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 이승훈
▲남강 이승훈 선생.
남강은 “나라 없는 자들이 어떻게 천당을 갈 수 있으며, 지금 우리 백성이 모두 지옥에 있는데 당신들만 천당에서 내려다보면서 거기 앉아있을 수 있겠느냐”라며 그들을 꾸짖었다.

이어 남강은 천도교 지도자들을 만나 함께 독립선언을 구체적으로 의논했다. 그들은 불꽃과 불꽃이 만난 듯 타올랐다. 같은 날 불교계 인사들도 이에 가세함으로써, 3·1 만세운동은 종교의 장벽을 뛰어넘는 거족적 운동으로 발전해 나갔다.

중요한 일 앞에서 사소한 문제를 놓고 다투기도 했다. 2월 말경 한강 인도교 근처에서 민족 대표들이 만났는데, 독립선언서에 서명할 순서를 놓고 언쟁이 벌어졌다.

그 모습을 본 남강은 화가 치밀어 크게 꾸짖었다.

“이건 죽는 순서인데 이름이 앞에 들거나 뒤에 들거나 무슨 상관이겠소!”

그러고는 천도교를 대표한 손병희에게 먼저 쓰도록 당부했다.

민족의 장래가 걸린 거사를 앞두고 누구 이름을 먼저 쓸 것인가 다투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었다.

서울엔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고종의 의심스러운 죽음이, 억눌린 채 속으로만 부글부글 끓고 있던 한민족의 감정에 불씨를 던져 넣은 격이었다.

덕수궁에서 기거하던 고종 황제는 당시 68세로 비교적 건강한 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중병으로 별세했다는 발표가 있자 백성들은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때 마침 일본 스파이가 독살했다는 말이 퍼져, 온 백성들은 나라 잃은 설움과 함께 일본에 대한 적개심으로 크게 요동쳤다.

고종의 장례식 때 서울 거리는 흰 옷 입은 사람들이 몰려 와 거대한 대성통곡의 물결을 이루었다.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상여가 출발하자, 울음의 물결도 함께 움직였다. 일본 경찰들이 길 양옆에 쭉 늘어서서 감시하며 따라 걸었다.

백성들의 반일 감정이 용암처럼 끓고 있다는 사실을 안 조선 민족 대표 33인은 거국적인 만세운동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3월 1일 오후 2시, 이승훈을 비롯한 민족 대표들은 서울 인사동의 태화관(泰和館) 별실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펼쳤다. 길선주, 유여대, 정춘수 등 3명은 서울에 늦게 도착해 이날 태화관 모임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그리고 김병조는 상해로 건너가 불참하고, 서명자 외에 함태영이 참석했다.

민족 대표들은 미리 인쇄하여 가져온 독립선언서 1백여 장을 나눠 보면서 엄숙히 행사를 진행했다. 만해 한용운이 일어나 우렁찬 목소리로 낭독했다.

“우리는 여기에 우리 조선이 독립된 나라인 것과 조선 사람이 자주하는 국민인 것을 선언하노라. 이것으로써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가 평등하다는 큰 뜻을 밝히며, 이것으로써 자손만대에 일러 겨레가 스스로 존재하는 마땅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도록 하노라!

반만년 역사의 권위를 의지하고 이것을 선언하는 터이며, 이천만 민중의 충정을 모아 이것을 널리 알리는 터이며, 겨레의 한결 같은 자유 발전을 위하여 이것을 주장하는 터이며, 사람 된 양심의 발로로 말미암은 세계 개조의 큰 기운에 순응해 나가기 위하여 이것을 드러내는 터이니, 이는 하늘의 명령이며, 시대의 대세이며, 온 인류가 더불어 같이 살아갈 권리의 정당한 발동이므로, 하늘 아래 그 무엇도 이것을 막고 누르지 못할 것이라.

낡은 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 강권주의의 희생을 당하여 역사 있은 지 여러 천 년에 처음으로 다른 민족에게 억눌려 고통을 겪은 지 이제 십 년이 되도다. 우리가 생존권마저 빼앗긴 일이 무릇 얼마며, 정신의 발전이 지장을 입은 일이 무릇 얼마며, 겨레의 존엄성이 손상된 일이 무릇 얼마며, 새롭고 날카로운 기백과 독창성을 가지고 세계문화의 큰 물결에 이바지할 기회를 잃은 일이 무릇 얼마인가!

김영권 남강 이승훈
▲김영권 작가(점묘화).
오호, 예로부터의 억울함을 풀어 보려면, 지금의 괴로움을 벗어나려면, 앞으로의 두려움을 없이 하려면, 겨레의 양심과 나라의 도의가 짓눌려 시든 것을 다시 살려 키우려면, 사람마다 제 인격을 옳게 가꾸어 나가려면, 불쌍한 아들, 딸에게 부끄러운 유산을 물려 주지 않으려면, 자자손손이 길이 완전한 행복을 누리게 하려면, 우선 급한 일이 겨레의 독립인 것을 뚜렷하게 하려는 것이라.

이천만 각자가 사람마다 마음 속의 칼날을 품으니, 인류의 공통된 성품과 시대의 양심이 정의의 군대가 되고, 인륜과 도덕이 무기가 되어 우리를 지켜 주는 오늘, 우리가 나아가 이것을 얻고자 하는데 어떤 힘인들 꺾지 못하며, 물러서 계획을 세우는 데 무슨 뜻인들 펴지 못할까!….”

김영권 작가

인하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한국문학예술학교에서 소설을 공부했다. <작가와 비평>지의 원고모집에 장편소설 <성공광인(成功狂人의 몽상: 캔맨>이 채택 출간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작품으로는 어린이 강제수용소의 참상을 그린 장편소설 <지옥극장: 선감도 수용소의 비밀>, <지푸라기 인간>과 청소년 소설 <보리울의 달>, <퀴리부인: 사랑스러운 천재>가 있으며, 전통시장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그린 <보통 사람들의 오아시스> 등을 썼다.

*이 작품은 한국고등신학연구원(KIATS)의 새로운 자료 발굴과 연구 성과에 도움 받았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