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신대 콜로퀴움
▲왼쪽부터 최경환 연구원, 정재영 교수, 박희주 교수. ⓒ이대웅 기자
12일 열린 과신대 콜로퀴움에서 정재영 교수(실천신대)가 ‘창조와 진화에 대한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인식’이라는 설문조사 결과 발표 후, 설문 결과를 정리하고 함의를 살폈다.

정 교수는 지난 2018년 상반기 전국 19세 이상 개신교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조사 결과이며, 구체적인 결과는 지난 8월 출간된 <지질학과 기독교 신앙(IVP)>에 담겨 있다.

정재영 교수는 설문을 정리하면서 “‘창조냐 진화냐’는 책 제목도 있을 만큼 오래된 논쟁이지만, 이 표현은 진화론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며 “진화론 입장이라 해서 창조론을 반드시 부정하는 것은 아니고, 진화론 자체가 무신론을 입증하는 것도 아니기에, 이 문제는 오히려 ‘유신론이냐 무신론이냐’로 바꾸는 것이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과학적 설명은 그 자체로 중립적이기에, 우리가 유신론적/무신론적 입장 중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서로 다르게 활용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해석’”이라며 “그 자체로 중립적인 진화론을 비롯한 과학적 사실을 하나님의 섭리로 해석할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의 부재로 설명할 것이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해석’에 대해 “성경 모든 말씀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문자에 지나치게 얽매이기보다 신학적 메시지를 중요하게 볼 것인가 하는 해석이 중요하다”며 “성경의 모든 내용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요한계시록 내용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적절치 않고,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많은 이단 교리가 나올 정도로 성경 해석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고 했다.

또 “마찬가지로 성경에 나오는 성불평등적 표현들이나 기존 질서를 옹호하는 듯 보이는 내용들, 특히 로마서 13장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성경의 메시지는 전혀 다르게 해석되고 우리에게 주는 교훈도 전혀 다르다”고 했다.

정재영 교수는 “창조 기록을 어떻게 읽고 해석하느냐도 매우 복잡한 문제로, 창세기 1장과 2장의 창조 순서가 서로 다르다든지, 태양을 만들기 전에 빛이 존재한다든지 등에 대해 신학적 입장에 따라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며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입장부터 당시 근동 지방에 있던 다양한 창조 설화를 단순히 편집한 것에 불과하다는 양 극단 사이에 다양한 해석의 스펙트럼이 존재한다”고 했다.

과신대 콜로퀴움 정재영
▲정재영 교수가 설문 결과를 소개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그러면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성경무오설’을 받아들이기에 성경에 뭔가 과학적으로 틀린 내용이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지만, 성경은 과학 책이 아니기에 성경 내용을 일일이 과학적으로 입증하려 하기보다 ‘구속사적 메시지’를 중시한다 해서 성경이 오류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며 “이번 조사 결과에서는 여성과 중직자들이 성경을 좀 더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신앙이 좋다’를 ‘성경 말씀을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로 생각하는 경향을 반영한다”고 해석했다.

정 교수는 “우리는 여전히 성경 내용이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이치에 맞고 납득이 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것”이라며 “그러나 이번 조사 결과에서 많은 성도들이 성경 내용에 대해 의심이 들거나 과학적 사실과 맞지 않는다고 느낄 때,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탐구하기보다는 쉽게 포기하거나 한쪽 편을 드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는 쉽게 결론에 이르기 어려운 문제에 대해 회피하거나 빨리 결론을 내림으로써 마음 속의 불편함을 제거하고 싶은 심리 때문일 수 있다”며 “그러나 빨리 결론을 내리는 것은 잘못된 결론으로 인도될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탐구하는 태도가 요구된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어떤 현상을 객관성 있게 설명한다 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약화되거나 신앙이 약해지는 것은 결코 아님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는 우리가 병에 걸렸을 때 기도에만 의지하지 않고 병원에 가거나 약을 먹는다 해서, 신앙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과 같다”며 “그러나 자기 분야에서 전문가나 권위자로 인정받는 사람들조차 신앙에 대해서는 ‘무조건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를 자주 보고, 그런 사람이 이른바 ‘신앙 좋은 사람’으로 여겨진다”고 했다.

정 교수는 “물론 신앙은 의심이 아니라 믿음에서 출발하는 것이지만, ‘덮어놓고’ 믿기보다는 이성으로 따지며 ‘깊이 상고하는 태도’로 신앙생활을 할 필요가 있다”며 “그것이 결코 신앙에 반(反)하는 것이 아님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신앙관에 대해 존중해 주는 태도”라며 “현재 한국 개신교인들이 사회와 소통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깊이 사고하지 않고 너무 쉽게 결론을 내리고 이것을 정답이라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기 때문이다. 동성애와 이슬람 문제에 대해 너무 쉽게 판단하고, 창조론과 진화론 역시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정재영 교수는 “진화론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진화론은 무조건 틀렸다’는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신앙이 없다’고 단죄한다”며 “우리는 다양한 생각과 입장을 존중해야 한다. 공동체는 획일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 속에서 합의를 추구해 가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다양한 생각을 가진 개인들을 존중하고 포용하며 서로간에 소통할 수 있는 진정한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과신대 최경환 실장 사회로 정 교수와 박희주 교수(명지대)의 대담이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