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의 터줏대감이었던 호랑이가 자취를 감춘지 오래다. 산천의 제왕으로 군림하던 인왕산 호랑이는 한때 인명까지 해치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인왕산 호랑이를 두려워 떨며 생존을 이어온 연약한 동물들은 지금도 인왕산을 지키고 있지만, 가장 강한 호랑이는 사라졌다. 왜 가장 힘이 센 호랑이만 사라졌을까?
인왕산은 높이 338m의 암산(巖山)으로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되어 있고, 암반이 노출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한양 도읍 서쪽에 위치하여 조선 개국 초기 서산(西山)이라고 부르다, 세종 때부터 인왕산이라 불렀다.
인왕(仁王)이라 함은 불법을 수호한다는 금강신(金剛神)의 이름인데, 불법을 제거하고 조선왕조의 개혁을 수호하려는 뜻으로 산의 이름을 개칭했다. 침략자의 기운이 왕성하다는 의미를 나타내려는 음모로, 일제강점기에 인왕산의 표기를 '임금 왕(王)' 자를 '성할 왕(旺)' 자로 고쳐 인왕산(仁旺山)이라 했으나, 1995년 본래 지명인 인왕산(仁王山)으로 환원됐다.
인왕산은 지금 청화대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서울의 진산(鎭山)으로, 이름 그대로 불법을 제거하고 백성들에게 어진 대통령이 될 수 있기를 염원하는 이름과 최고 통치자가 기거하는 청와대가 절묘하게 조화롭다.
그러나 인왕산의 본 의미와 달리, 청와대의 주인 노릇을 하던 역대 대통령들의 말로는 치욕스럽고 혐오스러울 만큼 추잡하고 참담하다. 대부분 독선적 통치와 우매함, 물질에 대한 탐욕이 어울어진 결말이라 함축할 수 있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국민들에게 몸을 낮추고 재래시장을 돌며 읍소하던 대통령 후보자들이다. 그러나 대통령에 당선돼 청와대의 주인이 되면, 한결같이 인왕산 호랑이처럼 군림한다. 언론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공권력의 핵심인 검찰의 수뇌를 교체함으로써 호랑이의 위상을 갖추고는 자신의 정치 철학을 실현하는데 몰입한다.
그러나 인왕산의 호랑이가 사라진 것처럼, 정권이 바뀌면 대통령도 범죄자를 구금하는 교도소로 향하는 것이 청와대 권력의 퇴진 후 정도(正道)처럼 되었으니, 대한민국 대통령의 퇴임 후 상황은 전 세계가 조소할 대상이 되었다.
그런 맥락에서 역대 대통령들의 말로와 인왕산 호랑이의 사라짐이 비교되는 상상은, 의미있는 돌아봄이다.
호랑이의 멸종 원인 중 가장 큰 이유는, 호랑이 가죽을 탐낸 인간의 남획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작금의 정치판과 비교해보자면 스스로 자멸할 수 밖에 없는 세 가지 커다란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첫째, 상생을 거부했다.
호랑이는 다른 수컷 호랑이 새끼들을 가차없이 죽여버렸다. 자신의 새끼 외에는 공생을 용납하지 않으므로 종족 번식에 실패했다.
작금의 정치판이 그렇다. 상생을 거부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국민 권익과 국가 발전을 위한 경쟁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정쟁을 치루더라도 정치라는 공통된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끼리 넘어서는 안 될 불문율이 있을 터이다.
자신의 패거리들만 똘똘 뭉쳐 상대방을 야무지게 무너뜨리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식의 대립을 고수하고 있으니, 대한민국 정치권은 연일 고성과 대립, 정치적 퇴보와 보복성 짙은 악순환만을 되풀이하고 있는 현실이다.
둘째,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보다 넓은 곳으로의 이주와 새로운 영역 개척을 실천하지 못했다. 서울 도심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많은 동물들이 인왕산을 떠나 지금의 비무장지대 등으로 이동했으나, 호랑이는 살던 터를 중요시하는 고양이과 동물의 특성 그대로를 간직한 채 인왕산을 떠나지 못하고 고립됐다.
이 또한 정치 권력을 쥔 세력들의 고정관념 같은 공통점이다. 진보이든 보수이든 중도이든 서로 고견을 주고받을 수 있고 호재를 수용할 수 있으며, 조화로울 수 있는 것이 국가 건설에 유익임에도, 어떤 사안이든 무조건적으로 이견을 피력하는 현실 정치 형태는 패거리 정치의 악순환만을 되풀이하게 된다.
더구나 자신에게 유익한 사람들만 골라 모든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요직을 부여하는 인사 정책은 최고통치자의 눈과 귀를 어둡게 하며, 여러 정부 기관의 수장인 장관들조차 청와대 비서진들의 눈치 속에 정책을 수행하고 있다.
정부 기관과 수장들은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급부상하는 세력들의 주관적 정책을 실행하는 심부름꾼에 불과하다. 깜(능력)도 안 되는 사람들이 최고 통치자와의 인연으로 실세가 되는 인사 정책은 반드시 시정돼야 한다.
셋째, 공격해서는 안될 대상(사람)까지 공격함으로 멸종을 자초했다.
호랑이가 산을 내려와 민가의 백성들을 공포로 몰아넣으면서, 호랑이는 백성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자 공존할 수 없는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민관이 힘을 모아 호랑이 사냥에 나섰고, 마침내 호랑이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현재 권력의 칼날 또한 서슬이 시퍼렇다. 경제인들이 시종처럼 고개를 숙이고, 실세들의 말 한 마디에 국민 모두가 공유하던 정책들이 뒤바뀐다. 실세들이 개입됐을 개연성이 있는 사건에 대해, 비판이 제안된 언론은 제 목소리를 못내고 있으며 공권력의 미온적 대처는 비위가 상한다.
인왕산의 호랑이는 멸종됐다. 지나간 청와대의 실세들도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 아무리 큰소리를 치고 있는 실세 권력일지라도, 머지 않아 멸종된 호랑이처럼 사라질 수 있다. 그들이 토끼와 다람쥐처럼 오래도록 생존하려면 상생과 용서, 배려와 타협의 정치를 실현하면 된다. 큰소리치고 으르렁거리면 인왕산 호랑이처럼 멸종된다.
세계가 집중하고 있는 가운데 북한과 대화의 문을 연 현 정권의 정책에 찬사를 보낸다. 더불어 최고 통치자에게 실정을 간언하고, 입으로 삼키기 쓴 약일지라도 보약이 될 수 있는 탕약을 처방하는, 개인의 사리사욕을 내동댕이친 신하들이 몇 명이나 있는지 매우 궁금한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인왕산 호랑이처럼 사라지는 정권은 지난 정권이 마지막이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일까.
봄비가 촉촉이 산야를 적신다. 비에 젖은 인왕산의 침묵이 장엄하다. 그 밑에 자리잡은 청와대의 위상이 당당하다. 그러나 인왕산의 주인은 호랑이가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국민이 토끼이고 다람쥐이며, 지금도 인왕산을 활개치며 살아가는 토끼와 다람쥐가 인왕산의 주인이다.
새로운교회 하민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