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희망이라면 청년이 바로 세워지는 것이다. 그들은 3년 혹은 5년이면 내일의 한국사회와 국가를 짊어지고 나갈 일꾼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들에게 기대와 희망을 갖는다.

해마다 러시아에서는 젊은이들과 대학생들을 위한 집회가 열린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고 매우 기대하는 일이기도 하다. 수 많은 강사들이 제 발로 현장까지 와서 말씀과 시대정신을 함께 나누고 도전하는 시간이기에 아주 유익한 시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젊은이들의 한 자리에 모여, 너무나도 바쁜 인생의 쉼표를 찍고, 자신과 사회와 역사와 세상,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생각하고 함께 기도하게 되는 시간이기에 정말 소중한 시간이 아닌가 생각한다.

금년에도 변함없이 귀한 집회가 열렸다. 그런데 집회를 참석하는 동안 매우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이를 함께 나누는 것은 “타산지석”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이다.

항상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다양한 의견을 물어보면서 전반적으로 한국교회의 강단, 목사의 태도와 설교는 매우 엄중한 변혁을 이루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대중 집회의 모습을 살펴보자.

첫째, 집회를 진행하다 보면 일반적으로 홍보 책자를 나눠주고 현수막을 걸고 요란하게 하는데 이제는 상당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어디가나 모든 집회에는 팜플렛을 만든다. 컬러 사진을 넣는다면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런데 각 집회에서 받은 팜플렛은 거의 그 모임이 끝나는 순간 무용지물이 된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다시 볼 정도의 가치는 거의 없다. 낭비가 아닌가 생각된다. 화려한 모습이나 보여주기가 너무 심각하다.

러시아 교회의 대학생 집회나 목회자들의 대형 집회에 가서 보면 팜플렛은 하나도 없다. 현수막을 거는 일도 없다. 아무 것이 없다. 그런데도 집회는 아무런 문제가 없이 진행되고 성황리에 잘 마무리 된다. 한국인의 시각으로 보면 매우 이상하다. 어떻게 이렇게 순서지 하나 없이 일이 진행되는가?

수 십년 간 한국교회 집회는 현수막으로 홍보를 시작하고 아주 고급스러운 팜플렛을 만들어 사용한다. 그런데 지금은 인터넷 시대이고, 컴퓨터가 매우 발전하다 못해 4차 산업혁명까지 나가고 있음을 우리는 다 알고 경험한다.

‘왜 교회는 이러한 것을 이용하지 못하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팜플렛이 없어도, 현수막이 걸리지 않아도, 인터넷으로 연결된 시점에서, 모두가 손에 핸드폰을 끼고 사는 세대를 잘 활용하면 수 많은 비용을 절감할 수도 있고, 불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될 것이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둘째, 설교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제발 좀 말씀에 집중하면 좋겠다. 너무나 귀한 시간이 아닌가? 젊은이들에게 도전을 줄 수 있는 멋진 기회이다. 그런데 말씀 한 절 읽어 놓고 간증으로 시작하여 주절거리며 끝을 맺는다. 저녁마다 세번의 설교가 모두 그랬다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젊은이들이, 거기 모인 성도들이, 왜 당신의 간증과 개인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가? 솔직하게 대부분은 당신의 개인 간증에 대하여 조금도 관심이 없다. 살아 역사하는 말씀을 기다리고, 몰랐던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지성을 흔드는 시간을 기다린 것인데 간증으로 시간을 때우는 것은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예를 들어, 70이 넘어서 신학을 하고 안수를 받고 기도하면 능력이 나타나는 자신의 어머니 자랑. 그래서 어떻다는 것인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 아닌가? 혼자서 흥분하고 침튀기면서 열정적으로 외치는데 젊은이들은 멍~하게, 의아하게 듣고 있다. 허 참~ 기가 찬 일이다. 그것도 해마다 반복해서… 

한국교회 강단을 저렇게 오염시켜도 되는 일인가? 둘째 날도 셋째 날 저녁도 다른 강사들이 와서 이와 비슷하게 하였으니 어찌 통탄하지 않겠는가? 비행기타고 와서 개인 간증이나 하고 갔다는 사실은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적인 시간을 사유화하는 못된 행위라고 보는데, 귀 있는 자들만 듣기를 바란다.

목사들의 이러한 태도는 말씀의 왜곡이고, 내일의 한국사회와 교회를 짊어지고 나갈 청년들에게 매우 심각한 문제이며 일종의 ‘범죄행위’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이지 않는가? 준비없이 강단에 서서 중언부언하며 젊은이들의 머리를 병들게 하는 것이 어찌 잘한 것인가? 주님은 왜 선생이 되지 말라고 말씀하셨나? 왜 연자 맷돌을 말씀하셨나? 책임의 막중함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준비없는 자들이 청년들 집회를 인도하고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진다. 한국교회의 온 젊은이들을 망치는 일이 아닌가? 더 나가 한국교회와 사회와 미래를 망치고, 하나님 나라를 방해하는 일이라고 본다.

인간적인 염려일 수도 있다. 혹은 성령이 그러한 강사들을 보내어서 인도하시는 일이기에 기도하면서 나가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정말 그런가? 목사들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할 말이 없을 때에 성령, 기도, 은혜, 믿음, 축복, 운운하면서 신앙인들을 소경으로 만드는 태도이다.

학생운동은 영성운동이 아니라 지성운동이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특별하게 지성운동이 부족하다. 모든 것을 ‘믿습니다’로 처리하고, ‘주여’ 삼창하고, ‘아멘’ 응답하고, 펄펄 뛰면서 손들고 찬양하면 믿음이 좋은 것으로 착각하는데 정말 그렇다고 보는가? (많은 경우) 뼈를 깎는 마음으로 강단의 혁신을 일으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국교회와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며……

모스크바 세르게이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