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렬 인터뷰
▲김충렬 교수. ⓒ크리스천투데이 DB
제64장 개성화와 관련한 분석 사례(2)

개성화 과정은 대개 인생 진로와 관련되는 측면이 있다. 기나긴 인생 행로에 방향을 잡고 걸어나가야 하는 것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자신이 천부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질과 특성, 그리고 자신이 가진 재능과 관련되는 전체 존재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다루게 되는 헨리의 분석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적응하면서 장차 가정을 이루는 문제가 중요시되었다. 이런 갈등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모험을 해야 할지, 아니면 비교적 안정적인 길을 따라 별로 변함없는 현실생활에 순응해야 할지에 대해서 고심하는 꿈을 꾸게 되는 편이다.

1. 호수에서 인양 작업의 꿈(분석 2개월 후)

분석을 시작하고 2개월이 지난 후에 헨리는 분석진행을 암시하는 다음과 같은 꿈을 가져왔다.

헨리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는 호수에서 한 인양작업이 실시되었다. 전쟁 중에 호수에 가라앉은 기관차와 화차를 호수 밑에서부터 인양하고 있다. 처음에는 기관차의 보일러 같은 큰 원통이 나왔고 그 다음에는 녹이 슬은 거대한 화차가 건져 올라왔다. 그것은 무시무시한 광경이면서도 한편 낭만적인 정경이기도 했다. 인양된 기차의 부분들은 가까운 역의 철로나 케이블-선에 모두 실려 나갔다. 그렇게 하고나니 호수의 밑바닥은 놀랍게도 푸른 초원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이 꿈은 전반적으로 헨리에 대한 분석이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꿈이다. 기관차가 호수 밑바닥에 가라앉았던 것이 지금은 햇볕을 보게 되었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별한 심리학의 상징법을 동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기관차는 대개 에너지와 힘의 상징이다. 이 기관차를 헨리의 정신적인 측면과 관련시켜 보자. 그러면 이 기관차는 그의 정신에서 힘을 발휘해야 할 어떤 요소가 정신의 깊은 곳에서 묻혀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관차와 함께 연결되어 있는 여러 화물을 싣는 화물차들은 여러 가지 물건들을 운반할 수 있는 것들을 나타낸다. 이는 힘을 발휘하는 기관차적인 것과 관련된 여러 정신적인 특성들이 화물칸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 모든 것들은 헨리의 의식세계에서 이용될 수 있는 귀중한 '대상들'이 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특별히 이런 모든 것의 인양작업 후에 호수의 밑바닥이 푸른 초원으로 변했다는 것은 무엇을 나타내는가? 이제 헨리의 정신이 자유로운 열린 터전에 잠재력이 작용하여 생명력을 잉태하는 새로운 창조의 가능성이 보이는 것을 상징한다. 그것은 헨리에게 있어서 정신적인 성숙에 이르는 길은 외로운 길이다. 그러나 그 길은 푸른 초원으로 변하는 것처럼 희망적인 차원으로 변화되었음을 나타내는 꿈이다.

이 부분에서 야코비는 헨리가 분석의 초기에 가졌던 회의나 저항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신내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열렬한 관심을 가졌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이 꿈은 그의 소극적인 태도에 상당한 보상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보여 어느 정도 분석진행에 안심하는 듯한 인상이었다. 그것은 이 꿈이 바로 자신의 양가감정, 그의 정신적 방황, 그리고 분석에 임하는 그의 수동적인 태도를 깨닫게 하고 귀중한 통찰력을 갖게 하였기 때문이다.

2. 곱사등이 여인을 만나는 꿈(24번째 꿈)

헨리는 24번째 꿈으로 곱사등이 여인을 만나는 꿈을 가져왔다. 그 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헨리는 작고 아름다운 여인과 학교에 함께 가고 있다. 그 여인은 등에 난 혹 때문에 미모를 망친 이름 모를 젊은 여인이다. 다른 많은 사람들도 학교로 들어간다. 다른 사람들이 성악-렛슨을 받으러 다른 방으로 들어가는 때였다. 헨리와 그 여인은 조그마한 사각 테이블에 앉아 있다. 그 사이에 그녀는 헨리에게 성악 개인지도를 친절하게 해 준다.

헨리는 그만 그녀의 동정심에 끌려 충동적으로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하고 만다. 그리고 나서 헨리는 곧바로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약혼녀에 대한 가책을 느끼게 되었다. 설사 약혼녀가 이를 용서해 주더라도, 그녀에 대한 성실치 못한 행동으로 의식하였다.

앞의 꿈과는 달리 여성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낭만적인 장면이다. 곱사둥이 여인은 헨리의 여성적인 측면의 미성숙이 된 부분을 드러내고 있다. 신화나 동화에서는 신체장애적인 요소는 추한 모습이기는 하지만, 큰 아름다움을 감추고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일종의 마법에 의해 불구가 된 경우 마법이 풀리기만 하면, 추한 것이 아름다움으로 변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진 것과 같다.

헨리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감정의 직접적인 표현의 하나이다. 그에 반해 헨리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를 꺼리는 편이다. 서구인이 그렇듯이 자칫 이상화된 사춘기의 감정이 지배적일 수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헨리는 사각 테이블에 앉아 감정의 표현수단의 하나인 노래-부르기를 배우고 있다.

특히 여기서 4각 테이블은 4배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특히 융에 있어서는 완전과 완성을 의미한다. 아마 의식의 4기능을 상징할 수도 있는데, 이는 헨리가 정신전체를 실현하려면 자신의 감정적인 측면부터 통합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기에 성악 레슨은 그의 감정을 북돋아 주는 계기가 되어 헨리는 노래하는 그녀의 입술에 그만 키스를 하고 만다. 자기의 내면의 여인과 하나가 되는 순간이기도 하면서, 성적 결합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헨리는 약혼녀에 대한 거리낌을 떨치지 못했다.

헨리는 이제 자신의 감정을 일깨우는 여러 가지 방법을 배워나가야 했다. 자신의 깊은 내면에서 햇볕을 보지 못하고 있는 그 감정들을 일깨워 햇볕을 보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당면한 시점에서 나타난 그녀 자신이 인도자임을 보여준다. 이는 현실세계의 여인과 자신의 내적세계의 아니마 사이를 살아야 할 정신적 현실을 형상화 할 수 있을 것이다.

3. 한 노인이 임종하는 꿈(7개월 후)

분석이 진행되면서 수개월이 지나, 이제는 어느 정도 자신의 꿈을 제법 해석할 정도로 진전되었다. 생활도 점차 진취적인 측면으로 전환되는 편이었다. 다만 그 진취적인 면을 효과 있게 사용하는 데는 여전히 미흡한 것은 사실이다. 상당히 현실적인 세계로 돌아오는 편이다. 그러던 차에 헨리는 한 노인의 임종에 대한 꿈을 가져왔다. 그 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 노인이 친척들에 둘러싸여 임종을 맞고 있다. 이어서 더 많은 사람들, 약 40명 정도의 사람들이 큰 방에 모여 들었다. 노인은 신음하면서 생명이 없는 삶(unlived life)에 관해 중얼거린다. 그 노인의 딸은 '생명이 없는 삶'이란 문화적 의미인지 도덕적 의미인지 질문하지만, 노인은 대답하려 하지 않는다.

이때 딸은 헨리를 조그마한 방으로 보내어 일종의 카드놀이인 트럼프-점(占)을 쳐서 그 답을 구하려 한다. 처음 헨리가 집어들은 카드 중 9라는 숫자가 나온 카드의 빛깔에 따라 그 해답이 나온다. 헨리는 빨리 9자를 뒤집길 원했으나 처음부터 왕(King)과 여왕(Queen)만 뒤집혀 나와 실망한다. 이제 뒤집을 카드가 더 이상 없다.

그 때 헨리의 누나가 이리 저리 카드를 찾다가 책 밑에선가 9자 카드를 찾아내었는데, 스페이드(spade) 9였다. 그 카드가 지닌 뜻은 오직 하나, 노인으로 하여금 '그의 삶을 사는데' 방해가 된 것은 도덕적 사실이었다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헨리의 꿈은 전체적으로 일종의 경고 메시지를 담고 있다. 만약 헨리가 '자신의 삶을 사는데' 실패한다면, 무엇이 그렇게 만드는가에 대해 가르쳐 주고 있다. 죽어가는 노인은 헨리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원리가 죽음으로 몰고 가는 원리이다. 그러나 그는 이 원리가 어떤 것인지를 알 수가 없다.

노인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은 헨리의 남성적 인격의 부분이 마지막 변환(transformation)을 하고 있다는 표시이다. 거기에 40명의 사람들은 4가 고양된 숫자로서 헨리의 전일성(totality)을 상징한다. 융은 4라는 숫자를 중요시 여겼다, 그에게 있어서 4는 정신의 완전을 이루는 상징으로서, 그리고 우주와 세계를 통합하여 일치를 이루는 원리를 담고 있는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융은 이를 그의 전집 여러 곳에서 고찰하여 다루는데, 이는 융의 전집 IX, XI, XI, XIV에 기술되었다.

죽음의 원인에 대해서 묻는 딸의 질문은 그 해답으로서 결정적이다. 아마 노인의 도덕성이 자연적인 감정과 욕망에 따라 살지 못하도록 방해했다는 암시인 것 같다. 노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한 원인이 외부적인 환경보다 내부적인 자신의 심리 및 정신에 있었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외부적인 문화적 속박보다 내부적인 도덕적인 속박 때문이었다.

이제 헨리는 그러한 점을 유의하여 헨리는 자신의 내면적인 문제에 귀를 기울여 개선해내야 한다. 그래야 그 속박하는 현실로 부터 해방되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죽어가고 있는 노인은 아직도 말이 없다. 그러므로 여성적 요소인 아니마의 인격화로서 중계 역할을 하는 그의 딸이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것이 헨리를 보내어 카드-점으로 답을 찾으라고 한 것이다. 카드놀이에 대한 각종 상징을 나타내는 것의 일부이다.

그러나 카드는 원했던 것이 나오지 않는다. 이는 헨리의 내면세계의 상징들이 고갈되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 때에 헨리는 그의 누이로 표상된 여성적 요소의 도움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자 스페이드9라는 카드를 찾게 되었다. 그 카드를 교과 밑에서 찾게 되었다는 것으로 보아 '생명이 없는 삶'의 원인을 지적해 준다. 교과서나 노트는 헨리의 기술공학적인 관심을 표현하는 것으로 지적인 공식으로 가득한 무미건조성을 의미할 수 있다.

9라는 숫자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전통적으로 9는 오랫동안 마법의 숫자로 통한다. 대체로 삼위일체란 완전한 형태의 하나로 그것의 세 갑절인 9 역시 완전형이다. 물론 시대와 문화의 차이에 따라 9라는 숫자는 많은 의미와 연결되는 것은 사실이다. 특별히 9라는 숫자의 카드색은 죽음의 색이며, 생명이 없는 검은 색이기도 하다.

그리고도 스페이드(spade)라는 단어는 칼(sword)과 창(spear)을 의미하는 스파다(spada)라는 이탈리아어(語)에서 파생되었다. 칼이나 창은 대개 지성이 발휘되는 꿰뚫고 '잘라내는' 기능을 가진 무기를 상징한다.

헨리는 이제 풍성한 삶을 사는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속박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켜 공포를 떨쳐버려야 한다. 그 속박은 어머니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다른 여성과 책임 있는 관계를 맺어 가는데 있다. 어머니에게 불성실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와 두려움은 자신의 정신생활을 건강하게 사는 것을 방해하는 심리적, 도덕적 요소이다.

이제 헨리가 풍성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은 생명보다는 죽음에 이르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꿈의 메시지가 주는 그대로 이성 이상으로 필요한 정신적인 요소, 특히 무의식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좋은 인생의 안내자를 만나는 것이나 같다. 헨리의 풍성한 삶은 그런 새로운 인식에로의 전환을 통해서 가능해지는 것이다.

4. 친구들과의 술좌석 꿈(마지막 50번째 꿈)

헨리는 이미 분석치료가 시작된 지 9개월을 보냈다. 그는 마지막으로 긴 꿈이라 불릴 만한 다음과 같은 마지막 꿈을 가져왔다.

헨리와 그 친구들은 모두 4명이다. 그들은 저녁에 긴 통나무 테이블에 앉아서 술을 마신다. 테이블에는 각양의 술잔의 빛깔이 아름답고 곱다. 흥에 겨워 술을 권하며 건네받아 마신다. 그리고 차도 곁들여 마시기도 한다. 거기엔 말이 없고 매우 여성적인 한 처녀가 동석했다. 그 처녀는 리큐어 술을 차에 섞는다.

그날 밤 술자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일행 4명중 한 명이 프랑스 대통령이다. 그 때문에 프랑스 궁전에 4명이 있다. 헨리가 친구들과 함께 발코니 쪽으로 나가보니 프랑스 대통령이 술에 취하여 한 무더기의 눈에다 소변을 보고 있다. 오랜 동안 소변을 보던 그 대통령은 아기를 갈색 모포에 싸서 안고 가는 노처녀 뒤를 쫓아간다. 그리고 아기에다 오줌을 뿌린다. 그 노처녀는 축축하다고 느꼈으나 아기가 오줌을 싼 것이라고 생각하여 서둘러 길을 간다.

이윽고 아침이 되자 겨울 햇볕 아래 빛나는 거리를 따라 한 흑인이 완전히 발가벗은 채로 가고 있다. 그는 동쪽으로 수도 베른을 향해 걸어간다. 헨리와 친구들은 프랑스계 스위스 지역에 있는 이 흑인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일행은 인적 드문 눈이 덮인 지역을 지나 자동차로 여행하여 드디어 정오쯤에 흑인이 있는 미지의 도시에 도착했다. 그리고 혹시 그 흑인이 얼어 죽지 않았을까를 걱정하면서 그 흑인 거처하는 곳을 찾아 들어간다.

그 흑인의 하인이 반긴다. 그 하인 역시 흑인이며 그 둘은 모두 벙어리다. 일행은 흑인에게 줄 선물을 배낭에서 찾는다. 선물을 문명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성냥 한 상자를 주었다. 흑인에게 선물 한 후에 헨리와 친구들은 흑인과 함께 즐거운 축제에 참가했다.

헨리의 꿈은 전체적으로 네 부분으로 되어 있어 있는 긴 꿈이다. 저녁에서 시작하여 밤과 낮에 이르는 하루의 전체가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특별히 그 꿈은 태양이 정점에 자리하는 대낮에 끝난다. 꿈이 비교적 시간적 순서를 따라 진행되는 측면으로 보아 나름대로 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꿈은 뭔가를 정확하게 암시하는 꿈이라는 암시를 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꿈의 해석상 하루의 주기는 전일성(tatality)의 양상을 띤다는 점이 더욱 그렇다.

꿈에 나오는 네 사람은 헨리의 정신의 남성을 상징한다. 헨리의 정신이 점차로 밝혀져 가는 중에 나타난 이 네 사람과 꿈의 4막의 전개형태는 기하학적인 형태를 가진 만달라의 구조를 연상시킨다. 그것은 그들의 움직임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동쪽에서 왔고 다음에는 서쪽에서 와서 스위스의 수도 베른(즉 중심)으로 향하여 간다.

이러한 움직임은 중심에서 대극을 합일하려는 시도를 보여 주는 것과 흡사하다. 여기에는 물론 시간의 움직임이 고조되고 있다. 즉 무의식적인 밤으로의 하강이 먼저 나타나고, 다음엔 태양의 궤도를 따라 밝은 의식의 정점을 향해 상승하는 움직임으로 강조되고 있다.

꿈이 시작되는 첫 부분은 저녁이다. 저녁은 의식의 문턱이 낮아지면 무의식의 충동과 상들이 쉽게 의식의 문을 넘나들 수 있는 시각이다. 그러기에 남성의 여성적인 측면이 가장 쉽게 자극되는 시기이기에 한 여성이 남성들과 어울리는 장면은 자연스럽다. 그녀는 촉매 역할로서 남자를 무의식의 세계로 인도하여 그 내용을 깨우쳐 준다. 그런 점에서 그녀는 분명히 남자에 속한 아니마(anima)의 인격상으로서 헨리의 말없고 섬세한 성격의 누이를 연상케 하며 4명의 남자를 각각 연결시켜 준다.

테이블 위에 있는 세 개의 오목한 잔들은 여성성의 상징인 수용력을 강조한다. 그곳에 친구들이 모두 이 잔들을 사용했다는 것은 그들 상호간의 밀접한 관계를 암시해 준다. 서로 간에 주고받는 잔들의 다양한 크기와 색채 등은 반대는 양극적인 요소를 마심으로써 다섯은 모두 무의식적인 성찬식에 참여한 것이다. 이러한 성찬식은 깊은 상호 소통의 상태로 빠져 든 것을 상징한다.

꿈의 두 번째 부분은 밤에 일어난 일들과 관계된다. 갑자기 네 친구들은 파리에 있게 된다. 스위스 사람들에게는 파리는 관능과 억제되지 않은 사랑과 기쁨의 도시를 연상시킨다. 프랑스 대통령이라는 구분으로 보아 사고기능을 나타내고 있는 자아와 아직은 미숙한 무의식적인 감정 기능이 나타난다. 때로 대통령은 대단히 원숙한 정치력에도 불구하고 정신에서는 또한 미숙한 부분도 지니고 있다. 그러한 부정적인 측면 때문에 여기서는 대통령이 불안정하고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으로 나타난다.

술에 취한 채 소변을 보는 일은 마치 동물적 욕구에 따라 행동하는 야만인과 흡사하다. 그 반면에 여기서 대통령의 긍정적인 측면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소변을 정신적 리비도(libido)의 흐름으로 보면, 지칠 줄 모르는 정력을 상징한다. 원시인들은 모발, 대소변, 타액 등 몸에서 생겨난 모든 것을 마술적인 힘이나 창조적 힘을 가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리비도를 나타내는 그 소변은 창조적 생명력이 넘치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런 힘이기에 거리낌 없이 소변을 보며 아이를 안고 가는 노처녀를 쫓아가는 것이다.

꿈에 나오는 '노처녀'는 대담한 아니마의 상징이다. 헨리의 꿈의 첫 부분에 나타나는 수줍고 연약한 아니마와는 반대이면서 상호보완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노처녀가 암시하듯 그녀는 늙기는 했지만 아직은 처녀이고 더구나 아기를 안고 있다. 이는 마치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원형을 연상케 만든다.

그럼에도 그 아기는 땅 빛깔인 갈색 모포에 싸여 있어 하늘보다는 땅에 속한 것은 분명하다. 이것은 종교적인 측면과는 달리 헨리의 꿈의 아기는 구세주인 아기 예수와는 정반대로 땅에 속하는, 이 세상에 얽매인 암시를 준다. 만약 대통령의 오줌을 아이에게 뿌리는 것을 어설픈 세례의 모방으로 볼 수 있다면 아이는 헨리의 유아적인 잠재력의 거듭남과 관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노처녀가 말없이 가버렸기에 이런 세례예식을 통하여 재생될 수 헨리의 유아적 특성들은 깨달을 수 없다.

꿈은 밝은 아침이 되면서 전환점을 가져온다. 어둡고 검고 원시적이며 강력한 모든 것들이 당당하게 드러난다. 벌거벗은 흑인은 그것을 나타낸다. 흑인의 벌거벗은 상태는 생생한 진실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 헨리의 꿈에서 극적인 대조를 놓칠 수 없다. 어둠의 저녁과 밝은 아침, 더운 소변과 찬 눈의 양극적 요소와 같이 흰 눈 속에 있는 검은 흑인 역시 예리한 대조를 이룬다. 이제 4명은 새로운 차원에서 방향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그들의 위치는 파리로 향하던 길이 갑자기 프랑스계 스위스로 향하게 되었다.

프랑스계 스위스는 어디인가. 헨리의 약혼녀의 고향이 아닌가. 헨리는 처음으로 약혼녀의 고향이 있는 지점에서 전진하여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이는 헨리가 약혼녀의 심리적 배경을 받아들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해가 돋는 곳으로 180도를 전환하여 가는 것이나, 흑인을 만나는 것 등은 모두 헨리의 무의식 속에 감추어 두었던 원시적 충동, 고태적인 힘, 조절하지 못하는 본능들이다.

헨리는 이러한 억눌린 요소를 받아들여 극복하여 남성적인 힘과 잠재력, 감정적 및 육체적인 힘의 총화를 이룩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흑인을 만나는 것은 헨리가 진정한 남성이 되기 위해 한 발을 내딛는 행동을 취한 것이다.

이윽고 정오가 되었다. 정오의 태양은 정점에 자리하는 것으로 의식의 가장 명료한 상태에 도달됨을 나타낸다. 헨리의 자아는 확대되어 더욱 탄탄해지고 있으며 의식적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배양되었음을 말한다.

그러나 헨리의 자아는 실행을 강행할 만큼 아직 원숙하거나 강력한 힘을 갖고 있지 않다. 아직은 추운 겨울이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은 헨리에게 아직은 감정적으로 따뜻하지 않은 것을 지적해 주는 것이다. 깨우침과 실행할 능력은 갖추고 있으나 정서적으로 차가운 겨울이며 지적으로 차가운 상태에 머물러 있다.

이제 헨리는 긴 겨울을, 추운 겨울을 무서워하지 말고 여행에 나서야 한다. 이 여행은 헨리의 행동력을 높이는 행동이며 궁극적으로 헨리의 자기(Self)를 실현하는 험난함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한다. 더구나 언어가 통하지 않는 벙어리 흑인들에서 헨리와 친구들은 분석자소통의 다른 방법이 요구된다.

이것의 하나가 신에게 드리는 것과 같은 흑인을 위한 선물이다. 그러나 그 선물은 자연과 본능을 나타내는 흑인의 환심을 얻기 위한 것으로서 문명의 산물이어야 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지성의 희생(sacrificium intelletus)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지성의 희생'이란 헨리의 교만한 의식이 겸손해져서 흑인에게 공손히 선물하는 것이다. 헨리는 흑인에게 성냥 한 상자를 선물한다. 성냥은 저장되고 조절된 불로서 문명의 산물의 총화이다. 불과 불꽃은 이성의 차가운 것과는 반대적으로 따뜻함과 사랑, 감정과 정열 등을 상징한다. 인간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가장 원시적이면서 보편적인 마음의 특성이다. 헨리가 흑인에게 이를 겸손히 선물함으로써 새로운 전환이 일어난다.

선물하는 행위는 의식적 자아가 고도로 발달된 문명의 산물과 흑인으로 상징된 헨리의 원시적인 남성적 힘의 결합하는 상징이다. 헨리는 이제 그런 방법으로 자신의 남성적인 요소를 완전히 자기 것으로 받아들여 자아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을 보여 주는 것이 마지막 성만찬이다.

마지막으로 헨리와 친구들, 흑인과 하인 모두 여섯이 축제에 참가한다. 이는 성만찬을 상징하는 식사나 다름없다. 대개 성만찬 식사는 마무름과 결말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서 헨리의 남성적 전일성(masculine totality)이 완성되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로써 헨리는 가야 할 긴 행로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으로 안정을 되찾은 듯이 보인다. 실로 헨리의 출현을 미리 예고하는 큰 원형적 인격(archetypal personality)을 의식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자세를 갖는 것이다.

헨리의 분석사례는 야코비가 성공적으로 시도한 개성화 과정의 사례이다. 야코비는 이 꿈-해석에서 개인 및 집단적인 연상을 동원하여 비교적 자세하게 분석해 나갔다. 그러나 저자는 지면관계상 이를 축약해야만 하였다. 그 때문에 원문과는 다르게 상당부분을 저자가 변형 및 생략을 불가피하게 시도하였다. 특히 신화의 꿈에 대한 부분 302-306을 누락시킨 아쉬움이 있다. 독자는 참조하여 보충하므로 꿈-해석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헨리의 분석은 성공적이었다. 꿈에서 일어난 일들은 놀랍게도 현실과도 일치하였다. 자신감에 찬 헨리는 신속하게 결단을 내려 결혼식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분석치료가 끝난 바로 뒤에 서부 스위스의 작은 교회에서 그녀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헨리는 다음날 캐나다로 떠나 그곳에서 일자리를 얻어 정착하였다. 그는 공교롭게도 마지막 꿈을 꾸었던 시기에 맞춰 캐나다 큰 회사의 관리직에 취직이 되었다. 그 이후 그는 한 가장으로서 창조적인 삶을 살고 있다.

실로 헨리의 분석사례는 모범적이라고 볼 수 있다. 분석의 결과 역시 감동적이고 성공적인데, 이는 특별한 굴곡적인 어려움이 있는 꿈이 아니며, 그 분석사례 역시 성공적인 사례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분석가 이러한 모범적 사례로서 성공적으로만 진행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분석의 대상과 경우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분석심리학적인 분석에 있어서 개인은 각각 다른 치료를 필요로 한다. 젊은이와 노인의 경우가 다르고, 남자와 여자의 경우가 알맞는 치료법이 시도되어야 한다. 이러한 다양한 경우는 동일한 사건의 꿈을 가지고서도 그 상징은 달라질 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는 달리 헨리의 사례는 무의식의 자율성, 그 정신적 배경, 그 상징의 상들이 상당히 모범적이어서 선택된 사례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헨리의 분석사례는 개성화와 관련된 성인과정에서 공헌하고 있다. 이 사례는 한 남성이 성인기를 앞두고 성숙하고 책임 있는 사람으로 변화된 과정이 제시된 꿈이다. 아직은 내면적으로 여린 청년기의 남성이 강하고 단단한 외부세계의 현실로 뛰어들 때의 불안감이 그것이다. 이것은 분석심리학적인 측면에서 성인과정의 일면을 보는 것이다.

성인 과정에는 필수적으로 자아와 그의 남성적인 측면의 강화가 요구된다. 인생의 전반기(오전) 단계로서의 개성화(individuation process)는 자아의 강화와 남성적인 측면의 강화를 통하여 완성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헨리는 인생의 전반기 단계를 성공적으로 넘겼다. 그러나 그에게는 앞으로 남은 한 단계를 잘 넘겨야 한다. 그것은 자아(ego)와 자기(Self)와의 올바른 관계 형성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인생의 후반기(오후)단계이다. 이는 헨리 뿐 아니라 후반기에 속하는 사람 모두가 관련되는 부분이다.

5. 정리

지금까지 우리는 앞장에 이어서 개성화 과정의 꿈-분석에 대해서 기술했다. 이상에서 다룬 개성화에 대한 분석의 사례는 모두 외국적인 것이므로 우리의 사례를 직접적으로 들지 못한 아쉬움을 남긴다. 또한 치료의 방법에서도 주관적인 단계와 객관적인 단계를 구분하여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도 못했다. 꿈-분석의 작업에서 실제적인 여러 사례를 들지 못한 것도 문제이지만, 이런 과정을 통하여 점차 발전되어 가리라는 확신에는 변함이 없다. 시간이 흐르게 되면서 보다 많은 임상의 경험들이 쏟아져 나오게 될 것이다.

물론 우리에게도 분석에 대한 작은 경험들은 이미 많이 있지만, 그것을 체계화시키는데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시도를 시작으로 해서 추후에 보다 알차고 체계적인 실제를 정리한 분석의 사례들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