는 이름의 히브리어 알파벳 수 값 '14'는 7의 중복 수이기도 하다.
  또한 원어성경(헬라어) 마1:1은 "다윗의 자손이요,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책."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순서적으로 본다면 다윗을 더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킹제임스(KJV) 번역성경 마1:1은 다음과 같다. "The book of the generation of Jesus Christ, the son of David, the son of Abraham. NIV 번역성경 마1:1은 다음과 같다. "A record of the genealogy of Jesus Christ the son of David, the son of Abraham:"

5. 마태복음 1장 족보와 누가복음 3장의 족보

눅3:23은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앞에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헬.호스 헤노미제토, as was supposed)"라고 단서를 붙인다. 사실은 마리아의 아들이고 마리아의 족보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1장에서도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로 시작하여 요셉의 족보를 기록하지만, 마지막에 예수님을 낳은 것은 요셉이 아니라고 말을 맺는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마1:2-16). 마리아는 다윗의 아들 나단을 따라 태어났으며(눅3:23-31), 요셉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따라서 왔다(마1:6-16). 그러므로 마리아나 요셉이나 모두 다윗의 자손이다.

그렇다면 눅3:23은 왜 "마리아의 위는"이라고 하지 않고 "요셉의 위는"이라고 했을까? 원어성경(헬라어)에는 그저 "그 위는"이라고 기록되어있다. 그러므로 필자의 사역으로 직역하자면 "사람들의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지만 (사실은 마리아의 아들이며,) 그 위는"으로 번역할 수 있겠으며, 정확한 이해를 돕기 위해 이탤릭체로 괄호 안의 내용을 추가하였다.

6. 결론

마태복음 1장의 족보는 유대인 족보기록의 전통을 따라 통일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족보기록의 목적에 따라 생략과 중복을 사용하여 구조적으로 정교하게 기록되었다.

김홍석박사(한국창조과학회 성경위원장, 구약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