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총장
노아는 120년간 방주를 만들어 대홍수 중 8명의 식구를 구했고, 950세에 죽었다. 아브라함(175세), 이삭(180세), 야곱(143세), 요셉(110세), 모세(120세), 여호수아(110세)도 장수한 지도자들이었다. 갈렙은 85세에도 40대 청년 같은 기개를 자랑했다.

2018년 현재 한국의 남성은 79.3세, 여성은 85.4세가 기대수명이다. "우리의 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10)"는 말씀에서 보듯, 우리는 생로병사(生老病死)를 거친다. 결국 "산 자는 죽게 돼 있고, 만나면 헤어지는 것이다(生者必滅, 會者定離)." "산 사람은 죽게 돼 있고, 죽은 후에는 반드시 심판을 거쳐야 한다(히 9:27)."

다음 시를 보라. "죽음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 왜 그렇게 살다 가느냐고 따지지 마라/ 의미 없이 살다가는 삶은 하나도 없다/ 어쩌다 태어나서/ 주어진 생의 한 페이지를 나름대로/열심히 채우고 가는 길이다

그래서 죽음은 숭고한 것/ 서러운 인생 끝까지 다 마감하고/ '오라' 하시니 가는 길이다

수고했다/ 정말 수고했다고/ 한세상 다 하여 돌아가는 길/ 말없이 떠나는 이/편히 가시라고/ 경건한 마음으로 보내드리자// 영원한 이별이라고/ 눈물도 흘리지 말라/ 모두 부질없는 일/ 조용히 침묵으로 보내드리자

그저 한세상 살다가/ 때가 되니 조용히 막을 내리고/ 퇴장하는 것뿐이다(엄원용/임종II)".

그러나 인간들이 모두 같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아니다. 죽은 뒤에 무(無)로 사라지는 자도 있고, 아름다운 죽음도 있으며, 영생(永生)하는 통과자도 있다. 예컨대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황제 대리인 현장감독장교(백부장)의 고백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로 판명됐고(마 27:54), "의인"이라고 고백되었다(눅 23:47).

지난 2018년 5월 26일, 불교 지도자 중 한 분인 설악산 신흥사 조실(祖室) 무산(霧山) 스님(86세, 조계종 大宗師, 조오현)이 입적(入寂)했다. 여러 일간지들이 특집과 칼럼을 통해 대서특필로 그의 생애를 조명해 주었다. 특히 시인이기도 했기에 더욱 돋보였던 것 같다.

①그의 오도송(깨달음의 노래)은 "밤늦도록 책을 읽으며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먼 바다 울음소리를 홀로 듣노라면 천경(千經) 그 만론(萬論)이 모두 바람에 이는 파도란다"로 되어 있다.

②그는 임종게로 "천방지축(天方地軸) 기고만장(氣高萬丈) 허장성세(虛張聲勢)로 살다 보니 온몸에 털이 나고 이마에 뿔이 돋는구나, 억!"이라 하여 겸손함을 표하고 있다.

③그의 대표 시로 <아득한 성자>가 있다.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도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은 하루살이 떼

죽을 때가 되었는데도/ 나는 살아 있지만/ 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 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하루살이 떼".

'하루'에 담긴 '영원'을 깨닫지 못한 채 덧없이 하루하루를 살기만 한다면, 과연 어느 하루인들 제대로 산 것이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그는 "부처의 삶을 살지 않고 그냥 부처가 되겠다고 죽을 때까지 화두나 붙들고 참선해 가지고선 절대로 부처가 되지 못한다"고 했고, "불심(佛心)의 근원은 중생심(衆生心, 民心)이며 중생(백성)의 아픔이 없는 화두(설법·설교·강론)는 사구(死句) 흙덩어리일 뿐이라"고도 했다.

늙수그레한 염(殮)장이 영감이 지극정성으로 시신을 돌보면서 40년간 염을 했더니, 시신만 봐도 그 인간의 삶이 다 보인다고 한다. 그 사람 말이 곧 대장경이요, 생로병사, 제행무상, 화엄경, 법화경 등이다. 그의 삶 속에 들어가 있다고 한다.

무산 스님은 해골을 옆에 놓고 "이게 우리의 진면목"이라고 하며, 모두가 바람에 한 번 움직이는 파도라고 했다. 그는 "끊임없이 탐구하고, 끊임없이 어리석으라(Stay hungry, stay foolish)"는 스티브 잡스의 말을 인용해 "늘 진리에 배고파하라"고 충언하곤 했다.

또 성직자들이 하나님과 만난다는 것을 잊은 채 욕심에 사로잡혀 영적 치매에 걸린 것을 경고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을 낙승(落僧, 실패한 중)이라 했지만 세상은 그를 비승(飛僧, 성공한 스님)이라 한다.

우리 기독교 목회자들 중에 무산(霧山) 스님만큼 존경받으며 깨끗하게 살다가 죽은 뒤, 신문 방송이 특집으로 다루면서 국민적 애도를 표할 만한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생각해 본다.

김형태 박사(한국교육자선교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