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 이승훈
▲남강 이승훈 선생.
식민지의 세월은 고통스런 시련의 연속극이었다.

일본에 빌붙어 사는 자들은 제 한 몸의 부귀영화만 생각하며 나라가 어찌 되든 희희덕거렸지만, 그렇지 않은 조선인들에겐 지옥이나 마찬가지였다.
남강은 쉰 살을 넘어 머리와 수염이 하얗게 세어 있었다. 너무나 많은 고초를 겪다 보니 이미 노인처럼 늙은 모습이었다.

하루는 제자들이 찾아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요즘 세상은 참 살기 어렵습니다”라고 말했다. 남강은 버럭 역정을 내며 소리쳤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일본 놈들이 하자는 대로 하고 비위를 맞춰 앞잡이 노릇을 하면 그렇게 살기 쉬운 세상이 어디 있어? 쉽지, 암 쉽고 말고. 우리가 옳게 살려니까 어려운 게야. 나라를 한번 뺏기게 되면 이처럼 거지보다 못한 신세가 되는 것일 뿐.”

쥐새끼처럼 일제에 빌붙어 호의호식하는 세태를 꾸짖고 민족을 위해 바르게 살라는 가르침이었다.

식민지였지만 남강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면 사실 편안히 살 수 있는 길도 있었다. 자기 나라와 민족을 포기하면…. 하지만 남강은 그럴 생각도 없었고 지옥 같은 현실도 그런 틈새를 주지 않았다.

1918년 늦가을이었다.

만주에서 무오 독립선언이 발표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는데, 그 대표 중 오산학교 교사였던 여준도 있었다. 초겨울엔 상해에서 몽양 여운형과 선우혁이 남강을 방문하여 함께 독립운동의 방법을 의논했다.

“이제 풍전등화입니다.”

여운형이 눈을 번득이며 말했다. 그는 국제 정세에 해박한 지식과 균형 잡힌 정치 감각으로 민족 지사와 국민들의 신망을 얻고 있는 인물이었다.

“바람을 받은 등불이 꺼지든지 더 큰 횃불로 타오르든지 하는 위기의 순간입니다.”

“시시각각 벼랑 끝에 선 심정이지요.”
남강이 차분히 대꾸했다.

“머나먼 이국 땅에서 독립투쟁하는 분들도 많지만, 또한 남강 선생님 같은 분이 어지러운 국내에서 애써 주시어 든든합니다.”

“별 말씀을…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민족의 힘을 하나로 모으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를 버리고, 계파와 정파를 초월해 오로지 우리나라와 민족만을 생각해야겠지요. 나 하나를 버려 조국 강토를 되찾고 온 민족에게 자유를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

열정 어린 음성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뜻을 하나로 모으되 우리의 절규는 가능한 멀리 퍼져나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국내와 상해, 동경에서 각각 독립을 선언하는 게 좋겠지요.”

“좋은 의견입니다. 그러려면 서둘러야겠군요.”

두 민족 지도자는 손을 꼭 맞잡고 눈빛을 교환했다. 그리고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준비했다. 1919년 봄 남강은 서북지역 민족지도자들을 만나 독립선언을 협의했다.

그러던 중 서울의 천도교(天道敎) 측에서 독립선언에 대해 협의하자는 전갈이 왔다. 천도교는 동학을 계승한 민족종교로서, 독립선언을 앞장서 추진하고 있었다. 그들은 신민회 등 독립운동에 참여한 경험이 많고 기독교계에서도 명망이 높던 남강을 신임했던 것이다.

남강은 한 걸음에 달려갔다. 천도교 측 인사는 남강을 윗자리로 모시고는 물었다.

“선생님, 서북 지역에서 독립선언을 위한 계획이 있다는데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거족적인 독립선언을 위해 천도교와 기독교가 협력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좋습니다.”

남강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민족 독립을 위한 거사인데 종교가 다른 것은 문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촉박했다. 남강은 기독교계 인사들을 설득하기 위해 바쁘게 뛰어다녔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정치 문제에 관여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사람도 있었고, 다른 종교와의 협력을 기피하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영권 남강 이승훈
▲김영권 작가(점묘화).
김영권 작가

인하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한국문학예술학교에서 소설을 공부했다. <작가와 비평>지의 원고모집에 장편소설 <성공광인(成功狂人의 몽상: 캔맨>이 채택 출간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작품으로는 어린이 강제수용소의 참상을 그린 장편소설 <지옥극장: 선감도 수용소의 비밀>, <지푸라기 인간>과 청소년 소설 <보리울의 달>, <퀴리부인: 사랑스러운 천재>가 있으며, 전통시장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그린 <보통 사람들의 오아시스> 등을 썼다.

*이 작품은 한국고등신학연구원(KIATS)의 새로운 자료 발굴과 연구 성과에 도움 받았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