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승
▲유한승 목사.
지난주에 이어서 비전과 사역에 대해 계속해서 나누려 합니다. 흔히 비전은 먼 미래의 것이라 생각하고, 사역은 현재 진행중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비전과 사명을 분리하는 순간, 지금 현재의 사명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비전을 놓치게 됩니다. 늘 야망을 좇아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청년들, 특별히 사역자들은 자신의 비전과 현재의 섬김을 검토해야 합니다. 또한 섬김과 비전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인 교회에서의 모습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오늘은 섬김과 비전의 시간 및 대상들과 특별히 교회 내에서의 모습등을 점검합니다.

[비전과 사역]


3. 섬김의 대상과 시간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고 애쓰지 말아라. 열심히 사는 자는 절로 그 이름이 기억되지만, 자신의 이름을 강조하는 사람은 그의 삶이 다하는 순간 이름도 사라짐을 잊지 말라.

: 제가 목회를 하면서 깨달은 점이 있다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수고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힘들게 사역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알리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건 이름을 남기려 애쓰고 동분서주 하는 시간에, 맡겨진 사역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저절로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라. 작은 일에 충성할수록 하늘의 상급은 더욱 크다. 또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일 이전에 섬기는 것이다.

: 큰 일을 맡겨주면 열심히 잘하는 사람이야 많습니다. 하지만 오늘 내가 해야 하는 작은 사역에 가장 큰 상급이 있음을 우리가 쉽게 잊습니다.

작년 11월 AMCM 선교를 갈때의 일입니다. 저희 교회보다 더 어려운 교회를 섬기고자 움직이는 교회 운동(AMCM)을 가던 중,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차량이 폐차될 만큼의 대형사고에 70세 넘으신 권사님들이 탑승하고 계셨습니다. 병원에 가자는 것을 권사님들은 “믿음에 빠꾸는 없어” 라며 직진하셨습니다.

그런데 다녀오신 권사님 중 한 분이 한 달 뒤 뇌출혈로 사흘 동안 의식이 없었습니다. 온 교회가 가슴이 무너지는 순간, 권사님께서 수술 후 깨어나셨습니다. 권사님 모든 가족들이 크게 상심한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눈물을 참으며 권사님과 통화했습니다. 그런데 권사님 깨어나자마자 저와 통화하면서 하신 첫 마디는 이것이었습니다. “목사님! 우리 식구들 밥은요?”

억지로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권사님께서는 우리 교회 식구들이 자기 식구였던 겁니다. 아니, 우리 교회에서 밥짓는 게 가장 큰 사역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상급이 무엇보다 클 것입니다.

권사님은 그로 인해 자녀들이 교회에 대해서나 선교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믿음이 무엇인지 오히려 가르치셨다고 합니다.

재정이 어려운 교회 형편상 크게 돕지는 못함을 안타까워했던 저와 우리 교회는, 위로비로 각 부서에서 모은 돈을 전달해 드렸습니다. 그런데 권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내 믿음 생활 수십 년에 오점을 남길 수 없습니다.”

이것이 사역이고 믿음입니다. 주님 보시기에 작고 큰 일은 없습니다. 세상 보기 작은 일을 예수님 대접하듯 일하는 자, 내게 맡겨주신 교회 식구들을 내 가족 대하듯 여기는 자, 그것이 사역입니다.

-섬김에 있어서는 내게 맡겨진 곳을 위해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것이다. 한 곳만 보기에도 시간과 체력, 지식이 부족함을 명심하라.

: 물론 특별한 은사가 있어 여기저기 교회를 다니며 부흥강사로 활동하면서도 본 교회를 섬기시는 분도 계십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내가 놓치는 일은 없는가 돌아보아야 합니다. 두 교회를 동시에 섬긴다는 일은 어려운 일입니다.

-최선을 다해 한 교회를 섬기되, 공동체간, 교회간 연합을 위해 노력하라. 언제든 열려 있어라.

: 내 교회에 집중한다는 것은 그러므로 내 교회만 보라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사역의 초점은 연합이어야만 합니다. 하나됨이어야만 합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 때문입니다. 사람이 곧 교회가 되었기 때문에, 참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사람이 만들어진 원형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홀로 됨이 좋지 못하여 서로 돕는 관계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들의 사명은 하나님의 나라를 통치하고 다스리는 것입니다.

교회도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다시 세워가야 합니다. 그런데 혼자서는 절대 할 수도, 해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 교회가 자기만 보고 홀로 그 세를 키워가면 갈수록 욕심이 커지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기 힘들어집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의 큰 문제는 ‘내 교회’만 보다가 다른 교회를 외면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약 10개의 전국 연약한 교회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또 달꿈예술학교는 한마음교회 엘림팀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비록 교회가 서로 다른 지역, 서로 모르는 청년들이 함께하지만 우리는 주 안에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함께 고민하고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연합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내려놓음’이 첫번째요 마지막입니다.

-오랜 시간 홀로 섬겨야 하는 일이라 해도,​ 내 능력보다 훨씬 부담되는 것이라 해도 기쁨으로 최선을 다하라. 하나님은 반드시 갚아주신다.

: 때로 교회 사역을 하다 보면 외롭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또는 내 능력보다 커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이 주님께로 가면, 그 멍에는 무겁지 않습니다. 오히려 쉽습니다. 주님께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내가 결단하고 짊어지면 결코 주님이 그냥 두지 않습니다.

-섬김에 앞서 광야의 시간은 필수적이다. 목회자가 광야의 훈련 없이는 결국 물질과 사람 앞에 무너지기 때문이다.

: 교회의 사역과 섬김을 ‘일’이라고 생각하는 목회자들이 너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사례비(섬김의 감사 차원에서 드리는 것)가 아닌 월급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것은 자족이 아닌 맘몬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교회가 자본주의에 녹아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섬김에 있어서 광야의 시간은 필수적입니다. 아무것도 없이 버틸수 있는 목회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돈에 무너지지 않고 유혹에 무너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그렇습니다. 광야에서 버틸 수 있는 교회가 진짜입니다. 오늘 집에 돌아왔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유 목사 교회 재정 어려워져서 사례비 못나갈 것 같아.” “네 괜찮습니다” 했습니다.

어렵습니다. 그래도 우리 교회가 믿음으로 결단한 바를 이행하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면 각오한 일입니다.

속으로 예전 다짐을 다시 곱씹었습니다. ‘말씀대로 살기 위해 광야로 간다면 가야지요. 우리 주님은 광야에 그대로 두실 분이 아니니까.’ 필요하니까 가게 하신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지성이 완전히 작동하는 시간이 아니면, 성도와 상담하는 시간은 피하라. 가능한 오전 정리 업무를 마친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완비된 시간 이후부터 저녁 11시 이전까지만 대화(전화를 포함)에 응하라.

: 오전에는 많은 하루 일과의 시작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전에는 최대한 하루 일과를 정리하고 가다듬는 작업이 중요합니다. 또한 한밤중에는 육체적으로 가장 피곤한 시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11시 이후부터는 내일과 일주일을 묵상하며 12시부터 이어지는 성경 묵상 시간이 있습니다. 이 시간은 제 몸을 휴식하면서 영성이 단련되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와 상담할 때는 전화를 포함하여 양해를 구하고, 본인이 정한 시간 내에서 상담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물론 예외의 상황은 있을 수 있습니다.)

4. 교회와의 관계

-개척을 하거나 담임목회자가 될 때 다시 한 번 점검하라. 이것이 내 야망은 아닌가 돌아보라. 야망이 아닌 주님의 비전이 되기 위해 점검하라. 만약 나로 인해 공동체 전체의 생명을 잃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다.

: 한 교회의 담임이 된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 공동체를 모세에게 맡기듯 이제 공동체 전체를 봐야 하는 자리로 가는 것입니다. ​내 선택이 과연 이 공동체에 유익한지, 아니면 내게 유익한 일인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야욕에 가득찬 지도자가 되면, 그들을 또 다른 ‘애굽’으로 이끌게 될 것입니다.

-반면 내가 모욕을 당하고 누군가에게 인기가 사라져도, 나로 인해 공동체가 주님의 교회가 될 수 있다면 기꺼이 감당하라.

: 반면 내게 어떤 일이 맡겨졌을 때, 그 자리가 담임이 되었든 어떤 직분이 되었든 그 공동체가 살아날 수 있다면, 그로 인해 스스로는 모욕과 사람에게서부터 떨어져나갈 수 있다 해도 기꺼이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세가 죄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기도했던 것처럼, ‘나를 버리시더라도 이 백성은 버리지 마옵소서’ 라고 외쳤던 기도가 필요한 자리입니다.

-맡겨진 공동체를 떠나야 할 때, 남겨진 공동체는 어떠한지를 점검하라. 소명을 버리는 사명은 없다.

: 무조건 좋은 곳에서, 큰 곳에서 불러주면 가는 목회자가 되면 안 됩니다. 많은 사역자들은, 아니 성도들도 이런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나 봅니다.

부르신 곳을 버리는 사명은 있을 수 없습니다. ​내가 꼭 가야 하는가를 점검하고, 내가 자리를 비웠을 때 남겨진 공동체에 영향을 주는 자가 없는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사탄의 궁극적 목적은 이 땅에 참된 교회를 허물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가지로 시험에 들게 합니다.

그 시험은 간사해서, 우리가 눈치채지 못합니다. 가난과 기근, 궁핍함일 수도 있지만, 가장 사랑하는 배우자가 주는 달콤함일 수도 있고, 권위가 주는 위협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명예와 물질을 통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시험은 결코 나 혼자를 무너뜨리려고 함이 아닙니다. 나를 통해 내가 몸담은 공동체를 흔들게 되는 것,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맡겨진 곳을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겠다는 결사의 각오가 필요합니다. 그 각오를 하는 자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하십니다.

-큰 비전이 생겨 떠나야 할 때, 남겨진 곳에 커다란 구멍이든 작은 구멍이든 누군가 나로 인해 피해를 봐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 내가 선택한 일이 정말 사명과 비전처럼 보여, 떠나게 될 때 한 번만 점검해 보십시오. ​내 선택으로 남겨진 곳에 상처입은 성도는 없는가? 나로 인해 이 공동체에 구멍이 생긴것이 아닌가?

나로 인해 남겨진 곳에 구멍을 둔다는 것은 대부분 자기 야망이고 결국 두려움 때문입니다. 공동체에 손실을 가져오면서 선택하는 그 길은 결코 복음의 길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손에 쥔 것을 움켜쥐고 놓치지 않으려 하는 욕심입니다. 복음은 공동체를 위해 내가 희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맡겨진 한 곳에 목숨을 다해 충성하라. ​만약 다른 단체에서 설교나 무언가를 제안했을 때, 늘 현재 섬기는 교회를 우선해서 판단하라. ​정말 그곳이 내가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지금 내가 이곳을 비울 때 나로 인해 누군가가 피해를 봐야 하는지를 잘 점검하라.

: 전에 어떤 장로님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그분에게 옆 분이 현재 한국교회 유명한 목사님부터 흐름 등을 이야기하고 장로님 생각을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그 장로님이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합니다. “목사님…, 저는 바보같이 한 교회만 봐서 한 교회밖에 모릅네다. 죄송합네다.” 그 말씀 앞에 모두 숙연해졌습니다.

참으로 많은 교회들을 기웃거리고 다양한 설교자의 설교로 우리 머리는 커졌지만, 정말 사역이 뭔지를 모르는 우리 모습이 비춰졌습니다.

한 곳만 보면 됩니다. 바보처럼 한 교회만 섬기는 것이 참 은혜가 됩니다. 나는 한 곳만 봤는데 하나님은 여러곳을 통해 일해주시는 것, 그것이 비전입니다.

안타깝게도 생각보다 참 많은 성도들이, 그리고 사역자들이 엉뚱한 이유로 교회를 떠나거나 다른 곳을 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 뜻이라고 자기 마음대로 해석합니다. 비전은 하나님이 보시는 것이지, 내가 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시선은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필요하여 부르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그 어떤 섬김이나 설교를 할 때도 사례를 받지 말라. 삯군이 되지 않고 순전한 복음을 위해서이다. ​하나님은 늘 보고 계신다.

:부족한 저도 간혹 몇몇 곳에서 불러주신 일이 있습니다. ​사례비를 주시는 것을 거절하기가 참으로 어렵고 복잡하기도 합니다.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이로 인해 “왜 교회 관행인데 그러냐”부터 여러 오해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제 오랜 생각이고 하나님과의 약속입니다. 제가 목사 안수 받을 때 목회철학을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존경하는 선배 목사님.. 제 목회 철학은 고린도전서 8장 13절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가 저를 보면서 ‘목사님 같은 사람도 고기를 먹네요?’ 하고 함부로 판단하고 신앙의 성숙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이 없도록, 믿음이 연약한 자를 위해 제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을 포기하며 사는 목회자가 되고 싶습니다.”

-맡겨진 교회에서 받는 사례비로 충분한 사람이 되라. 다윗이 사울왕의 하사품이 ‘내게 맞지 않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선택한 것이 늘 초원에서 사용하던 물맷돌인 것처럼, 하나님은 내게 있는 것에 자족하는 마음을 가진 자를 통해 천하를 바꾸시는 분이심을 잊지말라.

: 간혹 사례비가 적다고 투덜대며 농담처럼 이야기하는 사역자를 보면, 참 마음이 아픕니다. 그들이 담임이든 전도사든 부목사이든, 그 이야기는 듣는 성도들과 아이들에게 목회자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지 이미 판단하게 만듭니다. 그것은 너무 위험한 일입니다.

내게 주신 것은 언제나 감사한 것입니다. 저는 교회를 섬길 만한 자격이 없는 오네시모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 저를 용서하신 주인 되신 주님께서 맡겨주셨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세상의 관점에서 사치로 여겨지는 세상의 일들을 하지 말라. 성도들은 목사의 설교에서만 은혜받는 것이 아니다. 삶이 힘든 성도들일수록 목사가 검소한 삶을 함께 살아줄 때, 위로를 받는다.

-아무것도 없는 나를 목회자로 여겨주고, 성도들의 귀한 헌금으로 사례비를 주고 있는 신분임을 잊지 말라. 그런데 그 돈을 자기 유익을 위하여 사용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 하찮은 나에게 굽신거리는 어르신들과, 힘겨운 삶에도 목회자로 존중해주는 성도들을 배신하지 말아라.

: 목회자가 되면, 아니 점점 섬김의 기간이 길어지고 담임이 되면서 나타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고개가 뻣뻣해집니다.

사역자가 되었다는 것은 가장 볼품없는 죄인된 삶을 살았던 사울이 하나님의 은혜로 바울이 된 것입니다. 세상에 이름 알린 왕 같은 큰 자가, 이제 주님의 작은 종 바울이 되는 것, 그것이 은혜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역을 하면 할수록 자신은 괴수 중에 괴수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성도들이 고개 숙이는 만큼 미안해져야 합니다. 귀한 사례비를 자기 유익을 위해 사용할 때, 마음 아파야 합니다.

현재 제 통장에는 마이너스 잔고가 있습니다. 제게 주신 사례비 105만원 중 차량 유지비, 개인 통신비 등을 제외한 모든 비용은 교회 아이들 밥값으로 지출됩니다.

저는 배우자가 없습니다. 저는 교회와 결혼했습니다. 그래서 자식이 많습니다. 우리 교회 아이들이 자식 같고 조카 같고 동생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식탁 교제를 즐기셨듯, 그렇게 같이 밥먹고 지냅니다. 제게 주신 돈은 저를 위해 쓰라고 주신 돈이 아닙니다.

5. 섬기는 교회의 비전

-교회를 하나되게 하는데 초점을 맞추라. ‘끼리끼리’처럼 안좋은 교회됨은 없다.

그러나 가장 가르치기 힘든 것이다. 교회 공동체를 하나되게 하는 것을 위해 교회 내 그룹화와 비그룹화를 수시로 병행해야 한다.

나아가 전체를 하나되게 하기 위해서 목사 스스로 홀로 될 필요가 있다면 홀로 되라. 특별한 누군가와만 가까이 하지 말라.

:교회가 하나 되게 하는 일은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나이별로 되어 있는 부서들을 훈련시키는 것도 필요하지만, 모두 한데 모으거나 적절히 혼합하여 하나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만약, 전체를 하나되게 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목사는 늘 혼자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공동체를 모이게 하신 하나님은 그 공동체에게 소망을 주신다. 믿음의 공동체가 가지는 비전은 사랑이다. 공동체가 서로 모여, 사랑하는 일을 해야 한다.

: 공동체는 하나되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 내에서 시기 질투가 얼마나 심한지 모릅니다.

누군가가 안 나오면 잘됐다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도 참 많습니다. 스스로 발견해야 합니다. 마음에 안 맞는 사람을 사랑하는 연습부터 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목회자뿐 아니라, 성도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재정은 늘 투명하게 공개하라. 그 투명성은 세상에서도 볼 수 있도록 투명해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만 드러날 수 있도록 가리워야 할 것들은 가리워야 한다.

:교회의 재정이 투명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시대의 흐름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세상에서도 그렇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모든 것을 다 드러내야 하는가는 심사숙고 해봐야 합니다.

예를 들면, 내가 얼만큼 헌금했는지를 드러낼 때, 과부의 두 렙돈을 낸 자는 상처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헌금 액수 등을 누가 얼마를 냈는지를 가리워주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또 이런 일이 있습니다. 특별한 성도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 이 부분을 지원해주는 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일을 모두에게 공개할 경우, 이 분이 오히려 낙인효과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특정한 공개하지 못하는 점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일은 사전에 충분히 논의되어, 왜 공개하지 못하는지 등을 설명하고, 투명성, 그리고 적절한 가리워줌의 은혜로 교회에 균형이 갖춰져야 합니다.

-교회 건물을 교회를 위해서만 사용하지 말라. 교회는 늘 세상을 위해 존재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교회 공동체의 모든 프로그램과 장소와 시간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도록 고민하라.

-교회 건물을 지을 돈이 있다면, 그 돈으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일에 투자하라. 아이들에게 복음의 정신으로 사랑을 주는 일이야말로 최고의 건축이다.

: 우리 교회는 현재 지하 셋방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여타 교회들도 지하 교회가 많지요. 그런데 우리 교회는 매달 매달 긴장의 연속입니다. 누전되고, 물이 새고 곰팡이 가득한 곳곳…. 그런데 이런 교회가 한 둘이겠어요.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상황에서의 고백이 다릅니다.

얼마 전 노회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목사님들께서 기도제목을 나누시며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교회 건물이 필요하니 기도해 달라 하셨습니다.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가진 비전을 그대로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이 주인 되신 교회라는 철학처럼…, 제가 없어도 좋은 교회 되도록 기도해 주세요. 그리고 건물 별로 안 좋지만 그렇다고 건물 우선 아니고, 계속 사람을 건물처럼 세워나가는 교회. 더 연약한 교회를 돕는 사명 잊지 않는 교회 되게 해주세요.”

-교회 자신을 위해서 50%, 교회 외부를 위해서 50%를 사용하는 교회가 되어라. 그것이 안되면 다이어트를 해서 건강성을 찾아야 한다. 잊지 말라. 다이어트는 각오 없이는 삼일만에 끝난다. 다이어트는 결심이 계속 반복되고 지속적이어야 한다. 힘들고, 때론 배고파 죽고 싶다 해도 버틸 때 건강한 다이어트가 됨을 잊지 말자.

:많은 교회들도 이처럼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런데 환경이 열악한 교회는 이런 경우 자기부터 살고 봐야 합니다. 때로 우리에게 이런 두려움이 있습니다.

“한 달란트 가졌는데 어떻게 해.” 그래서 그냥 땅에 묻어두고, 자기 일만 열심히 합니다. 주님이 맡겨주신 달란트로 일할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는 겁니다.

제게도 이런 두려움이 있습니다. 환경이 열악하고 힘들다고 주님 맡겨주신 사명을 다하지 못하면 어쩌나…. 혹시 우리 교회, 한 달란트 가진자는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다시 일어나 매일 매일 열심히 살려 노력합니다. 비록 계속 물이새고 곰팡이가 피고, 그로 인해 이 환경 때문에 성도가 떠나는 아픔이 있다 해도, 무엇이 우선인지를 가르쳐야 할 사명이 제게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올바른 교회를 세워가야 할 사명이 저와 우리 교회 모두에게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맡겨주셨으니까요. 한 교회를 주셨는데, 제가 다른 곳을 볼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맡겨주신 교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섬기고 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