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렬 인터뷰
▲김충렬 교수. ⓒ크리스천투데이 DB
제62장 전이현상과 관련한 분석 사례

분석사례란 흔히 경험에 기초하여 실행된 것이기에 현장성을 중시하여 그 이론과의 실제적 차이를 비교 및 검증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이는 분석의 훈련을 위해서 가급적이면 많은 분석사례를 필요로 하는 이유이다. 인간의 심리와 개성의 다양성, 질병의 형태에 대한 적용은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우리나라에서 융의 선구자인 이부영 박사의 전이와 관련된 분석사례를 요약 및 정리하여 제시하므로 도움을 받고자 한다. 다만 이 사례는 외국인을 다룬 것이기는 하지만 과정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또한 전이의 특성상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익혀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1. 분석하기 전 환자의 증상

32세의 여성환자이다. 남편이 젊은 여사무원과 내연의 관계를 가진 것을 알고 전형적인 경련발작인 전환장애를 일으키는 증상이 나타난다. 내연의 관계란 그만큼 여성에게 충격을 주는 사건이다. 이 여성은 자살기도를 한 뒤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입원 중에 거의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분석요법을 시도하여 병의 호전으로 퇴원에 이르게 된 사례이다.

2. 15회째 면담(분석시작 2개월 후)

환자는 꿈에서 분석자를 보았다고 한다. 두 가지 꿈인데 말하기가 어렵고 거북하다고 하여 말하지 않는다. 이 꿈에서 말하기가 거북한 것이란 개인의 사적인 것과 관련되는 부분이 많다. 표현하기 어려운 깊은 비밀이거나 이성간의 성애적 표현이기 쉽다. 물론 분석자는 경험으로 보아 대략 성적 내용이거나 전혀 관계없는 상상을 벗어나는 내용일 것이라 짐작할 수는 있다.

그러나 환자가 말하기 꺼려하는 것이라면 캐묻지 않는 것이 좋다. 그것은 분석자의 호기심 충족보다 환자의 말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환자가 스스로 말을 꺼낼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였다. 언젠가 때가 되면 환자가 스스럼없이 말할 때가 있을 것이다. 다만 분석자는 이로써 전이현상이 일어난 것이라 추측이 가능할 것이다.

3. 전이 발생과 관련된 꿈

분석과정 중에 환자는 세 번에 걸쳐 전이발생과 관계된 꿈을 꾸었다. 물론 모든 환자가 전이에 대한 꿈을 꾸어야 한다는 보장은 없다. 이런 경우는 특이하게 전이발생이 된 꿈과 관련되고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 꿈은 분석자와 그녀의 남편이 싸우는 것을 그녀가 뜯어말리는 꿈이다. 이 꿈은 남편과 이혼을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갈등하는 그녀로서 분석자가 자기편에 서서 남편의 잘못을 야단쳐 주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현일 수 있다. 실제로 병원 측은 그녀의 병을 가볍게 여기는 남편의 태도에 책임이 있다고 보고 있다. 그 남편은 이에 대하여 민감한 반응을 나타낸다.

이 꿈은 환자의 의식적인, 혹은 무의식적인 희망이며, 분석자와 남편 사이의 관계에 대한 지나친 걱정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는 표면적으로 객관단계의 해석에 관련되는 것이지만, 내면적으로는 그녀의 두 갈래 마음의 갈등이 반영된 것이다. 지금까지 남편에 의존된 그녀의 삶과 새로운 분석자에게 의존된 관계 사이의 갈등인 것이다.

두 번째 꿈은 남편은 남편대로 집에 돌아와 식사를 마치고 나간다. 그 뒤에 분석자가 극히 자연스럽게 그녀의 집에 들러 사무적인 대화를 나누다가 돌아가는 꿈이다.

이 꿈에서는 갈등 대신에 세 사람간의 표면상 평온한 공존가능성이 제시된 것이다. 마음에 갈등이 있지만 표면적으로는 공존하는 형태로 보인다. 공존가능성은 사건의 긍정적인 해결을 바라는 측면이다. 어떤 사건이든 간에 반드시 부정적인 측면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비록 현실은 부정적이라고 해도 무의식적으로는 긍정적인 해결을 바라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꿈에서는 일상의 생활이 지속되는 것으로써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하는 태도가 이어지는 것이다. 일상적인 행동은 반복적인 것이면서도 때로는 의미를 담는 것일 수도 있다. 아마도 그러한 공존을 바라는 무의식의 심리가 반영된 것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꿈은 분석자가 그녀를 적극적으로 만나는 형태의 꿈이다. '사무적인 이야기를 나두던' 분석자는 어느 새 그녀와 가까이 대하는 사람으로 변한다. 분석자가 어디론가 가면서 그녀의 차를 함께 타고 가기를 희망한 것이기에, 그녀는 분석자를 태우고 어디론가 차를 타고 갔다. 그리고는 나중에 다시 만나 산책을 나가는 것이었다.

이 꿈은 환자가 분석자와 친해지고자 하는 희구의 표현이다. 분석진행의 결과 분석자는 이것은 결코 무의식적인 것만은 아님을 발견한다. 이상의 3가지 꿈은 모두 평상시의 환자의 모습과 일치감을 갖는다. 꿈의 내용적 줄거리도 일상적인 것이다. 즉 개인적인 무의식의 희구와 현실적인 기대감이 일치되어 나타나는 내용의 꿈이다.

4. 들짐승과 싸우는 꿈(20회째 면담)

환자는 20회째는 들짐승과 싸우는 꿈을 가져왔다. 뱀의 꿈도 꾸었는데 그 뒤에는 식사도 못하고 잠도 제대로 못 잤다고 한다.

환자는 그 동안 상태는 대체로 안정되고 있었으나 가끔 심인성(心因性) 구토를 일으키곤 했다. 들짐승의 꿈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며 그 전에도 간혹 꾸었던 것이다. 뱀의 꿈보다도 들짐승의 꿈은 특기할 만하다. 들짐승은 깊이 숨겨진 본능과 관계하기 때문이다. 들짐승은 그녀의 마음 깊이 잠자던 본능적인 충동이다. 그것이 지금 무서운 세력으로 그녀의 의식을 엄습해 오고 있다.

그녀의 히스테리성 경련발작, 구토 같은 것은 바로 이런 원시적 충동이 생리적 기능에 미친 결과이다. 원시적 충동이란 반드시 성적인 것으로만 제한할 수 없다. 이런 충동은 단순히 성적인 충동으로 구분하기보다 신체적인 기능에 가까운 어떤 세력(energy)으로 보아야 한다. 충동이란 단순한 결과이지만 그것이 일으켜지는 과정에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는게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 경우는 전이가 부분적으로 충동 과정과 관계를 가지는 것으로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5. 원형적 전이로서의 꿈(22회째 면담)

22회째 그녀는 숲속에서 뱀과 관련된 꿈을 가져왔다. 그 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언덕 위, 그녀 앞에는 가파른 큰 바위가 있다. 그녀가 그것을 올라가야 한다고 한다. 그러는 가운데 많은 뱀이 그녀를 쫓는다. 그녀 앞에도 숲속에 많은 뱀의 머리들이 보인다. 갑자기 그녀 건너편에 분석자가 나타난다. 뱀은 옆으로 길을 비키고 분석자와 그녀 사이에 길이 열린다. 그녀는 그 길로 분석자에게 갈 수 있었다. 그녀가 분석자에게로 가자 다시 그녀 뒤로 뱀이 그 길을 닫는다.    

환자는 이미 전날의 꿈에서 야생적 충동 뒤에 무엇이 숨어 있는 직감을 갖게 하였다. 전이되는 감정이 단순한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경험 내용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꿈에 대하여 그녀는 기독교 신자였음에도 아무런 연상이 없다고 한다. 이 꿈은 그 형식적 구조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홍해가 갈라져 건너는 모세의 기적을 연상시킨다. 그럼에도 그녀는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은 모양이다.

꿈에서 분석자가 나타남으로써 뱀이 우굴거리던 숲이 둘로 갈라져 길이 생긴 것은 출애굽기의 형태와 같다. 환자의 무의식은 마치 분석자를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기적을 행한 하나님의 종, '모세'와 동일시하고 있음이 나타난다. 이른바 원형적 전이에 해당하는 것이다.

모세나 다른 특이한 인물의 등장은 신화적인 영웅의 속성을 갖추고 있는 존재로서의 상징이다. 이들은 누미노제(神性)와 관계를 가지는 특성을 지닌다. 그러므로 동물들은 그들의 들으며 자연이 그 능력에 의해 조절된다. 이는 자연이나 동물들을 무의식에서 움직이고 있는 본능에 비길 수 있는 것이다. 본능을 통제하는 것은 결국 초월적인 힘이다. 바로 무의식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파괴적일 수 야생동물과 같은 원시적인 충동을 순화하는 창조적인 능력이 무의식 속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바로 그녀의 꿈에 나타난 분석자의 모습이다.

무의식적인 시각에서 보면 본능이란 어떤 신성(神性)을 내포하는 것으로서 나타날 수 있다. 여기에서 거칠고 파괴적이고 위험한 해리현상을 나타내는 무수한 뱀으로 상징되는 충동 뒤에 창조성과 정신성이 있다. 그것이 환자에게는 분석자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것은 분석자의 인격상이라기보다는 환자의 마음속에 있는 분석자원(治療者原型, ehaler archetype)이다. 다름 아닌 충동의 제물이 될 위험성을 지양하는 심혼(心魂, Animus, Geist)의 상징인 것이다.  

환자가 '가파른 바위'를 올라가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이것은 그녀가 앞으로의 인생에서 겪어야 할 시련과 관련된다. 일종의 성인과정(成人過程, initiation)을 목표로 하는 고행의 과제이다. 그것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그녀의 마음에서 꿈틀거리는 충동이다. 이제 그것이 제거되면서 분석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환자의 고행길을 인도하는 인도자(psychopompos)의 기능이 발휘된 것이다.

이는 환자의 무의식 속에 있는 분석자 원형이 환자로 하여금 성숙한 어른으로 이끄는 것이다. 환자는 성인과정의 길이 결코 평탄하지 않았기 때문에 꿈에서 괴상한 손톱이 긴 남자를 보고 놀라서 깨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녀는 남편 얼굴만 보면 귀신같고 무섭다는 것인데, 이는 그녀 마음속의 남성적 측면인 아니무스도 미분화된 것을 볼 수 있다.

환자는 그런 미분화된 내적 인격 때문에 어려운데다 남편의 규모 없는 생활은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는데 이르게 하였다. 남편은 술 마시고 밤늦게 들어와 행패를 부리는 일이 잦았다. 이런 경우 그녀의 증상이 호전과 악화를 되풀이될 가능성을 예견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분석자가 이런 저런 좋은 말로 생각을 바꾸고 시선을 생활의 외부로 돌리도록 권유해도 그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이다.

이런 상태에 이르면 환자가 자신의 신체증상에 집착하고 남편의 일거일동에 신경이 쓰이며 불안과 공포가 지배적이게 된다. 이로 인해 그녀는 죽을 것 같은 두려움에 매달리게 되는데, 이는 거의 온전한 분석적 기능이 한 동안 마비된 상태였다고 볼 수 있다.

6. 분석자가 납치된 꿈(29회 면담)

그녀는 분석자가 납치된 꿈을 꾸었다. 그 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꿈에서 그녀는 원시림 속으로 분석자를 찾는 탐색작업이 시작하게 되었다. 그녀는 분석자를 찾아 나선다. 그러다가 원시림 속에서 길을 잃었다. 갑자기 그녀는 거대한 고생야수인 공룡(디노자우로스)을 보고 너무 놀라 꼼짝도 못하게 되었다. 그 순간 그녀는 분석자를 본 것이다. 마음이 놓였고 분석자는 그녀를 거기서 이끌어내어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 꿈에 대하여 그녀는 특별한 연상이 없다. 그녀의 꿈에서 보면 그 동안 분석자는 원시림으로 잠시 사라진 것이다. '원시림'이란 태고의 자연 그대로인 곳이다. 인간 정신의 가장 가까운 장소, 즉 본능에 접한 무의식의 깊은 층이다. 환자의 자아는 무의식화 되버려 잃어버린 분석적 기능, 건강한 이성을 되찾아야 한다.

이 작업은 물론 위험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고생대의 야수마저 버티고 있는데, 공룡은 흔히 고태적인 모성(archaic mother)의 상징이다. 이것은 무한한 지배욕과도 통하는 것으로서 무시무시한 동물적 충동과 지배욕에 사로잡힐 수 있는 위험성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녀가 이성과 정신을 찾아가는 도정(途程)에서 만날 위험인 것이다. 그런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찾아 나서는 것은 옳은 일이다. 그 위기의 한가운데서 분석자를 만나기 때문이다. 이 꿈에서도 분석자는 그녀로 하여금 원시적 본능에서 빠져 나오게 하는 '인도자'의 역할이다.

7. 분석자가 떠나는 꿈(33회째 면담)

33회째 그녀가 가져온 꿈에서는 분석자가 다른 곳으로 간다. 그 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녀의 꿈에서 분석자는 환자와 좁은 길을 걸어가야만 한다. 이제 분석자는 다른 직장으로 가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간다. 그녀는 진흙탕의 길을 걸어간다. 그녀는 장화가 없어서 걷는데 고생이다. 그러나 분석자는 그녀가 걸어가는 길을 지켜보고 있으며, 그녀는 분석자가 서 있는 곳을 지나가게 되어 있다.

이 꿈에 대하여는 특별한 해석이나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미 이 꿈은 분석자와 분리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 환자는 의식적으로 여러 번 현실을 인식하거나 자신의 심리적인 결단을 경험한 상황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8. 영웅신화와 원시인의 성인과정 꿈(39, 40회째 면담)

39회와 40회째의 꿈은 영웅신화와 원시인들의 성인과정의 고행과 관련되는 꿈이다. 그녀의 꿈-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녀는 집에서 쫓겨났다. 그녀는 분석자 때문에 옷도 가방도 지니지 못했다. 그때 분석자는 그녀를 어느 작은 성으로 인도한다. 병이 돌고 있기 때문에 그녀는 격리되었다. 다 무너져 가는 교회, 첨탑에 종이 매달려 있다. 광야에서 그녀는 갑자기 아이를 낳은 것을 알게 되었다. 딸아이인데 이름을 '야스민'이라 하였다. 까만 머리를 하고 있다. 그녀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나 아이에 대해 기뻐하였다.

이때 그녀는 체구가 큰 남자 거인을 보았다. 32회째 면담 시간에 분석자는 그녀가 선물한 찻잔으로 중국의 야스민-차를 그녀에게 대접하였다. 그것은 그녀의 분석자에 대한 신뢰와 친밀성을 받아들이는 표시이며 선물에 대한 보답이었다.     

이 꿈은 그 한 달 뒤에 꾸게 된 것이다. 이 꿈에서 보면 아무것도 없이 집에서 쫓겨나는 그녀의 모습은 영웅소아(英雄小兒, Helden Kind)의 조건이다. 이것은 일단 세속에서 버림받는 것을 의미한다. 특별히 장소는 이를 암시해주는 조건인데, 장소는 광야나 산속이나 바닷가 어디든 인간들의 현실 세계와는 멀리 떨어진 곳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거기서 출산을 깨닫게 되는 사실이다. 이는 분석자에 대한 전이가 그녀의 마음에 명료하게 출산으로 등장한 것이다. 그것도 그녀의 마음속에 잉태하였던 것이 집단에서 떨어져나간 완전히 고립된 상황에서 출산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버림받는다는 것은 또한 집단과의 동일시를 탈피하는 첫걸음인 것이다.

실로 분석자의 성적인 결합의 환상이라는 전이현상은 환자 스스로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화합, 또는 일치감이다. 이는 융의 저 유명한 '대극의 합일'(coniunctio oppositorum)인 동시에 갈등의 종식이다. 나아가 이것은 그대로 새로운 창조적 가능성에의 출현이다.

꿈에서 그녀가 이러한 집단으로부터 버림받고 옷도 짐도 챙겨 갖지 않은 것은 또 하나의 의미를 갖는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그녀의 페르조나를 완전히 벗어버린 거칠 것 없이 자기 자신으로 돌아 간 상황에서 비로소 인식되는 것이다. 이렇게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화, 즉 새로운 성장 가능성을 깨닫는 것은 일상적인 사회생활 속에서는 어렵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인식의 깨달음을 위하여 세속을 잠깐 떠날 필요가 있다.

꿈에서 그녀의 자아는 새로운 인격의 전환을 예고한다. 버림받은 상황에서 미래의 가능성인 새로운 인격의 탄생을 인식하는 것이다. '야스민'은 그녀의 마음 속에 지금까지 의식의 인격 속에 볼 수 없었던 하나의 여성적 요소이다. 이로 인해 그녀는 인격의 변화가 진행될 소지를 마련한 것이다. 이런 성인화의 꿈에서 그 어느 누가 주제하든 간에 상관은 없다. 병원의 체계상 얼마든지 여러 분석자를 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꿈의 말미에 그녀가 본 거인(巨人) 남자는 영웅주의의 표상이다. 영웅주의의 표상은 그녀의 무한한 야망과 포부, 일종의 명예욕의 상징일 수도 있다. 흔히 창조적인 인식 뒤에 따르는 이 영웅주의는 순수한 수도(修道)를 성취함에 있어서 방해가 되는 요소이다. 그러나 권력의지가 '커다란 힘센 사나이'인 거인으로 표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거인은 앞으로 진행될 성인과정에서 장애이면서 동시에 극복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그것은 여성적 속성의 의식화와 함께 인식되어야 할 그녀 속의 남성상인 아니무스이면서 동시에 지극히 원시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는 원형적인 남성적 속성인 것이다.

9. '야스민'의 탄생과 양육에 관한 꿈(41회째 면담)

41회째 면담에서 그녀는 '야스민'의 탄생과 양육에 관한 꿈을 가져왔다. 이 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꿈에서 그녀는 여전히 같은 성탑에 있었다. 그녀는 흰 염소를 얻어 염소는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고 여우, 사슴들이 그녀에게로 다가온다. 그리고는 그녀에게서 그 아이를 데려가려 했다. 분석자는 아이를 팔에 안고 이 아이는 아버지에게 속한다고 했다. 그녀는 아이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싸웠다. 그녀는 조 잎사귀로 아이와 그녀의 옷을 엮었다. 그 꿈에서 염소가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경우가 나온다. 이는 공교롭게도 그대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것이다.

주신(主神) 제우스(Zeus)는 크레타섬의 동굴에서 염소의 젖을 먹고 자랐다. 그러나 그녀는 제우스의 이야기를 들어 본 일이 없다. 물론 어린이에 대한 동물의 가호와 동물에 의한 양육은 많은 민담, 신화에서는 장차 영웅이 될 징조의 아이다. 그러나 여우나 사슴이 아이를 빼앗아 가려고 하고, 처음에 이 탑으로 인도한 분석자가 아이를 아버지에게 데려가려 한다. 그녀는 모처럼 얻은 그녀의 마음속의 '새로운 생명 있는 것'을 어느 누구의 간섭도 없이 키우고자 한다.

이 꿈에서는 그녀의 사사로운 노력을 누가 깨뜨리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이는 실제로 출생한 그 아이의 소유권에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과 관련된다. 그녀의 외향적이며 인습적인 남성의 주장으로 인하여 그녀가 너무 아기 같은 것에 집착하는 것에 제동을 건다는 점에서다. 그리고 이 모습은 그녀의 모성적 소유욕에 대한 비판으로도 볼 수 있다. 만약 '야스민'을 영웅소아로 본다면 그녀는 다시금 모성을 떠나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실로 일상적인 '어머니'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부모에 속하는 것이다.

이처럼 신화의 과정은 대개 이런 천상의 탄생이나 그리고 사람의 손에 의하지 않는 비법성을 드러낸다. 그러나 꿈에서 그녀의 자아는 자신의 손으로 옷을 엮어 이 아이를 기르기 시작한다. 이는 분명히 '아버지'에 대한 연상이 불명확하고 자아의 느낌을 검토할 수 없기에 판가름이 쉽지 않다. 그 후 이러한 성인과정의 꿈은 여러 번 나타나기도 하였다. 그때마다 그녀의 성인사(initiator)는 분석자이거나 모르는 원시인이기도 했다.

10. 귀신 꿈(44회째 면담- 분석 개시 후 5개월)

44회째 면담에서 그녀는 귀신에 관한 꿈을 꾸었다. 그 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녀는 제단 위에 누워 있다. 그녀는 귀신이다. 그녀는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볼 수 있지만 귀신임에는 틀림없다. 흰 옷 입은 귀신들이 그녀 주위를 돌며 춤추고 있다. 이때 분석자가 공중을 날고 있는 것처럼 그녀에게로 다가온다. 분석자의 옷은 보통 옷인데 귀신처럼 행동한다. 분석자는 그녀를 제단에서 어떤 큰 화려한 신전으로 그녀를 데려간다.

이 꿈은 분석자의 '샤머니즘'에 대한 강의를 들은 다음 꾸었다고 한다. 물론 강의 내용과는 똑같지 않으나 샤만의 입무(入巫) 과정을 들은 것이 자극되었음이 드러난다. 특히 샤만 후보자가 성인사에 의하여 그 육체가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 인상적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꿈에서 제단 위에 누워 있는 것은 이런 점과 통하고 있다. 다만 해체의 과정은 없고 귀신들이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강의 내용이 무척 인상적이었음이 틀림없다. 그렇다고 해도 인간의 마음에 그토록 자극을 줄 수 있는 가는 여전히 깨닫기가 쉽지 않다. 아마도 인간의 마음에는 고태적인 마음의 토대가 있기에 무의식적인 작용이 가능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그녀의 꿈에 등장하는 인물이 모두 귀신으로 등장했다는 사실은 놀랍다. 자기 자신은 물론 분석자까지도 귀신이다. 현실적인 모습과는 달리 인간은 귀신과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귀령 같은 비인격성을 구비하고 있다는 뜻인지를 알 수가 없다.

우리의 무속기원이라는 저승 설화(說話)에 보면 강림도령 또는 총각귀신이 죽은 자의 혼을 저승으로 보낸다고 한다. 그것은 그리스 신화의 헤르메스Hermes나 페르세포네(Persephone)와 같은 존재이며, '영혼의 인도자(psychopompos)'이다. 기독교에서는 천사가 영혼의 인도를 한다. 이런 인도자의 기능은 각국의 신화 또는 민담에서 나타난다.

분석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그녀를 이끌어 신전으로 데려간다. 특별히 제단에서 화려한 신전으로 데려간다는 뜻은 무엇인가. 거기서 또 다른 제의(祭儀)를 하기 위함인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 꿈은 모든 것이 의식 저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종교적인 동시에 마술적인 분위기를 나타내는 꿈이다.

꿈의 자아까지도 무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은 의식화 과정에서는 어려운 문제이다. 자아가 귀신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상태이다. 귀신이 된 자아, 무의식의 일부가 된 자아의식은 다시 새로운 인간으로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꿈에서는 그런 과정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 화려한 신전에서 인간화 되는 마지막 의식이 이루어졌기를 기대할 뿐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화려한 신전에서 일어나는 일은 삶이 아니라 자신을 신께 바치는 죽음, 즉 무의식화 될 수도 있다.

꿈이 이처럼 아무런 단서가 보이지 않는 이상 어떤 것을 단정하기는 어렵다. 만약 이 꿈에서 하나의 단서를 가정한다면, 그것은 위험성일지 모른다. 분석자나 환자에게 집단적 무의식의 고태적인 내용에 오염될 바로 그 위험성을 말한다. 특히 분석자가 귀령이나 귀령적인 성인사(成人師)와 동일시는 더 위험하다. 초인적인 능력을 갖춘 환자의 무의식의 분석자원형이 분석자에게 투사될 때는 분석자는 자기 자신을 그 신격(神格)과 동일시 할 위험성이 있다. 비록 분석자의 마음에 그런 신성력이 환자의 마음속에 동일하게 존재한다고 해도 분석자의 인격은 신(神)과 같을 수는 없다. 이런 점에서 이 꿈은 분명히 환자보다는 분석자에게 주는 경고임에 틀림없기에 분석자는 환자를 대하며 겸허해야 한다.

11. 정리

지금까지 우리는 분석에서 유발되는 전이현상에 대하여 기술했다. 전이가 유발되는 과정에서 마무리되는 분석의 과정이 전이에 대해서 다른 분석을 위한 좋은 모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우리는 한 여성 환자의 꿈의 분석으로 전이현상의 실제적인 분석치료 사례를 살펴본 것이다. 이 분석치료 과정에서의 전이현상은 곧 신화적, 고태적인 특성과 꿈에 나타난 성인화(成人化)의 주제였다. 물론 이 고찰은 환자에 대한 전체적인 분석치료과정을 설명한 것은 아니었기에 분석치료의 구체적인 진행과정에 관한 설명이 생략되었다.

게다가 꿈의 해석에 있어서도 요점만 간략하게 묘사하는데 그쳤고, 완전한 분석치료의 종결이 어떻게 되어졌는지를 밝히지 못했다. 그것은 분석자의 부득이한 귀국으로 치료 진행이 종결돼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당시 환자는 매우 양호하여 증세가 거의 없었으며, 남편과도 이혼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녀는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하면서 병원의 작업요법실의 일을 시간제로 도우며 근무하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