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 이승훈
▲남강 이승훈 선생.
남강이 감옥에 갇힌 후 마치 선장을 잃은 배처럼 오산학교는 큰 위기를 맞았다. 유영모, 이광수 등 훌륭한 교사들이 그럭저럭 학교를 운영했지만, 학자나 문사들이다 보니 한계가 있었다.

이 무렵 오산학교에 부임해 기풍을 세우고 발전의 기틀을 다진 인물이 바로 ‘조선의 간디’라 불린 고당 조만식이었다.

일본 동경에서 공부하던 조만식은 1913년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법학부를 졸업한 뒤 귀국해 오산학교로 부임했다. 엘리트 지식인이 시골 교사로 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옥중에서 고생하는 남강의 간청을 그는 차마 뿌리칠 수 없었다. 평양 출신인 조만식은 남강의 인품과 민족을 위한 활동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만식은 지조가 곧으면서도 소탈한 성품이었다. 머리칼을 박박 깎고 정갈한 두루마기를 걸치고 고무신을 신은 모습이었다. 그는 해박하여 법률, 경제, 지리, 영어 등 과목을 가리지 않고 두루 잘 가르쳤다. 얼마 후 유영모와 이광수가 더 깊은 공부를 하기 위해 오산학교를 떠나자 조만식은 더욱 바빠졌다.

조만식 교장은 말만 떠들지 않고 열정과 행동으로 가르쳤다. 진실한 실행으로 학생들의 사표가 되어 큰 존경을 받았다. 노닥거리다가 시간 엄수를 못하면 질책이 대단했으며, 학생들에게 의리와 신뢰를 일깨웠다.

“여러분, 오늘 내가 강의하는 것이 인격을 도야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참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눈물과 땀과 피가 넘쳐 흘러야 해요. 눈물은 남을 자비롭게 여기는 훈훈한 인정이며, 땀은 생존과 보다 나은 향상을 위한 노력입니다.

피는 무엇일까? 피는 희생입니다. 희생 없이는 어떤 일에도 완성이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앉아 있는 걸상과 책상도 나무가 희생했기에 책상이나 걸상으로 완성된 것입니다. 희생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돌아보지 않고 몸을 바치는 것을 말합니다. 당장은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그 희생의 열매는 고귀하고 영원합니다.”

가끔은 학생들을 데리고 뜰에 앉아 민족의식이 담긴 노래를 부르며 애국심을 가슴속에 심어 주기도 했다.

눈이 오면 먼저 교정에 나와 눈을 치웠고, 학생들과 함께 땔감을 마련하러 산에 올랐다. 이런 조만식 교장의 지도에 힘입어 오산학교는 민족의 위한 일꾼들을 무수히 배출했다.

조선 민족의 정과 한을 토착적인 가락으로 노래한 시인 소월도 오산의 동산에서 꿈을 키웠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봄이면 빼앗긴 땅의 산기슭에도 붉은 꽃이 애처롭게 떨며 피어났다.

“마치 우리 민족의 울음이 변해 핀 것만 같군.”

조만식 선생은 처연한 음성으로 말했다.

“제겐 마치 각혈한 것처럼 보이는군요. 불쌍한 백성들이 토해 놓은 피….”

소월이 대꾸했다. 그는 사라져 가는 나라를 자신의 약한 힘으로 구할 수 없는 애통함을 그렇게 읊었는지도 몰랐다.

훗날 소월이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조만식 선생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엔 그의 모습과 인품이 잘 그려져 있다.

평양서 나신 인격의 그 당신님 J.M.S
덕 없는 나를 미워하시고
재조 있던 나를 사랑하셨다
오산五山 계시던 J.M.S
십년 봄만에 오늘 아침 생각난다

얽은 얼굴에 자그만 키와 여윈 몸매는
달은 쇠끝 같은 지조가 튀어날 듯
타듯 하는 눈동자만이 유난히 빛나셨다
민족을 위하여는 더도 모르시는 열정의 그 임….

김영권 남강 이승훈
▲김영권 작가(점묘화).
김영권 작가

인하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한국문학예술학교에서 소설을 공부했다. <작가와 비평>지의 원고모집에 장편소설 <성공광인(成功狂人의 몽상: 캔맨>이 채택 출간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작품으로는 어린이 강제수용소의 참상을 그린 장편소설 <지옥극장: 선감도 수용소의 비밀>, <지푸라기 인간>과 청소년 소설 <보리울의 달>, <퀴리부인: 사랑스러운 천재>가 있으며, 전통시장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그린 <보통 사람들의 오아시스> 등을 썼다.

*이 작품은 한국고등신학연구원(KIATS)의 새로운 자료 발굴과 연구 성과에 도움 받았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