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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왜 결혼을 하려는 것인지' 묻는다면, 아주 다양한 대답들이 나올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라는 원론적이고 궁극적인 해석부터 매일 밤 헤어지기 싫어서라는 현실적인 이야기까지, 많은 이유와 당위를 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사랑의 열병을 앓고 안달을 하다 결국 짝을 맺어 결혼을 하기까지의 과정을 생물학적으로 보면, 자손을 퍼뜨리고 번식을 하여 인류가 유지되게 하기 위한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석하는 이들이 있다. 사랑도, 결실도, 결혼도, 출산도 모두 이를 위한 구조에서 나오는 다분히 원시적인 것으로, 모든 생물의 그것과 마찬가지의 단순 명료한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할 수 없으므로 그저 자연 속에서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그렇게 결혼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섭리의 장치 중 하나로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외로움'이다. 고독은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가장 원초적인 느낌으로 누구도 그것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가끔 정신을 놓아버려서 외로움도 느끼지 못하는 듯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아마 그들은 그런 외로움을 자기 육신으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외로웠던 이들이 아닌가 한다.

사람들은 외로워서 결혼을 한다. 누군가에게 기대기 위해 결혼하고, 혼자 결정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함께 결정하고 또 위안을 얻기 위해 결혼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얼마 안 가서 깨닫게 된다. 결혼으로 외로움을 온전히 해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이다.

김재욱 연애는 다큐다 46
▲ⓒ사진 박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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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중반쯤, 총각일 때 디자이너로 여성잡지사를 다녔다. 그런데 어느 날 어떤 남성 작가가 쓴 칼럼의 원고가 디자인팀으로 넘어왔는데, 그 제목이 철없는 총각이 보기에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제목은 이런 것이었다.

'결혼하면 더 외롭다'.

결혼하면 더 외롭다니, 너무 과장이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결혼해도 외로움을 다 털어낼 수 없다'고 했다면 이해했겠지만 '더' 외롭다니, 너무 허무한 이야기 아닌가. 제목만 강렬해서 그랬는지 그 칼럼 내용을 자세히 읽은 기억은 없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말을 이렇게 이해하고 있다.

외로움을 덜거나 없애려 결혼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결혼을 해 보면 그 외로움의 앙금이란 것은 마음의 밑바닥에 그대로 남아있는데, 이것을 다 긁어내지 못한 상태에서 그 위에 계속 외적인 결혼생활이라는 흰 페인트로 덧칠만 해대니, 멀리서 보면 그저 앙금이 사라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고..., 기대했던 외로움의 종식은 그저 꿈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공허함은 배가되어 '결혼하면 더 외롭다'는 볼멘 고백이 글로 드러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일생을 다 섞어서 평균을 내면 그 즐거움이나 괴로움이나 기쁨이나 슬픔, 또 외로움의 정도라는 것이 기혼으로 산 사람이나 독신으로 산 사람, 오래 산 사람이나 일찍 죽은 사람이나 다 똑같을 것이다. 영혼의 문제를 누군가 대신할 수 없듯이, 인간은 혼자일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져 있다.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 문제도 일대 일로 풀어야 한다. 아무도 도움을 줄 수 없으므로, 혼자 고민하고 또 감당하고 해결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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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외로움을 달래는 일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아니, 아주 많이 위로하고 분명히 외로움을 덜어준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외로운 한 영혼, 한 영혼이 모여 그저 안 그런 척 지내는 것일 뿐이다.

인간은 그 좁은 머릿속, 그 작은 육체에 갇혀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는, 영혼일 뿐이다. 자신의 외로움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결하거나 처리하지 못하면, 그것은 자신은 물론 상대방에게까지 상처를 입힐 수 있는 다른 감정들로 발전할 것이다.

외로움을 두려워한 나머지 무르익지도 않은 결혼을 성사시키려 한다든지, 자신이 버림받아 외로움의 밑바닥으로 추락하는 것이 두려워 선수를 쳐 상대를 버린다든지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예전에 오래 사귄 자기 남자친구를 끔찍히도 사랑해서 정말 화장실 앞까지 따라가서 기다렸다 같이 올 정도로 유난스럽던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남자친구가 곁에 없으면 인상이 어두워지고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그가 다시 올 때까지 안절부절 못하곤 했다.

그러다 그 남자가 외국으로 1주일 이상 출장을 가게 됐는데, 여자의 다른 면이 발견됐다. 주변의 별로 친하지 않던 남자들에게 그새 호의적으로 바뀐 것이다. 말도 다정해지고, 뭐든 옆에서 같이 하려 하는 등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다 몇 년 후 남자가 군대에 갔는데, 두어 달 만에 다른 남자를 만나더니 그렇게 오랫동안 끔찍이 붙어 다니던 남자를 차 버리고 고무신을 거꾸로 신는 것이었다. 그 뒤로도 쉽게 끊어지지는 않고 우여곡절이 많았다지만, 어쨌든 그녀의 옆에는 누가 됐든 남자가 있었다.

그녀는 외로움을 잘 못 견디는 측은한 인간이면서, 인격적으로는 다소 균형적이지 못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그녀는 남자와의 동행을 지독한 고독에 대한 방향제쯤으로 여겼는지 모르겠다.

방향제는 악취를 잠시 덮어두는 것 같지만, 근원을 제거할 수는 없는 미봉책이다. 그래서 그녀의 삶은 누더기처럼 계속 덮고 덮다가 한계를 맞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군중 속의 고독'이 괴로워서 더 많은 의사소통의 도구들을 발명해냈지만, 끝내 외로움을 더욱 키우기만 하는 묘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 외로움이란 평생을 먹어야 하는 쓴 약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결혼이나 연애로 일거에 고독을 해결하려 한다면, 그것은 그 쓴 약을 당의정으로 만들어 삼키는 것에 불과하다.

결혼해도 외로움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절망하지 말라. 하나님은 역설적으로 그런 고독을 통해 사랑하는 이와 사랑 자체의 소중함을 알게 하고,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는 인간의 연약함을 깨닫게 만드시는 것이니까.

김재욱 작가

사랑은 다큐다(헤르몬)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내가 왜 믿어야 하죠?, 나는 아빠입니다(생명의말씀사) 외 30여 종
www.woogy68.blog.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