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앙리 베르

김형태 총장
그송은 “사색하는 행동인, 행동하는 사색인”을 말했다. 사색만 하는 무력한 지성인도 아니고 천방지축 좌충우돌 행동만 일삼는 이도 아니라, 사색과 행동의 상호보완과 균형을 이루는 것이 필요하다. 먼저 짧은 시를 읽으면서 생각을 정리해 보자.

①“더 가까우면 멀어질까/ 더 멀어지면 잊혀질까/ 늘 함께 하면서/ 가깝지도 멀지도 않네// 오르막길 힘들어할까/ 둘이서 올라가고/ 내리막길 미끄러질까/ 둘이서 내려가네// 내 가는 길 구부러지고 멀어도/ 늘 말없이 함께 해 주는 너/ 네가 있어 내가 있고/ 내가 있어 네가 있다”(강병옥/ 평행선).

②“스스로에게 엄격하고/ 남에겐 너그럽기를// 하지만 때때로/ 그 엄격함이/ 타인을 재단하는 율법이 되고// 너그러움은/ 못난 우월의식의/ 또 다른 모습이어서// 여전히/ 자신과 타인에게/ 자유하지 못할 때// 난 교만의 껍질을/ 말없이 뜯어내며/ 다시 자유에로의/ 발걸음을 재촉한다”(곽영준/ 자유여행).

이젠 두려움의 대상에 대해 사색해 보자. 당신은 누구를 두려워하는가?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곧 하나님을 경외(敬畏)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영광과 존귀, 감사와 찬양 등 그 분에게 합당한 것을 올려드린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우리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이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 앞에서 두려워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미워하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해야 한다.

그러면 사람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 앞에서 놀라며 불안해하고 굽실거리고 근심하며 당혹스러워 하고 겁내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 도망치며 손해나 비방을 면하려고 발버둥치며 대결을 피하려고 한다.

우리는 자신을 보호하며 사람을 섬기느라, 바쁘다 보니 하나님을 섬기지 못한다. 이처럼 사람을 두려워하다 보면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경외를 드리지 못하게 된다.

성경은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잠 29:25)”고 일러주고 있다. 사람을 두려워하게 되면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빼앗기고 안전보장도 누리지 못하며 하나님이 주신 은사는 잠들게 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능력이 더 이상 역사하지 못하므로 옳은 일을 행하지 못하게 된다.

우리는 비방받지 않으려고 사람들의 비위를 맞출 때,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그분을 경외하지 못한다. 사람은 두려워하는 대상을 섬기며 그에게 복종하게 되므로 사람을 섬기는 자는 동시에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

그래서 사람을 두려워하는 자는 하나님을 경외할 수 없는 것이다. 술을 마시면서 동시에 휘파람을 불 수는 없기 때문이다.(마 6:24)

위기 대처 방식에서도 ‘닭 유형’과 ‘독수리 유형’으로 나뉜다. 폭풍이 몰려오면 닭은 몸을 날개에 묻은 채 숨을 곳을 찾는다. 그러나 독수리는 거대한 날개를 활짝 펴서 태풍에 몸을 싣고 유유히 날아올라 안전지대도 올라간다.

인생의 폭풍을 만날 때도 사람은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고통스러운 일, 억울한 일, 괴로운 일이 닥치면 닭처럼 숨는 사람과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담대하고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독수리 같은 사람이 있다.

문제를 해결하고 역사를 발전시키는 사람은 닭 유형이 아니라 독수리 유형이다. 시련은 일단 피하고 보자는 식의 인생 여정엔 고난과 좌절이 멈추지 않는다. 인류 역사는 담대하게 고통을 극복한 사람들에 의해 운영돼 왔다.

서양 속담에 “폭풍이 바이킹을 만들었다”와 “비가 와야 무지개가 뜬다”는 말이 있다. 백합은 가시에 찔릴 때 더 진한 향기를 발한다. 사나운 폭풍우 때문에 항해술과 조선술이 발달했고, 나일강은 정기적인 홍수와 범람 때문에 달력(홍수 예측을 위해)과 기하학 측량기술(범람 후 농토 구분 위해)을 발달시켰고, 이집트 문명을 이룩한 것이다. 모진 바람과 추위를 이겨내야 좋은 목재가 된다.

김형태 박사(한국교육자선교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