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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조준 목사. 그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그나마 역사적으로 증명된, 최선은 아닐지라도 끊임없이 보완해 가며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체제”라고 했다. ⓒ박조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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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세의 노(老) 목회자. 두 눈의 초점은 또렷했고, 비록 쇠약했으나 목소리엔 힘이 있었다. 무언가를 머리로만이 아닌 가슴과 삶으로 경험했을 때 뿜어져 나오는 그런 힘이 그에겐 있었다. 박조준 목사다. 22일 후배 목회자들과의 '목회 나눔' 자리를 막 끝낸 그와 마주했다.
박 목사는 북한에서 태어났다. 그러다 6.25 한국전쟁 당시 월남했다. 그가 북한을 떠났던 건, 오직 신앙의 자유 때문이었다. "그것 말고 남한에 올 이유가 뭐가 있었겠습니까?" 그랬다. 그의 말처럼 그 때의 대한민국은 북한보다 나을 게 없었다. 단 하나, 자유민주주의라는 체제, 그 아래서 허용된 신앙의 자유만이 북한보다 빛났다.
박 목사는 그와 같은 북한 출신으로 영락교회를 개척해 대형교회로 일군 故 한경직 목사와 함께 신앙생활을 했다. '반공'이라는 점에서 그와 故 한경직 목사는 통하는 데가 있었다. 박 목사는 한경직 목사의 뒤를 이어 영락교회의 담임목사가 됐다.
그가 영락교회 담임목사로 있던 1977년 초. 박 목사의 마음을 뒤흔드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이 돌연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고 나온 것. 공산주의를 피해 가까스로 월남한 박 목사, 그리고 그처럼 신앙의 자유를 찾아온 이들에게 이는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박 목사는 그와 뜻을 같이하는 1천여 명의 목사들, 그리고 성도와 함께 거리로 뛰쳐나갔다. 미국대사관저 앞에서 '주한미군 철수 반대' 성명을 낭독했다. 난생 처음 해 본 시위였다. 이 때가 어떤 시대였나? 유신체제의 서슬이 퍼렇던, 엄혹한 세상이었다. 하지만 이 때 만큼은 정부도 교회에 어느 정도 기대는 눈치였다고 한다. 마침내 박 목사는 카터 대통령의 특사를 만날 수 있었다.
"목회만 하셨던 분이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박 목사를 만난 특사의 첫 마디였다. 박 목사가 대답했다. "공산주의를 피해 목숨을 걸고 대한민국에 왔는데, 미군이 철수해 버리면 어떡합니까? 기회를 엿보던 북한이 우릴 공격할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럼 그 피해를 다 어찌합니까?"
그러자 특사가 다시 맞받았다. "걱정마세요. 목사님. 주한미군을 철수하더라도, 점차적으로 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한국군의 군사력이 북한 인민군보다 훨씬 강합니다." 하지만 박 목사의 생각은 달랐다. "제 체구가 특사님보다 작지만, 제가 선공을 하면 우선 특사님이 맞겠지요. 마치 이런 것과 같습니다. 주한미군이 철수한 뒤 북한이 남침하면 우리가 많은 피해를 보게 됩니다. 우리의 군사력이 북한보다 강할지라도 지금은 미군이 있어 함부로 넘보지 못하는 겁니다."
박 목사에 따르면 당시 카터 대통령은 인권을 중요시 했다. 주한미군 철수도 인권을 억압했던 박정희 정권에 대한 일종의 압박 수단이었다. 그러나 박 목사는 "쥐를 잡겠다고 독을 깨뜨릴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미국 측 특사에게 카터 대통령을 직접 만나야겠다고 했다. 돌아보면 참 무모했던 행동이었지만 후회는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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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직 목사와 함께 사진을 찍은 박조준 목사 ⓒ박조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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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반도는 남북·미북 정삼회담을 앞두고 어느 때보다 평화 분위기로 고조돼 있다. 박 목사 역시 대화에 거는 기대가 있다. 하지만 자유민주우의를 양보해 가면서까지 북한에 다가가는 것 만큼은 우려했다.
"나는 공산주의 체제 아래서 살아봤습니다. 한 마디로 공산주의 맛을 본 사람이지요. 이런 말을 하면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북한은 여전히 그런 체제를 고수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뭐가 그렇게 나쁘냐?'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을 한 번 보세요. 거기에 정말 계급이 없습니까? 모두가 평등하게 잘 사나요? 아니지요.
시장경제를 우선하는 자유민주주의에도 문제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그나마 역사적으로 증명된, 최선은 아닐지라도 끊임없이 보완해 가며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체제입니다. 특히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지요.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이 이 점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