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딜런
▲젊은 시절의 밥 딜런.
'하나님이 운행하심, 오직 바람만이( The answer is blowin' in the wind).'

바람, 바람은 능동적이고 격렬한 상태에 있는 공기이다. 상징적 의미는 창조적 숨결이며 발산하는 그 무엇이다. 우주를 지배하는 일차적 요소이다.

스위스의 정신의학자로 분석심리학의 개척자인 칼 융(Carl Gustav Jung(1875-1961)은 바람이란 낱말은 숨결과 정신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소유한다고 했다.

왜 시인은 모든 해답이 바람에게 있다 하였을까. 꿈 꾸듯 바람에게 물어보라 하였을까. 생명권과 자유와 행복추구권..., 이 무거운 주제들의 해답, 그것은 문학을 통해 인간이 꿈꾸는 유토피아이다. 비록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곳이지만 꿈꾸며 닿을 수 잇는 곳, 그 장소와 닿는 방법을... 바람은 알고 있다고 하였다.

생각해 보라. 바람이 가장 능동적이고 격렬한 상태가 되는 것이 태풍이다. 태풍은 물, 불, 공기, 대지, 네 요소의 융합으로 소생의 힘을 상징한다.

따라서 문학에서는 악의 힘도 되고 소생의 힘도 된다. 아기 울음 같은 순수한 생명의 숨결이 되는가 하면, 목마름이기도 하고, 갈증을 해소하는 생명수이기도 하다.

때론 창밖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도 있다. 잠든 내 감성을 일깨우고 사랑의 추억을 되살린다. 나를 흔들며 애무하는 무형의 어떤 것, 그것이 문학 속의 바람이다.
 
풀잎의 시인 박성륭(1932-2002)의 고백을 보자.

바람이여
풀섶을 가던, 그리고 때로는 저기 북녘의 검은 산맥을 넘나들던
그 무형한 것이여
너는 언제나 내가 이렇게 한낱 나뭇가지처럼 굳어있을 때
와 흔들며 애무했거니
나의 그 풋풋한 것이여
불어다오
저 이름 없는 들풀들을 향한 나의 사랑이
아직은 이렇게 가시지 않았을 때
다시 한 번 불어다오, 바람이여
아 사랑이여.

그렇다. 한낱 겨울 나무가지처럼 굳어있을 때 찾아와 흔들어 애무하며 격려해주는 바람, 그것은 죽음을 극복하는 생명, 사랑을 상징한다.

바람이 태풍이던 날, 미국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현장 중 하나를 우리는 기억한다.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1929-1968) 목사 가 이끈 워싱턴 행진(1963)과 그 현장에서의 밥 딜런의 노래 '배가 들어오네(When the Ship Comes In)'를. 킹 목사는 신의 자녀로서의 생명권과 자유와 행복 추구권을 선포하고, 딜런은 시로 그 길을 예비한다.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 모든 골짜기들은 메워지고, 모든 언덕과 산들은 낮아지고, 거친 곳은 평평해지고, 굽은 곳은 펴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그 영광을 보게 될 그 하늘, 그 땅....

그때 사람들은 미국 문학의 위대한 정신, '블레이크와 휘트먼에게서 물려받은 그 횃불'이 타오른다고 했고, 피츠제럴드의 초록의 불빛이 찬란하다 했다. 정녕 밥 딜런을 밀턴이나 브레이크와 같은 위대한 기독 작가의 반열에 두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시 '바람'으로 돌아간다. 어쩌면  바람의 신학적 의미는 성령이 아닐까 싶다. 구약 성경에는  바람에 날개가 달렸다는 표현이 있다. 이는 신학적 의미로 하나님의 존재의 표현이라 했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네 개의 바람은 온전함의 의미이다.

예언자 예레미아는 '하늘 네 끝에서 오는 네 바람'을 하나님의 명령을 받는 존재로 묘사했다(렘 49:35-36 참조). 네 가지 바람은 하나님이 쓰시는 무기라는 뜻 아닐까. 다니엘서에도 하늘에서 불어오는 네 큰 바람이 큰 바다를 휘저었다 했다.

그렇다. 사방의 바람 같은 숨결과 정신과 상황을 하나님께서 조정하신다는 뜻이다. 인류의 역사에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인문학을 비롯한 문학과 모든 예술, 그리고 과학기술의 발전과 문명을 그 분이 운행하신다는 뜻이다.

송영옥 기독문학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영남신대 외래교수).
'밥 딜런, 미국의 꿈 인간의 꿈', 이 주제를 끝맺음하면서, 나는 문학이 지닌 한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독자가 문학 속에서 만나는 모든 주제들과 인물들과 이야기들은 하나의 커다란 서로 엉키어 있는 가족에 소속해 있는 것이다. ... 문학 속에서 독자는 다만 시나 소설만을 차례 차례 읽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문학 작품 하나 하나가 그 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하나의 완벽한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노도릅 프라이)."

송영옥 작가(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