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클럽, 팀켈러, 고통을 말하다
▲4일 오후 장충체육관에서 팀 켈러 목사의 ‘고통을 말하다’ 북클럽이 진행됐다. ⓒ강혜진 기자 

4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팀 켈러, 고통에 답하다’ 평신도 컨퍼런스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팀 켈러 목사의 신작인 ‘팀 켈러, 고통에 답하다’ 를 소재로 한 북클럽과 팀 켈러 목사의 설교로 진행됐으며 3,500명이 참석해 큰 관심을 끌었다.

개그우먼 정선희의 사회로 진행된 1부에서는 ‘저스트쇼업(Just Show Up) 북클럽’ 시연이 펼쳐졌다.

저스트쇼업 북클럽은 참석자들이 신앙 서적 한 권을 골라 오디오북으로 들으며 눈으로 따라 읽은 다음, 자신의 생각을 주고 받는 독서 모임으로, 이날 시연에는 강효숙 (주)콩두이사, 조명환 건국대 교수, 추상미 보아스필름 대표, 꽃제비 출신 탈북민 이성주 씨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팀 켈러, 고통에 답하다’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통을 허용하시는 이유에 대한 팀 켈러 목사의 묵상이 담긴 그의 책 194~197페이지를 함께 읽었다.

오디오북을 통한 낭독이 끝난 후, 정선희 씨는 참석자들에게 “인생에서 제일 깜깜할 때가 언제였나?”라고 물었다.

북클럼, 팀켈러 고통을 말하다
▲참석자들이 북클럽을 시연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개그우먼 정선희 씨, 강효숙 (주) 콩두 이사, 조명환 건국대 교수, 추상미 보아스필름 대표, 꽃제비 출신 탈북민 이성주 씨. ⓒ강혜진 기자

강효숙 이사는 “저는 나이가 많다. 위험과 아픔, 고통의 순간을 지나 이 자리에 선 것에 대해 ‘잘 견뎌왔다’는 생각이 든다. 1970년대 대학을 졸업하고 외국에서 떠돌이같은 삶을 살다가 결혼을 했다. 결혼 생활도 복잡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는데, 나의 자랑스러운 딸이 사고로 식물 인간이 된 것이다. 자녀가 아픈 것이 제일 고통이었다”고 말했다.

조명환 교수는 “저는 어릴 때부터 착하게 자랐는데, 공부는 잘하지 못했다. 고3때 들어갈 수 있는 대학이 없어서 전전긍긍하다가 건국대 문과학생이 미생물학과에 진학을 했다. 미달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열심히 공부해서 오하이오 주립대 박사과정에 합격했다. 그런데 학습 능력 미달로 쫓겨나게 됐다. 제겐 매달 15달러를 지원해주시던 미국 어머니가 계셨다. 본인도 어려우셨지만 매달 저를 위해 지원해주신 어머니께 죄송했고 부끄러웠다. 가족들을 볼 면목도 없었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을 원망했다. 다른 학교를 갈 수도,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 속에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데 너무 무서웠고 비참하고 한심하고 부끄러웠다. 지금 생각해도 당시의 고통이 제일 컸다”고 말했다.

추상미 감독은 “짐작하시는 분들도 있으실텐데, 2008년 이후 배우 활동을 그만두었다. 아버지를 따라자연스럽게 배우의 길을 걸었으나 연예계는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예술 세계와 다른 연예계를 알게 되었고, 어느 순간 카메라 앞에 서면 공황 장애가 나타났다. 어린 시절 상처와 쓴뿌리가 많았다. 결혼 생활도 쉽지 않았는데, 아이를 낳고 2~3년 되었을 때 우울증까지 왔었다. 그런데 지금은 99% 회복이 되었다”고 말했다. 

탈북민 이성주 씨는 12살 때가 제일 힘들었다고 말을 꺼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교장 선생님 때문에 강제적으로 총살 현장을 지켜봤고, 국가에 절대적으로 충성해야겠다는 공포심이 충격적으로 심겨졌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아버지는 북한군 장교였는데 술을 마시면서 동료들에게 ‘북한에는 희망이 없다’고 말한 것이 밀고돼 온 가족이 평양에서 추방됐다. 먹을 것을 구하러 아버지가 집을 나간 후 4개월 만에 어머니도 집을 떠났다. 아무 것도 없던 나는 꽃제비가 되어 떠돌았다. 함께 무리로 꽃제비 생활을 하던 친구들이 차례로 죽고 언 땅을 파고 이들을 직접 묻기도 했다. 당시의 꿈은 하루 세 끼를 먹는 것이었다”고 털어놓았다.

팀 켈러 목사는 책에서 “이 세상의 악과 어두움은 대부분 인간 내면으로부터 기인한다. 우리 안에는 악으로 굽는 성질이 있다. 근본적으로 자기 중심적이다. 이는 인간이 고난을 경험하는 근원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정선희 씨는 이에 대해 “우리의 고통은 외부적인 환경의 변화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어쩔 수 없었던, 그런데 이 고통의 원인이 내 안에 기인한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조 교수는 “예수님을 잘 믿으면 고통이 없을 줄 알았다. 전도하고 기도하고 예수님과 정말 가깝게 지냈기 때문에 제게는 고통이 안 올 줄 알았다. 그러던 제가 오하이오 공원 벤치에 무서운 심정으로 앉아서 ‘하나님께서 왜 내게 이러한 고통을 주실까’ 많이 생각하고 원망을 하게 됐다. 사실은 미국의 에드나 어머니가 저한테 계속 15달러와 함께 항상 보내주시는 메시지가 바로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신다. 그분의 사랑을 믿으라’(God loves you, Trust his love)였다.

그런데도 너무 힘들었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녀의 환경인가? 그러나 어머니께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말씀해주셨고 그 힘이 저를 이끌어냈다. 그리고 또 빌 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말씀이 저를 살렸다. 제일 고통 중에 있었지만 저를 향한 하나님의 일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붙들면서 고통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던 것 같다”고 답했다. 

강 이사는 “어두움과 빛(선)이 내면에서 같이 나온다는 것에 대해 공감한다. 딸 아이가 식물 인간이 된 사실은 변함이 없는데, 어느 한 날은 아이가 내 곁에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고, 또 한 날은 ‘내가 죽으면 이 아이를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에 어두움과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영적 전쟁 속에서 어둠과 빛은 저의 선택인 것 같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택의 자유를 누려보라”고 했다.

정선희 씨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고통이 빛이 될 수 있었던 계기에 대해 물었다.

이에 이성주 씨는 “사실 고통은 우리가 평생 달고 살 수 밖에 없다. 우리가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사랑을 의지할 때 뿐”이라며 “교회를 만나기 전 북한은 저주의 땅이었고 고통의 기억이었지만, 교회를 다니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신앙이 성장하면서 북한 땅은 저주가 아닌 축복을 해야할 장소로 의미가 달라졌다 이제 고통스러운 기억으로만 남아있던 북한은 이제 제가 살아야 할 이유와 꿈이 됐다”고 간증했다.

그는 먼저 탈북한 아버지의 도움으로 2002년 남한으로 들어올 수 있었고, 아버지를 따라 신앙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남한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어야 했다. 남한에서는 북한 사람들을 형제라고 했지만 그는 같은 민족으로 대접을 받을 수 없었다.

20대가 되기 전, 그는 이러한 고민을 품은 채 하나님께 어떤 정체성을 가져야 할 지 기도하면서 비전을 얻게 됐다. 그는 "하나님은 제가 100% 북한 사람인 동시에 100% 남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셨다. ‘남한과 북한으로 나눠보지 말고 한반도 전체를 보며 통일을 준비하는 다리가 되라’는 응답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탈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통을 겪고 있는 후배들한테 내 이야기를 전해주면, 항상 마지막에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했느냐’고 묻는다. 그 때마다 교회에 가보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추 감독은 “북클럽을 하면서 실제적인 치유와 회복이 일어났다. 상처와 쓴뿌리를 사회적인 성공, 지위를 통해 치유 받으려고 했다. 그렇게 혼자 고민하고 생각할 때 우리는 오류에 빠지고 악을 향하게 된다. 그러나 인생의 선배님들의 지혜로운 글을 통해 생각의 교정을 받을 수 있었다. 내가 얼마나 좁은 경계안에서 살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생각이 변화되고 치유되는 경험을 하게 됐다”고 간증했다.

이에 정선희 씨는 “저도 팀 켈러 목사님의 ‘거짓 신들의 세계’를 읽으면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처음에는 도도한 모습을 하고 모임에 참석하러 왔다가 바보같이 엉엉 울었다. 나 혼자 고상한 척하면서 살아갈 수 있지만 내면은 외롭고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마음을 낮추고 열 때 회복될 수 있었다. 또 함께 하는 참석자들을 통해 위로를 받는다”면서 공감을 나타냈다. 

강 이사는 북클럽을 통해 하나님과 1:1로 만나게 된 과정을 전했다.

그녀는 “제가 사랑하는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주님께 가까이 다가가지질 않았다. 아이가 제게 가장 소중했는데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다. 결국 주님의 품으로 나아가게 되었는데, 그러다보니까 그 아이가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었다. 제가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많이 노력하는 스타일이었는데 ‘나 자체가 사랑스럽고 귀한 존재이구나’하는 마음이 저를 덮었다.

그리고 북클럽을 통해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결국 우리가 하나님의 걸작품이고, 예수님께 갈 때는 그 모습이 드러난다고 하는데, 지금 내 눈에는 까만색으로 보이지만, 하나님은 그 색이 있어야 걸작품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두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누가 뭐래도 하나님의 걸작품이야’라는 말이 항상 위로가 되었다. 모든 상황이 주님이 나를 걸작품으로 만들어가시는 과정이기 때문에 어느 순간에도 기뻐하며 즐거워하면서 살고 싶다. 그래서 늘 즐겁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과정을 열매와 같이 먹고 사는 삶을 살고 싶다”라고 나누었다.

이어 2부 순서로 팀 켈러 목사가 ‘고통에 답하다’는 주제로 메시지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