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금 김명혁
▲김명혁-전병금 목사. ⓒ이대웅 기자
'나환자(한센병 환자)와 원수 사랑의 영성을 염원하며'라는 주제로 김명혁 목사(한복협 명예회장, 강변교회 원로)와 전병금 목사(강남교회 원로)가 17일 오전 서울 강변교회(담임 이수환 목사)에서 대담을 진행했다.

김명혁 목사는 인터넷방송 21tv 주최로 교계 주요 인사들과 매달 다른 주제로 대담을 갖고 있다. 3월에는 허문영 박사(통일선교아카데미 원장)와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염원하며', 4월에는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 원장)와 '가난과 고난과 죽음의 십자가 영성을 염원하며'를 주제로 각각 의견을 나눴다.

이번 대담 주제 '한센병 환자와 원수 사랑의 영성을 염원하며'는 당시 '천형, 문둥병'으로 알려진 한센병 환자들을 평생 섬기고,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친아들 삼아 함께 살다 결국 북한군에 의해 순교한 '사랑의 원자탄' 故 손양원 목사의 신앙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대담은 발표와 토론 순으로 이어졌다.

◈"기독교 신앙이 이렇게 위대한 것인가"

먼저 전병금 목사는 "중학교 시절 손양원 목사님이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섬기면서 입으로 상처 고름을 빼줬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찌 저렇게까지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는 한센병이 전염된다고 하던 때"라며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 달려 돌아가셨지만 한센병 환자의 고름을 빨아주셨다는 말은 없었는데, 손양원 목사님은 그 정도로 환자들을 사랑했던 것이다. 어려서부터 손 목사님의 삶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전 목사는 "이후 1948년 10월 여순 반란사건 때 좌익 학생들에 의해 두 아들이 살해당했음에도, 그들의 장례식에서 '아들들을 미국에 유학보내려 했는데, 더 좋은 천국으로 가게 돼 너무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스럽다'고 한 말씀이 정말 큰 사랑으로 각인됐다"며 "살인범을 용서해 달라고 하고 집에 데려가 함께 식사도 하고 공부도 시켰던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독교 신앙이 이렇게 위대한 것인가' 하는 마음에 저도 그런 신앙과 그런 사랑을 갖게 해 달라고 기도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 얼마 전 손 목사님이 쓰신 글을 읽었는데, 아들 삼은 살인범을 집에 데려다놓고 함께 식사하는데 '모래를 씹는 것 같았다'는 구절이 있었다. '원수도 사랑하라는 말씀을 따라 용서하고 자식을 삼았는데, 밥을 먹는 게 모래를 씹는 것 같으니 사랑이 없는 사람인가. 양아들 삼은 안재선을 천사로 보이게 해 달라'고 오래 간절히 기도했더니 사랑스러워지더라는 것이었다"며 "손 목사님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목사님 안에도 마음 속에 사랑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었다"고 전했다.

전병금
▲전병금 목사가 이야기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전 목사는 "손 목사님은 한센병 환자들을 대할 때도 '그들을 천사로 대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서 그렇게 하셨다. 다른 사람들은 환자들과 악수할 때 장갑을 꼈지만, 손 목사님만 안 끼고 악수하셨다"며 "그 분의 위대한 사랑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한국교회의 재산이자 보화인데, 오늘날 한국교회는 이를 이어받지 못하고 사랑보다 성장, 성공 등에 관심을 갖고 말았다"고 개탄했다.

그는 손양원 목사의 신학 사상을 네 가지로 정리하기도 했다. 첫째는 '자족하는 신앙'으로, 어떤 처지에서도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이를 하나님 주신 축복으로 알면서 불평하지 않았다. 둘째는 '효(孝)'로, 아버지가 구속되자 서울 학교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에 내려가 아버지를 섬겼다. 그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도 효가 사라졌지만,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라며 "이러한 효를 이어받아야 한다"고 했다.

셋째는 '사랑의 실천'이다. 그는 "신학교 졸업 전부터 한센병 환자들에게 사랑을 실천하셨다"며 "한센병 환자와 원수에 대한 사랑을 직접 실천한 분으로, 한국교회가 이를 이어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기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민족 사랑'이다. 그는 "잘 알려진 앞의 세 가지와 달리, '민족 사랑'은 제가 발견한 것"이라며 "주기철 목사님과 김구 선생님 같은 분들에게서 민족 사랑의 정신을 이어받았다"고 했다.

전병금 목사는 "오늘날 한국교회가 타락하고 위기를 겪고 있다. 목사님들도 출세와 성공만 생각할 정도로 세상의 사탄적 문화와 다를 바 없다"며 "손양원 목사님의 사랑의 정신을 배우고 부단히 기도하고 연구한다면, 한국교회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살다 죽은 손양원 목사님"

이어 김명혁 목사는 "1955년 고등학교 시절 어느 날,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책을 읽고 울고 또 울면서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서 깊은 감동과 은혜에 사로잡힌 일이 있었다"며 "어찌 이런 분이 계신단 말인가. 결국 손 목사님은 제가 제일 존경하고 사랑하고 닮고 싶은 신앙의 스승님이 되셨다"고 전했다.

김 목사는 "오래 전 손양원 목사님의 이야기를 담은 '용서를 넘어선 사랑'이란 창작극을 매주 한 편씩 관람하면서 2시간 30분간 감동과 참회의 눈물을 흘리곤 했다"며 "마지막 회를 관람한 후 손동희 권사님(손양원 목사의 딸)을 모시고 한 평생 아픔과 고통의 삶으로부터 쏟아내는 생생한 증언을 들으면서, 다시 한 번 뜨거운 감동과 참회의 눈물을 쏟았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죽을 수는 없을까' 하는 절박한 영혼의 소원과 갈망을 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손양원 목사의 삶과 죽음에 대해 세 가지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먼저 '믿음으로 살다 믿음으로 죽었다'는 것. 이에 대해 "동방요배 거부는 물론 주일성수를 위해 주일날 등교를 거부해 학교에서 벌을 받곤 했다"며 "신사참배 거부로 5년간 옥고를 치르며 갖은 고문을 당했지만, 주님을 향한 일편단심의 신앙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김명혁
▲김명혁 목사가 이야기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둘째로 '사랑으로 살다 사랑으로 죽었다'. 김 목사는 "그의 사랑은 한센병 환자 사랑과 원수 사랑으로 나타났다. 해방 후 애양원 교회로 돌아가 남은 생애를 환자들과 동고동락하며 모든 정성과 사랑을 쏟아부었다"며 "손 목사님의 사랑의 극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안재선을 용서하고 그를 사랑으로 품었던 것"이라고 했다.

셋째로 '소망으로 살다 소망으로 죽었다' 그는 "손 목사님의 삶은 천국과 종말신앙에 의해 지배된 소망의 삶이었다. 그의 가슴과 의지와 시선은 세상이나 세상의 안일에 매이지 않았고, 오직 천국과 내세에 붙잡혀 있었다"며 "손 목사님은 이 세상의 재물이나 평안이나 명예에는 티끌만큼의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가난을 애처로 고난을 선생으로 죽음을 소원으로' 삼고 천국을 바라보면서 하루하루 살았다"고 설명했다.

또 "손 목사님은 옥중 생활을 하면서 힘들고 지칠 때마다 손수 지은 '주님 고대가'를 불렀다. 그러다 결국 1950년 9월 13일 공산군에게 체포돼 2주일간 온갖 수모와 고초를 당했고, 9월 28일 밤 11시쯤 미평 과수원에서 총살당해 48세에 순교했다"며 "그가 그렇게도 그리고 사모하던 천국으로 갔다"고 했다.

김명혁 목사는 "손양원 목사님을 깊이 생각하면서, '나도 손 목사님처럼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지니고 살다가 죽을 수는 없을까?'라는 절박한 영혼의 소원과 갈망을 품게 됐다"며 오래 전에 썼던 글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손양원 목사님은 죽기까지 믿음을 지킨 믿음의 사람이었고, 생명을 바쳐 나환자들과 원수를 사랑한 사랑의 성자였으며, 천국을 바라보고 사모하면서 산 소망의 사람이었다. 나도 안일이나 평안이나 생명의 귀중함을 분토와 같이 버리고 세상의 어떠한 유혹이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죽도록 충성하며 신앙의 절개를 지키다가 순교한 손양원 목사님처럼,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죽을 수는 없을까?

나도 나환자의 환부를 입으로 침으로 빨면서 사랑을 쏟아 부었던 손양원 목사님처럼, 자기의 두 아들을 총살한 '악의 축'이요 '사탄'이요 '마귀 새끼' 같은 안재선을 용서하는데 그치지 않고 사랑하여 자기의 양 아들로 삼은 손양원 목사님처럼, 그리고 자기를 총살하는 '악의 축'이요 '사탄'이요 '마귀 새끼' 같은 인민군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한 후 숨을 거둔 손양원 목사님처럼, 그렇게 절대 용서와 절대 사랑을 베풀며 살다가 그렇게 죽을 수는 없을까?

나도 세상에 대한 미련이나 애착을 모두 헌 신짝처럼 집어 던지고 오직 주님과 천국을 바라보고 사모하며 '주님 고대가'를 부르면서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죽을 수는 없을까? 나는 지금 이와 같은 절박한 영혼의 소원과 갈망을 품는다.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