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렬 인터뷰
▲김충렬 교수. ⓒ크리스천투데이 DB
본문은 아합 왕이 막강한 벤하닷 왕을 대하여 전투하는 장면입니다. 벤하닷의 막강한 군대에 비하면, 아합 왕의 군대는 너무나 초라한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아합 왕에게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습니다.

그러던 아합 왕의 군대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 막강한 벤하닷을 두 번이나 크게 이겼다는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이 본문을 배경으로 하면서 우리는 '아합 왕의 세 가지 모습'이라는 제목에 초점을 맞추어 말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아합 왕의 세 가지 모습, 무슨 뜻입니까? 먼저는 비굴해진 아합 왕의 모습에 대해 묵상하라는 뜻입니다.

당시 벤하닷은 아람 왕국의 수도인 다메섹을 통치하는 왕으로서, 32명의 왕들을 거느리고 있던 천하를 호령하던 왕이었습니다. 이들 32명의 왕은 벤하닷을 받들어 섬기는 봉신들로서 일종의 분봉왕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니 벤하닷은 32명의 왕과 말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10만 명의 군대를 집결하여 이스라엘의 아합 왕을 위협하면서 무리한 요구를 하였습니다.
벤하닷은 막강한 군대와 권력으로 아합 왕이 가지고 있는 은과 금, 그리고 아내들과 자녀들까지 모두 내 놓으라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이때 아합 왕은 벌벌 떨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합 왕은 고작 232명의 소년들과 이스라엘 백성인 7천명을 거느린 정도였으니 도저히 싸움의 적수가 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은 마치 그 옛날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방불케 만드는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4절에 나타난 대로 아합 왕은 벤하닷의 전령에게 "나와 나의 것은 모두 왕의 것이니이다" 하고 벤하닷이 요구하는 대로 모두 내 놓을 것이라고 전달했습니다. 이는 실로 아합 왕의 비굴한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런 아합 왕의 비굴한 모습에서 오로지 '자기를 의지하는 자의 태도'를 보게 됩니다. 우리가 알듯, 자기를 의지하는 사람은 자신이 쌓은 것을 힘으로 믿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실제로 세상에서 자기가 쌓은 지식이나 업적, 그리고 재물을 자기의 힘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아합 왕이 바로 하나님을 떠나게 되어, 이처럼 믿음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합 왕의 불안은 알고 보면 외형적 군대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믿음이 없다는 것이 더 문제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아합 왕처럼 자기를 의지하는 사람은 겉으로는 대단하게 보여도, 실제로는 마음이 불안하여 조그만 일에도 겁을 내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아합 왕의 세 가지 모습, 무슨 뜻입니까? 담대해진 아합 왕의 모습에 대해 묵상하라는 뜻입니다.

아합 왕은 벌벌 떨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13절 "한 선지가가 이스라엘 왕 아합에게 나아가서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오늘 저희를 네 손에 붙이리니, 너는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셨나이다"고 전했습니다.

이때 아합 왕은 누구로 하시리이까? 하고 물을 때 "선지가가 여호와의 말씀이 각 도(道)의 방백의 소년들로 하라 했나이다. 그러면 누가 싸움을 시작하리이까 하니, 왕이니이다" 라고 합니다. 귀를 의심할 정도의 이 말을 듣고도, 아합 왕은 그대로 순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니 이전과는 너무나 다르게 아합 왕의 모습은 용기백배해졌습니다. 실로 아합 왕은 '죽으면 죽으리라'는 비장한 각오와 함께 담대해진 것입니다. 그 결과 아람 왕 벤하닷의 기세에 눌려 오금을 펴지 못하고 비굴하던 아합 왕이 싸움에서 두 번이나 크게 승리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는 한 선지자의 전하는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담대해진 아합 왕의 태도에서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자기를 의지하던 아합 왕이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되니 담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담대함이 바로 상대가 되지 않는 소년들 232명과 방백, 7천명으로 그 엄청난 아람 군대를 무찌르고 승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실로 신앙생활이란 앞에 놓인 난관이나 상황, 그리고 그 현실에 대처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도우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생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더 의지하는 생활입니다.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이 큰 사람의 모습입니다.

마지막으로 아합 왕의 세 가지 모습, 무슨 뜻입니까? 비참해진 아합 왕의 모습에 대해 묵상하라는 뜻입니다.

전쟁에서 패배한 벤하닷은 아합 왕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자신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애원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벤하닷은 아합 왕을 심하게 높이면서 간사하게 비위를 맞추기까지 하였습니다.

이에 아합 왕은 승리자의 우월한 마음을 갖고 교만해져서, 벤하닷의 간사한 요청에 넘어가고 맙니다. 더구나 아합 왕은 벤하닷에게 자비를 베풀며 벤하닷을 '나의 형제'라고 부르게 됩니다. 이런 아합 왕은 하나님의 뜻을 무시한 채 원수를 풀어주는 죄악을 범하게 된 것입니다.

이로써 아합 왕은 선지자로부터 벌을 받아 죽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받게 되고, 그리고 그 경고대로 죽게 되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이렇게 비참해지는 아합 왕의 모습은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사람의 비참한 말로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말씀의 교훈은 자신의 승리가 하나님의 능력임을 순간 잊어버리고, 그것이 자신의 능력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에게 직면하게 되는 비참한 최후라는 것입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한 아합 왕의 모습은, 그대로 오늘날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아합 왕의 태도는 급할 때는 하나님을 의지했다가 조금 형편이 나아진 듯하면 또 자기를 의지하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주어진 삶이 다할 때까지 끝까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되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는 사람이 믿음이 없는 사람이 되지 말게 하소서! 어려울 때는 하나님을 의지했다가 형편이 조금 나아지면 자기를 의지하는 사람도 되지 말게 하옵소서!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주님의 사람으로 훈련받는 우리들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소서!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큰 믿음의 사람에게 반드시 복을 내리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한국상담치료연구소 소장, 한일장신대 전 교수, 한국실천신학회 전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