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남북 정상회담이 북한 평양에서 마무리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곧바로 ‘합의문에 나와있지 않은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유엔 총회가 열리는 미국으로 날아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다.

양 정상이 발표한 ‘9·19 평양 공동선언’에서는 △민족자주와 민족자결 원칙 △민족적 화해와 협력, 확고한 평화와 공동번영을 일관되고 지속적으로 발전 등의 대원칙을 ‘4·27 판문점 선언’에 이어 재확인했다.

판문점 선언보다 구체적인 내용들도 들어갔다. △비무장지대를 비롯한 대치 지역에서의 군사적 적대관계 종식 △연내 동·서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 착공식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사업 우선 정상화 △자연생태계 보호 및 복원 위한 남북 환경협력 적극 추진 △2032년 하계올림픽 남북 공동개최 유치 △김정은 서울 답방 등의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정작 회담의 목적이자 주 의제여야 할 ‘비핵화’에 대해서는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 유관국 전문가들 참관 하에 우선 영구적 폐기 △미국이 6·12 북미 공동성명 정신에 따라 상응조치시 영변 핵시설 영구적 폐기 같은 추가적 조치 계속 취해나갈 용의 △남북 완전한 비핵화 추진 과정 긴밀 협력 등 추상적이고 비실질적인 구호들만 난무했다.

우리 국민들, 북한의 각종 반인도적 범죄 피해자와 유가족들에 대한 배려나 조치는 전무했다. 생태계까지 걱정하면서 이산가족들을 위해서는 상설면회소 추진과 화상상봉, 영상편지 교환 문제 우선 해결이 다였다. 멀게는 1960-80년대 납북자들, 가깝게는 천안함·연평도 전사자·부상자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었다. 68년 전인 6·25 전쟁 사망자 유해부터 찾아온 미국, 납북자 문제부터 꺼내는 일본과 너무 대비되는 행보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자유케 할 그 어떤 시도도 하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 부부는 ‘주민 15만명 앞에서 연설할 기회’라는 이유로 국제사회로부터 아동인권 침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집단체조 ‘빛나는 조국’을 관람했고, 수많은 ‘동원된’ 환영 인파들의 환영에 웃음꽃을 피웠다.

혹자는 고통받는 그들을 위해서라도 현실을 인정하고 남북 정상이 더 자주 만나서 변화를 도모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남북 정권 모두에게서 북한 주민들의 인권 참상과 현실에 대한 공감대가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남북한 정상 모두에게서 북한 주민들을 걱정하는 발언을 들어본 일이 없다.

보통 북한에서 집단체조를 관람하면 인권 선진국에서는 곧바로 비판이 나오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인권의 선봉에 서 있는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롯해 진보 언론들마저 잠잠하다. 김정은이 진정 북한 주민들의 인권 개선과 경제적 윤택을 원한다면, 백두산 천지에서 ‘손하트’를 하며 웃음지을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곧바로 핵을 자체 폐기하고 고르바초프처럼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체제를 바꾸면 될 일이다.

‘정치평론가’ 타이틀로 유명한 한 인물은 북한의 김정은에 대해 자신의 ‘벙커’에서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는 ‘자기 객관화’가 되는, 지적인 인물”이라며 “이런 식으로 10-20년간 지속 발전한다면, 우리는 정권이 바뀔 수 있지만, 저기(북한)는 한 방향으로 계속 갈 수 있으니 그 속도나 정도가 우리 상상을 초월하게 빠를 수 있다”고 우호적으로 평가했다.

요약하면 3대 세습 독재를 정당화하고 높이 평가한다는 말이다. 대의를 위해 그 정도는 희생할 수 있다는 말인데, 이는 그로 대표되는 부류에서 1970-80년대에 그토록 비판하고 맞서 싸우던 종류의 것이 아니었나? 그는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에게조차 ‘민주화 역행’ 프레임을 씌웠던 인물이다. 세월이 흘러 관용적이 된 것인지, 그들의 ‘독재’ 기준이 바뀐 것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 모든 분위기는 추석 연휴에 거리에 등장했던 현수막, ‘평화가 경제다’가 상징적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남이야 어찌 됐든, 나와 내 가족 친지들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생각으로 팽배하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현상과 갈등의 기저에 자리잡은 게 바로 그것이다. 어쩌면 현 정부와 그들을 옹호하는 이들의 저러한 모습들은, 우리 국민들의 생각을 정확히 읽은 후 나왔을 것이다.

나 하나 잘 먹고 잘 사는 일이 왜 중요하지 않겠냐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마저 거기에 ‘올인’해서야 되겠는가. 그러므로 북한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와 자세는, ‘경제’가 아니라 ‘사람’을 향해야 할 것이다. 그들 말로 하면 ‘사람이 먼저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진정한 평화는 ‘샬롬’이어야 한다. 샬롬은 단순히 전쟁 위기 없이 물질적으로 ‘살 만한’ 상태가 아니라, 개인과 공동체의 생활 가운데 물질을 넘어 정신과 육체 모두가 완전히 충족된 경우를 뜻한다. 외부적으로는 평화와 정의, 내면적으로는 평강과 조화 등 총체적인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를 분명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다”고 하셨다. 그리스도인들은 나와 너, 우리와 그들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바라고, 원하고, 기도해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샬롬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당장 주변에 있는 탈북민들부터 ‘2등 국민’으로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진정성 있게 대해야 할 것이다.

문재인
▲집단체조 후 연설하는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영상 캡처
김정은
▲‘손하트’를 하고 있는 김정은 부부(오른쪽에서 두 번째부터). ⓒ청와대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