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호치민
▲베트남의 한 택시 모습. ⓒ궁인 목사 제공
베트남 호치민에서 사역중인 궁인 목사의 ‘호치민 단상’을 전해드립니다. 베트남에서는 오는 11월 8일부터 2018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 축구경기로 열기가 고조되고 있습니다. 아시안게임 4위로 돌풍을 일으킨 박항서 감독의 베트남은 이 대회에서 10년만의 우승을 노리고 있습니다. 대회 때 현지 소식도 전해주신다고 합니다. -편집자 주

최근 주변에 있었던 일을 방송국에 제보해야 할지 말지 몇 일간 고민을 했다. 종종 이런 일이 공중파 뉴스에 등장했기에, 더욱 고민이 깊었다.

요즘 새로운 인생을 꿈꾸며 베트남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도전이란 늘 새로운 것들을 만나게 하지 않던가!

이 새로움은 기대했던 즐거움일 수도 있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난관일 수도 있다. 이곳에서 사역하다 보면 이 도전이 얼마나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고 때로는 두려움에 휩싸이게 만드는지를 종종 발견하게 한다.

베트남에 온지 2주밖에 안 된 주부가 세탁기에 끼어버린 양말 때문에 도움의 손길이 없어서, 알지도 못하는 한인교회 목회자에게 한밤중에 연락하기도 하고, 아이가 아프거나 다쳐서 발을 동동 구르는 부모들이 새벽에 사모에게 연락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방송국에 제보할 만한 일이 일어났다.

새로운 삶을 꿈꾸며 베트남으로 왔고, 이곳에서도 신앙을 지키기 위해 우리 교회에 등록한 젊은 부부가 있다. 이 가정은 유치원 다니는 아들과 곧 출산할 둘째를 임신한, 아주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다.

그런데 지난 화요일 새벽 3시경, 다급한 카톡과 전화가 우리 교회 ‘i will(소그룹 이름)’ 목장의 목장원들에게 전달되기 시작했다. 이 가정의 둘째가 예정일보다 2주 앞서 나올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모든 목장원들은 너나할 것 없이 힘 닿는 데로 돕기 시작했다. 한 목장원은 모든 목장원들에게 출산의 긴급함을 알리고 기도를 부탁했고, 다른 목장원은 안 되는 베트남어를 해가면서 택시를 불러 산모가 있는 집으로 갔다. 목양부장은 경황이 없을 이 가정을 위해 많은 베트남 돈을 준비해 병원으로 출발했다.

더 놀라운 일은 택시 안에서 일어났다.

산모, 산모 올케, 여집사 이렇게 자매 셋만 병원으로 출발했고, 이들과 대화가 전혀 되지 않는 베트남 택시 기사가 운전했다. 그런데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아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아이의 첫 울음 소리는 택시 안에 울렸고, 출산의 대부분이 택시 안에서 진행됐다. 택시에서의 출산으로 산모와 아이는 감염과 출혈의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 다행히 산모와 아이를 늦지 않게 분만실로 보낼 수 있었고, 기다리는 1시간 반 동안 많은 성도들이 병원에 모여 함께 기도했다.

이 긴급한 출산의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이 가정과 이 목장을 목양하는 목회자로서 걱정이 너무도 앞섰다. 산모는 건강한지, 아이는 무사한지, 기도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얼마 지나서 산모와 아이를 볼 수 있었다. 산모는 너무 평안해 보였고, 전혀 붓거나 아파 보이지 않았다. 아이(태명 쑥쑥이)는 상처 하나 없이 아주 깨끗했고 너무도 건강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도우심이었다. 너무도 놀라운 축복이고 탄생이었다. 그리고 내일처럼 섬겨준 목양부장, 목자, 목장원들이 너무 대견했다.

베트남 호치민
▲베트남 도로 모습. ⓒ궁인 목사 제공
그런데 쑥쑥이의 축복된 탄생이 마무리될 때쯤, 마음에 드는 생각이 있었다.

주님은 우리를 먹이고 입히시는데, 우리가 너무 염려 가운데 아등바등 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럼 믿음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물음이었다.

한 아이의 탄생도 주님이 이렇게 세밀히 준비하시고 일하시는데, 우리가 근심 가운데 나의 방법을 믿음이라고 믿고 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이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마 6:25-31)’.

그렇다. 마태복음 6장 말씀과 같이, 놀랍게도 믿음은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믿음은 나의 방법과 계획을 포기하고 주님 앞에서 잠잠히 기다리며 가만히 있는 것이다. 믿음을 가졌다고 하면서 나의 생각과 방법으로 동분서주한다면, 결국에는 하나님이 하실 일을 내가 하는 격이 되는 것이다.

물에 빠졌을 때는 생각해 보라. 살아보겠다고 힘쓰고 움직이면, 상황이 점점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몸은 점점 가라앉게 된다. 그러나 몸의 힘을 빼고 가만히 있으면, 몸은 자연스럽게 물 위에 뜨게 된다. 결국 살고 싶다면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자전거를 가르칠 때를 생각해 보자. 뒤에서 잡고 있는 손을 놓아야, 아이들이 탄 자전거는 멀리 가게 된다. ‘넘어질까봐 다칠까봐, 내 뜻대로 되지 않을까봐’ 붙잡고 있으면, 자전거는 앞으로 갈 수 없다.

넘어지든, 더 잘가든, 그건 자전거를 운전하는 사람의 몫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를 사랑하면 할수록 놓지 못한다. 넘어질까 잘못될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우린 종종 이렇다. 내가 손을 놓아야 주님이 운전하시고 목적지에 도착하는데, 여전히 내가 붙들고 있다.

주님이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픈 대로 한다. 그러면서, 주님이 하신다고 한다. 교회 일도 그렇고, 사업도 그렇고, 자녀의 일도 그렇다.

여러분은 정말 믿음이 있는 자가 되기 원하는가? 그렇다면 힘을 빼시기 바란다. 나의 손을 놓으시기 바란다. 나의 방법을 버리시기 바란다.

역설적으로, 이것이 믿음이다. 손 놓을 용기가 없다면, 맡길 용기가 없다면, 믿음이 없는 것이다.

이제 믿음이 있고 없고는 당신에게 달렸다.

주께 맡기고, 가만히 있기를 결정하라. 나의 방법은 버리고 침묵하기를 결정하라. 이제 당신을 위해 일하실 주님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기다리기를 결정하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궁인 목사(베트남 호치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