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대학교 배본철 교수
▲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역사신학/성령의 삶 코스 대표)
한반도에서 일어난 성령운동의 특징 중의 하나가 오순절적 성령의 능력 체험이었다는 점은 우선 선교사들이 한반도에 오기 전 경험했던 성령의 능력이 어떤 성격이었는가를 알게 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선교사들이 강하게 체험했던 것은 19세기 후반 영국과 미국의 부흥운동을 중심으로 한 성령세례의 능력이었다. 당시 부흥운동 속에 나타난 성령론의 성격은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과 '근대 웨슬리안 성결운동'으로 크게 분류된다.

이 두 성령운동은 19세기 후반 영미 부흥운동의 두 축이었다. 전자는 신학적으로 개혁파 전통에, 그리고 후자는 웨슬리안주의에 근거를 둔 운동이었다. 그러나 20세기 초에 시작된 현대 오순절주의는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이나 근대 웨슬리안 성결운동보다 비교적 늦은 1920년대 이후이다. 그러므로 1910년 이전 대부흥운동 당시에는 아직 직접적인 오순절주의의 영향이 미치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 볼 때 한국교회 대부흥운동에 있어서 성령세례 또는 성령의 능력 경험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본다. 한국교회 초기 내한 선교사들이 성령세례를 어떻게 이해했는가를 조사함에 있어서 The Korea Mission Field는 근본적인 사료(史料)를 제공해 주었다. 장로교와 감리교를 막론하고 초기 한국교회 부흥운동에 대한 선교사들의 기술은 이 부흥운동이 명백히 기도의 능력과 철저한 죄의 통회와 성령의 권능의 임재로 특징 지워진다고 본 것이다. 이 같은 특징은 단지 평양 대부흥운동에서만의 일이 아니고, 그 이후에 전국적으로 확산된 부흥운동의 전반적인 특징이었다.

대부흥운동은 명백히 중생과는 별개의 경험으로서의 성령세례 혹은 성령의 능력을 받는 일을 중시하였다는 점을 또한 확인하게 된다. 성령의 역사 속에서 심령의 변화를 체험했을 때 대부흥운동에서는 대부분 '성령이 임했다', '성령을 받았다', 또는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표현하였다. 초대 선교사였던 미국 북장로교 소속의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도 평양의 대부흥운동을 가리켜 "한국교회가 성령의 세례를 받았다."(Underwood, The Call of Korea, 6)고 했으며, 홀(E. F. Hall)은 미 북장로교 선교부 브라운(Arthur Brown)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길선주가 평양부흥운동 기간에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적었다.

또 북장로교 선교사인 무어(J. Z. Moore)는 명목상의 크리스천이었던 어떤 젊은이가 성령세례를 받고 난 후 즉각 자기의 부모를 주님께로 인도하고, 또 여름 성경학교를 이용하여 많은 어린이들을 주님께로 인도하였다고 전했다. 이 외에도 브레어(William Newton Blair), 프레스톤(J. F. Preston) 등 대부분의 장로교 선교사들이 중생과는 별개의 체험으로서의 성령세례, 성령 강림과 같은 단계를 전제하고 기술하였다.

이처럼 성령론적으로 볼 때, 특히 성령세례에 대한 입장에 있어서 한국교회가 경험한 대부흥운동의 성령론은 정통 개혁주의 성령론과는 상이하다. 왜냐하면 정통 개혁주의 성령론은 중생과 성령세례를 동시적인 것으로 보지만, 한국교회 대부흥운동의 성령론은 오히려 이 둘을 구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통 개혁주의 성령론은 카이퍼(Abraham Kuiper), 핫지(Charles Hodge), 워필드(B. B. Warfield), 개핀(Richard Gaffin), 스토트(John Stott) 등으로 대표되는데, 이들의 영향을 받은 한국인 신학자들을 통해 성령 은사의 중단성(中斷性)과 함께 중생과 연관하여 성령세례의 단회성을 강조하는 성령론의 한 노선을 발전시켜 왔다.  

그런데도 대부흥운동 당시에는 이러한 성령론적 논제는 전혀 문제시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선교사들이 가르친 성령세례가 주로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분하는 경향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두 노선 사이의 갈등이 부닥치기 시작한 것은 해방을 전후로 해서 정통 개혁주의 신학을 배우고 돌아 온 한국인 신학자들이 정통 개혁주의 성령론을 가르치게 되면서부터였다.

그때부터 한국 신학계는, 종전의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이나 웨슬리안 성결운동의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분하는 관념에 대항하여, 중생을 성령세례와 동시적으로 보는 정통 개혁주의 성령론과의 마찰이 심하게 일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한국교회 대부흥운동의 성령론은 정통 개혁주의 성령론보다는 오히려 웨슬리안이나 오순절주의에서 말하는 성령세례 관념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