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국 칼럼] 인왕산에 걸린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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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세미나를 마치고 서울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으니 노곤하다. 내친김에 진해의 벚꽃 축제인 '군항제' 곳곳을 관광하느라 어지간히 걸어다녔다.

"겨울에 눈이 안 오고 봄에 눈이 옵니다." 도다리쑥국을 차려주는 여종업원의 머리에도 벚꽃 화관이 씌여있다. 온통 벚꽃 세상이다. 서울 여의도에도 벚꽃 축제가 열릴 터다. 미끄러지듯 기차가 움직이자 어릴쩍 추억들이 스을쩍 매달린다.

인왕산.

추억의 산이다. 소나무 껍질로 돛단배를 만드는 숙제를 그곳에서 했다. 미끄럼 바위에서 미끄럼을 탔다. 숨바꼭질을 하며 산 높은 줄 모르고 온종일 뛰어다녔다. 김신조로 대표되는 무장공비의 침투로 대낮에 총성이 울리면서, 인왕산은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었다.

통제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는 중압감이다. 절제와는 사뭇 다른 박탈감을 수반한다. 적폐를 청산하기 위한 현 정권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아무리 당위성이 있는 정의일지라도, 정도가 지나치면 무기가 된다. 구 정권에서 상급자의 지시에 따른 공무원에게까지 적폐의 사정 칼날이 확대되고 있다. 동료들끼리 녹음을 해가며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고 한다. 상곡(相哭)할 일이다.

방송 또한 사족(四足) 중 일부를 못쓰는 장애를 앓고 있다. 비평과 비판이 무너진 방송은 건강하지 못하다. '썰전'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설전(舌戰)'의 된 발음, '썰전'이 프로그램 제목이다. '전(戰)'은 온데간데 없고, 거의 초록동색인 출연자들끼리의 '썰'만 남은 노닥거림의 장이 되었으니 프로그램의 의미가 상실된 상황이다.

서울역에서 명동을 향해 걸어가다, W은행 광장에서 '태극기 집회'가 열리는 것을 목격했다. 그들의 작은 외침이 '촛불 집회'의 군중들의 함성 위에 음각되어 투영된다. 현 정부 지지도가 70%대의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지금, 현 정부를 지지하지 않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존재하고 있기에 건강한 국가라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박수갈채만 보낸다면 '윗동네'와 다를 바 없지 않겠는가.

명동에서 지인과의 약속을 마치고 광화문을 향하는 발걸음 위로, 밝은 보름달이 길동무를 해준다. 달빛은 언제 보아도 정겹다. 눈이 부시지 않아 편안하다.

시골길 걸으며 담소를 나누던 옛 친구들이 어깨동무를 한다. 빌딩으로 가득찬 도심 한복판에서도, 분주하게 오고가는 인파 사이에서도 구수한 사랑방 온기를 끌어오는, 마음이라는 놈의 감성이 새삼 경이롭게 느껴진다.

남북 문제, 무역 문제, 인사 문제, 노사 문제, 복지 문제, 저출산 문제, 입시 문제, 부동산 문제까지, 산적한 국내외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현 정부의 노고가 가상한 가운데, 만산개화(滿山開花)는 순리대로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며 봄을 완성하고 있다.

충언하는 신하 일곱이면 우매한 임금일지라도 백성들을 평안하게 하며, 일곱 번에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고 참으라는 성경의 교훈이 뒤엉겨 다가온다. 우리 모두 부족하고 실수하며 살아가는 인생들이다.

그래서 용서라는 덕목이 소중하다. 사랑만 주는 것이 아니라, 용서 또한 'forgiveness',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용서 없이 주는 사랑은 가식적이며 처세적인 입발림일 수 있다. 용서는 곧 사랑의 초석이다.

어두움이 내린다. 도심의 휘황한 네온이 눈부시다. 오늘 하루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가슴 속에서 울렁이는 소리들을 정돈해 보니, 마치 작은 생선 가시 하나가 목구멍에 걸린 듯하다. 맨밥 한 숟가락 꿀꺽 삼키면 없어질 가시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가시라도 방치하면 큰 병이 될 수 있다.

권력 있는 자, 부요한 자들이 하늘을 바라보는 여유로움으로 땅의 어두움을 밝혀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위로, 휘황한 보름달이 인왕산에 걸려 있다.

하민국 목사(인천 백석 새로운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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