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 이승훈
▲남강 이승훈 선생.
그러던 어느 날 남강은 비통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면회를 온 한 교사로부터 오산학교가 불타 버렸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던 것이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일본 헌병들이 와서 학교와 교회당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습니다.”

“오, 오…!”

남강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분신과도 같았던 오산학교가 불타 한줌의 잿더미로 변하다니…. 그는 주저앉고 말았다.

그로부터 얼마 후 집안 종손이 감옥으로 찾아와 또 하나의 비보를 들려 주었다. 그 사이 남강의 부인이 병을 앓다가 그만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었다.

나라와 학교에 정신이 팔린 나 때문에 한시도 편히 살아보지 못했던 사람…. 고생만 하다 숨을 거뒀다는 생각을 하자 남강은 너무나 마음이 아파 또다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1919년 당시 오산학교에도 3·1 만세운동 소식이 전해졌고, 이 만세운동을 남강 선생이 지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학생들은 서둘러 독립선언서를 등사하고 수백 장의 태극기를 만들었다. 오산학교 학생들이 정주읍으로 달려나가 시위를 벌이기 시작하자 많은 주민이 함께 만세를 불렀다.

일본 경찰은 조사에 나섰고 독립만세 운동의 진원지가 오산학교라면서 결국 불태워 버렸던 것이다.

사태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교장 조만식 선생이 구금을 당하고 대부분의 교사들도 경찰에 잡혀 구속되었다. 하루 아침에 오산학교는 폐허로 변하고 말았다.

하지만 오산학교의 혼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남강의 간곡한 부탁을 받은 조만식 선생을 비롯한 졸업생들이 학교 재건을 도모하게 되었던 것이다. 1년 후 맨땅 위에 어렵사리 작은 건물을 짓고 새학기를 시작하는 기적을 이뤘다.

재출발하게 된 오산학교는 1922년 봄에 획기적인 경사를 맞았다. 재력을 가진 젊은이인 김기홍의 도움을 받아 예전에 불타 버린 교사보다도 훨씬 큰 새로운 교사를 신축한 것이다.

남강은 3년형을 치르고 출옥했다. 민족대표 33인 중 맨 마지막으로 출옥한 남강은 학교로 돌아온 즉시 학교 재건을 위해 땀을 흘려 준 사람을 한자리에 모시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눈물겹도록 고마울 뿐입니다! 오늘 여기 와서 다시 세워진 우리 오산학교를 바라보면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학교임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고,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정신이 이만큼 살아 있는 한 언젠가는 다시 우리나라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허허, 감옥이란 이상한 덴걸요. 강철같이 강해서 나오는 사람도 있고 썩은 겨릅대같이 푹 약해서 나오는 사람도 있거든요. 허허, 내가 감옥에서 이렇게 풀려난 것은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그동안 감옥에 있으면서 오산학교를 잠시도 잊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감옥을 나오면서도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빼앗긴 조국의 땅을 밟아야 한다는 것은 결국 감옥을 나왔다 하더라도 감옥과 조금도 다름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또 있습니다. 내가 오늘 비록 감옥을 나왔더라도 나라를 사랑하는 내 의지를 꺾어 버릴 수 없는 한, 내가 언제 또 저 감옥에 잡혀 들어갈지 알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감옥 문을 나서면서도 다시 이 감옥으로 돌아올 날이 또 언제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가야 할 길은 멀었다. 우선 오산학교를 고등보통학교로 승격시키는 것이 필요한 과제였다. 그래야 졸업생들이 학력을 인정받고 대학이나 사회에 진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남강은 교정을 이리저리 홀로 걸어다니며 고민에 빠졌다. 나무 아래 멈춰 서서 우툴두툴한 껍질을 쓰다듬다가 눈길을 들어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는 교실의 창문을 쳐다보곤 했다.

이윽고 그는 천천히 독백을 했다.

김영권 남강 이승훈
▲김영권 작가(점묘화).
“난 어릴 때 고아가 되어 이 나라 산천의 은혜를 입고 이만큼 살았다. 공수래 공수거가 아닌가. 더 이상 나 자신에 대한 미련은 남지 않았다. 내 행동에 대해서는 훗날 죽은 후 객관적인 평가를 하겠지. 허허허….”

그는 허심탄회하게 웃었다.

김영권 작가

인하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한국문학예술학교에서 소설을 공부했다. <작가와 비평>지의 원고모집에 장편소설 <성공광인(成功狂人의 몽상: 캔맨>이 채택 출간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작품으로는 어린이 강제수용소의 참상을 그린 장편소설 <지옥극장: 선감도 수용소의 비밀>, <지푸라기 인간>과 청소년 소설 <보리울의 달>, <퀴리부인: 사랑스러운 천재>가 있으며, 전통시장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그린 <보통 사람들의 오아시스> 등을 썼다.

*이 작품은 한국고등신학연구원(KIATS)의 새로운 자료 발굴과 연구 성과에 도움 받았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