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 이승훈
▲남강 이승훈 선생.
제주도에 유배된 남강은 좌절하지 않고 미래의 꿈을 생각했다. 작은 초가집에 머물며 낮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밤에는 성경을 읽으며 기도를 드렸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제주도는 본토와 떨어진 소외된 섬이라 개화의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차에 유명한 사업가이자 민족운동가인 남강이 왔으니,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은 당연했다. 학교와 교회에서 강연 요청을 하면, 남강은 절대로 마다하지 않았다. 유배된 신세였으나, 남강은 가능한 한 제주도민들에게 민족정신과 개화사상을 일깨워 주려 애썼다.

"제주도에 와서 산수가 아름답고 기후가 따뜻한 데 놀랐습니다. 제주도는 탐라 고국으로서 한반도의 본이 되게 하기 위하여 하늘이 여기에 둔 것입니다.

제주도가 한반도의 본이고 한라산이 산의 본인 것처럼, 제주도 사람들도 한국 사람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와 교회와 공장을 많이 세워야 합니다.

제주도는 남해에 솟아 있는 섬이어서 육지에는 목양과 약초 재배와 특수농작이 적당하고 해안과 바다에는 어항과 어장을 만들기에 적당합니다. 나는 얼마 전에 해안선을 돌아보고 한라산 중턱에 올라가 보았습니다. 제주도야말로 우리 자손들이 영원히 번영할 수 있는 모범지역입니다.

나는 우리가 여기에 새로운 교육기관을 많이 만들어 힘써 배우고 부지런히 일하면 겨레의 영광을 회복하는 놀라운 광명이 여기로부터 본토에 비칠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그는 유배되어 있는 절망적 상황에서도 희망을 찾아낼 줄 아는 창발적인 사람이었다. 일제의 강제병탄 이후 전국의 사립학교는 줄었는데, 제주도에서는 오히려 늘어났다.

남강은 마을 청년들을 모아 무너진 다리를 고치기도 하고, 더러워진 우물을 깨끗하게 치우기도 했다. 그리고 청년들과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곤 했다.

"나라를 사랑하는 일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요. 작은 일이라도 서로 돕고 사는 것, 이보다 더 훌륭한 나라 사랑 정신이 어디 있겠습니까? 비록 우리 힘이 약해 일본에 주권을 빼앗기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으면 절대로 안 됩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듯이 아직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교육과 산업을 일으켜 힘을 기르고 우리 온 국민이 하나된다면 반드시 나라를 되찾을 수 있습니다. 절대로 절망하면 안 됩니다!"

청년들은 큰 감명을 받아 박수로 응답했다.

남강은 혼자 있을 때면 조용히 묵상하며 성경을 읽었고, 겸허히 엎드려 기도하는 시간으로 보냈다. 그의 기도는 언제나 한결같았다.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시여, 저처럼 비천한 자를 불러 믿음을 가지고 살도록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부터는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더욱 믿음을 가지고 빼앗긴 우리나라와 겨레를 위하여 살 수 있도록 해주소서. 그리고 우리 오산학교를 민족의 등불로 만들어 주소서.'

나이 많은 노인들에게서 제주도 역사와 지리에 얽힌 여러 가지 전설을 듣는 일도 의미가 있었다.

얼마 동안 마을 사람들과의 왕래가 익숙해지자 그는 평소 생활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비를 들고 거리를 쓸기도 하고, 동네 아이들에게도 많은 관심을 가져 서서히 토박이들과 친해졌다.

제주도 사투리는 생경하면서도 독특한 운치와 매력이 느껴졌다. 남강은 소탈한 마음으로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곧 익숙해졌다.

김영권 남강 이승훈
▲김영권 작가(점묘화).
김영권 작가

인하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한국문학예술학교에서 소설을 공부했다. <작가와 비평>지의 원고모집에 장편소설 <성공광인(成功狂人의 몽상: 캔맨>이 채택 출간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작품으로는 어린이 강제수용소의 참상을 그린 장편소설 <지옥극장: 선감도 수용소의 비밀>, <지푸라기 인간>과 청소년 소설 <보리울의 달>, <퀴리부인: 사랑스러운 천재>가 있으며, 전통시장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그린 <보통 사람들의 오아시스> 등을 썼다.

*이 작품은 한국고등신학연구원(KIATS)의 새로운 자료 발굴과 연구 성과에 도움 받았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