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국 칼럼] 환갑(還甲)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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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으로 전국이 열도가니가 되어버린 한반도의 여름은 절정의 피서철이다. 많은 사람들이 산으로, 바다로 피서를 떠나는, 즐거운 휴식의 시간이다. 지구 온난화로, 열대 기후로 변할 위험에 노출된 한반도의 여름은 무서울 정도의 폭염으로 연일 열대의 밤이다.

그러나 폭염은 머지 않아 우리 곁을 떠나갈 것이다. 실로 폭염보다 무서운 건 죽음이다. 죽음은 우리 호흡이 멈추는 그날까지 조금의 미동도 없이 우리 곁을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평균 수명이 많이 늘어났다지만, 여전히 각종 사고와 질병으로 인한 사망 소식은 폭염의 계절과 무관한 우리들의 삶이다.

늘상 교회의 여름 프로그램과 기도원을 향하던 여름나기 중에, 문득 대학교를 졸업한지 30여년이 지난 지금 늘 함께했던 동창생들의 소식이 무척 궁금해진다. 어디서부터 누구를 찾아야만 뭉쳐 다니던 동기들을 모두 만날 수 있을까.

전북 무주 덕유산 칠연폭포. 그곳에 가면 한 해 여름을 신세진 후배의 촌가가 있다. 덕유산 등산객들의 하산 길목에서 막걸리와 감자전을 구워 팔아 등록금을 마련한 장소이기도 하다. 막걸리를 팔아 등록금을 마련하는 행위를 신학대 학생들은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일반 대학교를 다니던 이력으로서는, 지나고 보면 경륜의 시간이었다고 자위해 본다.

1958년 개띠들은 올해가 환갑이다. 환갑이라야 평균수명이 늘어난 현대인들에게 그저 또 한 번의 생일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무엇인가 홀로 환갑의 의미를 스스로에게 규정지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 택한 여행길이 덕유산행이다.

환갑을 맞아 체력 점검도 할 겸, 후배들의 소식도 전해들을 겸, 겸사겸사 떠난 덕유산행길이다. 많이 느려진 보폭으로 향로봉 정상에서 인증 샷을 찍고 하산하는 길에 매달린 산바람이 참으로 좋다.

무주 구천동에 숙소를 정했다. 숙소 여주인에게 혹시나 하고 후배의 소식을 물었다. 후배와 초등학교 동창이란다. 어디론가 전화를 한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많이 아프다는 후배의 소식을 전한다.

실로 오랜만에 전화 통화를 했다. 환갑도 안된 후배의 몸 상태는 심각한 상황이다. 방문요양사의 도움을 받고있는 반신마비 상태임을 알려준다. 더욱 놀라운 소식은 또 다른 후배의 죽음이다. 혈액암으로 사망한지 십년이 지났다고 전한다. 아프다. 가슴이 쓰리다.

대학 시절 늘 함께 다니던 다섯 명이다. 후배 한 명은 목회자가 되었고, 히말라야 등정을 꿈꾸던 후배는 여전히 산자락을 맴돌고 있다고 한다. 대학교를 졸업한지 삼십오년이 지난 지금 형제같이 지내던 다섯 동기들은, 목회자 두 명, 산자락 그늘에 한 명, 반신불구 한 명, 사망 한 명이다. 긴 세월 후배들을 잊고 살았다.

우리는 삶의 소리에 익숙하다. 그러나 꼭 들어야 할 소리마저 듣지 못하고 살아갈 때가 다반사이다. 삶의 소음 때문에 들리지 않는 소리들은 참으로 많다. 대부분 잠시 듣지 못하던 소리들을 기억해내면 돌이킬 수 있는 소리들이다.

그러나 정녕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그 무엇을 잊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심령은 서글픈 운율이다. 잊어서는 안 될 문제는 죽음이다. 죽음은 우리의 것이고, 아름다운 결말을 스스로에게 부여해 줄 수 있는 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믿으면 영생이다.

우리의 인생 여정은 죽음으로 끝나는 참혹한 종말이 아니라, 육신의 옷을 벗는 순간 영원한 삶이 보장될 수 있는 길이 우리들의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렇다.

그러나 말세지말인 지금, 믿음의 심령들마저 휘황한 세상놀이에 눈이 멀어가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원죄(하나님 떠남)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성육신하신 그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무죄 방면을 위하여 보혈을 흘리신 십자가 그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죽음의 족쇄를 풀어주시고 부활하신 그대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대적자들을 심판하시고 믿음의 우리에게 영생복락을 확정하시기 위하여 심판 주로 오신다는데, 우리는 지금 무엇을 위한 일상을 소용하고 있는가.

오늘 집을 나선 사람들 모두가 집으로 돌아오지는 못한다. 오늘 잠자리에 든 사람들 모두가 아침을 맞이하지는 못한다. 지금 우리의 들숨 날숨이 엉키지 않고 호흡하며 존립되고 있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창조주 하나님의 자비하신 은혜이다.

매미의 울부짖음이 가슴을 뚫는다. 훵하다. 뜨거운 피를 느끼면서 무릎을 꿇는다. 장작불, 모닥불도 피우지 않았는데도 뜨거운 피가 사지 구석구석까지 흘러 생명이 유지되고 있음이 새삼 격한 감사를 몰고 온다.

환갑 전에 죽은 생명이 부지기수인데 환갑까지 호흡을 보존해 주신 하나님께 깊은 감사의 눈물이 치솟는다. 어제나 오늘이나 그저 속히 오실 그리스도 재림의 그날이 사무치게 그리운 건 세상만사 띠끌 하나 가질 것 없음을 진작에 깨달았음이랴.

하민국 목사(인천 백석동 새로운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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