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렬 인터뷰
▲김충렬 교수. ⓒ크리스천투데이 DB
제55장 꿈의 기능(2)

앞 장에 이어 우리는 꿈의 기능에 대해서 고찰하고 있다. 꿈의 기능에는 긍정적 측면도 있고 부정적 측면의 양면성이 있다. 부정적 측면으로서는 현재의 잘못된 생각을 그대로 추진하면 위험이 따른다는, 앞에서 든 보상적인 것도 해당된다. 다만 미래의 일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자칫 기적이나 미래에 대한 예지적인 것으로 혼동하기 쉬운 경향이 있다. 그것은 의식이 때로 보지 못하는 경우를 무의식이 보는 경우가 많고, 이를 꿈에 알려주는 원리이기 때문이다.

1. 미래예시적인 기능으로서 꿈

꿈은 미래에 대하여 예시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이것은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하여 미리 알려주는 미래암시적인 역할이다. 이렇게 꿈이 미래예시적인 기능을 갖는 것은 미래에 의식 활동이 앞질러 나타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융은 "꿈의 미래예시적인 기능은 무의식에 나타나는 미래의 의식 활동을 앞질러 취하는 것으로 예비연습이나 예비 소묘와 같은 것이며, 미리 구상된 기획"이라고 언급한다.

1) 질병의 발생을 알리는 꿈

사람은 자신의 질병을 알리는 꿈을 꿀 수 있다. 꿈이 앞으로 병리적인 것이 발생하게 될 것을 예견하는 꿈인 것이다. 다만 미래예시적인 꿈을 해석하기란 쉽지 않다. 그것은 꿈을 꾸는 사람이 질병에 걸릴까 봐서 걱정을 하는 것이 꿈으로 된 것인지, 아니면 진정으로 질병이 발생한다는 것인지의 구분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융은 진정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꿈은 어떤 분명한 것을 가리켜주고 않을 때 시작된다고 한다. 이런 경우는 특히 꿈이 미래에 일어날 어떤 것을 미리 앞질러 제시하고 있을 때 종종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꿈은 반드시 예시적인 꿈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예감하는, 혹은 '재확인'하는 꿈이기도 하다.

그런 꿈들은 어떤 가능성의 기미만을 표현하고 있기에 비전문가에게는 결코 납득되지 않는 편이다. 이런 경우에는 심지어 융조차도 납득되지 않을 때가 있기에 환자에게 "나는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자취를 추적해 보십시오"라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이런 것은 대개 꿈이 '무의식적인 형이상학' 같은 것을 내포하는 것이기도 했다.

미래예시적인 꿈에서 융은 비교적 정신이 정상적인 환자의 긴 꿈에서 그의 여동생의 아이가 병이 들었다는 꿈으로 예로 든다. 그 아이는 두 살짜리 여자 아이였다. 얼마 전 이 환자의 여동생은 실제로 아들을 병으로 잃었지만, 그녀의 다른 아이들은 마무도 아프지 않았다. 그런데 꿈에 나타난 병든 아이는 현실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우선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꿈꾼 사람과 여동생 사이에는 직접적이고 밀접한 관계가 없었으므로 꿈꾼 사람 역시 이 꿈의 상(像)에서 개인적인 어떤 것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가 2년 전에 심령술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것을 갑자기 상기하였는데, 그 연구과정에서 그는 또한 심리학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 아이는 분명히 그의 심리적인 관심, 즉 의식의 자아로부터 나오지 않은 어떤 생각이었다. 순수하게 이론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이 꿈의 상은 모든 것을 의미할 수도 있고,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하나의 사물이나 하나의 사실은 그 자체로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의 문제는 해석을 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항상 사람이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것은 그에게 심령술에 대한 연구가 병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2) 일의 결과를 알리는 꿈

일반적으로 사람은 어떤 일을 수행하거나 진행할 때 그 일의 결과를 알고자 하는 심리가 작용한다. 특히 일의 귀추를 도저히 알 수 없는 사건에 휘말려 있는 경우에는 그 결말이 더욱 궁금해진다. 이런 경우의 사람은 일의 결말이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해서 알려주는 꿈을 꿀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모든 경우에도 그럴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있을 수 있는데, 이는 어려운 질문에 해당한다. 다만 꿈에서는 종종 그런 예시적인 기능이 있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이처럼 꿈의 미래예시적인 기능은 마치 크로이스 왕에게 내린 텔피의 신탁과도 같은 작용을 한다. 강을 건너면서 싸우다가 완전히 패한 크로이서스 왕은 신탁에서 언급된 왕국이 자기의 왕국임을 깨닫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꿈은 마치 자비롭고도 잔인한 신화의 여신과도 같다. 때로는 관용을 때로는 무자비함을 예고하여 행사하는 것 같은 특성은 합리적인 정신에서는 이해가 어렵다. 오히려 신비성이나 상상이 풍부한 신화 세계에서 이해가 쉽다.

융은 현대인의 비합리적인 특성의 상실은 정신적인 많은 문제를 발생시키는 요인으로 지적한다. 문명이란 대단한 생활의 유익을 가져 온 반면, 정신적으로는 이런 비합리적인 무의식의 세계에서 분리되고 말았다고 본다. 이것은 융이 현대인의 정신적인 황폐함의 원인을 보는 시각이다. 문명화의 과정이 인간의 보다 깊은 본능적 세계로부터 분리시킨 주체라는 것이기에 융은 정신의 보편성이 많이 훼손되었음을 전제로 하여 꿈을 분석하려는 사람들에게 경고한다. 이는 단순히 정신상태가 평형성을 문제로 삼는 것만은 아니다. 꿈-해석이 그 만큼 예민하고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에 있다.

3) 장래에 어떤 사람이 되는 꿈

꿈은 꿈을 꾸는 사람이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을 알려주는 측면이 있다. 이런 꿈을 우리는 미래예시적인 꿈이라고 부른다. 꿈이 미래예시적인 것이라는 점에서 융은 어떤 여자환자의 예를 든다. 그녀는 특이한 색깔의 꿈이나 보기 드문 상(像)의 꿈을 꾸고 나서 융에게 "내가 화가라면 꿈에 대한 그림을 그릴 거예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꿈들은 사진, 채색화, 연필화, 채식(彩飾)된 글씨 또는 영화 등에 관해 말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경우에 융은 환자들에게 이런 것들을 실제로 이용하기 위하여 그들이 꿈이나 환상에서 본 것을 그려보라고 권하면 자신들은 화가가 아니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 융은 오늘날 화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인데, 그것은 오늘날의 화법은 틀이 없으며, 게다가 중요한 것은 아름다움이라기보다는 상을 그리는데 기울이는 노력이라는 점에서다. 실제로 융의 환자 중에서는 그렇게 시도하여 뛰어난 여자 초상화 화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녀는 처음에 그림을 그릴 때 한심스러울 정도로 어린애 같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화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융이 꿈이 가리키는 미래예시적인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미래예시적인 꿈으로는 융의 환자의 예를 들 수 있다. 환자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사회적으로 상당히 성공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불안 초조, 불안정한 마음, 때로는 구토까지 일으키는 어지럼증, 어리가 멍하고 숨이 막히는 등의 증상으로 괴로워했다. 이런 증상은 마치 고산병(高山病)과 유사했다. 그 환자가 꾼 꿈은 기차가 달리는 꿈을 꾸었다. 그 꿈은 기차가 기관사의 무분별한 운전으로 인하여 탈선이 발생하는 것이었다.

이 꿈을 두고 융은 미천한 출생신분과 오랜 상승의 노고로 지쳐있는데, 그의 명예욕이 그를 계속 더 높은 곳으로, 그가 숨쉬기에는 너무나 공기가 희박하고 그가 적응하지 못할 곳으로 내몰아서 신경증이 경고되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러니까 환자는 이 꿈에서 그려진 운명이 자기 궤도를 밟아 나갔다는 것이다.

환자는 야망에 차서 자기에게 온 기회를 남김없이 이용하려 들었고, 그렇게 하는 가운데 그의 직업에서 완전히 탈선하여 예상한 재앙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의식 수준에서 얻은 환자의 과거력으로 그저 추측한 것, 즉 고산병이 '더 이상 계속 올라갈 수 없음'의 상징적 표현이라는 것이 꿈을 통해서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4) 텔레파시 현상으로서 꿈

꿈의 텔레파시 현상은 보편적으로 실재한다고 볼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하여 그다지 부정적이지 않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융의 견해를 참고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융은 "이 텔레파시 현상의 꿈은 현존하는 증명 자료를 조사하여 입증하기 어려운 점이 있지만, 이 현상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과학적인 태도이지만, 텔레파시 현상이 꿈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융은 자신의 경험에서 찾고 있다. 물론 이런 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각 사례마다 연상의 일치 가능성을 참각해야 하고, 병행하는 정신 과정을 고려하야 하는데, 이 과정은 특히 가족에게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입증되어 있고, 무엇보다도 태도의 동일성 또는 상당한 유사성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텔레파시 현상의 꿈과 관련하여 융은 잠재 기억의 특수성을 관련시키면서 분석의 경험을 예로 든다. 그는 텔레파시 꿈을 분석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많은 꿈이 분석의 순간까지 텔레파시의 의미를 모르던 것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분석을 통하여 다른 꿈의 분석과 마찬가지로 주관적인 자료를 밝혀냈고, 그렇게 함으로써 꿈은 주체의 순간적인 상황에 일치되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의 꿈은 대개 사건의 사망예식에 해당하는 인간적인 중요성이 그것을 예감하거나 먼 곳에서 지각하는 현상을 어느 정도 해병하거나 최소한 이해하도록 돕는다는 점에서다. 그 반면에 소수의 꿈들은 나타난 꿈의 내용이 텔레파시의 확인을 포함하고 있고, 그 확인이 하찮은 것에 관계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모르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의 얼굴, 관심 없는 장소, 관심 없는 조건 아래에 모아놓은 가국, 하찮은 편지의 도착 등과 같은 것들이다. 이런 경우는 이른바 우연을 더 생각하는 것이라는 점에서다.

이렇게 우리는 꿈의 예시적인 성격에 대해서 구분하여 기술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이해를 하기 위해서 구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융은 예시적인 꿈의 기능에 대하여 꿈을 분석하는 분석자들에게 과대평가를 하지 말 것을 권고한다. 그렇게 할 경우에는 꿈이 마치 일종의 영혼의 인도자로서의 탁월할 앎으로서 인생에 참된 방향을 부여할 수 있다는 생각에 빠지기 쉽다는 이유에서이다.

나아가 융은 예시적인 것이 예언적인 것이라고 사용하는데 대해서는 더 엄격한 기준을 갖고 있다. 실제로 융은 갈등 해결의 설계도와 같은 예시적인 꿈에 대해서 예시적이란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예언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꿈이 예언적인 것도, 질병 예후나 일기 예보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확률의 예비 결합이라는 점에서다. 이것은 때로는 사물의 실제 모습과 일치할 수도 있으나 반드시 일치해야 되는 것은 아니고, 다만 완벽하게 일치하는 경우에만 예언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의식에 보내는 메시지로서 꿈

"꿈은 무의식의 반영이다"라는 말은 꿈은 무의식의 존재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꿈이 무의식을 드러낸다는 것은 정신에서 일종의 무의식의 역할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 형태가 자연발생적으로 된 형태이든지, 의도적으로 된 것이든지 간에 일단 어떤 역할을 생각하게 만든다. 이것은 무의식의 역할과 관계되는 것이기도 하다. 융은 '꿈의 역할'에 대하여 실제로 무의식의 기능들(Die Funktionen des Unbewussten)이라는 표제 아래에서 설명한다. 꿈의 역할, 즉 그 기능은 곧 무의식의 역할과 동일하다는 의미에서다.

1) 강한 메시지를 보내는 꿈

꿈은 의식에 강한 메시지를 보내는 기능을 한다. 이런 꿈은 대개 반복적으로 동일한 꿈을 꾸는 경우이다. 이런 꿈은 자주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꿈이기에 대체로 강박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다. 융은 이런 꿈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하지만, 여기에는 동일한 이유가 아닌 다음의 그 특성을 구분하는 것이 요구된다.

먼저는 단순한 보상의 경우이다. 대체로 같은 꿈을 반복적으로 꾸는 사람 중에는 어려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꾸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런 경우는 꿈을 꾸는 사람의 생활태도에 결여된 부분을 보상하려는 시도의 현상이라고 본다. 그 다음은 그 밖에도 강박적인 꿈으로 반응성이 강한 경우이다. 큰 사고를 당한 사람이나, 심리 및 신체적으로 심한 상처를 당한 경우, 끔직한 사건의 꿈, 전쟁의 공포체험, 무시무시한 참상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잊어버리고 싶은 것이나 심한 충격 때문에 나타나는 반복적인 이 특성은 반응적이며, 거의 자동적인 것이다.

2) 장래에 일어날 사건과 관련되는 꿈

의식에 보내는 메시지 중에는 장래에 일어난 사건과 관련되는 꿈이 있다. 이런 꿈은 대개 한 번의 인상적인 꿈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반복적인 꿈 가운데는 장래에 일어날 중요한 사건에 관련되는 것이 있다. 이는 예시적 및 경고적인 것이면서 몇 가지 복합적인 성격을 담고 있다. 그것이 장래에 일어날 중요한 사건을 예측할 수도 있다는 데서 미래예시적인 꿈과 관련되는 성격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꿈은 언제나 '미지의 목소리'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융은 "꿈은 언제나 새로운 계략, 새로운 위협, 희생, 전쟁, 그리고 그 밖의 다른 것들을 가지고 위협하는 미지의 목소리다."고 언급한 것이다. 여기에 융은 다음과 같은 예를 든다.

어떤 아프리카 흑인이 한번은 그의 적이 그를 붙잡아 산 채로 불태우는 꿈을 꾸었기에 다음 날 그는 자기 친척들을 불러내서 자신을 불태우라고 간청했다. 친척들은 그의 발을 묶은 뒤 발을 불 속에 들여놓는 데까지 동의다. 그 남자는 물론 심한 불구자가 되었지만, 그의 적들의 공격을 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꿈이 장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 의식에 보내는 강한 메시지라는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가 하면 어떤 것을 촉구한다는 점에서 경고적인 측면을 갖는데, 강박적으로 자주 등장하는 것은 의식에 촉구하는 강한 메시지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융은 다음과 같은 여환자의 꿈의 예를 든다. 그 꿈은 겁에 질린 말이 집 안을 여기저기 마구 달리고 있다. 그러던 말이 마침내 복도로 가는 문을 발견하고 복도 창문을 통해 4층에서 거리로 뛰어내렸고, 그녀는 그 말이 바닥에 상처를 심하게 입은 채로 누워 있는 것을 보고 놀라는 꿈이다.

여기에 융은 매우 공포스런 꿈으로 자살하는 꿈이라고 보았다. 물론 말이 어떤 상징을 의미하는가의 문제는 중요하다. 말은 물건을 나르는 동물로서 때로 모성을 상징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 꿈은 무의식적인 삶이 스스로를 파괴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말이 역동이며 수레이며, 충동처럼 사람을 실어 나르지만, 충동처럼 공황의 지배를 받기에 의식성이 부족한 편이다. 그래서 말은 마술, 즉 비합리적, 주술적 작용과 관계가 있는데, 특히 죽음을 예고하는 검은(즉 밤의)말이 그렇다. 이것은 바로 장래에 일어나 사고를 예견하는 것으로 의식에 대한 무의식의 강한 메시지이다.

3) 자기 나름의 심리적인 해석을 요구하는 꿈

의식에 강한 메시지를 보내는 꿈은 대개 반복적인 꿈을 꾼다. 어떤 사람이 "나는 언제나 같은 꿈을 꾼다."고 말하는 경우이다. 이런 꿈은 대개 그 꿈이 가리키는 것은 과거의 사건에 대하여 자기 나름대로 심리적인 해석을 내려야 한다는 메시지이다. 그 메시지를 무의식이 의식에 보내는 것이다.

물론 무의식이 모두 꿈은 아닌 것이지만, 그 역할에 있어서는 동일한 특성이 있음을 말한다. 꿈을 보면 무의식의 역할을 알 수 있으며, 또한 무의식은 꿈과 같은 기능의 작용을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꿈과 무의식의 존재를 동시에 밝히는 이중적인 효과를 담고 있는 것인데, 이는 어느 한 쪽이 밝혀지면 그것으로 인하여 다른 것도 동시에 밝혀지는 효과이다.

그것은 꿈은 무의식의 반영이며 꿈이야말로 무의식을 알 수 있는 유일한 통로라는데 기초하고 있다. 이에 대한 특징에 대해서 정리하는 것이 우리가 꿈-기능을 이해하는데 유익할 것이다.

확실히 꿈이란 개인의 주관 및 객관적인 현실이 고려되어야 하는 원리가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비록 전형적으로 등장되는 단순한 상징들이라 해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것들에는 떨어지는 것, 날으는 것, 위험한 동물, 박해를 당하는 것, 사람들 앞에서 옷이 벗겨지거나, 목적지에 도달하고자 하나 그렇지 못한 것, 무방비 상태의 무기, 전쟁하는 꿈, 군중의 소용돌이 등이다. 이런 것들도 꿈은 꿈을 꾼 본 본인의 여건과 상황이 중요하고 무의식의 보상방법도 개인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3. 정리

지금까지 우리는 앞 장에 이어서 우리는 꿈의 기능에 대해서 고찰하고 있다. 꿈의 기능에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고 부정적인 측면의 양면성이 있다고 했다. 부정적인 측면으로서는 현재의 잘못된 생각을 그대로 추진하면 위험이 따른다는 앞에서 든 보상적인 것도 해당되기 때문이었다.

다만 미래의 일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자칫 기적이나 미래에 대한 예지적인 것으로 혼동하기 쉬운 경향이 있는데, 이는 의식이 때로 보지 못하는 경우를 무의식이 보는 경우가 많고, 이를 꿈에 알려주는 원리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우리는 꿈의 기능에 대해서 미래적인 기능과 의식에 보내는 메시지로서 구분하여 기술해야 했다.