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동욱 목사(서울 예정교회 담임, 한국지역복음화협의회 대표회장).
▲설동욱 목사(예정교회 담임, 세계복음화협의회 대표회장).
사람이 죽고 나면 자신의 삶에 대한 묘비명을 남긴다. 해밍웨이는 "일어나지 못해서 미안하오"라고, 박인환 시인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이라고 묘비명을 남겼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잘 놀다 갑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나는 아쉬울 것 없노라"는 묘비명을 남겼다.

그런데 "주님을 섬기다 간 사람"이라는 소박한 묘비명을 남긴 사람이 있다. 장기려 박사다. 그는 병원 갈 형편이 못 되어서 죽어가는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부산에 천막을 치고 복음병원을 세워 행려병자를 치료해 준, 한국의 슈바이처 박사다. 그는 의과대학을 들어갈 때 "이 학교에 들어가게 해 준다면 의사를 한 번도 만나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노라"고 기도했다. 춘원 이광수의 '사랑'의 주인공 캐릭터가 될 만큼 청빈과 박애의 삶을 살다 간 성자였다.

어느 날 농촌에 살던 아낙네가 중병에 걸려 그의 병원에서 수술을 했는데, 수술비를 낼 수 없어 밤새 고민하다가 병원장실을 찾아와 도와달라고 애걸했다. 그의 대답은 "언제 기회 봐서 환자복을 갈아입고 병원을 탈출하라"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바보 천사임이 분명했다.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고이 잠든 그의 묘비에는 "주님을 섬기다 간 사람"이라는 소박한 글귀가 부끄러운 우리의 가슴을 젖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