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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활동 당시의 PK 미니스트리.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을’ CCD(Contemporary Christian Dance) 계의 선두 주자. 바로 ‘춤추며 예배하고 춤추며 복음을 전하는’ 워십 댄스의 전설 PK(Promise Keepers) 미니스트리다.

PK는 ‘주님이 말씀하신 이 땅에서의 기쁜 소식 증거자로 언약을 성취해 나아가리라’(행 1:8)는 비전을 갖고 지난 2000년 결성됐다. ‘구원 열차’ ‘야곱의 축복’ ‘천국은 마치’ ‘More More More’ ‘우리 주 안에서 노래하며’ ‘멈출 수 없네’ 등 교회 청년들부터 주일학교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PK의 안무는 마치 ‘통과의례’처럼 한 번은 접해야 할 콘텐츠가 됐다.

그러나 현재의 PK가 있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현재까지 수백 명의 멤버들이 거쳐 간 PK, 그 ‘밤하늘의 별과 같은’ 이야기를 PK의 단장 장광우 목사와 함께 조금 들춰봤다. 현재 교회 개척을 앞두고 있는 장광우 목사는 문화선교전문가, 가정코칭상담가, 이단상담가, 장례지도전문가의 꿈도 꾸고 있다.

- 근황이 궁금합니다.

“예전에 비해서 일이 많아졌죠. 그래서 피로에 우겨 쌈을 당한 달까요?(웃음) PK 사역을 햇수로 19년째 하고 있어요. 최근 음반도 냈는데, 제목을 ‘그 길 위에 서다’로 달았어요. 주님과 함께 그 길을 가겠다는 고백이죠. 또 방송과 라디오, 목회 활동, 강의, 그리고 부족한 점이 있어 공부도 하고, 선교학 박사 준비도 해요. 또 심리상담 코칭 수업도 따로 듣고 있어요. 목회할 일도 많고, 일주일이 예전보다 더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어요.”

PK단장 장광우 목사. ⓒPK 제공
PK단장 장광우 목사. ⓒPK 제공

- 지금의 자리에 있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을 텐데요. 짧게 간증을 해주신다면.

“짧게요? 쉽지 않을 거 같은데요(웃음). 어릴 때의 기억이 간증은 아닌데, 제 삶의 밑거름과 같아요. 아버지에게 많이 맞았고, 또 자주 듣던 말은 쓰레기였어요. 너무 큰 상처였죠. 자존감도 낮았고 조울증과 우울증에, 심각해지니까 간질 증상도 있었어요.

그러면서 계속 뭔가 찾았던 거 같아요. 왜 살고 왜 살아야 하는지를. 그러던 중 우연찮게 불량한 청소년과 어울리게 됐는데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접한 게 춤이었어요. 제 육체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는데, 내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 있는게 놀라웠어요. 제가 원하는 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죠. 대회에서 입상도 하고, 기획사도 갔고, 18살에 나이트클럽 디제이를 하면서 본격 음악 세계로 들어갔어요. 그리고 ‘빨리 가수가 되어야겠다’ ‘음악을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을 갖고 군대에 갔는데 거기서 하나님을 만났어요.”

- 교회를 그때 처음 간 건가요?

“중2 때까지 교회를 다니다가, 이후 7년 동안은 교회를 안 갔어요. 교회에 대해 반감이 많았고,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너무 많았죠. 그런데 군대 가서 첫 예배 때 주님이 만나 주셨어요. 세미한 음성으로 ‘널 알고 있다’ ‘너를 참 사랑한다’ ‘널 향한 계획이 있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내가 쓰레기가 아니구나’ 하고 그 때 깨달았어요. 그 후 군대에서 교회 행사뿐 아니라 모든 문화 행사엔 다 갔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자존감이 올라가고 '내가 리더를 할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도 생겼어요. 많은 경험을 했죠.

CCM은 군대에서 처음 알았어요. 에이맨(AMEN)의 김성호 형제와 군종 생활 동기였는데, 여러 장르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죠. 그런데 힙합 찬양은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내가 하면 되겠다’ 싶었죠. 99년도에 제대하고 주의 길을 가려 했어요. 그런데 제가 이 길을 가겠다고 하니까 다 ‘안 된다’고 하는 거예요. 그때는 교회에 드럼도 안 들여놓던 시절이었어요. 제가 다닌 교회에선 박수만 세게 쳐도 진정하라고 하고… 그런데 힙합을 하겠다고 했으니.

만류하는 사람들의 말을 계속 들으니 좌절이 됐어요.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잠깐 꿈을 꿨구나. 내가 많이 외로웠고, 뭔가 기댈 곳이 필요했구나. 그분이 안 계신가보다. 잠깐 환상을 봤나보다’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되더라고요. 사람은 그런 연약함을 가진 존재인 거 같아요.

그렇게 갈 데가 없어서 다시 나이트클럽 선배들을 찾아갔어요. 그런데 거긴 너무 잘해주는 거죠. 여긴 날 환영하는데 교회는 날 환영하지 않는 거 같으니까… ‘송충이가 솔잎을 먹어야지 내가 무슨 교회야’ 이런 마음까지 들었어요. 점점 하나님을 마음에서 밀어냈어요. 아담과 하와처럼 그 분께 등을 돌리게 되더라고요. 그런 절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시고 포기하실 수 없어서 제 건강을 살짝 치셨던 거 같아요. 이유 없이 피를 두어 달 토하고 물도 못 마셨죠. 그러면서 다시 하나님께 엎드렸어요.

‘하나님께서 내 앞에 여전히 계시고 내 일을 정하셨는데 사람들의 말에 흔들렸구나’

제가 하나님께 등을 돌렸고 하나님께 묻지 않았구나 하는 마음이 그 때 들었죠. 그러면서 막연히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뭘 하든 주님이 원하시는 걸 하겠다고. 그 뒤로 몸이 조금씩 호전됐는데 뜻밖에 에이맨 김성호 형제님이 전화로 3집 콘서트에서 백댄싱을 좀 해달라고 했어요. 신기하게도 마침 몸이 회복됐었죠. 춤을 추어도 될 것 같았어요.

그렇게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주를 따르겠다’는 결심을 하고 상경했어요. 춤을 가르쳤던 동료들을 중심으로 PK를 만들었어요. 2000년대에 송정미, 김명식, 강명식, 소리엘, 콘서트를 정말 많이 할 때인데, 그 분들이 계속 PK를 초청해주셨어요. 그 뒤로 전 세계로 많이 갔죠. 6~7년 전에는 개인 음반 발매를 앞두고 신앙 간증을 정리하고 싶어서 ‘핸즈업’이라는 책도 냈어요. ‘업’이란 표현을 잘 써요. ‘레벨 업’ ‘업그레이드’ 같은. 예수님 만나고 나서 제 나름대로는 성장의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 PK 단원 저마다의 스토리가 있다고 들었는데요.

“PK를 몇 백명이 거쳐 갔는데 사연 없는 사람이 없었어요.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것을 춤으로 승화시키고 싶던 사람들이었죠. 집과 부모가 없는 깨어진 가정의 아이들을 보면서 ‘어떻게 저런 슬픔을 가지고 살까’ 싶을 정도로 삶에 희망이 없던 친구들이었어요. 늘 자살을 생각했던 친구들도 많이 왔죠. 이들이 희망을 찾고 사역을 하고 수련회나 예배를 통해서 변화된 삶을 살고, 그러면서 성장하고… 그런 친구들이 결국 전도사와 목사, 선교사 되어 지난 20년 동안 전 세계에 많이 나갔어요. 개인적으로 이들의 간증들이 들려질 때가 제일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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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예배자 PK (Promise Keepers) 유나이티드 프로필 사진. ⓒPromise Keepers(PK) official facebook

- 오랜 기간 어떻게 팀을 지속해 왔는지.

“정말 어려운 질문인 거 같아요. 주님이 하셨다고밖에 볼 수 없는 과정과 상황이었어요. 제 능력으로는 불가능 했죠. 너무 힘든 일이 많았고, 포기하려고도 수없이 생각했어요. 사역하면서 평탄했던 적이 없었으니까… 오히려 예수님 모를 때 삶이 평범했고 예수님을 알고 나서는 삶이 너무 스펙터클 해서, 가끔 ‘하나님 왜 그러세요?’라고 묻기도 했죠(웃음).

그런데 그땐 다 고난이고 고통이고 절망이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게 성장이고 희망이고 약속이었어요. 그런 시간을 통해 지금의 내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돼요. 또 주님께서 왜 그러시는지 아니까 감사하게 되는 거죠. 분노로 가득 찼던 제가 이젠 사람을 품고 그들을 예수께로 인도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됐어요. ‘주님께서 저 사람 만드느라 고생하셨겠구나’ 이런 생각도 하게 돼요. 고통 없이 어떻게 제가 엎드렸겠어요. 아마 누구도 품지 못했을 거 같아요. 제 인생도 해결이 안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절 향한 주님의 계획이 있으니 절 그곳으로 몰아가시더라고요. 제 찬양에도 넣었는데 ‘매일 매일 조금씩 변화의 능력을 경험하는 교회. 우리의 모습’이라고. 주님은 가만두지 않으시고 성장시키시고 날마다 가게 하세요.”

온세상약속교회
▲오는 10월 27일 입당 예배드리는 온세상약속교회. ⓒ장광우 목사

- 교회 개척을 하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세대를 묶는 일에 관심이 많아요. 개척하기 전에 그런 걸 배우고 싶어서 일반 교회에 들어가 부교역자로 활동을 했어요. 이런 경험을 통해 한국교회에 도움이 되고 싶거든요. 어떻게 보면 PK의 연장선이에요. 온 세대를 묶으려는 마음으로 18년을 해왔다면 중간세대로부터 아래와 위 세대를 묶어가는 문화 사역을 이끌어내는 교회 사역을 같이 하게 됐어요. 그래서 PK가 Promise Keeper(약속을 지키는 자)이고, 저희 교회 이름이 ‘온세상약속의교회’에요.

- 예수님을 만나고 사역의 길을 걸어가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를 꼽자면.

“하나는 물질인 거 같아요. 물질 시험은 한 두가지가 아니었죠. 집에는 비가 새고 바퀴벌래가 나오고, 평탄치 않게 하신 것 같아요. 그 과정을 거치며 성장시키셨죠. 사역자 누구나 다 어렵지만 팀을 케어 하려니 계산기로는 방법이 없더라고요, 지금도 부교역자 전도사님이랑 같이 살고 있어요.

또 하나는 사람에 대한 거에요. 팀이 무너지는 건 돈이 아니라 오해와 관계 때문이더군요. 모든 공동체가 다 그런 부분이 있는데, 서로에 대해 오해하고 불만과 미움이 쌓일 때 깨지는 거죠. 특히 24살에 공동체를 시작한 저로선 이 다툼과 분쟁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랐죠. 이게 차라리 내가 미워서 나도 미움을 받는 거라면 그나마 괜찮은데, 사랑했는데 미움을 받으니까 그게 너무 힘들더라고요. 사랑하고 품어줬는데 그걸 모르고 서로 불편해질 때 그 상심이 컸어요.

마지막 하나는 결국 사명이죠.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거 같아요. 우리는 구원받았고 주님이 부르셨다는 것을 믿지만 사단은 끊임없이 참소해요. 어느 순간 의심케 해요. ‘정말일까?’ ‘아닌거 아닐까?’ 때로는 누가 만들어준 의심이 아니라 스스로 의심하기도 하고. 소위 말해 영빨이 약하면 만족이 안되고 힘드니까… 결국 예배만이 살길인 것 같아요.”<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